7화 무에타이
지은이 자유 · 2026-10-27
7화 무에타이
무에타이 선수 신기루가 말했다.
“일단 잽입니다. 복싱을 배우셨다니 잘 아시겠네요. 폼이 정말 멋지십니다.”
나는 먼저 예전에 배운 복싱을 바탕으로 잽을 연습하고 있었다. 신기루는 싸움 실력만큼이나 가르치는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사실 신 선수는 태국 선수와의 시합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태였다. 덩치는 크지만 자신보다 어린 데다 선수도 아닌, 촉법소년과의 싸움 때문에 따로 준비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엘보. 제대로 배우는 건 처음일 것 같은데 아주 잘해요. 이 기술은 강력하기도 하고 때론 상대의 피부에 손상을 입혀서 피를 흘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복싱에는 없는 기술로 무에타이를 통해서 처음 배운 팔꿈치 기술이었다. 위로 올려치기도 하고 옆에서 휘두르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찍기도 하는 살벌한 기술이었다.
“이번에 배울 기술은 빰클린치란 것으로 스탠딩 그래플링 기술입니다. 서서 서로 붙잡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다른 기술을 섞어서 쓰거나 쓰러뜨리기도 하죠. 무에타이 선수들은 주로 니킥과 섞어서 씁니다. 최고수들일수록 빰클린치와 니킥 싸움이 중요하죠.”
신기루는 몸소 나와 대련을 해주면서 빰클린치를 가르쳐주었다. 만약 가까이에서 맞붙어도 상대에게 밀리지 않을 수 있는 기술 같았다.
상대가 덩치가 더 크더라도 빰클린치만 제대로 배운다면 힘싸움에서 밀리지 않아서 자기가 쓰고 싶은 기술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니킥은 샌드백으로 가서 100번 연습하세요.”
나는 샌드백을 붙잡고 니킥을 계속해서 차 넣었다.
왼쪽과 오른쪽 니킥을 연속으로 하면 1회에 해당하는 것으로 총 200회의 니킥으로 샌드백을 차면 되는 것이었다.
무적 텐트 안에서의 비공식 시합 날이었다. 신기루는 내게 가르쳐준 바로 그 기술로, 덩치 큰 아이라고 해야 할지 남자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상대를 공격했다. 덩치가 너무 커 어른으로 보일 정도의 중학생이었다.
기루의 잽은 마치 송곳과도 같아서 한 방 한 방 맞을 때마다 상대의 머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엘보 공격이 몇 번 적중하니 덩치의 얼굴이 피떡이 되었다.
쌍코피가 나고 입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덩치는 최후의 발악으로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기루의 몸을 붙잡더니 쓰러뜨리려고 했다.
그러자 기루는 상대의 목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다가 니킥으로 옆구리를 계속해서 공격했다. 그야말로 무한 니킥 공격이었다. 기루는 수십 번의 니킥 공격을 퍼부었다.
상대의 반격이 끊기자 경호원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갔다. 기루는 한 번 더 다가가려다 멈췄다.
“끝났어.”
기루는 한동안 상대를 내려다봤다. 그러다 뒤로 물러났다.
“오늘 제 동생이 다시 제 이름을 제대로 불렀습니다.”
그 말이 기루가 멈춘 이유인지, 멈춰야 했던 자신을 납득시키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성우를 꿈꾼다던 기루의 동생은 그나마 짧은 단어는 이제 제대로 발음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건 다행이었지만 내 텐트는 다 찌그러져 있었다.
그럴 줄 알고 이미 똑같은 모델의 새 텐트를 사둔 상태였다. 기루와 그의 친구들은 돌아가기 전에 텐트 설치와 내부 정리까지 깔끔하게 끝내줬다.
기루의 동생을 때린 놈은 덩치가 있어서인지 장기간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았다. 기루가 그래도 초보자를 봐주는 의미로 상대에게는 헤드기어를 착용하게 하고 자신은 두꺼운 글러브를 착용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자경단은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단지 내 뒤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근처에 소문이 쫙 퍼져서 텐트 주위에서 욕을 해대는 사람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신기루는 태국 원정을 통해 치른 시합에서 태국 선수를 이기고 챔피언이 되었다.
그 시합을 뉴츄브로 보니 기루의 동생이 형 옆에서 트로피를 들고 서 있었다. 머리 수술로 머리카락을 빡빡 민 상태였다.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빼빼 마르고 작은 아이였다.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체육관 관원들로 구성된 자경단원들이 두 번째로 도움이 된 사건은 사이버 범죄였다. 내 뉴츄브에 지속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난 인터넷상에서 제법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폰서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스폰서의 광고를 텐트 밖에 붙여놓곤 했다.
“고기 파는 남자.” 줄여서 고파남. 내가 스테이크를 주로 배달시키는 식당이었다. 나는 텐트에 광고를 붙여두는 대신 매일 최고급 스테이크를 제공받고 있었다.
가게 이름답게 그곳에선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칠면조까지 다양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광고를 해주는 식당 때문에 주변의 다른 고깃집들이 장사가 안 되는 것이었다. 내게 악플을 단 사람은 주변 식당 사장의 아들이었다.
초등학생이라서 조심성이 없었는지 자기가 악플을 단 그 계정에 자기 얼굴이 나오는 영상들을 올려댔다.
난 그 초등학생을 혼내는 대신 돈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체육관 사람들과 함께 내게 악플을 단 아이의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그러고는 소고기, 돼지고기 할 것 없이 마음껏 먹었다. 운동을 끝낸 직후라 모든 게 맛있었다. 내겐 도박업으로 번 엄청난 돈이 있었기에 매일 체육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그 식당 아들 녀석도 내가 식사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내가 매상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은 재미를 붙였는지 내 뉴츄브 채널에 악플 다는 걸 멈추지 않았다. 나는 식당에 가서 돈을 쓰는 걸 그만두고 조용히 녀석의 뉴츄브 채널에 메시지를 보냈다.
알고 보니 그 초등학생은 전문 악플러로 자기 스스로도 악플 다는 게 잘못됐단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엄마가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해서 하루에 1시간 동안만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쓰면서 게임을 하고 뉴츄브를 보는 게 상당한 불만이었다.
그래서 그 아까운 시간을 가장 자극적인 악플 달기로 대부분 보낸다고 말했다.
나는 그 아이의 부모에겐 미안했지만 주말에 시간을 내서 아이가 하루 종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덕분에 내 뉴츄브 채널에 달리던 악플은 사라졌다.
나는 괜히 정의로운 마음이 생겨서 아이가 악플 다는 일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다.
나는 고양이 첼시를 키우기 이전에 새끼 길고양이를 임시보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고양이에게 물어뜯기면서 알게 된 것이 형제 혹은 부모와 같이 산 고양이는 사람을 무는 경우가 훨씬 적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다른 고양이에게 물려보면서 자신이 무는 행동이 다른 고양이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게 작용할지 알게 되는 역지사지의 단순한 논리였다.
아이는 룰이란 게임을 해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만 12세가 되지 않아서 계정을 만들 수 없었다. 나는 내 계정을 빌려줘서 아이에게 룰을 하게 했다.
아이는 룰을 시작한 지 5시간도 채 되지 않아 나보다 잘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게이머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것 같았다.
문제는 악플에는 그만한 재능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하는 욕이라고 해봤자 이런 것이었다.
“넌 못생긴 돼지야”
“응니애미”
“어쩔티비 저쩔티비 쿠쿠루삥뽕 지금 화났죠? 개킹받죠?”
“어쩌라구 반사”
“아무것도 못하죠? ^_^ 그냥 화났죠?”
상대가 보면 귀엽다며 헛웃음이나 칠 욕들을, 아이는 엄청나게 상대의 정신에 충격을 주는 말인 줄 알고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가 타이핑을 할 때 30살 넘은 사람들이 즐비한, 10년 된 룰이란 게임의 특성상 걸쭉한 욕들이 채팅창에 올라오곤 했다.
차마 여기다 말할 수조차 없는 희한하고 사람의 피를 말리는 그런 욕들을 그 아이가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이가 가장 참기 힘들어하는 욕은 자신의 실력을 폄하하는 욕들이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아직은 기초적인 것도 잘 모르는 것이 많았다. 특히 게임상에서만 쓰는 용어를 몰라서 헤매고 있을 때면 날아오는 수많은 욕들에 대해서 아이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렇게 아이의 악플 습관은 치료되었다. 그리고 더는 어린이가 알면 안 되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는 텐트로는 아이를 초대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의 나는 스님처럼 웹소설만 쓰고 인터넷 방송을 했으며 가끔 도박장을 여는 매우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 그 아이의 뉴츄브 채널로 가보니 부모님과 선생님의 특별 허락을 받아서 인터넷 게임 방송을 하는 듯했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 프로게이머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서려고 고민 중이었다.
나 또한 그 아이 덕분에 보상을 얻었다. 아이는 PC방에서 룰 특별 과외를 해줬고 내 실력은 날이 갈수록 나아졌다. 프로게이머급 재능을 가진 아이는 가르치는 재주도 남달랐다.
나는 그렇게 향상된 룰 실력 덕분에 게임 방송을 할 때 시도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이 훨씬 늘어났다.
마지막 룰 과외를 하는 날 나는 아이의 장래가 염려되어 한마디 했다.
“넌 실력이 아주 좋아서 앞으로는 게임상에서 욕먹을 일도 없을 거고 핵을 쓸 일도 없을 거야. 다만 경쟁전 대리만은 하지 마라. 그건 나중에 프로게이머가 될 너를 위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안 좋을 거야.”
나는 이미 남을 대신해서 룰을 해주다가 프로게이머로서의 인생이 끝장나고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오점을 남긴 사람들을 많이 봐온 터였다.
아이의 집이 가난해지면 돈을 벌기 위해서 룰 경쟁전 대리 플레이를 할 수도 있었기에, 나는 체육관 운동이 끝나면 아이의 부모님이 영업하는 식당으로 가 매일 배불리 고기를 먹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가장 맛있는 건 나의 스폰서인 고파남에서 시키는 고기였다. 그래서 텐트에 붙인 광고는 결코 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