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자경단과 촉법소년
지은이 자유 · 2026-10-27
6화 자경단과 촉법소년
그날도 나는 론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중세 판타지풍 웹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때 나를 방해하는 것은 내 고양이 첼시뿐이었다.
첼시는 계속해서 노트북 위로 올라가려고 시도하고 있었고 나는 고양이를 안아서 옮기기를 반복했다.
그날은 AV 촬영을 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다솜은 내가 계약금을 받고 이미 일시불로 구매한 미니 카퍼에서 내려서 촬영에 필요한 소품들을 텐트로 옮기고 있었다.
배우 두 명을 포함한 일본인 스태프가 3명뿐이라 우리가 촬영을 도와야 했다.
계약서에는 다솜과 내가 스태프로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AV 제작사의 사람들은 카메라 장비를 준비하는 것만도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날의 촬영 콘셉트는 일본인 뉴츄버들이 텐트 안에서 촬영을 하다가 대마초에 취해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이야기였다.
「함께 포커를 치는 두 사람. 최근 뉴츄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무적 텐트에 방문해서 포커를 치다가 돈을 다 잃은 여자 뉴츄버.
돈을 다 잃자 자신의 옷을 걸고 도박을 하는 몸매가 좋은 여자. 그러다가 옷을 다 뺏기고.
남자 뉴츄버는 텐트 안에서 대마초를 발견해서 피우고는 같이 대마초를 피우고 성적인 행위를 하면 딴 돈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여자 뉴츄버에게 제안했다.
그리고 시작되는 야한 장면. 텐트 안은 대마초 연기로 자욱하고. 촬영 중이던 여자 스태프마저 간접 흡연으로 취해 카메라가 흔들리고 있었다.」
섹스 장면 촬영을 끝내고 쉬고 있는 남녀 AV배우들. 카메라맨이자 통역사가 텐트 안에서 나를 불렀다.
“나 대마초에 취한 것 같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텐트 안에서 나랑 하지 않을래요?”
나는 물론 승낙했다. 좁은 텐트 안에서 나는 AV배우 출신일지도 모를 일본 여자와 부둥켜안기 시작했다.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 물건은 카메라였다.
카메라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카메라를 집어 드는 다솜.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찍고 있었다. 그렇게 AV배우로 데뷔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나는 키스를 계속했다.
촬영을 끝내고 나니 통역사는 멀쩡해 보였다. 어쩌면 통역사가 미리 다 짜놓은 시나리오일지도 몰랐다.
이왕 한국에서 촬영하는 거니 일단 영상을 찍어둔 다음 내가 AV배우 계약서에 사인하면 그때 찍힌 영상을 판매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통역사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가 찍은 장면도 같이 판매해도 될까요?”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전 아직 계약하지 않았어요. 다음에 혹시 돈이 필요해지면 그때 생각해 보죠.”
그날 밤 다솜은 내 텐트에 머물렀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도 영상 찍어서 팔아볼까? 일본에선 커플들이 찍은 영상으로 엄청나게 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대. 큰 회사가 아니고 그냥 일반인들이 말이야. 요샌 온리폰즈라고 개인이 찍은 성인용 영상을 유료로 파는 곳도 있어.”
나는 물었다.
“진짜 해볼 생각이야?”
다솜이 대답했다.
“농담이지. 돈 많은데 뭐 하러 해.”
하지만 분명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는 있었다. 나는 최후의 보루 같은 걸로 야한 영상 찍어서 팔기를 생각해 뒀다.
다음에 혹시 유준이 뒤를 봐주지 못해 몸값 비싼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필요해졌을 때 정도 말이다.
그때 밖에서 경호원들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시 유준이 붙여준 경호원들의 24시간 경호를 받았다. 경호원 중의 한 명이 말했다.
“접근은 안 됩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니, 넌 기루 아니냐? 신기루. 맞지? 마스크 내려봐.”
그 말을 들은 무리 중의 한 명이 마스크를 내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형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저희 텐트 안의 사람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나쁜 짓 아니니까 들여보내 줘요.”
“잠깐만 있어봐. 난 네가 얼마나 착실한 선수인지 잘 알아. 시합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왜 여기까지 온 거야? 일단 나한테 이유를 말해봐.”
곧 경호원이 나에게 누군가 왔으니 만나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자신이 다니는 격투기 체육관 소속 선수라고 말했다. 나는 경호원을 믿고 만나보겠다고 말했다.
자유컴퍼니 소속 경호원들은 모두 격투기 선수 출신으로, 지성과 인품까지 갖춘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업계 최고를 넘어서 다른 경호원들보다 몇 배로 많은 돈을 받을 테니 최고의 엘리트들이 뽑히는 게 당연했다.
내가 만난 사람은 17세의 무에타이 선수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신기루라는 이름을 가진 무에타이 선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말했다.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내 동생이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지만 머리를 다쳐서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내 동생은 성우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말을 어눌하게 하게 돼서 상심이 큽니다. 이 녀석이 그랬어요. 내 동생보다 덩치는 훨씬 큰 놈이 싸움을 걸었습니다.”
신기루는 페이셜북 프로필 사진을 가리켰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랬다. 평소에 조금씩 돈을 뺏던 같은 반 덩치 큰 학생이 어느 날 신기루의 동생에게 제법 많은 돈을 빌렸다고 한다.
기루의 동생은 상대가 너무 위협적이라 부모님에게 옷을 산다고 한 다음 받은 돈을 빌려줬다.
그런데 덩치 큰 아이는 갚지 않았고 어느 날 참다못한 기루의 동생은 반 친구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돈을 갚으라고 통보했다.
그 일이 화근이 되어 기루의 동생은 일방적인 폭행을 당했고, 머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었다.
폭행을 가한 학생은 만 13세의 촉법소년이어서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일단 보호자에게 인계되었다고 기루는 말했다.
그리고 일방적인 폭행이 아닌 일반적인 학생들끼리의 싸움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취급되었다고 기루는 말했다.
문제는 가해자가 학교에서 유명한 우두머리 같은 존재라 반 친구들도 모두 두려움 혹은 친분 때문에 제대로 증언하길 꺼려했다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뭔가요?”
“싸우게 해주십시오. 그 녀석도 응했습니다. 놈과 나는 체급이 거의 비슷해요. 내가 가벼운 체급의 선수라 오히려 그놈보다도 체중이 덜 나갑니다. 문제는 상대가 촉법소년이라서 싸우면 나만 처벌받을 거라는 거죠.”
신기루라는 남자는 내게 가해자의 페이셜북을 다시 보여줬다. 그 아이가 올린 글은 이런 내용이었다.
“단 한 방에 병신 만들고 입원시키는 게 내 주먹이다
나 정도면 어른과 싸워도 이길 듯 ㅋ”
그 글 위에는 자신의 주먹을 찍은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웬만한 성인 남자의 주먹보다도 커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고민했다.
이번에도 또 텐트를 빌려달라는 부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얻는 것이 없었다. 내 텐트를 빌리는 사람은 가난한 격투기 선수였다.
“그래서 난 무엇을 얻을 수 있죠?”
“우리는 자경단입니다. 당신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로 압니다. 우리는 아직 학생이지만 강합니다. 저는 성인 선수와 싸워서 이긴 적도 있어요. 경호원이 못하는 일을 하겠습니다. 바로 보복이죠.”
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요청에 응했다. 내가 만약 정의의 사도였다면 자세한 사건의 조사를 먼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충 정의로운 상황인 듯했고 상대가 제시한 조건이 마음에 들었기에 응한 것이었다. 든든한 아군을 얻을 기회였으니까 말이다.
일단 힘을 가진 다음 정의를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세상엔 전혀 정의롭지 않은데도 힘이 강해서 그 힘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유준은 어떤 쪽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단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 같긴 했다.
그가 행하는, 나와 관련된 실험이 자유를 누리는 것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실험일까? 나는 의문을 가지긴 했다.
나는 실험실의 쥐와 같은 상태로, 나를 관찰하는 과학자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일단 과학자가 주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정통 누아르 영화에 나오는 보스가 된 기분이었다. 어둠의 힘이 이럴 때 필요한 거라고, 형제여. 나는 시가 대신 대마초를 빨면서 잠이 들었다. 자경단이라······.
그것도 격투기 선수로 이루어진 나의 아군. 나는 갱단의 보스가 되어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는 상상을 했다. 옆에서는 다솜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려주었다.
시합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협회가 인정한 정식 경기는 아니었다. 내가 텐트를 빌려주고 두 사람이 맞붙게 하는 사적인 대결이었다.
그 무렵 나는 신기루의 초청으로 체육관에서 격투기를 무료로 배울 수 있었다.
텐트 밖에서 나는 무법자가 아니었지만 그 체육관 안에서만큼은 완전히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보호받는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나는 신기루의 요청에 응한 것이었다.
텐트 안도, 그 밖도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해서였다. 신기루의 훈련 모습을 보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 그는 그렇게 쉽게 이겨주지 않을 것 같았다.
묵직한 킥 한 방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마 예리한 주먹으로 아주 천천히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아픈 곳만 때려가면서 서서히 침몰시킬 것 같았다.
시합을 며칠 남겨두고서야 자신감에 가득 찬 덩치 큰 촉법소년은 상대가 격투기 선수란 걸 인지한 듯했다.
하지만 애써 정신승리하면서 "약골 동생에 약골 형"이라고 페이셜북에 글을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