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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줄 회사를 사세요

지은이 장지호 · 2026-10-26

D+66 · 11:00

본부 복도 자판기 앞에 최 계장이 서 있었다. 다인을 보고 커피 두 잔을 뽑아 한 잔을 내밀었다.

다인은 받지 않았다.

"계장님이세요?"

최 계장은 잠깐 컵을 든 채로 서 있었다. 그러고는 두 잔을 다 자기 쪽으로 내려놨다.

"저 그날 이어폰 안 꽂고 있었어요."

"...네."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어요. 서 주무관님 청문회 나가기 전에. 뭐 걸릴 만한 거 없냐고. 저는 없다고 했어요." 그는 컵 하나를 자판기 위에 올려놨다. "그러고 나서 이틀을 못 잤어요. 없다고 하고 나니까 있는 걸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더라고요. 그게 더 무서워요, 주무관님. 혼자 아는 거."

"그래서 말했어요?"

"네."

노경환이 알았지, 하던 속도와 같았다.

"제가 뭐라고 하길 바라세요."

"아무것도요." 최 계장은 자기 컵을 들었다. "저희 어머니 얘기 했었죠. 십 년 하다가 포기하셨다고. 저는 그거 보고 공무원 됐어요. 안에 들어가면 뭐라도 될 줄 알고. 근데 안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배운 게 뭔지 아세요? 안에 있는 사람이 제일 시키는 대로 해요."

다인은 자판기 위의 컵을 봤다. 김이 빠지고 있었다. 그걸 마셔주면 이 사람이 편해질 거라는 걸 알았고, 그래서 마시지 않았다.

"저는 계장님이 잘 주무셨으면 좋겠어요." 다인은 그렇게 말했다. "근데 제가 도와드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D+66 · 16:30

다인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등기소에 들렀다. 출장 경로에 있었고, 핑계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문 앞에 청원경찰이 서 있었다. 두 달 동안 아무도 오지 않는 건물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인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서울 가셨다더니."

"잠깐 들렀어요. 요즘은 좀 어떠세요?"

"할 게 없죠. 그래서 더 서 있어요." 그는 웃었다. "사람이 안 오는데 문은 열어놔야 하니까. 그것도 일이더라고요."

창구는 한산했다. 등기 업무가 멈춘 지 두 달, 이제 사람들은 등기소로 오지 않았다. 골목 건너편 부동산 유리창에는 매물 종이가 한 장도 붙어 있지 않았다. 종이 대신 A4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당분간 쉽니다. 임 주사는 자기 자리에서 종이 원부 이송 목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인을 보고 놀라지도 않았다.

"왔나."

"지나가는 길에요."

믹스커피를 타 주는 것도 그대로였다. 다인은 반쯤 마시고 나서 물었다. 두 달 동안 미뤄온 질문이었다.

"선배. 노경환이라고 아세요?"

임 주사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 그게 답이었다.

"전산계 노 계장. 알지."

"십오 년 전에 이관 검수를 그분이 했어요."

"그랬지."

"선배도 그때 전산 겸직이셨죠."

임 주사는 종이 원부 목록을 한 장 넘겼다. 넘기고 나서 말했다.

"서 주무관. 묻고 싶은 걸 물어."

"그날 서고에서요." 다인은 컵을 내려놨다. "제가 열일곱 필지 보여드렸을 때, 선배 장갑 벗으셨어요."

"...그랬나."

"벗을 자리가 아니었어요. 그러고 이튿날 일정 남았는데 그날로 내려가셨고요. 제 전화도 안 받으셨어요."

임 주사는 목록을 넘기지 않았다.

"알고 계셨어요?"

사무실의 낡은 벽시계가 몇 초를 갔다.

"소문은 있었어. 그 동네 원부가 이상하다고. 노 계장이 한동안 술을 많이 먹었고. 나는," 임 주사는 거기서 처음으로 다인을 봤다. "안 물어봤어. 물어보면 알게 되잖아. 알면 뭘 해야 되잖아. 나는 안 하는 쪽을 골랐어. 삼십 년을 그렇게 다녔어."

"후회하세요?"

"아니."

임 주사의 대답은 이번에도 빨랐다.

"후회한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거짓말이야. 나는 그 덕에 무사히 다녔어. 애들 키웠고. 그걸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하면, 그 세월 무사했던 게 공짜인 척하는 거지."

다인은 커피잔을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아무 말 안 하지, 물어보지도 않는 걸 뭐하러. 두 달 전 백반집에서 들었을 때 그 말은 처세술이었다. 지금 들으니 그것은 고해였고, 처세술의 문장과 고해의 문장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 직장의 삼십 년이었다.

임 주사가 커피를 따르다 말고 물었다.

"자네는 후회해?"

청문회 얘기였다. 다인은 잠깐 생각했다.

"모르겠어요. 근데 안 했으면 그게 더 오래갔을 것 같아요."

"그럴 거야." 임 주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걸 삼십 년 알고도 안 했어."

그 말에는 부러움도 원망도 없었다. 자기가 어디까지 갔고 어디서 멈췄는지를 오래전에 재본 사람의 말투였다.

"서 주무관 자리." 임 주사가 창구 쪽으로 턱짓을 했다. "비워놨어. 1번기가 요즘 말썽인데 아무도 못 고쳐."

"유튜브에 영상 있어요. 댓글 셋 중에 하나가 저예요."

"안 봐, 그런 거."

다인은 웃었고, 웃고 나서 알았다. 자신이 방금 웃은 것은 이 대화가 편해서가 아니라, 이 편안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제 알기 때문이었다.

돌아나오는 길에 다인은 비치대를 지났다. 작성 견본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홍길동. 두 달 동안 아무도 그 위에 이름을 덧쓰지 않아서, 견본은 처음으로 깨끗했다.

정부·국회 합동 발표 — 부동산 등기 신뢰 회복 특별법안 (D+71, 시한 D-9)

1. 등기 정정·삭제 이력의 영구 보존 및 무기한 공개 (즉시 시행)

2. 부동산 권리보험(권원보험) 단계적 의무화 — 등기부를 신뢰한 거래 피해를 보험으로 보전

3. 복원 기준: 필지별 최신 정합 시점 + 실태조사 인정 필지는 피해 발생 전 시점 적용

4. 장기 점유자 보호 및 공신력 부여는 "중장기 검토 과제"로 이관

└ 3번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 해석 좀

└ ㄴ 피해자로 인정된 4012곳은 사기 전으로 돌려주고 나머지는 대충 최신으로 맞춘다는 뜻

└ 2번이 제일 웃김. 나라 장부를 못 믿겠으니 보험 들으라는 거잖아. 보험료는 우리가 내고

└ 4번 보세요. 중장기 검토 과제. 저게 답입니다

└ 도장 찍으러 갔던 사람들 다 어디 갔냐

└ ㄴ 나 갔었음. 지금은 그냥 이사 준비함

└ ㄴ 우리가 뭘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웃긴 거였지

└ 그래도 1번은 처음으로 뭐가 바뀐 거 아니냐

└ ㄴ 그거 하나 받는 데 두 달 걸리고 나라 등기가 한 번 다 날아갔어요

D+71 · 10:00

법안 브리핑 자료가 본부에 먼저 왔다.

다인은 첫째 조항 앞에서 오래 멈췄다. 일체의 삭제·정정 이력 영구 공개. 홍길동의 세 번째 요구가 조사 한 자 안 바뀌고 들어와 있었다. 청문회에서 황인선이 요청한 그것이기도 했다. 등기부는 아무것도 삭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이제 등기부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무엇을 지웠고 무엇을 덮었는지까지 남기는 장부.

둘째 조항 앞에서는 더 오래 멈췄다.

"본부장님."

황인선은 같은 자료를 보고 있었다.

"2번이요. 이게 공신력이랑 뭐가 다른 겁니까."

"누가 보전하는지 보세요."

다인은 조항을 다시 읽었다. 부동산 권리보험. 단계적 의무화.

"...보험사요."

"내 장부는 원래 못 믿는 거니까, 못 믿는 값을 각자 사서 쓰라는 겁니다." 황인선은 넷째 조항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공신력 부여, 중장기 검토 과제. "그리고 이게 서명란이에요. 칠십 년 동안 서랍에 있던 문장이 서랍째 다시 들어갑니다. 이번엔 명분도 생겼죠. 우리가 방금 대안을 마련했으니까."

"보험료는 국민이 내고요."

"매매할 때마다요. 등기 잘못 적은 건 우리인데."

다인은 두 달 전 백반집을 생각했다. 우리 등기는 말이야, 믿어도 안 지켜줘. 임 주사가 국물을 뜨면서 하던 말이었다. 믿어도 안 지켜주니까, 이제 지켜줄 회사를 사세요.

"본부장님은 이거 반대하셨어요?"

"했죠."

"어디까지요."

"회의록에 한 줄이요." 황인선은 자료를 덮었다. "서 주무관이 아는 그 한 줄이요."

D+71 · 15:00

"이게 받아들여질까요."

회의에서 누군가 물었다. 홍길동이, 라는 주어는 생략됐다. 두 달 사이에 본부에서 그 이름은 주어 자리에 놓기 애매한 이름이 되어 있었다. 범인이라기엔 요구가 다 옳았고, 협상 상대라기엔 얼굴이 없었다.

"셋 중 하나입니다. 그것도 제일 싼 거요." 정 사무관이 말했다. "공개는 돈이 안 들어요. 공신력은 국가 배상이고, 점유 보호는 소유권 체계를 건드립니다. 제일 비싼 둘을 미루고 제일 싼 하나를 준 거예요."

"점유 보호가 미뤄지면," 다인이 말했다. "지난달에 다녀온 그 마을은 그대로입니다. 서른 집이 육십 년을 살았는데 등기가 없어요. 측량비하고 변호사비가 없어서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건 원래부터 그랬죠." 남 부장이 말했다.

"네." 다인은 말했다.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그래도 준 건 준 거죠."

"네. 그래서 모르겠다는 겁니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에 달렸다는 거죠."

"상대가 회계사면 거절할 거고, 상대가," 정 사무관은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억울했던 사람들이면, 받을지도요."

"둘이 왜 다릅니까."

"회계사는 값을 세니까요."

다인은 그 말을 받아 적다가 볼펜을 멈췄다. 억울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방은 두 달 동안 계산해왔다. 보상, 복원, 처벌. 그런데 창구에서 본 억울함들은 대개 그보다 앞의 것에서 무너져 있었다. 아무도 내 말을 적어주지 않는다는 것. 권상호가 서류 뒷면에 날짜와 담당자의 말을 사 년 동안 받아 적은 것은, 국가가 어디에도 그것을 적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구 공개는 그 사람들에게 이렇게 읽힐 것이다. 이제 나라의 장부에도 지운 자국이 남는다.

받을 것 같다고, 다인은 생각했다.

D+71 · 17:20

그날 마지막 안건은 발표를 어디에 하느냐였다.

법안은 정부 발표로 나갔고 관보에도 실릴 예정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관보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성명이 올라온 데가 어디였죠." 황인선이 물었다.

"등기 민원 커뮤니티 세 곳입니다." 홍보 담당이 답했다. "제일 큰 데가 회원 사만이고요."

"거기에 우리가 올린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면 저쪽이 못 봅니다. 아니, 볼 텐데," 홍보 담당은 말을 골랐다. "봤다는 걸 우리가 알 방법이 없어요."

국가가 국민에게 알리는 방법은 관보와 보도자료와 브리핑이다. 셋 다 상대가 답하지 않는 형식이었다. 두 달 동안 이 방은 조건을 계산했고, 그 조건을 어디에 놓아야 상대가 집어가는지는 계산한 적이 없었다.

"계정을 만들어야 되는데요."

"만드세요."

"이름을 뭐로 할까요."

그 질문에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기관명을 쓰면 정부가 그 커뮤니티에 회원으로 가입한 것이 되고, 안 쓰면 그게 정부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대한민국." 남 부장이 말했다.

"그건 저쪽 성명의 수신자로 적혀 있던 이름입니다." 정 사무관이 말했다.

"그러니까 맞잖아요."

"저쪽이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고 우리가 그 이름을 쓰면," 정 사무관은 잠깐 멈췄다. "협상을 인정하는 게 됩니다."

황인선이 다인을 봤다.

"서 주무관은요."

"기관명으로 하는 게 맞습니다." 다인이 말했다. "저쪽은 처음부터 서식을 갖춰서 보냈어요. 우리가 익명으로 답하면 우리만 서식이 없는 쪽이 됩니다."

조항을 정하는 데 두 달이 걸렸고, 이름을 정하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계정은 그날 저녁에 만들어졌다. 가입 절차에 휴대폰 인증이 있어서 홍보 담당 개인 번호가 들어갔다. 게시글은 세 줄이었다. 법안 요지, 관보 게재 예정일, 공고문 링크.

첫 댓글이 사 분 뒤에 달렸다.

이거 진짜 정부예요?

두 번째는 팔 분 뒤였다.

ㄴ 인증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