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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2

지은이 한용운

대철은 팔을 내밀고 얼굴을 들어 보였다.

“딴은 그런데요…”

순영은 아까보다 생기가 도는 대철을 보며 신기한 듯하다가도,

“그래도 그게 중독되면 끊기 어렵다는데요?”

다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끊지 못할 것도 아니지. 결심만 있으면 쉬운 건데,

결심이 부족해서들 고생하는 거요.

나는 지금 이 모양으로 돌아다니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어디든 자리를 잡고 앉으면 금방 끊을 수 있소.”

대철은 자기도 모르게 중독된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고치지 못하는 이유를 떠돌이 생활 탓으로 돌렸다.

“그럼 어디든 자리를 잡고 계시면 고칠 수 있다는 말씀이에요?”

순영은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지요.”

“그럼 지금은 정처가 없으세요?”

“정처가 무슨 정처요.”

“그럼 어디서 주무세요?”

“온 천지가 다 내 집이지요.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자리 삼아 사는 거요.

그러니 병을 고치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다니는 거지요.”

대철은 다시 한 번, 정처가 없어 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에구… 어쩌나. 그럼 밖에서 주무세요?”

순영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

대철은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그럼 저녁은 어떻게 하셨어요? 잡수셨어요?”

순영은 잊고 있던 것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침이니 저녁이니, 때를 찾아 먹는 것은 잊어버린 지 오래요. 그저 먹을 것이 생기면 먹고, 없으면 못 먹고 그렇지요.”

대철은 손으로 배를 만졌다.

“잡수시는 건 아무거나 괜찮으세요?”

“먹는 거야 뭐든 없어서 못 먹지요.”

“에구, 그럼 아직 저녁을 못 잡수신 거군요. 아무거나 조금 잡수셔야지요.”

순영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대철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조금 있다가 순영은 음식을 차려 가지고 들어왔다.

“우선 시장하실 테니 아무거나 좀 잡수세요.”

그녀는 공손히 권했다.

“이게 웬 좋은 음식이 이렇게 있어요?”

대철은 침을 삼켜 가며 고깃국과 전유화, 나물 등을 둘러보았다.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순영을 바라보았다.

“오늘 마침 생일집에서 가져온 것이에요. 밥도 찬밥이지만, 그래도 잡수세요.”

순영은 어느새 받아 온 술을 따라 권했다.

“아닙니다. 나는 병이 난 뒤로 술을 못 먹습니다.”

대철은 손을 내저었다.

“조금만 잡수시지요.”

순영은 술잔을 더욱 높이 들었다.

“아닙니다. 입에도 못 댑니다. 밥이나 먹지요.”

대철은 음식을 모조리 먹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상을 비웠다.

게걸스럽게 먹는 대철을 보고 앉아 있던 순영은,

전날의 기운차고 씩씩하던 대철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러나 그렇게 잘 마시던 술을 한 잔도 못 마시게 된 것은, 병세가 그만큼 깊어졌다는 뜻이었다.

또 본래도 먹성은 좋았지만,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먹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굶주렸는지도 알 수 있었다.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토록 씩씩해서 수영을 할 때면 서해 바다라도 단숨에 건너갈 듯하던 사람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억센 팔과 뜨거운 마음으로 밤새도록이라도 자신을 안아 주던 사람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세상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고 사람이라는 존재도 참 하잘것없다는 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홀연히 측은한 마음이 움직였다.

순영은 돌아앉아 눈물을 닦았다.

“어, 참 잘 먹었다. 어디 몸 담아 있을 데나 있고 먹을 도리만 있으면, 이놈의 병을 고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가 있어야지. 저런 아내를 박대한 놈이 이런 앙화를 받는 게 옳지.”

대철은 혼잣말처럼 말하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지 않아도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던 순영은, 그런 소리를 듣자 될 수 있는 대로 그 사람을 구원해서 병을 고쳐 주고 싶어졌다.

전날의 은혜도 은혜였지만, 당장 눈앞에서 보는 모습에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다.

그것은 어떤 목적을 바라는 공리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된 것이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계실 데만 있으면 병을 고치시겠어요?”

순영은 정답게 물었다.

“아, 고칠 수가 있고 말고요. 한데서 추위와 더위, 바람과 습기에 고생하지 않고, 죽이나 술이라도 먹을 수만 있으면 고치고 말고요.”

대철은 반갑게 대답했다.

“그런데 병을 고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얼마나 걸릴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쉽게 고칠 수 있겠지요. 고친 사람들 말을 들으면 한 달 만에 고친 사람도 있고, 두 달, 석 달 만에 고친 사람도 있고, 일정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결심하기 나름이니까, 마음만 굳게 먹으면 얼마 안 되어 고칠 수 있겠지요.”

대철은 결심이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 말을 듣는 순영은 다시 염려가 되었다.

한 달이나 두 달 정도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대철의 뒤치다꺼리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오래 간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