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1
지은이 한용운 · 2026-08-25
“에구, 추워 죽겠네.”
그런 소리를 신음과 함께 지르며 힘없는 팔다리를 오그릴 때면,
순영은 제가 덮던 거적까지 대철에게 덮어 주고 벗어 둔 옷가지마저 풀어 덮어 주었다.
그래도 모자라면 제 몸으로 바람을 가려 주거나 몸을 눌러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새벽부터 대철의 병세가 부쩍 급해졌다.
가랑가랑 끓어오르는 가래를 뱉지도 삼키지도 못했다.
꺼진 눈망울을 이따금 부릅뜨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입을 실룩였다.
손발은 차디차서 맥이 걷혀 가는 모양이었다.
대철은 가끔 억지로 눈을 떠 멀거니 순영 쪽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무슨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죽기가 슬퍼 흘리는 눈물인지, 순영에게 고마워 흘리는 눈물인지,
아니면 제 지난날을 뉘우치는 눈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밖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못 배길 다른 회포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남이 보기에는 그다지 값있는 눈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주 보고 있는 순영은 따라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사를 맞으실까요?”
순영은 대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입을 귀에 가까이 대고 나직이 말했다.
“……”
“과자를 드릴까요?”
“……”
“무슨 더운 국물이라도 사 올까요?”
대철은 고개조차 흔들지 못하고 손을 조금씩 내저어 싫다는 뜻을 보일 뿐이었다.
“까욱, 까욱.”
까마귀 소리야 늘 있는 것이라 예사로 들을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만은 그 소리가 몹시 듣기 싫었다.
“휘여!”
순영은 소리를 질러 까마귀를 쫓기도 하고 돌팔매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까마귀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저 나무에서 이 나무로 옮겨 갈 뿐 우는 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순영은 난데없는 까마귀가 대철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것만 같아 그토록 듣기가 싫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날씨는 갑자기 무더워져 비가 올 것 같았다.
순영의 마음도 몹시 뒤숭숭했다.
그때 개울 쪽에서 신음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나는 듯했다.
순영은 무심코 돌아보았다.
어떤 여자인지 머리는 풀어 헤쳐진 채 땅에 비벼 흙과 검불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사람의 머리인지 짐승의 머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옷이라고 걸치기는 했으나 갈가리 찢어져, 울근불근 드러나는 때 묻은 살조차 가리지 못했다.
그 여자는 금방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며 순영이 있는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두 팔과 두 무릎으로 짐승처럼 기어오는데, 한 번 기고 쓰러지고 다시 한 번 기고 꼬꾸라졌다.
그럴 때마다 숨을 몰아쉬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이따금 간신히 머리를 들어 순영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얼마나 남았는지를 가늠했다.
순영은 그 여자가 자기에게 오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 신세가 너무 가여워 사정을 묻고 다소나마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금방 숨이 넘어갈 듯한 대철이 있어 잠시도 자리를 뜰 수 없었고, 남의 일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그리하여 대철의 기색을 살피는 틈틈이 그 여자를 이따금 돌아볼 뿐이었다.
그 여자는 몇 번이나 쓰러지고 몇 번이나 쉬었다.
그러고도 기고 또 기어 마침내 순영 앞에 이르러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순영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다 죽어 가는 대철 때문에 어찌할 줄 모르고 앉았는데, 생기라고는 실낱만큼도 없는 여자가 와서 제 앞에 쓰러진 것이다.
그 여자가 가엾다는 생각보다, 거기서 죽지나 않을까 싶어 무섭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후유!”
한참 만에 숨을 내쉰 그 여자가 간신히 눈을 떠 순영을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달막이다가, 말할 기운이 없는지 그대로 눈을 스르르 감았다.
얼마를 그렇게 애쓰다가 다시 눈을 뜨며 말했다.
“물 좀……”
끝을 맺지 못하는 소리를 겨우 알아들을 만큼 하고는 도로 눈을 감았다.
순영에게는 대철이 찾으면 주려고 떠다 둔 물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그릇을 가지고 가서 새로 물을 떠 왔다.
“여보세요, 물 좀 드세요.”
그러면서 그 여자를 가볍게 흔들었다.
“응.”
소리를 내며 눈을 뜬 그 여자는 옆으로 누우면서 한 팔을 짚고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일어나지 못하고 도로 쓰러지며 콧살을 찡그렸다.
순영은 잠시 들여다보다가 물그릇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그 여자를 일으켰다.
“자, 여기 물이 있으니 드세요.”
물그릇을 들어 건네자 그 여자는 손으로 받으려 했으나 손이 떨려 받지 못했다.
그러고는 힘없는 눈으로 순영을 바라보았다.
“에구, 가엾어라.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순영은 물그릇을 그 여자의 입에 대어 주었다.
그 여자는 물을 서너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에구, 참 고마워라.”
순영의 손을 잡으려다 말고 조금 바로 앉더니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순영은 그 얼굴과 몸을 번갈아 보며 참혹하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거기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도로 대철 곁으로 와 그 기색을 살폈다.
그 여자는 순영을 보다가 다시 대철을 보더니, 입을 실룩이며 무슨 표정을 짓는 듯했다.
“여보세요.”
그 여자가 기운을 낮추어 순영을 불렀다.
“네?”
순영은 다시금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 여자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