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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2

지은이 한용운 · 2026-08-25

순영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앉아 있다가, 다섯 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에 놀란 듯 일어섰다.

“에구, 참 가 봐야겠네.”

그러고는 그 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영은 대철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조마조마했다.

대철이 주사 맞을 시간이 평소보다 세 시간이나 늦었다.

세 시간은커녕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죽는시늉을 하며 주사를 놓아 달라고 졸라 대던 대철이었다.

그사이 어찌 되었을까 하는 걱정에 발보다 마음이 앞서 서둘러 걸었다.

앞마당에 들어설 때 순영은 발소리를 죽이고 방 안의 기척을 살폈다.

방 안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순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마루에 올라섰다.

그러면서도 발소리는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래도 방 안에서는 그렇게 그렁거리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순영은 문고리를 잡고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으나 차마 활짝 열지 못했다.

그래도 방 안은 여전히 잠잠했다.

순영은 다시 기침을 하고 문을 조용히 열며 안을 들여다보았다.

대철은 팔을 이마에 얹고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입가에는 거품을 흘린 흔적이 낭자했다.

“주무세요?”

그렇게 말하며 들어서는 순영은 대철을 들여다보며 우선 숨기척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대철은 아무 대답도 없고 터럭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콧수염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숨을 쉬는 것만은 분명했다.

“주무세요?”

순영은 비로소 마음을 놓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주무세요?”

순영이 소리를 높이며 손을 대철의 코밑에 대어 보니 콧김이 따뜻했다.

“누구요?”

대철은 다 죽어 가는 소리로 혀도 제대로 놀리지 못한 채 눈은 그대로 감고 있었다.

아직 숨이 채 떨어지지 않은 송장 같아 보였다.

순영은 얼른 건넌방에서 주사약을 가져다 한 대를 놓아 주었다.

조금 뒤 기운을 차리고 눈을 뜬 대철은 순영을 보고는 못마땅한 듯 돌아누울 뿐이었다.

“그새 시간이 너무 늦었지요?”

순영이 미안한 듯 말했으나 대철은 대답이 없었다.

“시장하시지 않아요?”

“저녁 하기 전에 뭘 좀 가져올까요?”

“어차피 죽을 놈이 무엇을 먹어 뭘 해.”

대철의 말투가 곱지 않았다.

“잠깐 다녀온다는 것이 좀 늦었어요. 왜, 화나셨어요?”

“후유!”

대철은 한숨을 쉬며 일어나 앉았다.

머리를 짚고 눈을 감은 채 한참을 앉아 있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 있다가는 지레 죽을 테니, 나가다 죽더라도 다른 데로 가야겠소.”

그러고는 일어나 두루마기를 걸치고 모자를 쓰더니,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순영도 대철이 자기가 없는 사이에 주사 맞을 시간이 늦어 얼마나 애를 태우다가, 끝내 성이 나서 저러는 줄을 알고 있었다.

자기도 너무 괴로웠고 대철이 하는 짓이 얄밉기도 하여, 나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대철이 비틀거리며 나가는 꼴이 몇 발자국도 못 가 쓰러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어디로 간다 한들, 거두어 주는 사람 없이는 며칠 못 가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대철이 죽는 것은 곧 자기가 죽는 것이라고 여겨져 차마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아내로서 남편을 섬기는 마음이 아니었다.

손톱만큼이라도 앞날에 무엇을 바라고 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것 보세요. 이래 가지고 어디를 가세요. 들어갑시다.”

대철을 부축해 들어가면서 순영은 남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홀연히 눈물을 흘렸다.

탁한 공기와 흐릿한 티끌과 매연 속에서 복잡한 생활을 이어 가는 도회지 사람들은 늘 신선한 공기와 맑은 바람을 그리워한다.

더운 철이 되면 그 그리움은 한층 더했다.

그리하여 서울 사람들은 여름만 되면 될 수 있는 대로 나무 밑이나 물가를 찾아다니며 땀을 식히고 정신을 맑히려 했다.

경성 안의 크고 작은 공원에는 더위를 피하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여름 한철을 아예 거기서 나다시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경성의 공원이라는 것이 설비로 보면 아직 공원다운 공원이 없었다.

그래도 그늘도 있고 물도 있고 자리도 좋아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사직공원이었다.

그곳에는 더위를 피해 잠시 드나드는 사람은 물론이고, 운동이나 놀이를 하러 오는 학생들도 많았다.

셋집에서 쫓겨난 사람이나 오다가다 머무르게 된 사람들이 나무 밑에 거적을 치고 밥을 지어 먹으며 임시로 살림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데서는 보기 드문 특별한 광경이 하나 있었으니, 아편쟁이들의 모임터가 되다시피 한 일이었다.

아편쟁이 가운데서도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이 갈 데가 없어 그리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허다한 빈 땅을 두고 하필 사직공원으로 모여드는 데에는 그들 나름의 편리한 까닭이 있었다.

첫째로 마약을 파는 곳이 가깝고, 둘째로 주위에 집이 많아 밥을 얻어먹기 좋았다.

셋째로 나무 밑에서 한뎃잠 자기가 좋았으며, 날이 궂으면 사직 문간이 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여러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된 것은 순영이었다.

순영은 힘을 다해 대철의 병을 고쳐 보려 했으나 가망이 없었다.

마침내 집에서 쫓겨나 행랑방이라도 얻어 본 적이 있었으나, 대철이 아편쟁이라는 이유로 주인이 싫어해 몇 번이나 내쫓겼다.

되는대로 토막을 지어 의지해 본 일도 있었으나, 땅 임자의 혹독한 처사로 헐려 버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사람으로서 맛보기 어려운 세상의 쓴맛을 골고루 맛보았다.

모든 일이 괴롭고 싫증이 난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어쩐지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죽어 가는 대철을,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구해 주겠다는 한 줄기 마음만은 돌보다 굳고 동아줄보다 질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세상 모든 것을 등지게 되었다.

숨이 간들간들하여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대철이었다.

게다가 차차 쇠약해져 눈까지 어두워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는 대철이었다.

그러면서도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얻어다 주는 대로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이 많다고 자꾸 찾아 대는 대철이었다.

주사 맞을 시간이 조금만 늦어도 별별 야단을 다 치는 대철이었다.

보통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침 뱉음을 당하는 대철이었다.

순영은 그 사람을 데리고 사직공원 한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