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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잘하는 일과 버티는 일

지은이 앙상블 · 2026-10-28

제2부 기준의 충돌

제10화. 잘하는 일과 버티는 일

현우는 두 번째 직무 체험을 앞두고 첫 번째 실습 때보다 더 많은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단순히 현장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기로 했다.

실제 업무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신입 직원은 어느 정도까지 책임지는지,

현장 경험을 쌓은 뒤에는 어떤 업무로 옮겨 갈 수 있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첫 번째 실습에서는 눈앞에 주어진 일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무거운 자재를 옮기고, 작업 순서를 익히고,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신경 쓰다 보니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이번에는 달랐다.

현우는 전날 밤 메모장에 질문을 정리했다.

첫째, 신입 직원이 처음 맡는 업무는 무엇인가.

둘째, 교육과정에서 배운 내용과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기술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셋째, 일정 기간 경험을 쌓으면 업무 범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넷째, 체력적으로 힘든 업무를 장기적으로 수행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마지막 질문을 적고 나서 현우는 펜을 내려놓았다.

체력은 하루이틀 노력한다고 갑자기 좋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앞으로도 계속 힘들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는 아직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적응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아홉 시, 현우는 두 번째 업체의 교육 담당자를 만났다.

이번 업체는 첫 번째 실습장보다 규모가 작았다.

대신 작업 구역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었고,

직원들은 현장 업무와 점검 업무를 번갈아 맡고 있었다.

현우를 안내한 사람은 이 팀장이었다.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현우의 신청서를 확인한 뒤 작업장 안쪽으로 안내했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분야에서 실습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하루 동안 기본적인 작업을 경험했습니다.”

“그럼 어느 정도는 감이 있겠네요.

다만 회사마다 작업 방식이 다르니 오늘은 우리 쪽 기준을 익히는 데 집중하세요.”

이 팀장은 먼저 작업 구역의 배치도를 보여 주었다.

자재가 들어오는 곳과 검수하는 곳, 보관하는 곳,

실제 작업에 투입되는 곳이 순서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현우는 배치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재가 들어오면 바로 작업장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먼저 확인하는군요.”

“그렇습니다. 수량과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작업에 맞게 분류해야 합니다.

급하다고 확인을 건너뛰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현우는 첫 번째 실습장에서 자신이 자재를 크기별로 정리했다가

다시 배치했던 일이 떠올랐다.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먼저 기준을 맞춰야겠네요.”

“맞습니다. 다만 확인만 하다가 작업이 늦어져도 안 되겠죠.

정확하게 확인하면서도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이 팀장은 현우에게 간단한 점검표를 건넸다.

“오전에는 입고된 자재의 수량과 상태를 확인하는 일을 도와주세요.

제가 먼저 한 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현우는 이 팀장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했다.

목록을 확인하고 실제 수량을 세어 기록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팀장은 자재의 종류에 따라 확인해야 할 항목을 달리했고,

표시가 비슷한 품목은 반드시 번호를 대조했다.

현우는 그 차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이 품목은 수량만 확인하면 됩니까?”

“수량과 외관을 확인하세요. 다만 이쪽 품목은 규격도 확인해야 합니다.

겉모양이 같아도 규격이 다르면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점검표에 품목별로 확인 항목을 구분해 놓으면 실수를 줄일 수 있겠네요.”

이 팀장은 현우를 바라보았다.

“좋은 생각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관리하는 곳도 있어요.

다만 점검표를 잘 만들어 놓는 것과 현장에서 제대로 사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죠.”

현우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오늘은 그 차이를 배우게 되겠네요.”

“그렇죠. 직접 해 보면 알 겁니다.”

현우는 점검표를 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 실습장보다 육체적인 부담은 조금 적었다.

계속 무거운 것을 옮기지는 않았지만, 대신 수량과 번호를 반복해서 확인해야 했다.

한 품목을 확인하고 다음 품목으로 넘어갈 때마다 기록을 남겨야 했고,

표시가 불분명한 자재는 담당자에게 확인해야 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현우는 점검표의 빈칸을 대부분 채웠다.

그는 기록을 확인하다가 한 품목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목록에는 열두 개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열한 개만 놓여 있었다.

현우는 다시 세어 보았다.

열한 개였다.

“팀장님, 이 품목은 목록과 실제 수량이 하나 차이 납니다.”

이 팀장은 현우가 기록한 내용을 확인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세요. 다른 위치에 옮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현우는 주변 선반을 살폈다.

같은 품목이 다른 구역에 섞여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점검표를 들고 돌아왔다.

“다른 위치에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실제 수량은 열한 개입니다.”

이 팀장은 입고 기록을 확인했다.

“좋습니다. 어제 일부를 다른 작업장으로 옮겼는데, 이동 기록이 늦게 반영됐네요.

현우 씨가 잘못 센 건 아닙니다.”

현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안 돼요.

수량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면, 왜 차이가 생겼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기록이 늦게 반영된 건지, 실제로 누락된 건지에 따라 조치가 달라지니까요.”

이 팀장은 담당 직원에게 연락해 이동 기록을 확인했다.

잠시 후 실제로 다른 작업장으로 옮긴 수량이 확인됐고, 기록도 수정됐다.

현우는 점검표에 확인 내용을 추가했다.

그는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것보다,

숫자가 맞지 않는 이유를 찾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점심시간이 되자 현우는 오전에 작성한 점검표를 다시 살펴보았다.

자신이 직접 확인한 내용과 담당자가 확인해 준 내용을 구분해 놓았다.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오전에 수량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겪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기억에 의존하면 자신이 어디까지 확인했는지 헷갈릴 수 있었다.

기록을 남기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확인하기도 쉬웠다.

오후에는 실제 작업이 진행되는 구역으로 이동했다.

이 팀장은 현우에게 작업 전 점검 과정을 보여 주었다.

작업에 필요한 자재가 준비되어 있는지,

장비 상태에 이상은 없는지,

앞선 공정에서 전달된 내용과 실제 상태가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현우는 오전에 했던 점검 업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작업이 시작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한쪽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뒤에 예정된 작업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작업자들은 서로 일정을 확인했고, 담당자는 일부 작업의 순서를 조정했다.

현우는 자신이 적어 둔 일정표를 바라보았다.

오전에 확인한 계획대로라면 다음 작업은 이미 시작됐어야 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앞선 작업이 끝나지 않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계획표에 적힌 시간과 실제 진행 상황이 다르네요.”

현우가 말하자 이 팀장이 대답했다.

“계획은 필요하지만, 현장에서는 변수가 생깁니다.

중요한 건 변수가 생겼다는 사실을 빨리 확인하고,

다음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판단하는 겁니다.”

“그럼 일정이 밀릴 것 같으면 다음 작업자에게 먼저 알려야겠군요.”

“그렇죠. 늦어진다는 사실보다 더 곤란한 건,

늦어지고 있는데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현우는 그 말을 듣고 아버지가 회사에서 일정 조정 업무를 한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최근 업무가 바빠졌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다른 부서에서 자료를 늦게 전달하면 일정이 바뀌고,

바뀐 일정을 다시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가 그저 회사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현우의 눈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계획을 세우는 사람과 실제로 작업하는 사람의 판단이 다를 수 있었고,

한쪽의 지연이 다른 쪽의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

현우는 자신이 맡은 점검표를 다시 확인했다.

처음에는 계획된 순서에 맞춰 기록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기록이 실제 상황과 일치하는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후 세 시가 조금 지나자 이 팀장이 현우에게 물었다.

“오늘 경험해 보니 어떻습니까? 첫 번째 실습장과는 차이가 있죠?”

“네. 여기는 몸을 많이 쓰는 작업보다 확인하고 기록하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현장 상황을 계속 따라가야 하네요.

기록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기록은 판단을 돕는 도구이지, 판단 자체를 대신해 주지는 않으니까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확인한 내용이 맞는지, 지금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계속 살펴야 하는 거군요.”

“맞아요. 그리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입 직원이 모든 걸 알 수는 없죠.

하지만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현우는 오전에 자신이 수량 차이를 발견했던 일을 떠올렸다.

만약 숫자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충 넘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반대로 자신이 잘못 셌다고 지레짐작했다면 확인할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자신이 발견한 이상을 보고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원인을 확인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이 일에 적합하다고 확신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현우는 여전히 피곤했다.

오랜 시간 집중해야 하는 업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작은 차이를 놓치지 않으려면 계속 신경을 써야 했고,

현장 상황이 바뀔 때마다 기록과 계획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다만 첫 번째 실습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어려움 가운데는 자신이 조금 더 배우면 나아질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퇴근 전, 이 팀장은 현우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쪽 업무를 더 알아보고 싶습니까?”

현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긍정적인 답부터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다.

“네. 다만 제가 어떤 업무를 오래 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경험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해 보니 점검이나 기록 업무가 생각보다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수량이 맞지 않는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이요.

그런데 집중력을 오래 유지해야 하는 부분은 더 경험해 봐야겠습니다.”

이 팀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히 구체적으로 생각한 겁니다.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자신이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죠.”

현우는 감사 인사를 하고 작업장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몸은 피곤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실습에서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체력적인 부담이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두 번째 체험에서는 기록과 점검 업무에도 현장 전체를 이해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두 경험은 서로 다른 답을 주었다.

그러나 현우는 어느 한쪽이 더 좋은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두 경험을 비교해 보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조금씩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탄 현우는 메모장을 열었다.

첫 번째 실습.

몸을 많이 쓰는 업무. 작업 순서와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함께 살펴야 함.

체력적인 부담이 예상보다 큼.

직접 작업한 결과가 다음 공정으로 이어지는 점은 흥미로웠음.

두 번째 체험.

점검과 기록 업무. 수량과 상태를 정확히 확인해야 함.

기록이 실제 상황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함.

계획과 현장이 달라질 때 원인을 파악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음.

현우는 마지막에 한 문장을 더 적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뿐 아니라,

어떤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그는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자신이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일은 노력해도 오래 버티기 어려울 수 있고,

어떤 일은 처음에는 서툴러도 경험을 쌓으며 나아질 수 있었다.

그 차이를 알려면 직접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민호는 거실에서 회사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현우는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아버지, 오늘 두 번째 체험도 다녀왔어요.”

민호는 자료를 내려놓았다.

“그래. 어땠니?”

현우는 잠시 생각한 뒤 식탁에 앉았다.

“첫 번째 실습이랑 많이 달랐어요.

거기는 몸을 많이 쓰는 일이 중심이었는데, 오늘은 점검하고 기록하는 업무도 해 봤어요.

그런데 단순히 기록만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현장에서 일정이 바뀌면 기록도 확인해야 하고,

숫자가 맞지 않으면 왜 그런지 알아봐야 했어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중에서 어떤 일이 제일 흥미로웠어?”

현우는 질문이 조금 뜻밖이라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자신이 잘할 수 있는지, 앞으로 전망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일이 흥미로웠는지를 먼저 물었다.

“수량이 맞지 않는 이유를 확인하는 일이요.

처음에는 제가 잘못 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다른 작업장으로 옮긴 기록이 늦게 반영된 거였어요.

원인을 찾고 기록을 수정하니까 문제가 해결됐어요.”

“그 과정이 재미있었구나.”

“네. 제가 확인한 내용이 실제로 맞았다는 것도 좋았고요.

그런데 하루 종일 집중해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부분과 힘든 부분을 둘 다 확인한 셈이네.”

“그렇죠. 첫 번째 실습에서는 체력적인 부담을 많이 느꼈는데,

오늘은 다른 종류의 부담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현우는 노트북을 가져와 자신이 정리한 내용을 보여 주었다.

민호는 화면을 천천히 읽었다.

현우는 두 번의 경험을 비교해 놓았고, 아직 확인하지 못한 항목도 따로 정리해 두었다.

교육 기간과 취업 후 맡게 될 업무,

장기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술에 대해서는 추가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민호는 아들이 정리한 내용을 다 읽은 뒤 말했다.

“이제는 처음보다 판단할 근거가 많아졌구나.”

“네. 그런데 아직 결정하기는 어려워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더 알아볼 게 남아 있다면 확인하면 되는 거고.”

현우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제가 결정을 빨리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민호는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은 됐다.

아들이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남들보다 늦어지는 것은 아닌지,

선택을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현우의 결정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야. 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아버지로서 당연히 걱정되지.

하지만 내가 걱정된다고 해서 네가 준비되지 않은 결정을 서둘러야 하는 건 아니겠지.”

현우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다만 계속 알아보기만 하다가 실제로 선택해야 할 때를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확인할 것은 확인하되, 어느 정도 근거가 모이면 그때는 네가 결정해야겠지.”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민호는 웃었다.

“그럼 지금은 네가 알아볼 일을 알아보면 되겠구나.”

현우는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

“아버지도 회사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세요?”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그렇지. 일을 잘하는 것과 그 일을 계속 맡을 수 있는 건 조금 다른 문제더라.

내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도 실제로 적용해 보면 예상과 다를 때가 있고,

다른 사람과 맞춰야 할 부분도 있어.

그렇다고 한 번 실패했다고 그 방법이 전부 잘못된 건 아니고.”

“그럼 어떻게 판단하세요?”

민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은 일단 해 보고, 결과를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을 고치려고 한다.

물론 매번 그렇게 잘되는 건 아니야.”

현우가 웃었다.

“아버지도 아직 배우시는 중이네요.”

“그럼. 회사에 오래 다녔다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니까.”

민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신도 조금 놀랐다.

예전에는 아버지라는 이유로,

직장 생활을 오래 했다는 이유로 현우에게 답을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설명하고,

아들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마음이 전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경험이 아들의 상황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현우는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민호가 대신 선택할 수 없는 길이었다.

“아버지.”

“응?”

“다음에는 실제로 취업한 사람도 만나 보려고요.

교육받을 때와 취업한 뒤가 얼마나 다른지 물어보고 싶어요.”

“좋은 생각이네.

가능하면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오래 일한 사람을 모두 만나 보면 좋겠다.

같은 직무라도 경험에 따라 보는 게 다를 수 있으니까.”

현우는 메모장에 그 내용을 추가했다.

“네. 그렇게 해 볼게요.”

그날 밤 민호는 당구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회사에서 수정한 일정표를 다시 열어 보았다.

다음 날부터 적용하기로 한 계획이었다.

그는 각 부서가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일정인지,

변경 사항을 확인할 방법이 충분한지 살폈다.

계획표는 깔끔했다.

그러나 실제로 작동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민호는 문득 현우가 두 번째 실습에서 발견한 수량 차이를 떠올렸다.

기록과 실제 상황이 달랐고, 그 차이를 확인하자 문제가 해결됐다.

자신이 만든 일정표도 마찬가지였다.

계획을 세웠다고 해서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행한 뒤 확인해야 했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이유를 살펴야 했다.

민호는 일정표 아래에 점검 항목을 추가했다.

'변경 사항 발생 시 공유 시점 확인.'

'지연 원인과 조정 결과 기록.'

'계획 대비 실제 진행 상황 검토.'

항목을 추가하고 나니 자료가 조금 더 복잡해졌지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다음 날 아침, 민호는 태성당구장에 들렀다.

재식은 이미 당구대 앞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그는 옆돌리기 배치를 놓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수구가 제2적구를 조금씩 비껴 갔다.

민호가 다가가자 재식이 말했다.

“오늘은 제가 잘 안 되는 공을 붙잡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문제입니까?”

“두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수구가 예상보다 짧게 떨어집니다.

처음에는 속도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 더 쳐 보니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민호는 당구대 위의 공을 살폈다.

“수구가 출발하는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는 건 아닙니까?”

재식은 잠시 공을 확인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두 사람은 수구의 위치와 제1적구의 각도를 다시 살폈다.

재식은 공을 놓고 같은 경로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수구의 출발 위치를 조금 조정하고 스트로크를 이어 갔다.

수구가 쿠션을 돌아 제2적구에 닿았다.

재식은 큐를 내려놓았다.

“출발 위치를 조금 바꿨더니 길이 맞는군요.”

민호는 웃었다.

“속도만 문제라고 생각했으면 계속 속도를 바꾸고 있었겠네요.”

“그랬을 겁니다. 하나를 고치려다 다른 걸 망쳤을 수도 있겠죠.”

재식은 다시 공을 놓았다.

“그렇다고 이제 원인을 완전히 찾았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죠.

다른 배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우리가 하는 일이 다 비슷하네요.”

“무슨 말입니까?”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당구장에서도요.

내가 생각한 이유가 실제 원인인지 확인해야 하고,

한 번 잘됐다고 모든 상황에 통하는 건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재식은 웃으며 큐를 들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그걸 확인하는 날로 하죠. 한 번 더 쳐 봅시다.”

재식은 같은 경로를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수구가 조금 길게 나갔다. 제2적구를 비껴 지나갔다.

재식은 미간을 좁혔다.

“이번에는 조금 길었네요.”

민호가 말했다.

“그럼 출발 위치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겠죠. 방금 공과 이번 공에서 무엇이 달랐는지 다시 봐야겠습니다.”

두 사람은 당구대 앞에서 공의 위치를 비교했다.

민호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떤 일을 오래 해 왔다고 해서 모든 원인을 바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험이 많을수록 익숙한 원인부터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럴 때일수록 실제 상황을 다시 살펴야 했다.

재식은 세 번째 시도를 준비했다.

민호도 큐를 들었다.

자신은 아직 재식만큼 공을 정확하게 읽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질문할 수 있었고,

자신이 놓친 부분을 발견하면 다시 시도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당장 승리를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다만 다음 공을 조금 더 제대로 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다.

민호는 당구대 위의 수구를 바라보았다.

공은 언제나 같은 당구대 위에 놓였지만, 그때마다 상황은 조금씩 달랐다.

익숙한 길도 다시 확인해야 했고,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한 길도 실제로 실행해 봐야 했다.

현우가 직무 체험을 통해 알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하는 일과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다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일이라고 해서 모든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처음 힘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가능성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민호는 큐를 겨누었다.

이번 공에서 무엇을 확인할 것인지 먼저 정했다.

그리고 결심이 서자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스트로크했다.

수구가 움직였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제는 그 결과를 살펴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