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제9화. 현장에는 답안지가 없었다

지은이 앙상블 · 2026-10-28

제2부 기준의 충돌

제9화. 현장에는 답안지가 없었다

현우는 실습을 다녀온 뒤 사흘 동안 교육과정과 취업 정보를 다시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급여와 근무 시간, 교육 기간을 중심으로 살폈다.

조건이 괜찮으면 지원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실제로 어떤 일을 맡는지, 신입 직원은 어느 정도까지 배워야 하는지,

숙련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도 궁금해졌다.

현우는 실습장에서 만난 박 대리에게 감사 인사를 겸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신입 직원이 처음 몇 달 동안 어떤 업무를 맡는지

조금 더 알고 싶다고 물었다.

답장은 다음 날 오전에 도착했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작업과 정리 업무부터 시작하지만,

현장 흐름을 이해하면 점차 맡는 일이 늘어납니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잘하는 것보다 모르는 걸 확인하고 같은 실수를 줄여 가는 겁니다.

가능하면 다른 현장도 한 번 살펴보세요.'

현우는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다른 현장도 살펴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하루 경험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신이 이 일을 선택하기 전에 더 확인해야 한다는 뜻일까.

어느 쪽이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우는 지역에서 운영하는 직무 체험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업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정은 다음 주 수요일이었다.

그는 신청서를 작성하다가 잠시 손을 멈췄다.

한 번 더 경험하면 결정에 도움이 될까.

혹시 두 번째 현장에서도 힘들기만 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실습에서는 예상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동시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체력과 적응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다시 경험하면 그 부분이 더 분명해질지도 몰랐다.

현우는 신청서를 끝까지 작성했다.

결정을 내리기 위해 경험하는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민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실습 이후에 좀 더 알아봤니?'

현우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궁금해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아직 확실하게 말할 만한 결론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아버지는 질문을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다른 업체에서 진행하는 직무 체험도 신청했어요.

한 번 더 경험해 보고 판단하려고요.'

민호의 답장은 짧았다.

'좋은 생각이네. 다녀와서 네가 느낀 점을 들어 보고 싶구나.'

현우는 그 메시지를 읽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이번에도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더 묻지 않았다.

그게 조금 낯설면서도 편했다.

민호 역시 메시지를 보낸 뒤 잠시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느 업체인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취업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궁금하다고 해서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민호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당구장에 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회사 업무가 남아 있었다.

최근 민호가 담당하는 프로젝트는 일정 조정으로 바쁜 상황이었다.

다른 부서에서 전달하기로 한 자료가 늦어지면서 일부 작업이 뒤로 밀렸다.

지난번에는 민호가 변경된 중간 일정을 늦게 공유한 탓에

다른 부서에서도 준비에 차질이 생겼다.

이번에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작업별 진행 상황을 정리해 공유했다.

각 부서가 자료를 전달해야 하는 날짜뿐 아니라,

지연될 경우 언제까지 알려야 하는지도 함께 표시했다.

회의에서 한 직원이 말했다.

“일정이 이렇게 세분화되면 관리하는 일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민호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확인해야 할 항목은 늘어납니다.

대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서부터 일정이 밀렸는지 확인하기 쉬워질 겁니다.

지금처럼 마지막에 한꺼번에 조정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팀장은 자료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번 주부터 적용해 봅시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다음 주에 확인하고요.”

회의가 끝난 뒤 민호는 수정된 일정을 공유했다.

이전 같으면 자신이 만든 계획의 장점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을 것이다.

이번에는 적용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조정하겠다는 생각으로 업무를 마무리했다.

퇴근 후 태성당구장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평소와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 공은 그렇게 치면 다음 공이 너무 불편해집니다.”

재식의 목소리였다.

당구대 앞에는 재식과 인수가 서 있었고,

성철은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호도 큐를 들고 두 사람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민호가 다가가자 태성이 상황을 설명했다.

“정호 씨가 요즘 연습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득점은 조금씩 늘었는데, 다음 공을 남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나 봅니다.”

정호가 머쓱하게 웃었다.

“맞습니다. 한 점 내는 것만 생각하면 어떻게든 맞힐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다음 공까지 생각하면 갑자기 어려워집니다.”

재식이 당구대를 가리켰다.

“지금 공이 그렇습니다.

수구에서 제1적구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지만,

두께를 잘못 잡으면 수구가 너무 짧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득점만 생각하면 이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다음 공까지 보려면 다른 경로를 검토해야죠.”

인수가 큐 끝으로 당구대의 한쪽을 가리켰다.

“저라면 여기서 한 번 더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겠습니다. 익숙한 경로이기도 하고요.”

성철이 끼어들었다.

“익숙한 길이라고 꼭 좋은 건 아닙니다.

지금은 그 경로로 보내면 수구가 너무 많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어요.”

세 사람의 의견이 조금씩 달랐다.

정호는 당구대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누가 틀렸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세 사람 모두 그럴듯한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민호는 정호에게 물었다.

“정호 씨는 지금 어떤 길이 제일 마음에 듭니까?”

정호는 잠시 생각했다.

“저는 인수 형님이 말씀하신 길이요. 그런데 수구가 너무 많이 돌아갈까 봐 걱정됩니다.”

“그럼 그 걱정을 확인해 보면 되겠네요.”

재식이 웃었다.

“말은 간단합니다. 실제로 치면 생각한 대로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죠.”

“그러니까 확인하는 거죠.”

민호의 말에 재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는 인수가 제안한 경로를 선택했다.

첫 시도에서는 두께가 조금 두꺼워 수구가 예상보다 일찍 방향을 바꿨다.

제1적구는 맞았지만 제2적구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정호는 아쉬운 표정으로 큐를 내렸다.

“역시 제가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성철이 바로 말했다.

“방금 공 하나로 그렇게 결론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부분이 달랐는지부터 봐야죠.”

인수가 공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경로가 틀렸다기보다 두께가 두꺼웠던 것 같습니다.

다만 같은 두께로 치더라도 속도에 따라 수구가 도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어요.”

재식은 잠시 당구대를 살펴보더니 다른 경로를 제안했다.

“이번에는 제가 말씀드린 길로 한 번 해 보세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도의 차이를 비교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재식이 제안한 경로로 시도했다.

수구는 제1적구를 맞힌 뒤 쿠션을 돌아 제2적구에 닿았다.

득점이었다.

정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이 길은 되는군요!”

재식은 웃으며 말했다.

“이번 배치에서는 그랬습니다.

다음에 똑같아 보이는 공이 와도 수구와 적구의 위치가 조금만 달라지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요.”

정호의 표정이 다시 진지해졌다.

“그럼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어떻게 판단해야 합니까?”

“우선 본인이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길인지 생각해야죠.

이론적으로 좋은 길과 지금 내가 성공시킬 수 있는 길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민호는 그 말을 듣다가 당구대 위의 공을 바라보았다.

이론적으로 좋은 길과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길.

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계획표만 놓고 보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부서의 일정과 인력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현장에서 실행할 수 없다면 계획의 의미가 줄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정리한 일정표를 떠올렸다.

이번에는 계획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계획을 세운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끝까지 옳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실행 결과를 보고 조정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태성이 민호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구경만 하실 겁니까?”

“아닙니다. 저도 한 게임 치려고요.”

“누구랑 하시겠습니까?”

민호는 재식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재식 씨와 다시 해 보겠습니다.”

재식이 웃었다.

“지난번보다 나아졌는지 확인해 보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지난번에는 점수 차가 꽤 났으니까요.”

“점수 차를 줄이는 게 목표입니까?”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점수 차도 줄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제가 선택한 경로를 얼마나 제대로 실행하는지도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재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제대로 한 번 해 보죠.”

두 사람은 당구대 앞에 섰다.

뱅킹 결과 민호가 초구를 치게 됐다.

그는 수구를 바라보며 첫 득점의 경로를 살폈다.

초구는 자신이 연습해 온 앞돌리기로 연결할 수 있는 배치였다.

민호는 큐를 겨누었다.

첫 번째 쿠션을 맞힌 수구가 제1적구를 향해 움직였다.

두께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수구의 속도가 조금 부족했다.

제2적구를 향해 이어지던 경로가 짧게 끝났다.

민호는 입술을 다물었다.

지난번 같았으면 득점 실패에 대한 아쉬움이 먼저 올라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이 멈춘 위치부터 확인했다.

자신이 예상한 경로와 실제 경로가 어디서 달라졌는지 살폈다.

재식이 말했다.

“두께는 괜찮았습니다. 속도가 조금 짧았네요.”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다음에 비슷한 배치가 오면 속도를 조금 더 줘 보겠습니다.”

“다만 지금 공과 다음 공이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때 다시 확인해야죠.”

민호는 큐를 들고 한 걸음 물러났다.

경기는 이어졌다.

재식은 안정적으로 득점을 쌓았다.

민호도 중간중간 득점에 성공했지만, 어려운 배치에서는 여전히 판단이 늦어졌다.

특히 수구가 쿠션 가까이에 붙어 있을 때는 평소보다 자세를 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한 번은 제1적구를 맞히는 데 성공했지만,

수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빠져나가 제2적구를 놓쳤다.

민호는 다시 당구대를 살폈다.

이번에는 두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구가 쿠션에 가까워 평소처럼 큐를 움직이기 어려웠고,

그 때문에 스트로크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는 실패의 원인을 하나로 단정하지 않았다.

자세와 큐의 움직임, 두께, 속도를 차례로 떠올렸다.

당장 어느 하나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재식이 말했다.

“그 공은 조금 까다로웠습니다. 평소 연습하던 자세로 치기 어려웠을 겁니다.”

“예. 저는 평소처럼 치려고 했는데, 큐가 움직이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그럴 때는 무리하게 익숙한 스트로크를 하려고 하지 말고,

자세부터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민호는 큐를 세워 잡았다.

“다음에 비슷한 공이 오면 자세를 먼저 점검하겠습니다.”

재식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민호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 뒤 재식은 연속으로 세 점을 득점했다.

점수 차가 벌어지자 민호의 마음이 흔들렸다.

방금까지 차분하게 공을 살피던 눈이 점수판으로 향했다.

재식이 한 점만 더 내면 목표 점수에 가까워지는 상황이었다.

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큐를 꽉 쥐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득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더라도 공격적인 경로를 선택해 점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구대 위의 배치는 무리하게 공격하기에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득점 확률이 낮은 경로를 선택하면 실패했을 때

재식에게 좋은 공을 남길 가능성이 컸다.

민호는 큐를 든 채 잠시 멈췄다.

그리고 점수판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점수를 만회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공을 제대로 판단하는 일이었다.

그는 한 걸음 물러나 당구대를 다시 살폈다.

가능한 경로를 두 가지로 좁힌 뒤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쪽을 선택했다.

공격적인 길은 아니었지만, 수구의 속도와 두께를 조절하기에 더 익숙한 경로였다.

스트로크가 이어졌다.

수구가 첫 번째 쿠션을 맞고 방향을 바꾸었다.

제1적구를 지나 세 번째 쿠션을 향해 움직였다.

마지막 순간 수구가 제2적구에 닿았다.

득점이었다.

민호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점수 차는 여전히 컸지만, 방금 공은 자신이 의도한 대로 실행한 결과였다.

우연히 들어간 공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그 길을 선택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공이었다.

재식이 큐 끝에 초크를 가볍게 두드렸다.

“좋은 공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민호는 다음 공을 살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구의 위치가 조금 더 까다로웠다.

방금 성공한 경로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민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른 경로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께 조절에 실패해 득점하지 못했다.

그는 아쉬웠지만, 방금 성공한 공까지 의심하지는 않았다.

한 공이 잘됐다고 다음 공도 같은 방법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한 번 실패했다고 자신의 판단 전체가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경기는 결국 재식의 승리로 끝났다.

점수 차는 지난번보다 조금 줄었지만, 민호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재식은 여전히 훨씬 안정적이었고, 민호는 어려운 배치에서 실수를 반복했다.

경기가 끝나자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쳤습니다.”

재식은 큐를 정리하며 말했다.

“오늘은 점수보다 공을 보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민호는 웃었다.

“그런데 아직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공은 오래 고민하다가 오히려 자세가 흔들리더군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과 좋은 판단을 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어느 순간에는 결정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구대 앞에서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몸이 굳었다.

반대로 충분히 살피지 않고 서두르면 실수가 나왔다.

필요한 만큼 살피고, 결정한 뒤에는 자신이 선택한 공을 책임지고 실행해야 했다.

그는 그 균형을 아직 배우는 중이었다.

그날 밤, 민호가 집에 돌아왔을 때 현우는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여러 업체의 채용 공고와 교육 과정이 나란히 열려 있었다.

현우는 아버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노트북을 조금 돌렸다.

“아버지, 잠깐 물어볼 게 있어요.”

민호는 외투를 벗으며 다가왔다.

“그래. 뭔데?”

“제가 실습한 곳은 생각보다 괜찮은 점도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부담이 컸어요.

그런데 다른 업체는 근무 방식이 조금 다르더라고요.

한쪽은 현장 업무 비중이 높고, 다른 쪽은 점검이나 관리 업무를 더 많이 한다고 해요.”

민호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럼 네가 알아본 차이부터 이야기해 봐.”

현우는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버지가 먼저 어느 쪽이 나은지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듣겠다고 했다.

현우는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장 업무가 많은 곳은 처음부터 배울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아요.

대신 체력적으로 힘들고 작업 환경에도 적응해야 할 것 같고요.

관리 업무가 많은 곳은 제가 생각했던 일과 조금 더 가까운데,

신입이 처음부터 그런 업무를 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민호는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

현우는 자신이 조사한 급여 조건과 근무 시간, 교육 기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어떤 업체는 신입 직원에게 일정 기간 현장 경험을 요구했고,

어떤 곳은 교육을 마친 뒤에도 추가적인 실무 경험이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이야기를 마친 현우가 물었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

민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 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온 직장 생활과 현우가 고민하는 직업은 같지 않았다.

민호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현우에게도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내가 네 입장이라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할지 고민해 볼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내가 지금 네 상황을 전부 아는 건 아니야.”

현우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민호는 그 표정을 보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이야기할 수 있겠다.

네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처음부터 원하는 업무를 전부 맡을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당장 어떤 일이 더 좋아 보이는지만 보지 말고,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게 되는지,

몇 년 뒤에 어떤 일을 할 수 있게 되는지도 확인해 봐.”

현우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봐.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피할 필요는 없지만,

남들이 다 견딘다고 해서 네가 반드시 견뎌야 하는 것도 아니야.”

민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건 네가 직접 경험해 보고 판단할 문제겠지.”

현우는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저도 그걸 알아보려고요. 다음 주에 다른 업체에서 하는 체험도 신청했어요.”

“잘했구나.”

민호는 더 이상 조언을 덧붙이지 않았다.

현우는 그런 아버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도 회사에서 어떤 일을 맡을지 선택할 때 이런 고민을 하셨어요?”

민호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내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만 생각했지.

그런데 오래 일하다 보니 잘하는 것과 오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럼 지금은요?”

“지금도 고민한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방법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더라.”

민호는 웃으며 덧붙였다.

“요즘 당구를 치면서도 그걸 배우고 있어.”

현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구요?”

“그래. 공이 어디로 갈지 머릿속으로는 분명하게 보이는데,

실제로 치면 전혀 다르게 움직일 때가 있어.

그럴 때는 공을 탓하기 전에 내가 뭘 잘못 봤는지 살펴야 하더라.”

현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공이야 말이 없으니까 그렇죠. 사람은 말이라도 해 주잖아요.”

민호도 웃었다.

“사람도 자기 생각을 전부 말해 주지는 않더라.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고.”

말을 마친 민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현우 역시 그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둘 사이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민호가 현우의 말을 충분히 듣지 못했던 순간도 있었고,

현우가 아버지의 의도를 미리 단정했던 순간도 있었다.

지금 나눈 대화 하나로 그 모든 것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적어도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현우가 노트북을 닫으며 말했다.

“다음 실습을 다녀오면 다시 이야기할게요.”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민호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 식탁을 한 번 돌아보았다.

현우는 다시 메모장을 열어 두 업체의 차이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직 선택하지 못한 것이 많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듯했다.

민호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금 놓였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평소보다 일찍 태성당구장에 들렀다.

당구장에는 아직 손님이 많지 않았다.

태성은 당구대 천을 정리하고 있었고, 인수는 한쪽 당구대에서 혼자 연습 중이었다.

인수는 수구를 놓고 앞돌리기를 시도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두께가 맞지 않아 제1적구를 빗나갔다.

두 번째에는 적구를 맞혔지만 수구가 짧게 떨어졌다.

인수는 곧바로 세 번째 공을 놓지 않았다.

방금 공의 위치를 살핀 뒤 수구를 조금 옮겼다. 그리고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수구가 적절한 속도로 쿠션을 돌아 제2적구에 닿았다.

인수가 큐를 내려놓으며 민호를 바라보았다.

“일찍 나오셨네요.”

“오늘은 출근 전에 잠깐 연습하려고요.”

“어제 경기 복기하러 오셨습니까?”

민호는 웃었다.

“그것도 있고요.

어제는 점수 차를 줄이는 데 신경을 썼는데,

생각해 보니 제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게 많더군요.”

인수는 초크를 내려놓았다.

“그럼 오늘은 뭘 확인할 겁니까?”

민호는 잠시 당구대를 바라보았다.

“제가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경로가 어디까지인지요.

머릿속으로 가능한 공과 실제로 칠 수 있는 공을 구분해 보려고 합니다.”

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공이 많다는 걸 알 수도 있고,

반대로 아직 연습해야 할 공이 더 많다는 걸 알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든 알아야겠지요.”

민호는 큐를 들었다.

당구대 위에는 익숙한 공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공의 위치는 어제와 달랐고, 수구가 지나갈 길도 달라져 있었다.

그는 먼저 당구대 전체를 살폈다.

가능한 경로를 찾는 것과 그 경로를 실행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알려면 직접 시도하고,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연습해야 했다.

민호는 큐를 겨누었다.

수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답안지는 없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맞는지는 공이 멈춘 뒤에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