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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잘못 본 것은 공만이 아니었다

지은이 앙상블 · 2026-10-28

제2부 기준의 충돌

제7화. 잘못 본 것은 공만이 아니었다

수요일 저녁, 민호는 퇴근길에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현우가 실습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에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로는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민호는 아들이 실습을 마치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걱정도 됐다.

평소 같으면 먼저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실습은 어땠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그 일이 정말 자신에게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관련 분야의 전망과 근무 조건도 확인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현우가 먼저 이야기하고 싶을 때 연락할 수 있도록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일이 마음 편한 것은 아니었다.

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가 부족할수록 사람은 빈자리를 상상으로 채우기 쉬웠다.

민호는 최근 당구장에서 그런 경우를 자주 보았다.

공이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수구의 두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연속 득점을 하면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실제로 공을 다시 살펴보면 처음 생각했던 원인과 다른 문제가 발견되기도 했다.

사람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연락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상대가 관심이 없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대답이 짧다고 해서 마음이 멀어졌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민호는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신호가 바뀌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휴대전화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태성당구장에는 성철과 인수가 먼저 와 있었다.

두 사람은 당구대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기 중이었다.

성철이 수구를 보내자 공은 세 번의 쿠션을 돌아 제1적구를 맞혔다.

그러나 제2적구를 향하던 수구가 예상보다 짧게 멈췄다.

성철은 잠시 공을 바라보았다.

“속도를 조금 더 줬어야 했네요.”

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께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힘이 조금 부족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철은 큐를 들고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민호는 그 장면을 보며 웃었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이 먼저 나서서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려 했을 것이다.

이제는 당사자가 이미 무엇을 놓쳤는지 알고 있다면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큐 가방을 내려놓았다.

“두 분은 오늘도 진지하시네요.”

인수가 웃었다.

“당구 치러 왔는데 진지해야죠.”

“친선대회도 끝났는데요.”

“대회가 끝났다고 공이 쉬워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성철이 큐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런데 민호 씨, 요즘은 연습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민호가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예전에는 공을 놓치면 바로 다시 치려고 하셨죠.

요즘은 한 번 물러나서 공을 보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실패한 이유를 알아야 다시 쳐 볼 수 있으니까요.”

“그건 좋은 변화죠. 다만 너무 오래 생각하다가 몸이 굳는 경우도 있습니다.”

민호는 웃었다.

“그것까지 보셨습니까?”

“당구장에 오래 앉아 있으면 별게 다 보입니다.”

인수가 농담처럼 말했다.

민호는 큐를 꺼내 초크를 발랐다.

오늘은 어떤 공을 연습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때 성철이 한쪽 당구대를 가리켰다.

“저기 있는 공부터 한번 쳐 보시겠습니까? 방금 제가 놓친 공과 비슷합니다.”

당구대 위에는 수구와 두 목적구가 애매한 각도로 놓여 있었다.

앞돌리기를 시도할 수도 있었고, 다른 경로를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두께와 속도를 정밀하게 맞춰야 했다.

민호는 당구대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처음에는 앞돌리기가 가장 나아 보였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보니

수구가 마지막 쿠션을 돌아 나오는 각도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다른 경로는 거리가 짧았지만, 자신이 익숙하게 구사하는 공은 아니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큐를 잡았다.

“저는 앞돌리기로 해 보겠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성철이 물었다.

“다른 경로는 거리가 짧지만 두께를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앞돌리기는 마지막에 속도 조절이 까다롭긴 해도,

제가 연습한 경험이 조금 더 많습니다.”

성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는 자세를 잡았다.

큐 끝을 수구에 맞추고, 자신이 생각한 두께를 유지하면서 부드럽게 밀었다.

수구는 첫 번째 쿠션을 맞고 방향을 바꾸었다.

두 번째 쿠션을 돌아 제1적구를 맞혔지만, 제2적구까지 연결되지는 못했다.

민호는 공이 멈춘 위치를 확인했다.

“조금 짧았네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 짧았다는 건 결과고요.

제가 처음부터 속도를 충분히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성철이 웃었다.

“그렇게 구분하는 건 좋습니다.

다만 속도 때문인지 두께 때문인지는 다시 확인해 봐야겠죠.”

민호는 큐를 내려놓고 공의 위치를 다시 살폈다.

그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려 했다.

무엇이 틀렸는지 알아야 다음 선택을 바꿀 수 있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속도를 조금 높였다.

이번에는 수구가 제2적구를 맞혔다.

득점이었다.

민호는 기분이 좋았지만 곧바로 같은 공을 다시 치지는 않았다.

공을 다시 배치하면서 수구의 위치를 조금 바꾸었다.

같은 경로라도 출발점이 달라지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었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다시 실패했다.

인수가 옆에서 말했다.

“두 번째는 잘 들어갔는데, 세 번째는 조금 길게 나왔습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속도를 높인 것이 항상 좋은 건 아니었네요.”

“그렇죠. 한 번 성공했다고 그 방법이 모든 공에 맞는 건 아니니까요.”

민호는 그 말을 들으며 수첩을 꺼냈다.

그러나 바로 적지는 않았다.

공을 한 번 더 살펴본 뒤에야 짧게 메모했다.

‘조건이 달라지면 판단도 다시 해야 한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

한 시간쯤 지나자 당구장에 재식이 들어왔다.

재식은 인수와 인사를 나눈 뒤 민호가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민호는 비슷한 형태의 공을 놓고 경로를 비교하고 있었다.

성공한 공과 실패한 공을 번갈아 확인하며 두께와 속도를 조금씩 조정했다.

“오늘은 연구를 많이 하시는군요.”

재식이 말했다.

“토요일 경기에서 놓친 공을 복기하다 보니,

제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대충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걸 대충 봤습니까?”

“공의 경로만 보고, 그 경로를 제가 실제로 얼마나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지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재식은 당구대 위의 공을 바라보았다.

“그건 중요한 차이죠.

좋은 경로를 찾는 것과 그 경로를 실제로 성공시키는 것은 다르니까요.”

“재식 씨는 그런 걸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재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큐를 들어 수구와 제1적구 사이의 거리를 살펴보았다.

“저도 매번 정확하게 판단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비슷한 공을 여러 번 쳐 보면 제가 어디에서 실수하는지 조금씩 알게 됩니다.

어떤 공은 각도는 잘 보는데 속도 조절이 어렵고,

어떤 공은 속도보다 두께를 맞추는 게 어렵죠.”

“그럼 자신에게 익숙한 경로를 더 많이 선택하는 편입니까?”

“그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고집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익숙한 경로가 이번 공에도 맞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재식은 큐를 내려놓았다.

“민호 씨도 요즘 그걸 배우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하나 조심할 게 있습니다.”

“뭡니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는 데 너무 몰두하면,

잘한 판단까지 의심하게 될 수 있습니다.”

민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재식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최근 그는 실패한 공을 보면 이유부터 찾으려고 했다.

자신이 놓친 부분을 발견하는 것은 도움이 되었지만,

모든 결과에 잘못된 판단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질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한 건 잘한 대로 남겨 두고, 잘못한 부분만 고치면 되겠죠.

모든 걸 바꾸려고 하면 다음에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재식은 큐를 들고 다른 당구대로 향했다.

민호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한 모든 판단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옳게 본 부분과 잘못 본 부분을 구분하는 것 역시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당구에서도, 회사에서도,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밤이 깊어지기 전, 민호는 집으로 돌아왔다.

현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빠, 오늘 실습 끝났어요.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도 있었고, 의외로 괜찮았던 부분도 있었어요.’

민호는 바로 답장을 쓰려다가 멈췄다.

‘그래서 계속할 생각이야?’

그 문장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현우가 아직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라면,

결론부터 묻는 질문은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민호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문장을 지웠다.

‘어떤 점이 생각과 달랐어?’

그렇게 쓰고 전송했다.

잠시 뒤 현우의 답장이 도착했다.

‘몸을 많이 쓰는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과 계속 소통해야 하더라고요.

혼자 기술만 익히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래도 직접 해 보니까 내가 어떤 부분을 더 알아봐야 할지는 알겠어요.’

민호는 메시지를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들이 실습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점이 반가웠다.

다만 그는 곧바로 그 경험이 진로 선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현우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아빠는 예전에 직장 다닐 때 이런 걸 어떻게 판단했어요?

처음부터 자기 일이 맞는지 알 수 있었어요?’

민호는 휴대전화를 든 채 한동안 생각했다.

자신의 직장 생활을 돌아보면 처음부터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맡은 업무가 생각보다 잘 맞았던 적도 있었고,

자신이 잘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일이 오히려 버거웠던 적도 있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해 온 업무가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자신을 성장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승진에서 누락되었을 때는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일이 모두 부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그때의 자신에게 누군가 직장 생활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고 해도,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호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 알 수는 없었어.

해 보면서 알게 된 것도 많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잘못 판단한 것도 있었지.

다만 네가 직접 해 보고 무엇이 맞고 맞지 않는지 알아가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는 잠시 멈췄다가 한 문장을 더 썼다.

‘내 경험을 이야기해 줄 수는 있지만,

네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네가 직접 겪어 보는 게 가장 정확하겠지.’

전송 버튼을 누른 뒤 민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현우가 곧바로 답장하지 않았다.

민호는 화면을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아들이 메시지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는 자신이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물을 한 잔 마시고 거실에 앉았다.

자신이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 서운했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쌓은 경험도 있었고,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해 왔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해결 방법을 찾아 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현우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정답을 알려 주는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민호는 아들이 직접 경험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

다음 날, 민호는 태성당구장에서 정호와 마주쳤다.

정호는 연습용 공을 배치한 뒤 옆돌리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수구는 첫 번째 쿠션을 맞고 방향을 바꾸었지만, 제1적구를 비껴갔다.

정호는 큐를 내려놓고 공을 바라보았다.

“아, 또 얇았네.”

그는 공을 다시 배치했다.

이번에는 조금 두껍게 맞히려고 했다.

그러나 수구는 제1적구를 맞힌 뒤 예상보다 짧게 진행했고,

제2적구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정호는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이 공은 왜 이렇게 안 될까요?”

민호는 당구대 옆으로 다가갔다.

예전 같았으면 곧바로 공을 가리키며 두께와 속도를 설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먼저 물었다.

“정호 씨는 어느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까?”

“두께를 맞추는 것도 어렵고, 속도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둘 중 뭐가 더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그럼 하나씩 확인해 봅시다. 먼저 두께를 맞추는 데 집중하고,

속도는 크게 바꾸지 않는 겁니다.

그다음 속도를 조금씩 조절해 보는 거죠.”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가 공을 다시 배치해 주었다.

정호는 자세를 잡고 수구를 보냈다.

이번에는 제1적구를 맞혔지만, 제2적구에는 연결되지 않았다.

“두께는 어땠습니까?”

민호가 물었다.

정호는 잠시 생각했다.

“아까보다 나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구가 조금 짧게 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두께를 그대로 두고 속도만 조금 바꿔 보죠.”

정호는 다시 시도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득점에 성공했다.

정호의 얼굴이 환해졌다.

“들어갔습니다!”

“네. 그런데 지금 공이 들어갔다고 해서 다음에도 똑같이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

어떤 조건에서 성공했는지 기억해 두세요.”

“두께는 그대로 두고 속도를 조금 높였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비슷한 공에서 그 판단이 맞는지 확인하면 되겠네요.”

정호는 큐를 들고 공을 다시 살폈다.

민호는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정답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호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말했고,

그 문제를 나누어 확인하면서 스스로 성공의 이유를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때 인수가 다가와 정호의 공을 바라보았다.

“이번 공은 잘 들어갔네요.”

“네. 그런데 다음에도 들어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정호가 대답했다.

인수는 웃었다.

“그걸 알면 당구가 훨씬 쉬워지겠죠.”

세 사람은 잠시 웃었다.

민호는 큐를 들고 다음 연습을 준비했다.

같은 공이라도 매번 결과가 달랐다.

그러나 그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에 시도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실패한 결과를

곧바로 자신의 능력 전체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성공했다고 해서 모든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려 했다.

공이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자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쳤는지,

다음에는 어떤 부분을 바꿔 볼 수 있는지.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쌓이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터였다.

***

그날 연습을 마칠 무렵, 민호는 수첩을 펼쳤다.

최근 며칠 동안 적어 둔 메모를 천천히 읽었다.

‘안전한 선택과 후회가 적은 선택은 다를 수 있다.’

‘조건이 달라지면 판단도 다시 해야 한다.’

‘복기는 과거의 공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다.

다음 공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금의 판단을 바꾸는 일이다.’

민호는 그 문장들을 읽다가 새로운 문장을 하나 적었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내가 한 모든 판단을 부정하는 것은 다르다.’

그는 잠시 펜을 내려놓았다.

최근 자신은 회사에서 겪은 일들을 자주 떠올렸다.

승진에서 누락되었을 때 느꼈던 억울함,

자신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

오랫동안 해 온 일의 의미를 의심했던 순간들.

그때의 판단 가운데 무엇이 옳았고

무엇이 틀렸는지는 지금도 단번에 결론 내릴 수 없었다.

회사의 평가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

동시에 자신이 놓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한쪽만 바라보면 다른 쪽은 보이지 않았다.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우가 자신의 조언을 부담스러워했다면,

아들이 경험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민호가 아들의 상황을 충분히 듣기 전에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아들에게 해 준 모든 조언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필요한 순간에는 경험을 나누고, 위험한 선택 앞에서는 의견을 말할 수도 있었다.

다만 상대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먼저 결론부터 내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민호는 수첩을 덮었다.

당구장에서는 공이 멈춘 위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당구대 위의 공처럼 눈에 보이지 않았다.

같은 말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었고, 침묵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큐 가방을 들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 직전, 민호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당구대 위에는 정호가 마지막으로 연습했던 공들이 놓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어려워하던 옆돌리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공 하나가 정호의 실력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호는 자신이 무엇을 조절해야 하는지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민호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 보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디고 불편했다.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인정해야 했고,

때로는 자신이 옳았던 부분까지 의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그래도 그 과정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공을 잘못 보는 날도 있었다.

사람을 잘못 보는 날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알아차린 뒤에도 다시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일이었다.

민호는 당구장 문을 닫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음에 마주할 공이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었다.

현우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아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으려 했다.

먼저 살펴보고, 물어보고, 직접 확인한 뒤에 판단하는 것.

그것이 자신이 다음 경기에서,

그리고 다음 대화에서 연습해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