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패배를 복기하는 시간
지은이 앙상블 · 2026-10-28
제2부 기준의 충돌
제6화. 패배를 복기하는 시간
월요일 저녁, 민호는 퇴근하자마자 태성당구장으로 향했다.
토요일 친선대회가 끝난 뒤 이틀이 지났지만,
인수와의 경기에서 놓친 마지막 공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점수판을 의식하면서도 침착하게 치려고 했던 공이었다.
무리한 경로를 택하지 않고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수구는 예상보다 얇게 제2적구를 비껴갔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민호는 두 가지 생각 사이를 오갔다.
조금 더 정확하게 쳤다면 득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을 반드시 넣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과를 알고 나서 하는 판단일 수도 있었다.
그는 당구장 문을 열며 작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디까지 돌아봐야 하는 거야?”
“뭘 그렇게 돌아봅니까?”
당구대 옆에서 큐를 정리하던 태성이 물었다.
민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토요일 경기요. 마지막 공이 자꾸 생각나서요.”
“아직도요?”
“그때 조금만 더 두껍게 맞혔으면 어땠을까 싶어서요.”
태성은 민호의 큐 가방을 바라보았다.
“그럼 오늘 다시 쳐 보면 되겠네요.”
“똑같은 공이 나오겠습니까?”
“당연히 똑같은 공은 안 나오죠. 그래도 비슷한 공은 나올 수 있잖아요.
직접 쳐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고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만 복기하는 것과 실제로 공을 놓고 다시 판단해 보는 것은 달랐다.
토요일에는 경기 결과가 걸려 있었다.
오늘은 그 부담 없이 자신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놓쳤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큐를 꺼냈다.
“오늘은 그 공부터 찾아보겠습니다.”
“좋습니다. 다만 그 공 하나 때문에 다른 공까지 놓치지는 마세요.”
태성의 말에 민호는 웃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한 공을 복기하는 건 좋은데,
그 공만 계속 생각하다 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공은 제대로 못 볼 수도 있다는 뜻이죠.”
민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당구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민호는 연습용 공을 배치했다.
토요일 마지막 공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수구가 세 번의 쿠션을 돌아 제1적구를 맞힌 뒤 제2적구로 연결해야 한다는 점은 비슷했다.
그는 먼저 토요일에 선택했던 경로를 재현해 보았다.
큐를 잡고 수구의 두께를 가늠했다.
쿠션을 돌아 나오는 각도를 생각하고, 마지막에 필요한 속도를 정했다.
큐가 수구를 밀었다.
수구는 첫 번째 쿠션을 맞고 방향을 바꾸었다.
이어 두 번째 쿠션을 돌아 제1적구를 맞혔다.
그러나 제2적구에는 닿지 못했다.
민호는 공이 멈춘 위치를 확인했다.
“역시 조금 얇았네요.”
그는 곧바로 공을 다시 배치했다.
이번에는 두께를 조금 더 주었다.
큐의 속도도 미세하게 조절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제2적구를 맞혔다. 득점이었다.
민호는 기분이 좋았지만, 곧바로 다시 공을 놓았다. 같은 배치에서 세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이번에는 수구가 예상보다 길게 진행해 목적구를 비껴갔다.
민호는 큐를 내려놓았다.
첫 번째에는 얇았고,
두 번째에는 들어갔으며,
세 번째에는 길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시도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 결론을 내려도 될까?
그는 잠시 생각했다. 공의 배치는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수구와 제1적구 사이의 미세한 거리 차이도 있었고, 자신이 큐를 내미는 속도도 조금씩 달랐다.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그 방법이 언제나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인수가 당구장에 들어왔다.
“벌써 연습하고 계십니까?”
“토요일 경기에서 놓친 공을 다시 쳐 보고 있습니다.”
인수는 민호가 배치해 둔 공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공이었습니까?”
민호가 경로를 설명하자 인수는 잠시 당구대 주위를 걸었다.
수구가 지나갈 길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한쪽에 멈춰 섰다.
“저라면 처음부터 조금 다른 경로를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경로요?” “네. 이쪽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수구의 속도를 맞추기가 까다롭잖아요.
민호 씨가 선택한 길은 두께가 조금만 달라져도 마지막에 차이가 생길 수 있어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는 그때 그 길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 있죠. 다만 안전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인수는 수구를 손에 들었다가 원래 위치에 놓았다.
“어려운 공을 피하는 게 항상 안전한 건 아닙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공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때 민호 씨가 그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 이유가 지금도 맞는지 확인해 보면 되겠죠.”
민호는 그 말을 듣고 토요일의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 그는 인수가 목표 점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마지막 공을 놓치면 경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공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은 경로를 택했다.
그런데 그 경로를 정말로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실패했을 때 후회가 덜할 것 같은 경로를 선택한 것일까?
두 생각은 비슷해 보였지만 달랐다.
민호는 큐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때는 실패했을 때 후회가 덜할 것 같은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인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왜 그 길을 택했는지 알고 있어야 다음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겠죠.”
민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공을 배치했다.
이번에는 익숙한 경로와 조금 더 어려운 경로를 차례로 시도해 보기로 했다.
두 경로 모두 성공 가능성이 있었지만 필요한 두께와 속도는 달랐다.
익숙한 경로에서는 세 번 중 한 번만 득점했다.
다른 경로에서는 두 번 시도해 한 번 성공했다.
표본이 적어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쪽이 압도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민호는 수첩을 꺼내 적었다.
‘안전한 선택과 후회가 적은 선택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선택의 이유를 알아야 결과를 제대로 복기할 수 있다.’
***
인수와 연습을 마친 뒤 민호는 잠시 쉬었다.
당구장 한쪽에서는 성철과 재식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초반부터 팽팽하게 맞섰다.
성철이 연속으로 득점하자 재식은 큐를 내려놓고 당구대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민호는 그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재식은 평소에도 공을 치기 전에 충분히 살피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평소보다 더 오래 생각하고 있었다.
성철이 득점 흐름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철은 다음 공에서도 득점에 성공했다.
재식은 초크를 바르던 손을 멈췄다.
잠시 당구대를 바라보다가 다시 공을 살폈다.
민호는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재식은 곧 자세를 잡았고, 자신이 선택한 경로로 수구를 보냈다.
득점은 실패했다.
재식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큐를 거칠게 내려놓거나 상대의 연속 득점에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공이 멈춘 위치를 확인한 뒤 한쪽으로 물러났다.
경기가 끝나고 재식이 물을 마시러 오자 민호가 말을 걸었다.
“오늘은 성철 씨가 초반부터 잘 치시네요.”
“그렇습니다. 공을 잘 읽고 있어요.”
“흔들리지는 않으셨습니까?”
재식은 잠시 웃었다.
“흔들렸습니다.”
민호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보였습니까?”
“성철 씨가 세 점을 연속으로 득점했을 때, 다음 공에서 무조건 득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평소라면 조금 더 여유 있게 봤을 공인데, 괜히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다시 자세를 잡으시던데요.”
“그냥 큐를 내려놓고 다시 봤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은 건 아닙니다.
다만 서두르면 더 나빠질 것 같았어요.”
재식은 물병을 내려놓았다.
“상대가 잘 치는 건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제 차례에 어떤 공을 선택하고 어떻게 치느냐 정도죠.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식도 흔들렸다.
다만 흔들리지 않는 척하는 대신, 자신이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행동을 바꾸었다.
민호는 그 차이를 기억해 두었다.
***
그날 밤, 민호는 집에서 토요일 대회를 다시 떠올렸다.
인수에게 패한 것 자체는 이제 크게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마지막 공을 선택할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는 노트북을 열고 간단히 메모했다.
첫째, 인수가 목표 점수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둘째, 실패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경로를 선택하려 했다.
셋째, 그 경로가 실제로 가장 안전한지 충분히 비교하지 않았다.
넷째, 득점하지 못한 뒤에는 두께가 얇았다는 점만 생각했지만, 선택 과정 전체를 살펴보지는 않았다.
민호는 메모를 읽고 잠시 멈췄다.
그가 토요일에 놓친 공은 단순히 기술이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었다.
수구의 두께나 속도를 정확하게 맞히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모든 실패를 심리 문제로 해석하는 것 역시 잘못이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실수와 판단의 문제는 서로 영향을 주기도 했다.
긴장 때문에 서둘러 공을 살폈다면 두께 판단이 부정확해질 수 있었다.
반대로 자신의 기술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경로를 선택했을 수도 있었다.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민호는 메모 마지막에 적었다.
‘실패한 공을 돌아볼 때는 기술, 판단, 심리 중 무엇이 영향을 주었는지 구분해 볼 것.
단, 하나의 원인으로 미리 결론 내리지 말 것.’
그는 저장 버튼을 눌렀다.
예전에는 실패를 떠올리면 먼저 아쉬움이 찾아왔다.
자신이 조금만 더 잘했으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다음에 무엇을 바꿔야 할지 분명해지지 않았다.
오늘은 달랐다.
실패를 한 덩어리로 보지 않고 나누어 살펴보니, 적어도 다시 시도해 볼 부분이 생겼다.
민호는 노트북을 덮었다.
***
다음 날 오후, 회사에서 민호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았다.
팀장이 회의 자료를 검토하다가 지난주 일정 조정 건을 꺼냈다.
“민호 씨, 이 부분은 왜 처음 계획보다 이틀 늦어졌습니까?”
민호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해당 업무는 다른 부서의 자료가 늦게 도착하면서 일정이 밀렸다.
당시 민호는 전체 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다른 업무를 먼저 진행했고,
그 결과 최종 제출일은 지킬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대답하려 했다.
“관련 부서에서 자료를 늦게 보내서—”
말을 멈췄다.
틀린 설명은 아니었다.
실제로 자료가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자신의 대응까지 충분히 설명되는 것은 아니었다.
팀장이 다시 물었다. “자료가 늦게 온 건 알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어떤 조치를 했는지 묻는 겁니다.
” 민호는 자료를 다시 살폈다. 당시 그는 다른 업무를 먼저 진행했지만,
일정이 바뀐 사실을 관련 부서에 공식적으로 공유한 것은 하루 뒤였다.
최종 제출일은 지켰으나, 중간 단계에서 변경된 일정이 다른 부서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자료가 늦게 도착한 뒤 다른 업무를 먼저 진행해 최종 제출일은 맞췄습니다.
다만 변경된 중간 일정은 하루 뒤에 공유했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더 빨리 알렸어야 했습니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자료 도착이 늦어져 일정이 바뀌면, 최종 제출일에 영향이 없더라도 중간 일정부터 공유하겠습니다.
그리고 변경된 업무 순서와 예상 영향을 함께 전달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내용을 이번 보고서에도 반영해 주세요.”
회의는 다른 안건으로 넘어갔다.
민호는 자리에 앉아 자신이 방금 했던 대답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자료를 늦게 보낸 부서의 잘못을 말하려 했다.
그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이 무엇을 판단했고,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 것도 아니었다.
자료가 늦게 온 사실은 사실대로 남겼고, 자신이 개선해야 할 부분도 구분했다.
당구장에서 실패한 공을 복기하던 방식과 닮아 있었다.
원인을 하나로 몰아가면 다른 원인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만 찾는다고 해서 객관적인 판단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반대로 외부의 문제만 강조하면 자신이 바꿀 수 있는 부분까지 놓치게 되었다.
민호는 보고서에 변경 사유와 대응 과정을 나누어 적었다.
그때 휴대전화에 현우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빠, 오늘 실습 일정 확정됐어요. 다음 주 수요일이에요. 해 보고 나서 이야기할게요.’
민호는 답장을 썼다.
‘그래. 다녀와서 네가 직접 느낀 점을 이야기해 줘. 궁금한 건 나도 같이 생각해 볼게.’
전송한 뒤 그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현우가 실습을 통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때 민호가 해야 할 일은 아들이 잘못 판단했다고 미리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우가 무엇을 보고 어떤 이유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알아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아들이 선택한 길이 위험하거나 현실과 크게 어긋난다고 판단된다면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 좋은 아버지의 역할은 아니었다.
다만 의견을 말하기 전에, 아들이 무엇을 확인했는지부터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민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
그날 저녁, 그는 태성당구장에서 혼자 연습을 했다.
당구대 위에 공을 배치하고 앞돌리기를 시도했다.
첫 번째는 두께가 얇았고,
두 번째는 속도가 빨랐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득점에 성공했다.
민호는 곧바로 공을 다시 배치했다. 이번에는 다른 경로를 택했다.
처음에는 익숙한 경로가 더 안전해 보였지만,
조금 더 살펴보니 다른 경로가 수구의 다음 위치까지 고려했을 때 유리할 수 있었다.
그는 큐를 내밀었다.
수구가 쿠션을 돌아 나와 제1적구를 맞혔다.
그러나 제2적구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민호는 공이 멈춘 위치를 확인했다.
실패였다.
그는 잠시 당구대 옆에 서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같은 공을 계속 반복해서 쳤을 것이다.
성공할 때까지 치면 언젠가는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 더 공을 치기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자신이 선택한 경로가 틀렸는가?
경로는 괜찮았지만 두께가 맞지 않았는가?
두께와 경로는 맞았지만 속도가 달랐는가?
아니면 자신의 기술로는 성공시키기 어려운 공이었는가?
민호는 공을 다시 배치한 뒤 이번에는 큐를 잡기 전에 당구대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수구가 마지막 쿠션을 돌아 나오는 길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두껍게 맞히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자세를 잡고 큐를 내밀었다.
수구가 세 번의 쿠션을 돌아 두 목적구를 차례로 맞혔다.
득점이었다.
민호는 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성공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패한 이유를 미리 정해 놓지 않고,
다른 각도에서 다시 살펴본 뒤 선택을 바꾸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태성이 옆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들어갔네요.”
“네. 처음에는 각도를 잘못 본 줄 알았는데, 반대편에서 보니 두께도 조금 달리 생각해야겠더군요.”
“그럼 오늘은 하나 배웠습니까?”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하나를 배웠다기보다는, 제가 처음에 무엇을 놓쳤는지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죠. 오늘 한 공을 배웠다고 내일 모든 공을 잘 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겠죠.”
민호는 큐를 내려놓았다.
그는 이제 실패한 공을 무조건 만회해야 할 빚처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실패는 아쉬운 일이었고, 때로는 실력 부족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해서 자신이 모든 것을 잘못 판단한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한 뒤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바꾸며, 무엇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구분하는 일이었다.
당구장 문을 나서기 전, 민호는 수첩을 펼쳤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줄을 적었다.
‘복기는 과거의 공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다.
다음 공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지금의 판단을 바꾸는 일이다.’
수첩을 덮은 민호는 큐 가방을 들었다.
토요일 대회에서 진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인수가 성공시킨 공을 자신도 성공시킬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놓친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다음에 비슷한 공이 찾아왔을 때, 그는 다시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자신이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구대 위에서만 쓸 수 있는 지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