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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숲》 제1부 — 죽은 친구의 남자 제5화. 문밖의 남자

지은이 SEINE · 2026-10-20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사람이다.

“김준 씨.”

문밖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계시죠?”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작업실 안에는 오래된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울렸다.

문과 그녀 사이의 거리는 다섯 걸음 남짓이었다.

준은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강태신.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유진의 작업실 주소를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남자친구였으니 몇 번쯤 방문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있는 시간에 맞춰 나타났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우연일까.

아니면.

“김준 씨.”

이번에는 조금 낮은 목소리였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준은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곧바로 열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세요?”

문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유진이 물건 때문에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요?”

“제가 맡겨 둔 게 있어서요.”

“유족분께 연락하고 오신 건가요?”

잠시 조용해졌다.

“아니요.”

준은 문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그럼 연락하고 다시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김준 씨는요?”

“네?”

“김준 씨는 허락받고 오셨습니까?”

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네. 어머니께 허락받았습니다.”

“그렇군요.”

남자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제가 실례했네요.”

발소리가 들렸다.

준은 그가 돌아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이어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김준 씨.”

“네.”

“문을 열어 주시면 안 될까요?”

준은 잠시 생각했다.

강태신이 무슨 물건을 찾으러 왔는지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를 안으로 들일 이유는 없었다.

준은 문을 조금만 열었다.

복도에는 강태신이 서 있었다.

짙은 남색 정장.

검은 구두.

흐트러짐 없는 머리카락.

그는 작업실 문이 열리자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런 데서 뵙네요.”

준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게요.”

태신은 문틈 너머의 작업실을 힐끗 보았다.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무슨 물건을 찾으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그의 미소가 아주 조금 깊어졌다.

“경계가 심하시네요.”

“유진이 작업실이니까요.”

“저도 유진이 남자친구였는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요?”

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남자친구였다는 사실과 물건을 가져갈 권한이 있다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잠깐의 정적.

태신은 준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적대감도 없었다.

단지 자신이 생각한 원칙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태신은 문득 웃음이 나왔다.

“맞는 말씀이네요.”

그는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럼 유족분께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을 닫으려던 순간이었다.

“아.”

태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김준 씨.”

“네.”

“혹시 유진이 그림 보고 계셨어요?”

준의 손이 멈췄다.

태신은 그녀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에는 천이 벗겨진 커다란 캔버스가 있었다.

“네.”

준이 짧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태신의 눈길이 그림에 머물렀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나 준은 그가 웃음을 멈추는 것을 보았다.

“그 그림.”

태신이 말했다.

“아직 완성 안 했나 보네요.”

준은 그림을 돌아보지 않았다.

“보신 적 있으세요?”

“예전에요.”

“언제요?”

태신은 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납니다.”

“그렇군요.”

준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태신이 먼저 질문했다.

“그림은 어떠세요?”

“어떤 의미로요?”

“그냥. 마음에 드시냐고요.”

준은 잠시 생각했다.

“유진이 그림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신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왜요?”

“평소보다 어두워서요.”

“화가니까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죠.”

“그렇겠죠.”

준은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태신은 웃었다.

“그런데 김준 씨.”

“네.”

“저를 조사하시는 것 같네요.”

준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질문은 검사님이 더 많이 하셨는데요.”

태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소리까지 났다.

“그러네요.”

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제가 졌습니다.”

준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두 사람은 무언가를 겨루고 있지 않았다.

태신이 돌아간 뒤 준은 문을 잠갔다.

그리고 다시 그림 앞으로 걸어갔다.

그림 속 숲은 가까이에서 볼수록 기묘했다.

나무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가지들은 저택을 감싸듯 뻗어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한 부분만 붓질이 거칠었다.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손.

준은 가까이 다가갔다.

여자의 손은 몸 옆으로 내려와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손가락을 구부린 모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작고 하얀 물체.

준은 휴대전화로 그림을 촬영했다.

확대해 보았지만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작은 종이처럼 보이기도 했고, 접힌 천처럼 보이기도 했다.

준은 사진을 저장했다.

그때 작업대 위에 놓인 물감 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뚜껑이 열려 있었다.

붉은 물감이었다.

굳어 버린 물감이 통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다.

준은 그 옆에 놓인 스케치북을 펼쳤다.

첫 장에는 인물화가 있었다.

두 번째 장에는 나무.

세 번째 장에는 건물의 창문.

그리고 네 번째 장.

준은 손을 멈췄다.

검은색 펜으로 그려진 남자의 옆모습이었다.

얼굴 전체가 보이지는 않았다.

높은 콧대.

반듯한 턱선.

단정하게 넘긴 머리카락.

그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웃는 얼굴.

준은 다음 장을 넘겼다.

같은 남자가 다시 그려져 있었다.

이번에는 정면이었다.

그런데 얼굴의 절반이 검게 칠해져 있었다.

아래에는 또 다른 문장이 있었다.

웃지 않는 눈.

준은 스케치북을 덮었다.

누구를 그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진이 무엇인가를 표현하려 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준은 스케치북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유진의 어머니에게 그림과 스케치북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당분간 작업실을 그대로 보존하는 편이 좋겠다고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강태신이었다.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준은 메시지를 읽었다.

곧이어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진이 어머니께 연락드렸습니다. 물건은 나중에 찾으러 오기로 했어요.

준은 답장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잠시 뒤 다시 메시지가 왔다.

그런데 김준 씨.

점심은 드셨어요?

준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두 시 사십 분.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알릴 이유는 없었다.

네.

답장은 곧바로 왔다.

거짓말하시는 것 같은데.

준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냥 느낌입니다.

준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더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강태신은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주차장은 작업실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았다.

김준에게 보낸 메시지는 읽음 표시가 사라졌지만 답장이 없었다.

태신은 잠시 기다렸다.

일 분.

이 분.

그는 웃었다.

“진짜 재미없게 구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운전석에 앉은 그는 시트를 뒤로 조금 젖혔다.

김준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심한 여자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가 관심을 보이면 이유를 궁금해했다.

왜 자신에게 연락하는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혹시 호감이 있는지.

하지만 김준은 그런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필요한 말만 했다.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태신은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두드렸다.

그러다 조금 전 작업실에서 본 그림을 떠올렸다.

숲.

저택.

붉은 원피스.

그는 손가락을 멈췄다.

유진이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불쾌한 그림이었다.

정확히는 그림 자체보다, 그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태신은 잠시 눈을 감았다.

어느 늦은 밤.

음악이 울리던 거실.

술잔을 들고 웃던 사람들.

그리고 복도 끝에 서 있던 유진.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태신은 그때 유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리려 했다.

그러나 기억은 흐릿했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그는 눈을 떴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민혁이었다.

“왜.”

“너 지금 어디야?”

“밖.”

“오늘 저녁에 시간 돼?”

“무슨 일인데.”

“애들 좀 보자고.”

태신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누가.”

“정우랑 승재. 그리고 몇 명 더.”

“싫어.”

“왜?”

“귀찮아.”

민혁은 잠시 침묵했다.

“너 요즘 왜 그래?”

“뭐가.”

“예전 같지 않아서.”

태신은 웃었다.

“사람이 매일 똑같을 수는 없잖아.”

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신아.”

“응.”

“유진이 작업실에는 가지 마.”

태신의 미소가 사라졌다.

“왜?”

“그냥. 괜히 말 나올 수도 있으니까.”

“누가 그런 말을 해?”

“아니, 그냥 조심하자는 거지.”

태신은 운전대 위에 손을 올렸다.

“민혁아.”

“응?”

“너 지금 나한테 뭔가 숨기는 거 있어?”

상대방이 잠시 침묵했다.

“무슨 소리야.”

태신은 웃었다.

“농담이야.”

하지만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오후 네 시.

준은 작업실에서 나와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다.

창가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오늘 발견한 그림과 스케치북에 관한 내용을 정리했다.

유진이 마지막으로 작업하던 것으로 보이는 그림.

숲속 저택.

붉은 원피스.

얼굴 없는 남자의 그림자.

그리고 문장.

그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준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이 그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림은 반드시 실제 경험을 재현하지 않는다.

화가는 상상과 감정을 섞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따라서 그림 속 저택이 실제 장소와 같다는 사실만으로 그곳에서 범죄가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진이 생전에 그 장소를 이상하다고 표현한 사실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준은 지도교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교수님, 다음 주 음악회 초대 관련해서 혹시 장소 주소를 받을 수 있을까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응. 초대장 다시 보내 줄게.

준은 전달받은 초대장을 열었다.

음악회는 다음 주 토요일 오후 일곱 시.

장소는 서울 외곽의 산림 지역에 위치한 개인 저택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준은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했다.

주변에는 작은 도로 하나가 숲을 가로질러 이어져 있었다.

저택까지 들어가는 길은 길고 구불구불했다.

준은 지도를 확대했다.

건물 주변에는 다른 주택이 거의 없었다.

정말 깊은 숲이었다.

준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그곳에 왜 갔을까.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을까.

그리고 왜 그 장소를 그림으로 남겼을까.

저녁 일곱 시.

강태신은 부모와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넓은 식탁에는 세 사람만 앉아 있었다.

태신의 아버지 강도현은 오랫동안 외과의사로 활동해 온 의료계의 유력 인사였다.

어머니 윤혜경 역시 의료계와 학계에서 명성을 쌓은 인물이었다.

두 사람 모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

“다음 주 음악회는 참석할 거니?”

혜경이 물었다.

태신은 물잔을 내려놓았다.

“아마요.”

“이번에는 중요한 분들이 많이 오신다더라.”

“늘 그렇잖아요.”

“그래도 얼굴은 비춰야지.”

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이 신문을 접었다.

“유진이라는 아가씨 일은 어떻게 됐냐?”

태신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조사 중이에요.”

“괜한 구설에 오르지 않게 조심해라.”

“네.”

도현은 더 묻지 않았다.

혜경이 말했다.

“안타까운 일이야. 젊은 사람이.”

태신은 포크를 들었다.

“그러게요.”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혜경은 아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화제를 바꾸었다.

“이번 음악회에 대학 교수들도 참석한다더라.”

“누구요?”

“한서윤 교수라고, 범죄심리학 쪽에서 연구하는 분도 오신다던데.”

태신의 손이 멈췄다.

“범죄심리학이요?”

“응. 왜?”

“아니요.”

그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김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범죄심리학과 대학원생.

유진의 친구.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혜경이 물었다.

“무슨 좋은 일 있니?”

태신은 고개를 들었다.

“아니요.”

그리고 덧붙였다.

“그냥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밤 아홉 시.

준은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숲속 저택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녀는 음악회 초대장을 다시 확인했다.

참석자 명단은 따로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초대장을 보낸 문화재단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서림문화재단.

준은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했다.

재단 홈페이지가 나타났다.

문화예술 지원.

장학사업.

의료기관 후원.

사회공헌 활동.

화려한 행사 사진들이 화면에 펼쳐졌다.

준은 사진을 넘겼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

웃으며 악수하는 인사들.

그리고 한 장의 단체 사진.

준은 손을 멈췄다.

사진 가운데에 강태신이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중년 남녀가 있었다.

준은 사진 설명을 읽었다.

강도현.

윤혜경.

의료계 인사로 소개된 두 사람이었다.

준은 이름을 메모했다.

강태신의 부모라는 사실은 아직 알지 못했다.

그저 재단 행사에 참석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했다.

준은 화면을 조금 더 내려 보았다.

그리고 오래된 행사 기록에서 낯익은 병원 이름을 발견했다.

세명대학교병원.

준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 이름은 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가 마지막으로 수술을 받았던 병원이었다.

준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내려앉는 듯했다.

병원 이름은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병원이 문화재단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한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준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차가운 병원 복도.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