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빈자리
지은이 루시엘 · 2026-10-26
# 《두부참이슬》
### 루시엘 지음
## 22화. 빈자리
윤서하는 아침부터 휴대전화를 세 번이나 확인했다.
정확히 말하면, 휴대전화를 확인한 건 세 번이 아니었다.
눈을 뜨자마자 한 번.
세수를 하다가 한 번.
가게 문을 열러 나오기 직전에 또 한 번.
그리고 지금.
벌써 네 번째였다.
화면에는 어젯밤 강태준에게서 온 메시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밥은 먹었어요?
그 아래 서하가 보낸 답장.
응. 먹었어. 태준 씨도 잘 챙겨 먹어요.
그리고 태준의 마지막 메시지.
알겠어요. 오늘도 무리하지 말고요.
평소 같았으면 여기서 끝나지 않았을 대화였다.
태준은 분명 한마디를 더 붙였을 것이다.
‘보고 싶어요.’
혹은,
‘오늘 가게 끝나면 잠깐 볼 수 있어요?’
아니면 별것도 아닌 사진을 보내며 장난을 쳤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오늘은 없었다.
서하가 잠깐 떨어져 있자고 했으니까.
그녀가 원한 거리였다.
그러니 그 거리를 지켜 주는 태준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한 걸까.
“……내가 떨어져 있자고 했잖아.”
서하는 혼잣말을 하며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그러니까 참아야지. 윤서하, 네가 먼저 말했잖아.”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은 쉽게 말을 듣지 않았다.
보고 싶었다.
그게 문제였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보고 싶었다.
평소에는 귀찮을 정도로 연락하던 남자였다. 가게 문을 열었는지 물어보고, 점심은 먹었는지 확인하고, 저녁에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가끔은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전화를 걸었다.
“서하 씨.”
“왜요?”
“그냥요.”
“……장난해요?”
“네. 서하 씨 목소리 듣고 싶어서요.”
그런 남자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자신이 먼저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서하는 깊게 숨을 내쉬고 가게 문을 열었다.
딸랑.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맑은 소리를 냈다.
언제나 같았다.
작은 테이블, 오래된 냉장고, 구석에 놓인 소주 상자, 그리고 창가에 자리 잡은 작은 화분.
태준이 사 준 오천 원짜리 화분이었다.
그는 그날 화분을 들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이거 괜찮아요?”
“화분이요?”
“네. 서하 씨 가게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오천 원짜리인데 뭘 그렇게 고민해요?”
“오천 원도 소중하잖아요.”
그 말에 서하는 웃음을 터뜨렸었다.
태성그룹 대표이사가 오천 원짜리 화분 하나를 두고 고민하다니.
그때는 그게 귀엽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화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다.
“……진짜 사람 마음 이상하게 만들어 놓네.”
서하는 화분의 잎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이럴 거면 그냥 사 주지 말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버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잎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조금 더 주었다.
마치 그 작은 화분이라도 잘 돌보면 태준과의 관계가 다시 괜찮아질 것처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서하야!”
점심 무렵, 옆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박미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너 얼굴이 왜 그러냐?”
“제 얼굴이 어때서요?”
“꼭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두부김치를 만들다가 두부가 다 떨어진 사람 같아.”
“그게 무슨 얼굴이에요?”
“실연당한 얼굴이지.”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자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어머. 진짜 무슨 일 있구나?”
“아니에요.”
“강 사장님이랑 싸웠어?”
서하의 손이 멈췄다.
미자는 그 짧은 반응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아이고, 맞네. 맞아. 우리 서하가 그 잘생긴 남자랑 싸웠구나.”
“싸운 거 아니에요.”
“그럼?”
“그냥…… 잠깐 시간을 갖기로 했어요.”
“뭐?”
미자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서하는 황급히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목소리 좀 낮춰요!”
“아니, 연애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시간을 가져? 시간은 무슨 시간! 시계도 아니고!”
“사장님.”
“아니, 내가 틀린 말 했니?”
미자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서하는 한참 동안 망설였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태준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이야기해야 할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초라한 마음을 털어놓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가장 솔직한 말을 꺼냈다.
“제가 그 사람 옆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미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왜 그런 생각을 해?”
“그 사람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세상에 사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그냥 여기서 가게 하는 사람이고요.”
“그래서?”
“그 사람 아버지를 만났어요.”
“뭐?”
이번에는 미자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서하는 천천히 그날의 일을 설명했다.
태준의 아버지가 자신을 만나자고 했던 일.
태준이 어떤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가는지 들었던 일.
그리고 자신이 그 사람의 세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일까지.
이야기를 듣던 미자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양반이 직접 널 불렀다고?”
“네.”
“태준이는 알고 있었고?”
“아니요. 나중에 알았어요.”
“그래서 화났겠네.”
“많이요.”
서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은 저한테 미안하다고 했어요. 아버지한테 화도 냈고요. 제가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럼 잘됐네. 네 편 들어 준 거잖아.”
“그런데요.”
서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있잖아요. 강태준이라는 사람이니까.”
미자는 가만히 서하를 바라보았다.
“저는 그 사람 옆에 서면 제가 자꾸 작아지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사는 세상이 저한테는 너무 낯설고 무섭거든요.”
“…….”
“혹시 나중에 제가 그 사람한테 짐이 되면 어떡하죠? 그 사람이 저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게 생기면요? 제가 모르는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그 사람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되면요?”
말을 하다 보니 참아 왔던 마음이 쏟아져 나왔다.
“저는 그 사람을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기가 무서워요.”
미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서하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서하야.”
“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자격증이 필요하니?”
서하는 고개를 들었다.
“……네?”
“돈이 많아야 사랑할 수 있고, 집안이 좋아야 사랑할 수 있고, 남들 보기에 어울려야 사랑할 수 있으면 그게 무슨 사랑이니?”
미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현실은 중요하지. 돈도 필요하고, 집안 문제도 생길 수 있고, 서로 다른 환경 때문에 싸울 수도 있어. 내가 그런 걸 모르는 줄 아니?”
그녀는 서하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그런데 그건 둘이 같이 해결할 문제야. 네가 혼자 미리 결론 내리고, 네가 혼자 부족한 사람이 되기로 하면 강태준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데?”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사람도 힘들어질까 봐요.”
“그럼 그 사람한테 물어봐. 네가 힘들어질까 봐 무서운지, 네가 옆에 있는 게 힘든지.”
“…….”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도 널 좋아한다며. 그러면 그 사람한테도 선택할 기회를 줘야지.”
미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이야.”
“네?”
“사랑하는 사람한테 짐이 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네가 그 사람한테 아무것도 기대지 않으려고 하면, 그 사람은 평생 너한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자는 가게 문 앞에서 뒤돌아보았다.
“너는 강태준의 여자친구야. 태성그룹 회장님이 인정해 줘야 여자친구가 되는 게 아니고, 네가 그 집안에 어울려야 여자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남자가 널 사랑한다고 했으면, 그 말을 한 번쯤은 믿어 봐.”
딸랑.
문이 닫혔다.
서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믿어 봐.
그 말을 믿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그 시각, 태성그룹 대표이사실.
강태준은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서류를 보는 척하고 있었다.
같은 페이지를 십 분째 읽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표님.”
최도윤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말씀하세요.”
“그거 아까부터 같은 페이지입니다.”
“그래서요?”
“혹시 글자가 안 보이십니까?”
태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최 비서.”
“네.”
“오늘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
“아닙니다.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그럼 나가서 일하세요.”
“대표님께서 서류를 읽으셔야 제가 일을 하죠.”
도윤은 책상 위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서류를 그렇게 노려보시면 종이가 먼저 사직서를 낼 것 같습니다.”
태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도윤의 시선이 대표이사의 휴대전화로 향했다.
화면은 조용했다.
“연락 안 오십니까?”
“누구요?”
“누구긴 누구겠습니까.”
“…….”
“서하 씨요.”
태준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대표님, 지금 대표님 표정이 평소보다 열 배는 무섭습니다.”
“내가 원래 무섭게 생겼잖아요.”
“아닙니다. 평소에는 그냥 차가운데, 오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원망하는 얼굴입니다.”
“최도윤.”
“네.”
“나가.”
“네. 나가겠습니다.”
도윤은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대표님.”
“또 왜요?”
“먼저 연락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태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서하 씨가 시간을 달라고 했어.”
“그렇죠.”
“그런데 내가 먼저 연락하면 그 말을 무시하는 거잖아.”
“그럴 수도 있겠죠.”
“…….”
“하지만 대표님이 연락을 안 한다고 해서 서하 씨가 편해지는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태준은 말없이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은 평소보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대표님은 서하 씨를 배려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서하 씨는 대표님이 자신에게서 멀어졌다고 느낄 수도 있잖습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태준의 입에서 처음으로 솔직한 말이 나왔다.
도윤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던 대표였다.
어려운 협상에서도, 수십억 원이 걸린 결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붙잡으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고, 기다리면 정말 멀어질 것 같아.”
태준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 사람한테는 그게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도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응.”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고 해서 상대방의 마음까지 대신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알아.”
“그럼 기다리십시오. 다만 대표님이 아무렇지 않은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태준은 피식 웃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아 보여?”
“전혀요.”
“그럼 됐네.”
“아니, 그게 무슨…….”
태준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서하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어젯밤 자신이 보낸 것이었다.
알겠어요. 오늘도 무리하지 말고요.
그 아래로 아무것도 없었다.
태준은 메시지를 입력했다.
보고 싶어요.
그리고 지웠다.
밥은 먹었어요?
그것도 지웠다.
이미 어젯밤에 물어봤던 말이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태준이 작게 중얼거렸다.
“……윤서하, 나 진짜 바보 됐네.”
도윤은 못 들은 척하며 문을 닫았다.
그날 저녁.
태준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퇴근했다.
차를 직접 몰았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두부참이슬.
서하가 있는 곳.
아니, 서하가 있을 곳.
그는 가게 근처 골목으로 들어섰다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멀리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두부참이슬.
따뜻한 불빛이 유리창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준은 가게 앞에 차를 세우지 않았다.
그저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운 채 가게를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서하가 보였다.
앞치마를 두르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님에게 웃으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태준은 그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이 없는 서하의 일상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
물론 서하가 자신의 연락 없이도 잘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가게가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자신의 삶이 있었다.
그게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일상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질까 봐 무서웠다.
태준은 운전대 위에 손을 올렸다.
지금이라도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떨까.
평소처럼 두부김치 하나, 참이슬 하나를 주문하면.
서하는 분명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잠깐 놀란 얼굴을 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서하를 보며 또다시 사랑한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다음은?
서하가 자신을 보고 불편해하면?
자신이 없는 시간을 겨우 견디고 있었는데, 자신이 나타나 그 시간을 망쳐 버리면?
태준은 결국 시동을 끄지 못한 채 다시 켰다.
그리고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가게 안에서 서하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유리창 밖으로 익숙한 차가 지나간 것 같았다.
검은색 세단.
태준의 차와 비슷했다.
서하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문을 열었다.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왔었나?”
누군가에게 물어보듯 작게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서하는 입술을 꾹 깨물고 가게 안으로 돌아왔다.
그때 미자가 반찬가게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서하야!”
“네?”
“아까 밖에서 뭐 봤어?”
“아니요.”
“그런데 왜 문 앞에서 그렇게 서 있었어?”
서하는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냥…… 누가 온 것 같아서요.”
미자는 서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강 사장님?”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미자는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둘 다 참 고집은…….”
“사장님.”
“응?”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서하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제가 시간을 갖자고 했으면서, 그 사람이 안 오니까 서운해요. 연락을 안 하니까 보고 싶고요. 그런데 막상 연락이 오면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웃으려 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거죠?”
“아니.”
미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냥 좋아하는 거야.”
“…….”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별것도 아닌 걸로 서운하고, 안 보면 보고 싶고, 보고 싶으면서도 막상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미자는 서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데 서하야.”
“네.”
“네가 그 사람을 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서하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밤 열한 시.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가게가 조용해졌다.
서하는 테이블을 닦았다.
하나, 둘, 셋.
늘 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구석 테이블을 닦을 때마다 손이 멈췄다.
태준이 늘 앉던 자리였다.
그는 항상 벽 쪽에 앉았다.
서하가 주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왜 하필 거기예요?”
“서하 씨가 잘 보이니까요.”
“다른 자리에서도 잘 보이거든요?”
“여기서 보면 더 잘 보여요.”
“참나.”
그때는 웃고 넘겼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태준이 앉아 있으면 늘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 힘들었어요?”
“아니요.”
“거짓말.”
“뭘 보고요?”
“표정이요.”
그러면 서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손님은 술이나 드세요.”
태준은 웃으며 소주잔을 들었다.
“네, 사장님.”
그런 사소한 대화들이 이제는 너무 그리웠다.
서하는 테이블 위에 걸레를 내려놓았다.
“……보고 싶다.”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의자를 끌어당겨 태준이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텅 빈 맞은편 자리를 바라보았다.
“강태준 씨.”
대답이 없었다.
“나 지금 너무 보고 싶은데.”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서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내가 먼저 연락하면…… 내가 잘못한 것 같잖아.”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내가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말끝이 흐려졌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울고 싶지 않았다.
태준이 없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괜찮은 척할 수도 없었다.
서하는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대화창을 열었다.
태준 씨.
입력하고 멈췄다.
지웠다.
오늘 뭐 했어요?
또 지웠다.
보고 싶어요.
이번에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네 글자.
너무 간단한 말이었다.
그런데 보내는 순간 자신이 정해 놓은 거리가 무너질 것 같았다.
서하는 결국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화면이 환하게 켜졌다.
태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오늘 가게 바빴어요?
서하는 숨을 멈췄다.
잠시 후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대답 안 해도 괜찮아요. 그냥 궁금해서요.
서하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연락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이 먼저 말을 걸어도 괜찮다고 느낄 때까지.
서하는 손끝으로 메시지 입력창을 눌렀다.
응. 오늘은 조금 바빴어요.
보내고 나서 한참을 기다렸다.
답장은 금방 왔다.
고생했어요.
그리고 잠시 후.
밥은 먹었어요?
서하는 울다가 웃었다.
“아…… 진짜.”
왜 꼭 밥부터 물어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