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재벌 남친의 동네 데이트
지은이 루시엘 · 2026-10-26
# 《두부참이슬》
루시엘 지음
## 18화. 재벌 남친의 동네 데이트
“태준 씨,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그럼요. 뭐든지 물어봐요.”
강태준은 윤서하가 내민 장바구니를 받아 들며 대답했다.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 오후.
두 사람은 동네 시장을 걷고 있었다. 서하가 일주일 동안 가게에서 사용할 식재료를 사러 나온 길이었다. 태준은 오늘도 당연하다는 듯 따라나섰다.
처음에는 데이트라고 해서 조금 특별한 곳에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서하는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콩나물 가격부터 확인했다.
“여기는 천 원이네. 저쪽은 팔백 원이었는데.”
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천 원이랑 팔백 원이면 이백 원 차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그걸 비교해서 사는 거예요?”
서하가 걸음을 멈췄다.
“……그럼 비교 안 하고 사요?”
“아니, 그게 아니라.”
태준은 자신의 말이 실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서하는 장바구니를 고쳐 들며 웃었다.
“태준 씨는 이런 거 잘 모르죠?”
“솔직히 말하면, 잘 몰라요.”
“그럴 줄 알았어요.”
서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백 원도 아껴야죠. 콩나물만 사는 것도 아니고 두부도 사고, 김치에 들어갈 재료도 사고, 식용유도 사야 하잖아요. 하루하루 쌓이면 금액이 꽤 커져요.”
태준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우리 가게는 음식값을 너무 비싸게 받을 수도 없어요. 손님들이 부담 없이 와서 한잔하고 갈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구나.”
“네. 그러니까 오늘은 제가 장 보는 법을 알려 드릴게요.”
서하가 씩 웃었다.
“잘 따라오세요, 강태준 씨.”
“네, 사장님.”
태준은 장바구니를 들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아 식사하는 것보다, 서하가 평소 어떻게 살아가는지 직접 보는 일이 훨씬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무엇을 아끼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왜 자신의 가게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지.
오늘은 조금 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태준은 아직 몰랐다.
동네 시장에서 장바구니 하나를 들고 다니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은.
### 1. 대표님, 그건 너무 비싸요
“사장님, 여기 두부가 두 모에 삼천 원이에요.”
태준이 두부 진열대를 가리켰다.
서하는 가격표를 확인했다.
“아, 여기는 조금 비싸네요.”
“그럼 안 사요?”
“네. 저쪽 가게로 가요.”
“저쪽이 더 싸요?”
“응. 두 모에 이천오백 원이에요.”
태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마치 중요한 경영 전략을 배운 사람처럼 말했다.
“앞으로 두부는 저쪽에서 구매하겠습니다.”
“아이고, 우리 대표님 잘하시네.”
서하가 웃자 태준도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이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채소 가게 주인이 서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머, 서하 씨! 오늘은 남자친구랑 같이 왔네?”
“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잘생겼다. 남자친구가 아주 훤칠하네.”
태준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주인은 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웃었다.
“남자친구가 키도 크고 인물도 좋네. 서하 씨가 사람 보는 눈이 있구먼.”
서하가 민망한 듯 웃었다.
“아유, 사장님도 참.”
“뭐가 참이야. 잘생겼으면 잘생겼다고 하는 거지.”
주인은 태준에게 채소 봉지를 내밀었다.
“총각, 우리 서하 씨 잘 부탁해요. 이 아가씨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내가 알아요.”
태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네. 잘 부탁받겠습니다.”
“아니, 내가 총각한테 부탁하는 거라니까!”
주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하도 결국 웃고 말았다.
채소를 고르던 서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상태를 확인했다. 시든 잎은 없는지, 무게는 적당한지, 가격은 괜찮은지 꼼꼼하게 살폈다.
태준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서하 씨는 이런 걸 다 알아요?”
“당연하죠. 가게 하는 사람이 이 정도도 모르면 어떡해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니까 배우는 거죠.”
서하는 시금치 한 단을 들어 보였다.
“이런 건 잎이 너무 시들지 않았는지 보고, 콩나물은 색깔이 너무 누렇지 않은지 확인하고요. 두부는 유통기한도 봐야 해요.”
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들었다.
“이제부터 제가 같이 장 봐 드릴게요.”
서하가 그를 돌아봤다.
“정말요?”
“네.”
“대표님이 직접요?”
“대표도 두부는 먹으니까요.”
서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은 맞네요.”
두 사람은 채소와 두부를 사고, 마지막으로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사러 갔다.
그런데 태준이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냈다.
“서하 씨, 잠깐만요.”
“왜요?”
“제가 결제할게요.”
그는 계산대에 서서 지갑을 꺼냈다.
서하가 얼른 손을 뻗었다.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오늘 데이트잖아요.”
“데이트랑 장 보는 건 다르죠.”
“제가 사 주고 싶어서 그래요.”
태준은 웃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그 순간 서하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태준 씨.”
“네?”
“나 이런 건 내가 낼게요.”
태준은 카드를 거둬들였다.
“……알겠어요.”
서하는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아 들었다.
가게를 나선 뒤에도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태준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건지 생각했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사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하에게는 그 행동이 다른 의미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
“서하 씨.”
“응?”
“혹시 제가 기분 나쁘게 했어요?”
서하는 걸음을 늦췄다.
“아니요. 기분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런데 표정이 조금 달라져서요.”
서하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냥…… 나도 내 몫은 내가 하고 싶어서요.”
태준은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태준 씨 여자친구라고 해서 모든 걸 태준 씨가 해 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죠.”
“나도 돈 벌고, 나도 생활하고, 내 가게도 운영하는 사람이에요. 태준 씨가 나한테 잘해 주는 건 고맙지만…….”
서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뭔가를 받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서하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자신이 스스로 일궈 온 삶을 존중받고 싶은 것이었다.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제가 사 주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서하가 그를 바라봤다.
“음…….”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제가 사 줘도 되는지 먼저 물어볼까요?”
서하는 잠깐 생각하다가 웃었다.
“네. 그렇게 해요.”
“좋아요.”
태준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부터는 꼭 물어볼게요.”
“그리고 저도 태준 씨한테 뭔가 사 주고 싶을 때는 사 줄 거예요.”
“네.”
“비싼 건 못 사 줄 수도 있어요.”
태준은 그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비싼 건 필요 없어요.”
“정말요?”
“네. 서하 씨가 사 주는 거라면 천 원짜리도 좋고, 백 원짜리도 좋아요.”
서하는 결국 웃었다.
“백 원짜리 선물은 또 뭐예요.”
“백 원짜리 사탕도 좋다는 뜻이죠.”
“그럼 다음에 사탕 하나 사 줄게요.”
“두 개 사 주면 안 돼요?”
“한 개요.”
“……네.”
태준이 풀이 죽은 얼굴을 하자 서하는 그의 팔을 가볍게 쳤다.
“장난이에요. 두 개 사 줄게요.”
그제야 태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서하는 생각했다.
이 남자는 정말 이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것을 사 줄 수 있는 사람이면서, 사탕 두 개에 이렇게 기뻐했다.
### 2. 돈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장을 다 본 두 사람은 시장 입구에 있는 작은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서하가 자주 오는 곳이었다.
“여기 잔치국수 맛있어요.”
“그럼 저도 잔치국수 먹을게요.”
“태준 씨는 곱빼기 먹어요?”
“아니요. 보통으로요.”
서하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배 안 고파요?”
“고파요.”
“그런데 왜 보통이요?”
“서하 씨랑 똑같이 먹고 싶어서요.”
서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정말 별걸 다 따라 하네.”
음식이 나오자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국수를 먹었다.
따뜻한 국물이 속을 데웠다.
태준은 국수를 먹다가 문득 서하가 아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의 몫은 스스로 하고 싶다는 말.
그 말에는 단순히 계산을 나누자는 뜻보다 더 많은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서하 씨.”
“응?”
“우리 돈 이야기 조금 해도 될까요?”
서하의 젓가락이 멈췄다.
“돈 이야기요?”
“네. 앞으로 계속 만날 거잖아요.”
태준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데이트 비용이나 선물 같은 것들요. 서로 부담스럽지 않게 기준을 정해 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서하는 잠시 국수 그릇을 내려다봤다.
사실 그녀도 그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태준은 자신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고 있을 것이다.
정확히 얼마를 버는지는 몰랐지만, 태성그룹의 대표라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할 리는 없었다.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식당이나 여행은 서하에게 큰 지출이 될 수도 있었다.
반대로 자신이 편하게 생각하는 동네 분식집이나 시장 데이트가 태준에게는 너무 소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당연하죠.”
서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태준 씨랑 데이트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건 부담스러워요.”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잖아요. 가게 운영하는 데도 돈이 들어가고, 생활비도 필요하고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매출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재료비가 오르면 남는 돈이 줄어들고, 손님이 적은 날에는 괜히 불안해지기도 해요.”
태준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태준 씨가 자꾸 비싼 걸 사 주거나, 비싼 데이트를 하자고 하면 고맙기도 하지만…… 내가 따라갈 수 있을까 싶어요.”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혹시 내가 태준 씨한테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돼요.”
태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하 씨.”
“응?”
“저는 서하 씨가 돈을 얼마나 쓰는지로 서하 씨를 평가하지 않아요.”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비싼 선물을 사 주는 사람이 더 좋은 여자친구인 것도 아니고, 비싼 식당에 갈 수 있어야 저랑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
“저는 서하 씨가 제 앞에서 억지로 돈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면서 괜찮은 척하지도 않았으면 좋겠고요.”
서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태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야기했다.
“그리고 저도 조심할게요. 제가 익숙한 방식이 서하 씨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을게요.”
서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고마워요.”
“대신 저도 부탁 하나 해도 돼요?”
“뭔데요?”
“돈 때문에 저한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서하 씨가 부담스러우면 부담스럽다고 말해 주세요. 오늘처럼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 짐작하면서 속상해하지 말고요.”
“……응.”
“그리고 서하 씨가 제게 무언가 해 주고 싶을 때도 무리하지 마요. 비싼 선물이 아니어도 되고, 아무것도 안 해 줘도 괜찮아요.”
그는 웃었다.
“그냥 같이 있어 주면 돼요.”
서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다.
자신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었다.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면, 언젠가 그 차이가 둘 사이를 가로막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적어서 미안해지고, 상대방이 가진 것이 많아서 위축되는 순간이 생길까 봐.
그런데 태준은 그 두려움을 없애 주겠다고 쉽게 약속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이야기했고, 서하에게도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좋았다.
“태준 씨.”
“네.”
“우리 데이트할 때는 번갈아 가면서 내요.”
태준이 눈을 깜빡였다.
“번갈아서요?”
“네. 오늘은 제가 밥을 샀으니까 다음에는 태준 씨가 사고, 그다음에는 또 제가 사고.”
서하는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제가 부담되는 날에는 안 사도 되고요.”
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정말요?”
“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서하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뭔데요?”
“서하 씨가 사 주는 날에는 제가 메뉴를 고르면 안 돼요?”
“왜요?”
“서하 씨가 부담스럽지 않은 메뉴로 골라 줄 거잖아요. 저는 그걸 먹으면 되니까요.”
서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그건 당연하죠.”
“그럼 합의된 거네요.”
태준이 손을 내밀었다.
서하는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합의됐어요.”
두 사람은 국숫집 한가운데에서 악수했다.
마치 중요한 계약이라도 체결한 사람들처럼.
그 모습을 보던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젊은 사람들이 연애를 아주 야무지게 하네!”
서하는 얼굴을 붉혔고, 태준은 당당하게 웃었다.
“네. 중요한 계약이라서요.”
“무슨 계약인데?”
“오래오래 잘 만나기로 했습니다.”
주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말은 참 잘한다!”
서하도 웃었다.
그런데 태준의 말은 장난만은 아니었다.
오래 만나고 싶었다.
서하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자신이 가진 것과 그녀가 가진 것을 비교하지 않도록.
그저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을 하나씩 찾아가고 싶었다.
### 3. 재벌 남친의 비밀
국숫집에서 나온 뒤 두 사람은 시장을 조금 더 걸었다.
서하는 태준이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받아 들려고 했다.
“이제 제가 들게요.”
“괜찮아요. 제가 들게요.”
“무거우니까요.”
“안 무거워요.”
“태준 씨, 그 안에 두부도 있고 채소도 있어요.”
“알아요.”
“팔 안 아파요?”
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조금 아파요.”
서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진작 말하지!”
그녀는 장바구니를 반으로 나눠 들었다.
“자, 이건 제가 들게요.”
태준은 그녀의 손에 들린 봉투를 바라봤다.
“고마워요.”
“뭘요. 같이 산 건데 같이 들어야죠.”
그 말에 태준은 걸음을 잠시 늦췄다.
같이 산 건데 같이 들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는 늘 누군가가 자신의 짐을 대신 들어 주거나,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서하는 달랐다.
자신이 도와주면 고마워했고,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직접 하려고 했다.
도움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려는 사람이었다.
태준은 문득 자신이 얼마나 서하를 좋아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서하 씨.”
“응?”
“저 사실 오늘 정말 좋았어요.”
“왜요? 장만 봤는데?”
“그러니까요.”
태준은 웃었다.
“서하 씨가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됐잖아요.”
서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런 게 좋아요?”
“네. 서하 씨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아끼는지, 가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런 걸 더 알고 싶어요.”
그는 조용히 덧붙였다.
“서하 씨의 삶에 제가 조금씩 들어가는 것 같아서 좋아요.”
서하는 얼굴이 붉어졌다.
“태준 씨는 가끔 너무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요.”
“왜요? 진심인데.”
“그게 더 문제예요.”
태준은 웃었다.
두 사람은 다시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시장 입구의 작은 꽃집 앞에서 서하가 멈췄다.
“어?”
태준이 그녀를 바라봤다.
“왜요?”
서하는 진열대에 놓인 작은 화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초록색 식물이었다.
“이거 예쁘다.”
태준도 화분을 들여다봤다.
“사고 싶어요?”
“아니요. 그냥 예뻐서요.”
서하는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태준이 그녀를 불렀다.
“서하 씨.”
“응?”
“제가 사 줘도 돼요?”
서하는 그를 바라봤다.
태준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인지 먼저 물어보려고요.”
서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인데요?”
꽃집 주인이 대답했다.
“오천 원이에요.”
서하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괜찮아요.”
태준은 화분을 사서 그녀에게 건넸다.
“선물입니다.”
서하는 두 손으로 화분을 받았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가게에 놓아야겠다.”
“그럼 제가 다음에 가서 확인할게요.”
서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화분은 비싼 선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하는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태준이 자신에게 무엇을 사 주었는지보다, 자신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먼저 물어봤다는 사실을.
그녀는 화분을 가슴 가까이 안았다.
그리고 태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태준 씨.”
“네.”
“나 이런 연애는 처음이에요.”
태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저도요.”
“정말요?”
“네. 제가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처음이고, 누군가와 돈 이야기까지 진지하게 나누는 것도 처음이에요.”
서하는 웃었다.
“그럼 우리 같이 배워 가요.”
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같이 배워 가요.”
### 4. 사장님이 몰랐던 남자친구의 마음
저녁 무렵, 태준은 서하를 가게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오늘은 휴무였지만, 서하는 장을 본 물건들을 정리해야 했다.
“들어가요. 저는 이제 가 볼게요.”
태준이 말했다.
서하는 화분과 장바구니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늘 고마웠어요.”
“제가 더 고마워요.”
“왜요?”
“서하 씨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보여 줬잖아요.”
서하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냥 평범한 하루였는데.”
“저한테는 평범하지 않았어요.”
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오늘 서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됐어요. 그리고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조금 더 알게 됐고요.”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서하 씨가 싫다고 하면 멈추고, 부담스럽다고 하면 다시 생각하고, 힘들다고 하면 들어 주는 거요.”
그는 웃었다.
“물론 제가 실수할 수도 있겠지만요.”
서하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나도 노력할게요.”
“뭘요?”
“혼자 고민하지 않고 태준 씨한테 이야기하는 거요. 돈 문제든, 마음 문제든.”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요.”
서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걸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