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사장님, 좋아합니다
지은이 루시엘 · 2026-10-26
# 《두부참이슬》
루시엘 지음
## 16화. 사장님, 좋아합니다
연애 1일 차.
윤서하는 아침부터 휴대전화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휴대전화가 문제였다.
아니, 휴대전화 속에 있는 남자가 문제였다.
[강태준 ❤️]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냥 강태준이었다. 두부김치 하나에 참이슬 한 병을 시키고, 매일같이 가게에 찾아와 서하를 귀찮게 하던 단골손님.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남자친구.
그 두 글자가 자꾸만 가슴을 간질였다.
띠링!
휴대전화가 울렸다.
[강태준 ❤️]\
잘 잤어요?
서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으며 답장을 보냈다.
[윤서하]\
응. 사장님은?
답장을 보내자마자 다시 메시지가 왔다.
[강태준 ❤️]\
사장님 말고 남자친구요.
[윤서하]\
아침부터 왜 그래요ㅋㅋㅋㅋ
[강태준 ❤️]\
좋아서요.
서하의 손가락이 멈췄다.
좋아서요.
그 짧은 네 글자가 이렇게 사람을 간지럽힐 줄은 몰랐다.
[강태준 ❤️]\
여자친구는 지금 뭐 해요?
[윤서하]\
출근 준비요.
[강태준 ❤️]\
보고 싶은데.
서하는 결국 휴대전화를 침대 위로 던졌다.
“아, 진짜……!”
누가 보면 남자친구가 생긴 게 아니라 평생 혼자 살다가 갑자기 청혼이라도 받은 줄 알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애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아니면 강태준이라는 남자가 유독 사람을 정신없게 만드는 걸까.
잠시 뒤,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윤서하]\
오늘도 가게 올 거예요?
[강태준 ❤️]\
당연하죠.
[윤서하]\
두부김치 먹으러?
[강태준 ❤️]\
아니요.
[윤서하]\
그럼요?
답장은 곧바로 도착했다.
[강태준 ❤️]\
여자친구 보러요.
서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진짜 미치겠네…….”
그때였다.
띠링!
[강태준 ❤️]\
참, 오늘은 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늦을 수도 있어요. 기다리지는 말고요.
서하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윤서하]\
누가 기다린대요?
[강태준 ❤️]\
제가 기다리게 만들고 싶은데요.
[윤서하]\
강태준 씨 진짜…….
[강태준 ❤️]\
네, 여자친구님.
서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큰일이었다.
이 남자에게 제대로 빠져 버리면, 예전처럼 쉽게 마음을 닫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게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 1. 회사에서는 다른 남자
“대표님, 오전 열 시 회의 자료 준비됐습니다.”
태성그룹 본사.
강태준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보고해 보세요.”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어젯밤 두부참이슬에서 서하의 손을 잡고 웃던 남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셔츠와 짙은 색 정장. 흐트러짐 없는 머리카락.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놓치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
강태준은 회의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각 부서의 임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분기 매출이 목표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원인이 뭡니까?”
한 임원이 서류를 넘기며 대답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던 탓이 큽니다. 다음 분기에는 회복될 것으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일입니다.”
태준의 말이 끊어졌다.
“예상할 수 있었던 문제를 이유로 결과를 설명하시면, 제가 여기서 회의를 하는 의미가 있습니까?”
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가져오세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실행할 수 있는 계획으로.”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보고서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신규 사업 계획은 다시 검토하세요. 비용 대비 수익성이 맞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실무진과 추가로 논의해 보겠습니다.”
“논의는 회의 전에 끝내셨어야죠.”
임원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회의실 한쪽에 앉아 있던 최도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저 인간 오늘도 무섭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강태준이 회의 중간중간 휴대전화를 확인한다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회의 중 개인적인 연락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을 사람이었다.
도윤은 태준의 화면에 뜬 이름을 얼핏 보았다.
윤서하.
그리고 그 아래 적힌 메시지.
[윤서하]\
오늘 밥은 먹고 일해요. 일한다고 밥 굶지 말고.
태준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도윤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와. 세상에.
우리 대표님이 웃었어.
그것도 회의 중에.
“최 실장.”
“네, 대표님!”
“방금 보고 내용 중에 추가할 의견 있습니까?”
“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웃고 있습니까?”
“제가요?”
“네.”
도윤은 급하게 표정을 굳혔다.
“아닙니다. 업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럼 집중하세요.”
“네.”
태준은 다시 서류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몇 초 뒤, 휴대전화에 시선이 돌아갔다.
[강태준 ❤️]\
네. 여자친구가 걱정해 주니까 꼭 먹겠습니다.
[윤서하]\
여자친구라고 너무 좋아하지 마요.
[강태준 ❤️]\
그게 마음대로 안 되네요.
도윤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 큰일 났네.
진짜 단단히 빠지셨네.
### 2. 사장님의 깜짝 방문
오후 두 시.
서하는 가게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었다.
손님이 뜸한 시간이라 김치찌개를 끓여 대충 밥을 말아 먹는 중이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태준과 나눈 대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메시지는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밥 먹었느냐.
가게는 괜찮으냐.
날씨가 추운데 따뜻하게 입었느냐.
그리고 마지막에는.
[강태준 ❤️]\
보고 싶어요.
서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보고 싶다는 거야…….”
그녀도 보고 싶었다.
아침에 헤어진 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평소라면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었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문득 태준이 어떤 회사에서 일하는지 궁금해졌다.
물론 그가 태성그룹 대표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술집에서 만날 때는 늘 편안한 차림이었고, 장난도 잘 쳤으며, 손님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그런 사람이 회사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서하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윤서하]\
회사 근처에 맛있는 커피집 있어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강태준 ❤️]\
몇 군데 있는데요. 왜요?
[윤서하]\
그냥 궁금해서요.
[강태준 ❤️]\
혹시 저 보러 오려고요?
서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윤서하]\
아니거든요.
[강태준 ❤️]\
그럼 다행이네요. 제가 먼저 보러 가려고 했는데.
서하는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래. 내가 가면 되잖아.
연애를 시작했다고 해서 매번 태준이 자신을 찾아와야 하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가 보고 싶었다.
그가 어떤 곳에서 일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는지.
자신이 모르는 강태준의 모습을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서하는 앞치마를 벗어 걸고 옆 가게의 박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잠깐만 가게 좀 봐 줄 수 있어요?”
“어디 가는데?”
“볼일 좀 보려고요.”
“볼일? 너 얼굴이 왜 그렇게 웃고 있냐?”
“제가요?”
“그래. 입이 귀에 걸렸어. 강태준이랑 무슨 일 있었지?”
“아, 언니!”
“어머나, 맞네! 너희 둘이 드디어 사귀는구나?”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자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눈을 반짝였다.
“세상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래서 어디 가는데?”
“그냥…… 남자친구 회사요.”
“아이고, 남자친구래!”
“언니, 진짜!”
“알았어, 알았어. 내가 가게 봐 줄 테니까 다녀와. 대신 돌아와서 자세하게 보고해야 한다.”
서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작은 종이봉투에 근처 빵집에서 산 빵 몇 개를 담고, 태준이 알려 준 회사 주소를 확인했다.
선물이라고 하기엔 소박했다.
비싼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하다가 배고플 때 먹으라고 주고 싶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적어도 서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 3. 낯선 세계
태성그룹 본사는 서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유리로 된 높은 건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입구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서하는 건물 앞에서 한참을 올려다봤다.
“와…….”
이런 곳이 태준의 일터였다.
자신은 작은 술집에서 두부를 부치고 김치를 볶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결정과 책임이 오가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갑자기 조금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자신이 부끄러운 건 아니었다.
자신의 가게를 사랑했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어 주는 일도 좋아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살아온 세상이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낯설었다.
서하는 봉투를 꼭 쥐었다.
그래도 뭐 어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보러 온 건데.
그녀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넓었다.
안내 데스크에 다가가자 직원이 친절하게 물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 강태준 대표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직원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대표님과 약속을 잡으셨을까요?”
“아니요. 그냥 잠깐…….”
“죄송하지만 대표님께서 현재 회의 중이셔서요. 방문 예약이 없으시면 바로 안내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아, 네. 괜찮아요.”
서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예약도 없이 찾아와서 대표를 만나겠다는 게 얼마나 갑작스러운 일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혹시 최도윤 실장님을 아세요?”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하가 돌아보자 정장을 입은 남자가 놀란 얼굴로 서 있었다.
최도윤이었다.
“사장님?”
“아, 안녕하세요.”
도윤은 서하와 손에 든 봉투를 번갈아 보았다.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그냥…… 태준 씨 보러 왔어요. 혹시 많이 바쁘세요?”
도윤은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대표님이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이 직접 찾아왔네.
그는 얼른 표정을 정리했다.
“회의 중이긴 한데, 거의 끝났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아니에요. 바쁘시면 괜찮아요. 그냥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
“그 말씀을 대표님께서 들으시면 서운해하시겠는데요.”
“네?”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도윤은 서하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서하는 괜히 긴장했다.
“실장님.”
“네, 사장님.”
“태준 씨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이에요?”
도윤은 잠깐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됩니까?”
“네.”
“무섭습니다.”
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일할 때는 정말 무섭습니다. 기준이 엄격하고, 실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요. 회의 때는 웃는 얼굴을 거의 못 봅니다.”
“……진짜요?”
“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어떻게요?”
도윤은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서하를 바라보며 웃었다.
“휴대전화를 자주 보십니다. 그리고 웃으십니다.”
서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
“아마 사장님 때문이겠죠.”
“그런 거 아니에요.”
“네. 제가 괜한 소리를 했네요.”
도윤은 전혀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쪽입니다.”
복도 끝에는 넓은 회의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강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안건은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서하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목소리는 분명 태준의 것이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차갑고 단호했다.
“다음 보고 때까지 개선안을 제출하세요.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담당 부서의 책임도 함께 검토하겠습니다.”
서하는 자신도 모르게 회의실 유리벽 너머를 바라봤다.
그곳에 강태준이 있었다.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서류를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는 남자.
누군가의 말을 듣고 날카롭게 질문하고, 필요한 부분은 단호하게 지적하는 남자.
술집에서 장난스럽게 웃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하는 조금 놀랐다.
저 사람이…… 내가 아는 강태준이라고?
그 순간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유리벽 너머에 서 있는 서하와 눈이 마주쳤다.
태준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아주 잠깐.
정말 잠깐이었지만, 그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차갑게 굳어 있던 얼굴이 환하게 풀렸다.
서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태준은 회의실 안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나머지 사항은 정리해서 보고해 주세요.”
“네, 대표님.”
회의가 끝나자마자 태준은 서둘러 문을 열고 나왔다.
“윤서하?”
“안녕하세요.”
“여기 웬일이에요?”
놀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선명한 건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그냥…… 지나가다가요.”
“여기가 지나가다가 들를 만한 곳은 아닌데.”
“그럼 돌아갈까요?”
서하가 장난스럽게 돌아서려 하자 태준이 얼른 손목을 잡았다.
“안 됩니다.”
“왜요?”
“제가 보고 싶어서요.”
태준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낮게 웃었다.
“정말 왔네요.”
그 말에 서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빵 사 왔어요. 일하다가 배고플까 봐.”
그녀가 봉투를 내밀었다.
태준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안에는 소박한 빵 몇 개가 들어 있었다.
비싼 선물도 아니고, 화려한 포장도 없었다.
그런데 태준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받은 사람처럼 봉투를 바라봤다.
“이거 저 주려고 산 거예요?”
“그럼 누구 줘요.”
“고마워요.”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정말 고마워요, 서하 씨.”
서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고마워할 일은 아니에요.”
“저한테는 고마운 일인데요.”
태준은 봉투를 들지 않은 손으로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회사 복도였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서하는 당황해 손을 빼려다가 멈췄다.
태준이 눈으로 물었다.
괜찮으냐고.
서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태준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잠깐 제 사무실에 가 있을래요? 커피도 내려 줄게요.”
“대표님이 직접요?”
“네. 제 여자친구가 왔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서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여자친구 타령이에요?”
“당연하죠.”
태준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 4. 제 여자친구입니다
태준의 사무실은 넓었다.
커다란 책상과 서류가 정리된 책장,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풍경까지.
서하는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태준은 직접 커피를 준비해 그녀 앞에 놓았다.
“설탕 넣었어요?”
“조금요. 서하 씨가 쓴 커피 싫어하잖아요.”
“그것도 기억해요?”
“그걸 왜 못 기억해요.”
태준은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아까 놀랐죠?”
서하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제가 무서웠어요?”
“아니요. 무섭다기보다는…….”
서하는 적당한 말을 찾으려다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모르는 사람 같았어요.”
태준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렇게 보였어요?”
“응. 술집에서는 늘 웃고 장난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어요.”
“회사에서는 책임져야 할 일이 많으니까요.”
태준은 창밖을 잠시 바라봤다.
“제가 결정한 일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아요. 그러니 가볍게 행동할 수는 없죠.”
“힘들겠다.”
서하의 말에 태준이 그녀를 바라봤다.
“뭐가요?”
“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누구한테도 약한 모습 못 보이고.”
태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가 가진 자리와 권한, 그리고 결과만을 봤다.
잘하면 당연한 일이고, 실수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
그게 강태준이라는 이름 뒤에 붙어 있는 무게였다.
그런데 서하는 달랐다.
그녀는 대표가 아니라 사람을 보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은지.
밥은 먹었는지.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일은 없는지.
태준은 조용히 웃었다.
“그래서 서하 씨가 좋아요.”
서하의 눈이 흔들렸다.
“또 그런 말…….”
“사실이니까요.”
“오늘 만난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몇 시간 동안 보고 싶었는데요.”
“강태준 씨.”
“네.”
“진짜 너무 능숙한 거 아니에요?”
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이런 거 처음이에요.”
그는 그녀의 손을 살짝 감싸 쥐었다.
“누군가한테 이렇게 자주 연락하고 싶었던 적도 없고, 밥을 먹었는지 궁금했던 적도 없어요. 회사에서 회의하다가도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생각나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