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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저 남자 또 왔네

지은이 루시엘 · 2026-10-19

# 《두부참이슬》

## 2화. 저 남자 또 왔네

밤 아홉 시 오십 분.

윤서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주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 진짜.”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행주를 탁자 위에 던졌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보면 중요한 약속이라도 기다리는 줄 알겠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손님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그저 확인하려는 것뿐이었다.

어제 그 이상한 남자가 정말 다시 올 만큼 뻔뻔한 인간인지, 아니면 하루쯤 지나고 나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줄 아는 정상적인 인간인지.

그것을 확인하려는 것뿐이었다.

“그래. 확인.”

서하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안 오면 정상이고, 오면 진상이야.”

딸랑.

천막 입구에 달린 종이 울렸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검은 셔츠.

걷어 올린 소매.

한 손에는 휴대전화, 다른 손에는 작은 종이봉투.

그리고 사람을 약 올리는 데 타고난 것 같은 그 미소까지.

강태준이었다.

“사장님!”

그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 왔어요!”

서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

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감동하셨어요?”

“아니요.”

“보고 싶으셨어요?”

“아니요.”

“하루 종일 제 생각 하셨어요?”

“아니라고요!”

서하의 목소리가 포장마차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구석에서 어묵 국물을 마시던 손님 두 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태준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서하를 향해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사장님.”

“왜요!”

“목청이 좋으시네요.”

“…….”

“가수 하셔도 되겠어요.”

서하는 들고 있던 주문지를 구겼다.

‘저 인간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내쫓지?’

그녀의 머릿속에 온갖 방법이 떠올랐다.

영업 종료라고 거짓말하기.

두부김치 품절이라고 하기.

참이슬이 없다고 하기.

아니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

당신이 싫으니까 나가라고.

하지만 태준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어제 앉았던 바로 그 자리.

“주문하시겠어요?”

서하는 세상에서 가장 사무적인 표정으로 물었다.

태준은 메뉴판을 펼쳤다.

“오늘은 새로운 걸 먹어볼까 하는데요.”

“네. 뭐 드릴까요?”

“사장님 추천으로 주세요.”

“두부김치요.”

“그건 어제 먹었잖아요.”

“그럼 오늘도 드세요.”

태준은 웃음을 참으며 메뉴판을 내려놓았다.

“사장님, 저한테 관심 없으시죠?”

서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너무 단호하시네.”

“손님, 제가 손님한테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나요?”

태준은 잠시 생각했다.

그러더니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제가 잘생겼잖아요.”

서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정말이었다.

이 남자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걸까.

“손님.”

“네.”

“거울은 집에 있죠?”

“네.”

“그럼 집에서 보세요.”

태준은 입을 벌렸다가 천천히 닫았다.

그리고 감탄했다.

“와.”

“왜요?”

“사장님한테 한 방 먹었네요.”

“축하드려요.”

“이런 대화는 처음이에요.”

“저도 이런 손님은 처음이에요.”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먼저 웃음을 터뜨린 건 태준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웃었다.

서하는 그런 태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지?’

자신을 놀리는 것도 모자라서, 놀림을 당하고도 웃고 있었다.

이상한 남자였다.

아주 많이.

그런데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화가 오래가지 않았다.

서하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생긴 남자에게 약해지는 건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잘생겼다는 이유로 성격까지 용서해 주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과거에 한 번이면 충분했다.

잘생긴 얼굴과 달콤한 말에 속아 마음을 줬다가, 마지막에는 혼자 남았던 경험.

그때 이후 서하는 한 가지를 배웠다.

말은 누구나 예쁘게 할 수 있다는 것.

진심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가 아무리 잘생겼든, 아무리 재미있든, 쉽게 마음을 열어서는 안 됐다.

‘정신 차려, 윤서하.’

그녀는 주문지를 펼쳤다.

“그래서 뭐 드실 건데요?”

태준은 환하게 웃었다.

“두부김치 하나, 참이슬 하나요.”

“…….”

“어제랑 똑같이요.”

서하는 말없이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태준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사장님!”

“왜요!”

“오늘은 말 안 걸기로 했는데요.”

서하가 멈칫했다.

“그런데요?”

“딱 한 번만 말 걸려고요.”

“뭔데요?”

태준은 종이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거요.”

서하가 봉투를 바라보았다.

“뭔데요?”

“선물이에요.”

“필요 없어요.”

“아직 뭔지도 안 보여드렸는데요?”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사장님은 참 확신이 강하시네요.”

태준은 웃으며 봉투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어제 제가 너무 귀찮게 한 것 같아서요. 사과의 의미로 가져왔어요.”

서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거 아니죠?”

“네.”

“벌레 같은 거 들어 있는 거 아니죠?”

“사장님,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세요?”

“네.”

태준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상처받았습니다.”

“축하드려요. 첫 번째 상처네요.”

“어제 이미 두 개 받았는데요.”

“첫 번째는 뭔데요?”

“사장님이 저보고 나가라고 했을 때요.”

“그건 상처가 아니라 정당한 영업 활동이었는데요.”

태준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서하는 봉투를 다시 밀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싫으시면 안 받으셔도 돼요. 그냥 사과하고 싶어서 가져온 거니까요.”

그 말에 서하의 손이 멈췄다.

장난스러운 표정도, 능글맞은 말투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얼굴로, 평범한 말을 하는 남자였다.

서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디저트 상자가 들어 있었다.

예쁘게 포장된 조각 케이크 두 개.

그리고 짧은 메모 하나.

어제 두부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오늘도 왔습니다.

케이크는 사장님 몫입니다.

서하는 메모를 읽고 고개를 들었다.

“이걸 왜 주시는 거예요?”

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

“사장님도 기분 좋으셨으면 해서요.”

순간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난처럼 사람을 놀리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어떻게든 웃게 만들려고 온갖 말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그녀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고, 사과할 줄도 알고, 작은 선물까지 준비했다.

물론 케이크 하나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어제보다 조금은 덜 귀찮은 손님처럼 느껴졌다.

서하는 괜히 케이크 상자를 닫았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

“네. 다음부터는 안 줄게요.”

태준의 대답은 의외로 담백했다.

“그냥 어제 제가 좀 심했잖아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서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사과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네?”

“사과 받아준다고요.”

태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케이크는 받아주시는 거죠?”

“그건 별개인데요.”

“너무하시네.”

서하는 결국 피식 웃었다.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태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웃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윤서하가 웃었다.’

어제부터 그토록 보고 싶었던 표정이었다.

밤 열 시 삼십 분.

두부김치가 나왔다.

태준은 젓가락을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서하는 카운터를 정리하다가 문득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 사람은 왜 혼자 술을 마시지?’

어제도 혼자였다.

오늘도 혼자였다.

그렇다고 우울해 보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밝았다.

그런데 가끔씩 휴대전화가 울려도 받지 않았다.

진동이 울릴 때마다 화면을 내려다보고는 조용히 뒤집어 놓았다.

서하는 괜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먼저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손님은 손님이고, 사생활은 사생활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지 정확히 삼 분.

“저기요.”

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네?”

“전화 안 받으세요?”

말하고 나서 서하는 자신의 입을 막고 싶었다.

‘내가 왜 물어봐?’

태준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화면에는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찍혀 있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회사 전화예요.”

“안 받아도 돼요?”

“지금은요.”

“회사에서 혼내는 거 아니에요?”

태준은 피식 웃었다.

“혼내지는 못할걸요.”

“왜요?”

“제가 혼내는 사람이거든요.”

서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뭐예요. 사장님이에요?”

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비슷해요.”

“아.”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받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장님.”

“네.”

“퇴근 후에는 저도 자유인이에요.”

“저도 퇴근하고 싶어요.”

“그럼 같이 퇴근할까요?”

“손님 두고 어떻게 퇴근해요?”

“제가 계산할게요.”

“그럼 당장 나가세요.”

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서하도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태준은 젓가락을 든 채 잠시 멈춰 있었다.

“왜요?”

서하가 물었다.

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는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냥 좋네요.”

“뭐가요?”

“여기요.”

태준은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낡은 탁자.

조금 흔들리는 의자.

천장에 매달린 주황색 전구.

주방에서 풍겨 오는 음식 냄새.

그리고 카운터에서 잔소리하는 여자.

“편해서요.”

서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조용해졌다.

그녀에게 이 가게는 매일 돈 걱정을 해야 하는 일터였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일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이 조금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럼 자주 오세요.”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서하는 눈을 크게 떴다.

태준도 젓가락을 멈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니, 음식이 맛있다는 뜻이에요. 단골이 많으면 저도 좋으니까요. 매출도 올라가고요.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태준은 입꼬리를 올렸다.

“네. 알겠습니다.”

“진짜예요.”

“네네.”

“왜 웃어요?”

“아니요. 사장님이 자주 오라고 하셔서 기분이 좋아서요.”

“그런 뜻 아니라고요!”

“알아요.”

태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저는 그렇게 들을래요.”

서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이 남자와 대화를 계속하면 자신만 피곤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운터로 돌아가는 그녀의 입가에는 아주 작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

밤 열한 시 삼십 분.

태준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전화였다.

화면에 뜬 이름은 최도윤.

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왜.”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대표님! 이제야 받으십니까? 내일 회의 자료는 확인하셨어요?

“확인할게.”

\- 확인할게가 아니라 확인하셔야죠! 대표님이 직접 검토하셔야 하는 계약인데요.

“알았어.”

\- 그리고 오늘 저녁 약속은 왜 취소하셨습니까? 상대방이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태준은 두부김치를 한 점 더 집었다.

“배고파서.”

\- ……예?

“밥 먹는 중이라고.”

\- 대표님이 밥을요? 지금요?

도윤의 목소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높아졌다.

\- 대표님, 혹시 어디 아프십니까?

“멀쩡해.”

\- 아니, 대표님은 원래 저녁 약속을 취소하는 분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이 시간에 혼자 밥을 드신다고요?

태준은 피식 웃었다.

“혼자 아니야.”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 ……예?

“사람 많은 곳이야.”

\- 대표님, 어디십니까?

“술집.”

\- 술집이요?

도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태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맞은편에서는 서하가 손님에게 계산을 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잔돈을 정확히 세어 건네고, 손님이 나가자 테이블을 닦았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태준은 무심코 웃었다.

“재미있는 곳이야.”

\- 대표님.

“왜.”

\- 제가 아는 대표님 맞으시죠?

“아마도.”

\- 지금 어디 술집에 계신 겁니까?

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두부참이슬.”

\- ……뭐요?

“두부참이슬.”

\- 그게 무슨 술 이름입니까?

태준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가게 이름이야.”

\- 대표님, 제발…….

“내일 이야기하자.”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그 모습을 본 서하가 물었다.

“회사에서 찾는 거 아니에요?”

“네.”

“그런데 왜 안 받으세요?”

“받았어요.”

“아까는 안 받으셨잖아요.”

태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사장님.”

“네?”

“저한테 관심이 생기신 겁니까?”

서하는 들고 있던 행주를 떨어뜨릴 뻔했다.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 자꾸 물어보세요?”

“손님이 전화 안 받고 여기서 문제 일으키면 제가 곤란하니까요!”

“아.”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

“저 문제 안 일으켜요.”

“그건 두고 봐야죠.”

“그럼 내일도 와서 증명할게요.”

서하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떤 말을 해도 결국 내일 오겠다는 말로 끝났다.

그녀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가 정말 내일도 올까?

그렇다면 두부김치를 조금 더 넉넉하게 준비해야 할까?

서하는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야. 그냥 많이 팔면 좋은 거지.’

그녀는 자신에게 그렇게 설명했다.

아주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밤 열두 시.

태준은 계산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서하는 카운터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히 가세요.”

태준은 천막 입구로 향하다가 다시 돌아섰다.

서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요?”

“아, 맞다.”

그는 휴대전화에서 무언가를 확인한 뒤 말했다.

“내일은 조금 늦게 올 수도 있어요.”

서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걸 왜 저한테 말하세요?”

태준은 잠시 생각했다.

“글쎄요.”

그리고 웃었다.

“사장님이 기다리실까 봐요.”

“안 기다리거든요!”

“네. 알아요.”

“정말 안 기다려요!”

“네네.”

“내일 안 오셔도 돼요!”

“그럼 모레 올게요.”

“아니, 그게 아니라!”

태준은 웃으며 천막 밖으로 나갔다.

딸랑.

종이 울렸다.

서하는 입을 벌린 채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