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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얼음값이 수상하다

지은이 외인 · 2026-10-19

사흘 평가 날, 레티시아는 정원 돌 벤치까지 쉬지 않고 걸어갔다가 쉬지 않고 돌아왔다.

율리안은 회중시계를 내려다보며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헛기침을 하고, 교관의 목소리로 선언했다.

율리안: 신병 레티시아. 4단계 진급. 정원 보행을 허가한다.

레티시아: 감사합니다, 교관님.

니나가 박수를 쳤다. 그리고 율리안이 고개를 돌린 사이, 레티시아에게 작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엄지를 드는 법은 사흘 전에 레티시아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정원이 열렸다. 그건 저택 밖의 모든 곳이 열렸다는 뜻이었다.

그날 오후, 레티시아는 주방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율리안의 등이 아니라 제 다리로.

마르타가 반죽을 치대다 고개를 들었다. 이제 칼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대신 턱으로 구석의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라는 뜻이었다.

레티시아: 마르타. 얼음 이야기 좀 해 줘요.

마르타: 얼음이요?

레티시아: 전에 그랬잖아요. 값은 오르는데 얼음은 늘 모자라다고.

마르타는 반죽을 치대던 손을 멈추고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의 버릇이었다.

마르타: 얼음 장수가 이틀에 한 번 와요. 아침 일곱 시에. 열 덩이를 정원 북쪽 얼음 창고에 넣고 가죠. 저희는 거기서 필요한 만큼 꺼내 쓰고요.

레티시아: 열 덩이면 모자라요?

마르타: 모자라죠. 덩이가 작아요. 들어올 때도 작은데, 창고에 넣어 두면 하루 만에 반은 물이 돼요. 여름엔 생선 한 상자 재울 얼음도 안 남아요.

레티시아: 전부터 그랬어요?

마르타가 잠깐 생각했다.

마르타: 제가 처음 왔을 땐 안 그랬어요. 덩이가 이만했죠.

마르타가 두 팔을 벌려 보였다. 그리고 조금 좁혔다.

마르타: 요 몇 해 사이에 이만해졌어요.

레티시아는 마르타의 두 팔 사이를 눈으로 쟀다. 원단 장사 삼십 년이면, 눈대중도 자가 된다.

레티시아: 다음 얼음은 언제 와요?

마르타: 내일 아침이요.

그날 밤, 레티시아는 니나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레티시아: 재봉실에 줄자 있지? 그거 하나만 빌려 와 줄래?

니나가 가져온 것은 낡은 천 줄자였다. 한 자마다 매듭이 지어져 있고, 그 사이는 먹으로 눈금이 그어져 있었다. 레티시아는 그것을 손바닥에 감아 보았다.

손이 기억했다.

전생의 그녀는 줄자를 목에 걸고 살았다. 원단 폭을 재고, 길이를 재고, 거래처가 보낸 견본이 주문서와 맞는지 쟀다. 줄자 하나로 사기를 막은 날이 셀 수 없었다. 이 세계의 줄자는 매듭으로 된 것이었지만, 재는 법은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정원 북쪽.

얼음 창고는 커다란 느릅나무 그늘 아래, 반쯤 땅에 묻힌 돌집이었다. 두꺼운 나무 문을 열자 서늘한 공기와 함께 눅눅한 냄새가 끼쳐 왔다.

레티시아는 문가에 서서 안을 봤다.

바닥에 깔린 짚은 검게 썩어 있었다. 벽 쪽 짚도 축축하게 내려앉았다. 구석의 배수구는 진흙에 막혀, 녹은 물이 바닥에 고여 있었다. 그 물웅덩이 위에 지난번 얼음 몇 덩이가 반쯤 녹은 채 앉아 있었다.

얼음이 녹는 이유 하나는 여기 있었다. 짚만 갈고 배수구만 뚫어도 절반은 살린다. 그건 도둑질이 아니라 게으름이었다. 게으름은 고치기 쉽다.

수레바퀴 소리가 났다.

얼음 장수가 왔다. 덩치 큰 사내였다. 소매를 걷은 팔에 물기가 번들거렸고, 수레 위에는 짚으로 덮은 얼음이 쌓여 있었다. 사내는 창고 앞에 선 레티시아를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리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공녀님께서 이런 데를 다.

레티시아: 얼음 장수님 이름이 뭐예요?

보리스: 보리스입니다요. 이 댁에 얼음 넣은 지 칠 년 됐습죠.

보리스는 넉살 좋게 웃으며 수레의 짚을 걷었다. 얼음이 드러났다. 맑고 반듯한 덩이들이었다.

레티시아: 보리스. 하나만 재 봐도 돼요?

보리스: 예?

레티시아는 손바닥에 감은 줄자를 풀었다.

보리스가 껄껄 웃었다.

보리스: 얼음을 재 보시는 공녀님은 처음 뵙습니다요. 재 보십쇼, 얼마든지.

레티시아는 수레로 다가가 맨 위의 덩이에 줄자를 댔다. 가로. 세로. 높이. 니나가 옆에서 기록지에 받아 적었다.

한 자 반. 한 자 반 조금 넘게. 한 자 반.

그녀는 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어젯밤 장부 상자에서 찾아 옮겨 적은, 보리스의 계산서였다.

'얼음, 가로 세로 높이 각 두 자, 열 덩이.'

레티시아: 보리스. 계산서에는 두 자라고 적혀 있네요.

보리스의 웃음이 아주 조금 작아졌다.

보리스: 아, 그거야 뭐... 오는 길에 좀 녹습죠. 북쪽 호수에서 실어 오는 길이 머니까요. 고작 반 자 차이 아닙니까요.

레티시아: 고작 반 자요?

레티시아는 줄자를 감으며 말했다.

레티시아: 가로가 반 자, 세로가 반 자, 높이가 반 자 줄었어요. 두 자짜리 얼음을 반 자 간격으로 쪼개면 몇 조각이 나와요?

보리스가 눈을 끔뻑였다.

레티시아: 두 자를 반 자씩 자르면 네 토막. 가로 넷, 세로 넷, 높이 넷. 예순네 조각이에요. 한 자 반짜리는 셋, 셋, 셋. 스물일곱 조각. 예순넷을 받아야 할 자리에 스물일곱을 받은 거예요.

니나가 기록지 위에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다가 입을 벌렸다.

니나: 반도 안 되잖아요...

레티시아: 반도 안 되지.

보리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이마의 땀인지 얼음물인지 모를 것을 손등으로 훔쳤다.

보리스: 그, 그러니까 오는 길에 녹아서...

레티시아: 녹은 얼음은 모서리가 둥글어요.

레티시아는 얼음 덩이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차갑고, 반듯했다.

레티시아: 이건 톱으로 자른 자국이에요. 날이 지나간 결이 그대로 있네요.

원단도 그랬다. 손으로 찢은 천과 가위로 자른 천은 단면이 다르다. 삼십 년 동안 재단 자국만 보고 산 눈이었다.

보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레고르: 아가씨 말씀이 맞는지, 제가 재 보겠습니다.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그레고르였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느릅나무 그늘 아래, 연미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는 레티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티시아는 줄자를 건넸다.

그레고르는 얼음 덩이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한 면씩 쟀다. 가로. 세로. 높이. 다음 덩이. 그다음 덩이. 열 덩이를 다 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느릅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마지막 덩이를 잰 뒤, 그레고르는 줄자를 감았다.

그레고르: 보리스.

보리스: 예, 예, 집사 어른.

그레고르: 이 집에 얼음을 넣은 지 몇 해째라고 했나.

보리스: ...칠 년입니다요.

그레고르: 칠 년.

그레고르는 그 숫자를 한 번 입에 올려 보았다. 레티시아가 마르타의 이름을 처음 불러 볼 때처럼.

그레고르: 오늘 얼음은 받지 않겠다. 수레를 돌려라. 내일 각하 앞에서, 칠 년 치를 다시 이야기하지.

보리스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수레를 돌렸다. 바퀴 소리가 정원 저편으로 허둥지둥 멀어졌다.

그레고르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레티시아에게 줄자를 돌려주려다, 손이 멈췄다.

그레고르: ...제가 칠 년 동안 이 얼음을 받았습니다.

목소리가 낮았다.

그레고르: 한 번도 재 보지 않았습니다. 계산서에 두 자라고 적혀 있으니, 두 자인 줄 알았습니다.

레티시아는 노인의 손을 봤다. 흰 장갑 안에서 줄자를 쥔 손이었다. 사십 년 동안 장부를 지킨 손이, 처음으로 장부 바깥에서 무언가를 놓쳤다는 것을 안 손이었다.

레티시아: 그레고르는 장부를 지켰잖아요.

그레고르: ...

레티시아: 얼음 크기가 장부에 안 적혀 있었을 뿐이에요. 그건 장부 탓이지, 그레고르 탓이 아니에요.

그레고르가 그녀를 봤다. 오래.

그레고르: 장부에 적히지 않은 것을 보는 눈이, 제게는 없었나 봅니다.

레티시아: 그럼 둘이 같이 보면 되죠.

말하고 나서 레티시아는 아차 싶었다. 너무 빨랐다. 거절당한 지 사흘 만에 같이 보자고 하다니. 동대문에서 이렇게 들이밀었으면 다음 날 문전박대였다.

그런데 그레고르는 거절하지 않았다. 대답하지도 않았다. 다만 줄자를 그녀의 손에 돌려주며, 처음으로 고개를 아주 깊이 숙였다.

창고 문을 닫고, 두 사람은 저택으로 돌아갔다. 니나가 기록지를 품에 안고 뒤를 따랐다.

배수구를 뚫고, 짚을 갈고, 보리스를 바꾼다. 다음 얼음 장수에게는 처음부터 줄자를 보여 준다. 첫 구멍이었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장부의 구멍은 하나를 찾으면 다음이 보이는 법이었다.

정원을 가로지르다, 레티시아는 걸음을 멈췄다.

저택 동쪽, 담쟁이에 반쯤 덮인 작은 건물이 하나 서 있었다. 본관과 회랑으로 이어진 이층짜리 별관이었다. 창문마다 덧문이 닫혀 있었다.

그런데 그 지붕 위 굴뚝에서, 가는 연기가 한 줄 피어오르고 있었다.

레티시아: 그레고르. 저 별관엔 누가 살아요?

그레고르: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그레고르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그레고르: 선대 마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십 년째 비어 있습니다.

레티시아는 굴뚝을 다시 봤다. 연기는 끊기지 않고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이 불을 지펴야만 나는 연기였다.

레티시아: 그런데 왜, 굴뚝에서 연기가 나요?

그레고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바로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