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역사가 아니다.
지은이 뮤즈 · 2026-10-11
이진천은 천장의 등을 오래 바라보았다. 전구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보아 온 것은 누런빛을 내는 둥근 유리알이었지, 저렇게 넓고 납작한 판은 아니었다. 천장에 바짝 붙은 등에서는 희고 환한 빛이 쏟아졌고, 방은 구석까지 대낮처럼 밝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다시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도 한동안 하얀 잔상이 남았다. 꿈이라면 이렇게 성실하게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옆 침대에서는 다리를 다친 동료가 잠들어 있었으며, 맞은편의 다른 동료는 식판을 받아 놓고도 손을 대지 못하다가 간호 장교가 다시 권하고서야 숟가락을 들었다.
“우릴 어디로 보내는 것이오?”
박한이 의자를 끌어 앉자 진천이 먼저 물었다. 지붕도 불빛도 침대도 믿기 어려웠으나 낯선 친절이 끝난 뒤 어디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걱정만은 익숙한 것이었다.
“당장은 아무 데도 안 보냅니다. 치료부터 해야 합니다.”
진천은 박한의 팔목에 남은 마른 핏자국을 보다가 마당을 떠올렸다. 자기 손목을 묶었던 줄보다 더 아프게 남은 것이 있었다.
“그분들은…… 어떻게 됐소?”
“후속 인원을 보냈습니다. 수습하고 있습니다.”
이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이 함께 올라와 서로 길을 막는 동안 박한은 물컵을 가까이 놓아 주었고, 잠시 뒤 정보장교 김의진 소령이 의무대의 허락을 받고 들어왔다. 그는 병상 맞은편에 앉아 같은 질문을 다시 해야 하는 이유부터 설명했다.
“이상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는 것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모르는 것은 모르신다고 하셔도 되고요.”
진천은 고향과 징집된 경위, 열차가 지나온 곳들을 더듬어 말했다. 만주 쪽으로 군수품이 늘고 있었고 부대도 바뀐다고 했지만, 끌려가는 병사들에게 목적지까지 설명해 줄 만큼 친절한 군대는 아니었다. 김의진은 중간에 말을 재촉하지 않고 기억나는 순서대로 들었으며, 한참 뒤 날짜를 물었다.
“구월 열하루일 거요. 도망친 뒤에는 달력을 못 봤소.”
“소화 육 년 구월 십일일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을 따로 만나 들은 연도가 같았고 압수한 문서에도 같은 숫자가 찍혀 있었다. 김의진은 수첩에 날짜를 적으면서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종이에는 쓸 수 있어도 머릿속에는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숫자였다.
* * *
회의실 탁자 위에는 일본군에게서 거둔 소지품들이 놓였다. 수첩과 담배갑, 군용 문서와 동전 몇 개 옆으로 첫 정찰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사격이 시작되자 화면의 마당에서 장교가 주저앉았다. 다른 병사들이 그를 보려다가 차례로 넘어졌고, 포박당한 세 사람은 그 한가운데서 몸을 웅크렸다. 영상을 처음 보는 장교 하나가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정지해 봐.”
화면이 멎었다. 묶인 사내 쪽으로 돌아가던 권총과 일본군 장교의 손이 보였다. 임영옥은 박한에게 그때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다.
“저 총구를 보았습니다. 더 기다리면 인질이 죽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재생을 이어 가자 총성이 다시 몇 번 울렸다. 창고 모퉁이에서 나오던 마지막 병사가 쓰러진 뒤 한동안 마당은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계속 숨을 참고 있었는지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임영옥은 사격 결과보다 부상당한 지장원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박한이 처치를 마쳤다고 답하는 동안 탁자 끝의 젊은 장교는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훈련 성적으로만 보던 이름들이 방금 실제 사람을 쏘았다는 사실이 방 안에 남아 있었다.
“현장에서 가져온 물품입니다.”
김의진이 수첩을 펼치자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촬영 소품이 아니냐던 사람들도 오래 접어 때가 밴 종이를 직접 만져 보고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세 사람의 증언은 주요 부분에서 일치합니다. 현장 문서로 확인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김의진은 날짜와 부대 이동 기록을 올린 뒤 한동안 화면을 보았다.
“이것만으로 시간 이동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누군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면 기지 바깥의 산림과 길, 주민들의 생활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뜻입니다.”
박무진 중령이 동전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그 정도 능력이면 장난을 안 쳐도 우리가 속아 주어야겠군.”
누군가 희미하게 웃었으나 오래 가지 않았다. 다른 정찰조에서도 사라진 외곽 주둔지를 찾지 못했다는 보고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11대대가 있던 자리에는 숲만 남아 있었고, 어느 쪽 사람이 남고 어느 쪽 사람이 이곳에 왔는지 설명해 줄 기준도 없었다. 김의진은 현재 확인된 인원으로 편제를 다시 작성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영 박사는 자료를 밀어 놓고 안경을 벗었다.
“사고의 원인과 지금 있는 곳의 정체는 다른 질문입니다. 원인을 모른다고 눈앞의 숲을 없던 것으로 할 수는 없지요. 반대로 옛 군복을 보았다고 사고 원인까지 설명되는 것도 아닙니다.”
“평행우주라고 봐야 합니까?”
“지금은 가설에 붙인 이름입니다. 이름을 붙였다고 답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임영옥은 답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확신해 주지 않는 박사가 고마워지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았다.
“확인된 것과 추정한 것을 나누어 보고합시다.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부터 정리하고.”
* * *
이참 소령이 띄운 드론 상태표에는 붉은 표시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만 고장 난 부품과 바깥 신호를 받지 못하는 항목은 구분되어 있었고, 그는 장비를 전부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오해부터 풀었다.
“GPS를 비롯한 위성항법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기존 좌표에만 의존하는 자동 비행은 중지했습니다. 그렇다고 기체가 날지 못하거나 무인장비가 모두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회전과 가속도를 재는 관성센서로 움직임을 추정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차가 쌓인다는 것이었고, 그 오차를 줄이려면 기계가 짐작한 움직임을 바깥에서 본 것과 맞춰 보아야 했다. 이참은 카메라와 거리센서가 나무와 건물의 특징을 따라가는 그림을 보여 주었다.
“관성항법에 눈을 붙여 준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동하면서 지도를 만들고 그 지도 안에서 자기 위치를 찾는 기능도 있습니다. 시각·관성 항법, 그리고 SLAM이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지금부터 개발해야 하나?”
김빈 대령이 묻자 이참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탑재된 예비 기능입니다. 위성항법이 끊기는 경우에 쓰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기능을 주된 방식으로 바꾸고 이곳의 지형과 조명, 숲에서도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나무가 죄다 비슷하면 어떻소?”
“구별할 특징이 적으면 오차가 커집니다. 안개와 어둠도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여러 센서를 함께 쓰고 확인된 구역부터 넓혀야 합니다.”
김영은 미래의 지도에 있는 도로와 건물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산세는 참고할 수 있겠지만 마을과 길은 새로 확인해야 했다. 백 년 뒤의 길을 안다고 백 년 전의 숲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이 없는데 인공지능도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참이 기체와 영내 서버를 차례로 가리켰다. 필요한 모델과 연산 장치가 안에 있으므로 저장된 기능은 작동했으며, 바깥 서버의 도움과 갱신을 받을 수 없는 것과 기계 안의 기능이 없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다만 화면에 사람을 표시한다고 적과 아군까지 알아보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군 옷을 입었다고 모두 일본인이 아닌 것처럼요.”
박한은 병상에 누운 세 사람을 떠올렸다. 아침에 그들을 구한 일이 저녁에는 인공지능의 한계를 설명하는 사례가 되어 있었다. 그 세 사람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었고 여기에서는 설명 한 줄이었으니, 설명하는 쪽에서 그 차이를 잊어서는 안 되었다.
“비행과 영상 송신도 따로 봐야 합니다. 무선망이 닿으면 보내고, 안 닿으면 저장했다가 귀환 뒤에 넘깁니다. 멀리 날아간다고 본부에서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임영옥은 그 말을 듣고 장비 목록에 줄을 그었다.
“드론은 정찰과 중계부터 맡긴다. 지상로봇은 위험 구역 확인, 물자 수송, 부상자 후송에 쓰고. 사람이 덜 위험해지는 쪽부터 생각해.”
* * *
기술동 앞의 시험 비행은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오래 걸렸다. 김영철 하사가 올린 기체는 건물 옆을 돌아올 때까지 얌전했으나 나무 그림자가 겹치는 구간에서는 잠깐 머뭇거렸고, 단말에 경고가 뜨자 그는 비행을 중단했다.
“위치 추정 신뢰도가 떨어졌습니다. 기록을 보고 다시 올리겠습니다.”
박한은 내려온 드론을 보며 전쟁보다 시험을 먼저 치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원들은 새로 찍은 지형 자료와 센서 기록을 대조했고, 옆에서 운반차를 구경하던 김 중사는 적재함에 발끝을 올렸다.
“내 군장도 들어 줄 수 있나?”
“적재 중량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내가 올라타면?”
“중사님 체중부터 알려 주십시오.”
지장원이 옆에서 웃었다.
“기계도 계급은 안 봅네다.”
김 중사는 체중을 대답하는 대신 발을 내렸다. 계급으로 안 되면 설득할 길이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운용병이 빈 적재함을 닦는 동안 공작실에서는 깨진 외장 부품을 손보고 있었고, 김영은 수리할 수 있는 것과 재고를 꺼내 써야 하는 것을 나누어 적었다.
박한이 설계 자료가 충분하냐고 묻자 박사는 비어 있는 부품 상자를 들어 보였다.
“장비를 쓰고 정비할 자료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공장을 지을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알아도 재료와 장비가 없으면 못 만드는 것도 많습니다. 저 상자는 다음 주에 채워질 예정이었고요.”
다음 주라는 말이 작업대 위에 잠깐 머물렀다. 주문을 넣어 둔 부품은 여전히 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그 부품이 도착할 곳에 자기들이 있는지는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 * *
외부의 소리가 처음 잡힌 것은 새벽 감청에서였다. 현대 통신망의 응답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목소리라는 사실만으로 통신실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파수와 시간을 기록하고 일본어를 옮겨 적자 군수품 이동과 보급을 서두르라는 내용이 드러났다. 문장이 쌓일수록 이곳의 사정은 조금씩 보였으나, 김의진의 마음은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그는 압수한 장교의 수첩을 다시 펼쳤다. 부대 이동에 관한 메모 사이에 ‘아타가키 대좌’라는 이름이 여러 번 나왔다. 다른 명령서에도 같은 이름이 있었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 시대 일본군 장교의 이름을 일일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름이 다시 눈에 걸린 것은 정보부원이 관련 자료를 가져온 뒤였다.
“관동군 참모라고 합니다. 만주에서 군사행동을 주장하는 쪽이고, 함께 움직이는 장교들도 확인했습니다.”
김의진은 보고서와 영내에 저장된 역사 자료를 나란히 놓았다. 직책과 활동,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름이 달랐다. 자료 속 인물은 이타가키였고, 이곳의 문서에는 아타가키라고 적혀 있었다. ‘이’와 ‘아’가 다른것이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 아닙니까?”
진 대위의 말에 김의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이것만으로 단정하지는 말고, 다른 인물들도 대조해 봐.”
그는 이름 옆에 표시만 남겼다. 이상한 점이 하나 생겼다는 것과 그 이유를 알아냈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는 일치하는 것과 다른 것을 한 장에 적기 시작했다. 이름을 찾으려고 연 자료 옆에 날짜를 비교하는 자료가 붙었고, 마침내 그들이 알고 있는 사건보다 군수 이동이 앞서 있다는 사실이 눈에 걸렸다.
저녁 회의에서 박무진이 물었다.
“만주사변은 9월 18일 아닙니까?”
“저희가 아는 역사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 명령은 그보다 이릅니다. 같은 사건을 준비하는 것인지 다른 작전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보급을 미리 옮길 수도 있지 않소.”
“맞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는 날짜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임영옥은 두 개의 달력을 보았다. 부대 시계의 날짜와 바깥 자료에서 얻은 날짜가 나란히 놓여 있었으나, 어느 쪽도 내일의 일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미래에서 왔다면 정답을 가지고 온 줄 알기 쉬웠다. 정작 손에 쥔 것은 닮은 세상의 오래된 해설서일 수도 있었다.
이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역사책의 시간표를 그대로 작전 시간표로 쓰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박한은 잠시 망설이다가 마을 이야기를 꺼냈다.
“큰 사건이 언제 일어나는지와 관계없이 주민들은 이미 공격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사람들부터라도 보호해야 합니다.”
김빈 대령이 팔짱을 풀었다.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나? 마을 하나로 끝나지 않을 텐데.”
박한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세 사람을 부축해 돌아올 때에는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이 지도 위에서는 시작도 하지 않은 일처럼 보였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말에 틀린 곳은 없었지만, 그 말을 끝까지 지키는 데 필요한 것들은 그의 소대 밖에 더 많이 있었다.
임영옥은 의견이 오가는 동안 지도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보와 구호부터 확보한다. 돌아갈 방법을 찾는 조사도 계속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장기 전쟁을 결정하지는 않겠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박한을 보았다.
“다만 우리가 여기 나타난 것부터가 이미 개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해.”
* * *
회의 뒤 김의진이 의무실에 갔을 때 진천은 창밖의 가로등을 보고 있었다. 소령이 의자를 당겨 앉자 그는 다른 부대에도 자기들처럼 끌려온 사람이 많다고 말했고, 도망치지 않는 것이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족이 어디 사는지 일본군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의진은 재촉하지 않았다. 한참 뒤 진천의 이야기가 열차로 옮겨 갔다.
“여자들도 있었소.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따라왔다는데, 병사들은 전선에 보내는 물건 이야기하듯 하더군. 우리 객차 뒤에 붙어 있었으니 아직 그쪽으로 가고 있을 거요.”
역 이름을 들은 김의진은 감청에서 확인한 보급 지점과 길을 맞춰 보았다. 숫자와 지명이던 자료 사이로 갑자기 사람의 얼굴들이 들어왔다. 군수품을 확보할 수 있겠다고 보았던 곳에 사람이 실려 가고 있었다. 그녀들을 어디에, 무슨 목적으로 보내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역사책에서 읽고 증언으로 들었던 일이 지금 눈앞의 철로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기가 마음에 걸렸다. 그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일본군의 초기 위안소가 설치된 것은 1932년 상하이사변 무렵이었고, 전쟁터마다 위안소를 늘리고 여성들을 대규모로 동원한 것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였다. 아직 1931년이었다.
그런데 벌써 여자들을 모아 군용열차에 싣고 전선으로 보내고 있었다. 일부 병사나 업자가 벌인 일인지, 군의 명령에 따른 조직적인 동원인지는 확인해야 했다. 다만 이름만 조금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김의진에게, 이번에는 사건의 순서까지 어긋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는 수첩에 역 이름을 한 번 더 눌러 썼다. 연도가 이상하다는 이유로 그 안에 실려 있는 사람들까지 의심할 수는 없었다.
“도와줄 수 있소?”
진천은 소령의 수첩보다 얼굴을 보았다.
“현장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말을 크게 하지 않으려고 고른 대답이었으나, 방을 나오는 김의진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정보실로 돌아가 구조 대상 항목을 새로 만들고, 빈칸에 아직 알지 못하는 인원수를 적었다.
기술자료실에서는 분야별로 문서들을 나누고 있었다. 전력과 재료, 기계와 통신에 능한 사람들이 모였어도 자기 전문 밖으로 한 걸음만 나가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야 했고, 김영은 이제 밖에 전화해서 물을 곳이 없으니 모르는 것부터 정확히 말하자고 당부했다.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는 젊은 연구원의 질문에 그는 빈 교육실 쪽을 보았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아느냐만으로 답할 수 없어요. 여기 사람들을 얼마나 가르치고, 우리도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배우느냐가 들어갑니다.”
학교라고 부를 것은 아직 없었다. 그래도 김영은 교육실 열쇠를 챙겼다. 공장을 세우는 일보다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이 먼저 시작될 수는 있었다.
이튿날 새벽, 감청조는 열차와 장비가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는 보고를 올렸다. 임영옥은 문서를 끝까지 읽고 현장 확인을 명령했다. 밖에서는 김영철이 시험을 마친 드론을 점검하며 화면에 임무 경과 시간을 띄우고 있었고, 박한은 첫 정찰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을 고치고 있었다.
외부 상황 일부 확인. 추가 조사 필요.
그는 그 문장을 한동안 보다가 저장했다. 숲 밖을 알아보려고 나갔다가 모르는 것이 더 많아져 돌아왔지만, 적어도 무엇을 모르는지 적어 놓을 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