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녀의 흉계
지은이 허균 · 2026-10-03
곡산모 초낭은 본래 곡산 기생 출신으로, 대감의 총애를 받는 첩이 된 뒤부터 마음이 방자해졌다.
집안의 노복이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한 번 헐뜯는 말로 생사가 오갈 만큼 큰일을 만들었다. 남이 잘못되면 기뻐하고, 잘되면 시기하는 성미였다.
그런데 대감이 용꿈을 꾸고 길동을 얻은 뒤로 사람마다 길동을 칭찬하고 대감마저 그를 아끼자, 곡산모는 훗날 총애를 빼앗길까 두려워졌다.
게다가 대감은 이따금 장난삼아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도 길동 같은 자식을 낳아 내 늘그막의 즐거움을 도우라.”
그럴 때마다 곡산모는 몹시 무안했다.
그러는 사이 길동의 이름이 날로 높아지자, 초낭은 더욱 시기하여 길동 모자를 눈엣가시처럼 미워했다. 마침내 해칠 마음이 급해진 초낭은 흉계를 꾸몄다.
재물을 풀어 요사스러운 무녀들을 불러 모의하고, 날마다 드나들게 했다. 그러던 중 한 무녀가 말했다.
“동대문 밖에 관상을 보는 여인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보면 평생의 길흉화복을 알아맞힌다 하옵니다.”
“그 여인을 불러 약속을 정하고 대감께 천거하십시오. 집안의 앞뒤 사정을 본 듯이 말하게 한 뒤, 길동의 상을 보고 이러이러하다고 아뢰어 대감의 마음을 놀라게 한다면, 낭자의 뜻을 이루실 수 있을 듯합니다.”
초낭은 크게 기뻐했다. 곧 관상녀에게 사람을 보내 재물로 달래고, 대감 댁의 일을 낱낱이 일러 주었다. 그리고 길동을 없앨 약속을 정한 뒤, 날짜를 받아 돌려보냈다.
어느 날, 대감이 내당에 들어가 길동을 불러 놓고 부인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비록 영웅의 기상이 있기는 하나, 어디에 쓰겠소.”
그렇게 농담처럼 말하고 있을 때, 문득 한 여인이 밖에서 들어와 뜰 아래 엎드렸다. 대감이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묻자, 여인이 엎드린 채 아뢰었다.
“소녀는 동대문 밖에 사옵니다. 어려서 한 도인을 만나 사람의 상을 보는 법을 배웠사옵니다.”
“두루 다니며 장안 사람들의 관상을 거의 다 보았는데, 대감 댁의 복이 크다는 말을 듣고 천한 재주나마 시험해 보고자 왔나이다.”
대감이 어찌 요사스러운 무녀와 문답할 마음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마침 길동을 두고 농을 하던 끝이라,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가까이 올라와 내 평생을 한번 논해 보아라.”
관상녀는 공손히 절하고 마루에 올라, 먼저 대감의 상을 살폈다. 지난 일을 또렷이 짚고 앞일까지 보는 듯이 논하니, 한 마디도 대감의 마음에 어긋나는 것이 없었다.
대감은 크게 칭찬했다. 이어 집안사람들의 관상을 보게 하니, 하나하나 본 듯이 평하는데 허황한 말이 하나도 없었다.
대감과 부인, 그리고 그 자리의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 그녀를 신인이라 일컬었다.
마지막으로 길동의 상을 볼 차례였다. 관상녀는 길동을 살피더니 크게 칭찬했다.
“소녀가 여러 고을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을 보았사오나, 공자 같은 상은 처음이옵니다. 다만 알 수 없는 것은, 부인의 소생이 아닌 듯하옵니다.”
대감은 속일 수 없다고 여겨 말했다.
“그건 그렇다. 사람마다 길흉과 영욕에는 저마다 때가 있는 법이니, 이 아이의 상을 각별히 논해 보아라.”
관상녀는 한참 길동을 바라보다가, 짐짓 놀라는 척했다. 대감이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묻자, 관상녀는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대감이 말했다.
“길하든 흉하든 조금도 숨기지 말고, 보이는 대로 말하여 내 의혹을 풀어라.”
관상녀가 말했다.
“이 말씀을 바로 아뢰면 대감의 마음을 놀라게 할까 두렵사옵니다.”
대감이 다시 말했다.
“옛날 곽분양 같은 이에게도 길한 때와 흉한 때가 있었다. 무슨 말이 그리 많으냐. 관상법에 보이는 대로 숨기지 말고 말하라.”
관상녀는 마지못하는 듯 길동을 물리고는 은밀히 아뢰었다.
“공자의 앞날은 여러 말 할 것이 없사옵니다. 뜻을 이루면 군왕의 상이요, 이루지 못하면 헤아릴 수 없는 큰 화를 부를 상이옵니다.”
대감은 크게 놀랐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한 뒤, 관상녀에게 후한 상을 내리며 말했다.
“이 말은 절대 밖으로 내지 말라.”
그리고 다시 분부했다.
“저 아이는 늙도록 바깥출입을 못 하게 하리라.”
관상녀가 말했다.
“왕후장상에 어찌 씨가 따로 있겠사옵니까.”
대감이 거듭 당부하자, 관상녀는 공손히 명을 받고 물러갔다.
그 말을 들은 뒤로 대감은 마음속에 큰 근심을 품었다.
‘이 아이는 본래 범상한 놈이 아니다. 게다가 천하게 태어난 것을 한탄하고 있으니, 만일 분수에 넘치는 마음을 품는다면 대대로 충성을 다해 나라를 섬겨 온 우리 집안의 공이 모두 헛것이 되고, 큰 화가 온 가문에 미칠 것이다.’
‘미리 없애 집안의 화를 덜고 싶으나, 인정상 차마 그럴 수는 없구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어찌할 방도가 없어, 그 근심이 병이 되었다.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자도 편치 않았다.
초낭은 그 기색을 살피다가 틈을 타서 아뢰었다.
“길동이 관상녀의 말처럼 왕의 기운을 지녔다면, 만일 분수에 넘치는 일을 벌일 경우 집안의 화가 장차 헤아릴 수 없을 것이옵니다.”
“어리석은 소견이오나, 작은 거리낌에 얽매이지 마시고 큰일을 생각하시어 미리 그를 없애시는 편이 나을까 하옵니다.”
대감은 크게 꾸짖었다.
“이는 경솔히 입에 올릴 말이 아니다. 네가 어찌 입을 조심하지 못하느냐. 내 집안의 일은 네가 알 바가 아니다.”
초낭은 황공하여 더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물러나서는 내당으로 들어가, 부인과 대감의 장자를 만나 아뢰었다.
“대감께서 관상녀의 말을 들으신 뒤로 근심이 깊어져 방도를 찾지 못하시고, 침식이 불안하시다가 마침내 병환이 나셨습니다. 소인이 얼마 전 이러이러한 말씀을 아뢰었다가 꾸중만 들었기에, 다시는 아뢰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소인이 대감의 마음을 살펴보니, 대감께서도 저 아이를 미리 없애고자 하시되 차마 결단하지 못하시는 듯하옵니다. 미련한 소견이오나, 길동을 먼저 없앤 뒤 대감께 아뢰면 이미 벌어진 일이라 대감께서도 어찌하실 수 없으니, 근심을 아주 잊으실까 하옵니다.”
부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은 그러하나, 인정으로 보나 천리로 보나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초낭이 다시 아뢰었다.
“이 일에는 여러 가지가 걸려 있사옵니다. 첫째는 나라를 위함이요, 둘째는 대감의 병환을 위함이요, 셋째는 홍씨 가문을 위함입니다. 어찌 작은 사정에 얽매여 머뭇거리시다가, 훗날 후회해도 소용없는 지경에 이르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초낭은 온갖 말로 부인과 장자를 달랬다. 마침내 두 사람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초낭은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특재라는 자객을 불러 모든 사정을 전하고, 은자를 넉넉히 주며 오늘 밤 길동을 해치기로 약속했다.
그 뒤 다시 내당으로 들어가 부인에게 그 일을 아뢰었다. 부인은 그 말을 듣고 발을 구르며 몹시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