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지은이 이익상 · 2026-03-20
성호는 아침 햇살 아래에서 가족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들의 외모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성호의 아내와 어린 아들 문환은 깔끔하게 차려입었고, 문환의 양복과 신발은 부잣집 아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산뜻했다. 성호의 양복은 조금 조촐해 보였지만, 그가 월급쟁이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고상해 보였다.
성호는 오른손에 잡지와 원고지를 쥐고, 아내는 연한 붉은 파라솔로 햇빛을 가리며 왼손으로 문환의 손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은 느긋하게 걸으며, 평일 아침의 분주함 속에서 다른 월급쟁이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한적하고 집세도 저렴해 일본인과 조선인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래서 성호는 창경원 전차 종점까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오가는 동안,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월급쟁이들인 것을 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가족과 함께 걷는 길에서 그런 사람들을 보지 못하자,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성호는 그런 감정의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아마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월급쟁이들과의 동류 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빚에 쫓기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과 불안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마음속에는 허전함이 가득 차 있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지런한 학생들이나 막노동꾼, 시골 농부들이었다. 성호의 가족처럼 이렇게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들 중에서 성호는 마치 군계의 봉처럼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자신과 그들과의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성호는 자신의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을 자책하고 싶었다.
그때 어린 문환이 질문을 쏟아냈다. “아빠, 우리는 어디 가는 거예요? 저건 뭐예요? 저 말은 어디로 가는 거예요?” 문환은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궁금증을 드러내며, 어머니에게 일일이 물었다. 아내는 귀찮지 않게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
“아주머니 집에 가는 거야. 저건 능금나무야, 꺽으면 나쁜 일이 생긴다……”
성호는 그런 대화를 들으면서도 자신은 다른 생각에 빠져 걸음이 느려졌다.
아침 일찍부터 집세를 재촉하는 사람이나 신문값을 받으러 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길을 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박석고개에 이르렀을 때, 성호는 문득 아내의 전차비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여보, 전차표 있어?”
“오 전밖에 없어요.” 아내는 지갑을 꺼내려 했다.
“꺼낼 필요 없어. 그럼 괜찮아. 내게 전차표는 한 장 있으니까.”
성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아내가 전차비가 없었다면, 그는 혼자서 신문사까지 걸어가야 했을 것이다. 아내에게 어린 문환을 데리고 걸어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성호는 창경원 앞 전차 정류장에서 겨우 이 미운 이별을 피하게 된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작은 기쁨조차도 자신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깨닫게 했다.
그는 박석고개에서 큰길로 내려가며 창경원의 돌담 너머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았다. 소나무 위로 햇살이 비추고, 아침 이슬이 반짝였다. 그러나 그 모든 광경도 몇 걸음 걷는 사이에 익숙해져 버렸다. 다시금 월급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 대한 걱정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피난.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해…… 그러다가 만나면 창피할 거야……”
이런 여러 생각 속에서 성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이런 작은 곤란이 자신의 감정을 흔드는 약한 성격을 스스로 한탄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순간의 감정에만 의존하고, 영원한 의지에서는 살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무엇을 그렇게 괴로워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모든 창피는 살아가는 큰 사실 앞에서는 사소한 조건에 불과하다. 그렇게 좁은 결벽에 얽매일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마음을 다스리며 성호는 전차 정류장에 가까워졌다. 어린 문환은 전차를 보더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전차로 올라가려 했다. 성호도 천천히 뒤따라 올랐다. 전차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그들은 종로통 사정목에서 동서로 갈라졌다. 아내는 어린 문환을 데리고 동대문행 전차에 올랐다. 아내는 남편을 바라보며 “세 시쯤 전화할게요.”라고 말하고 전차가 움직이자 그대로 사라졌다.
성호는 혼자 남아 피난도 함께 못하게 되었구나 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