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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

지은이 이익상 · 2026-03-20

“어서 세수하고 아침 먹어.”

아내의 부름에 성호는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갔다. 아침밥이 이미 준비된 듯했다.

부엌에서 세수를 하며 성호는 물었다.

“오늘 아침은 왜 이렇게 간소해?”

아내는 밥상에 밥그릇을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일찍 나가야 해요.”

“무슨 일이야? 어디 가는 거야?”

“오늘이 그믐날이라 졸리기 싫어서요.”

“집은 어떻게 해? 온종일 말이지…”

성호는 이렇게 물었지만, 속으로는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 혼자서 빚쟁이에게 졸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피난을 권할 수도 없었다. 아내가 자발적으로 피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다.

“살림이라고 뭐 잃을 것이 있어야 하지.” 아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씻었다.

“나 혼자 어떻게 졸리겠어? 대체 월급이 언제 나올지 알기나 해?” 아내는 주부의 직분을 내려놓고 피난을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듯 재차 물었다.

“오늘 될지 알 수 없어… 오늘이나 내일이나.”

성호는 또 역시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오늘도 만약 안 되면 큰일 나겠구나!” 아내는 성호에게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하고 더욱 실망한 얼굴을 보였다.

성호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밥상에 앉았다.

밥상에는 된장찌개와 김치뿐이었다. 성호는 이런 것이라도 먹게 된 것이 감사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과 입맛은 달랐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두어 숟가락 뜨다가 아내를 불렀다.

“여보! 반찬도 없는 밥을 따로따로 먹을 필요 없잖아, 이리 와서 같이 먹읍시다.”

어린 문환은 손가락을 물고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칭얼댄다.

“문환아, 네 밥 가지고 이리 와…” 성호가 어린 것을 불렀다.

“당신도 같이 오구려.” 아내도 불렀다.

어린 문환은 어머니의 동의를 구하는 듯 얼굴을 쳐다보며 치맛자락을 잡아당긴다. 아내는 못 이기는 척하며 자기와 어린 문환의 밥그릇을 들고 남편 곁으로 왔다. 그러나 그 밥상은 세 식구의 밥을 늘어놓고도 여전히 빈틈이 있었다.

아내는 밥그릇을 앞에 놓고 숟가락을 들었다. 어린 문환은 밥그릇을 앞에 놓기는 했지만, 숟가락을 들지도 않고 손가락을 입에 넣고 칭칭 대기만 했다. 아내는 밥을 뚜껑에 조금 덜어 된장찌개를 부어 자기가 맛을 보며,

“참 맛있다. 어서 먹어! 정말 착하다…” 하고 문환에게 권했다.

그러나 어린 문환은 고개를 쌀쌀 내두르며 심술을 부렸다.

“왜 그러니? 어서 먹어…” 어머니는 눈을 한 번 부릅뜨며 말했다. 그래도 어린 문환은 고개를 흔들며 울음이 터져 나올 듯 입을 삐죽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래?” 아내는 큰소리로 부라린다.

“달걀!” 어린 문환은 울음 섞인 소리로 희미하게 대답했다.

“달걀 말이야, 어디 달걀이 있니? 오늘 아침은 그냥 먹자, 응?” 아내는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말했다.

“싫어.” 어린 문환은 또 고개를 내두른다.

사실 어린 문환에게 얼큰한 찌개와 밥을 먹으라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그날에도 반찬이 없는 날이면 성호 부부는 맨밥을 먹더라도 어린 문환에게는 사오 전을 주고 달걀을 사다 주곤 했다. 문환이는 달걀을 어른보다도 잘 먹었다. 오늘도 반찬 없는 밥이라면 자기 앞에 달걀이 오르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라던 달걀은 오르지 않고 매콤한 찌개만이 올라온 것을 불평으로 알고 까탈을 부리던 상황이었다.

아내는 다시 눈을 부릅뜨고 어서 먹으라며 어린 문환을 위협했다. 어린 문환은 들었던 숟가락을 놓고 삐죽삐죽 울음을 터뜨리려 했다. 아내는 울려는 문환을 자기 앞으로 잡아당겨 앉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그의 입에 대주며,

“이것 봐… 참 맛이지? 이렇게 먹으면 저녁에는 아버지와 진고개에 가서 좋은 장난감도 사고, 맛있는 과자도 사오자… 응?” 하며 손으로 물건을 많이 살 것을 형용하며 달랜다.

“과자… 응… 장난감, 땡땡 전차… 사줘…” 어린 문환은 주는 밥을 받아먹고, 다시 숟가락을 어머니 손에서 빼앗아 스스로 먹기 시작했다.

성호와 그의 아내는 겨우 안심이 된 듯 숟가락을 들고 밥을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호는 밥이 넘어가는 것이 평일보다는 몹시 껄끄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되면 또 어린 문환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게 되겠군. 저이가 무슨 돈으로 진고개를 간다고!’ 성호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린 문환이 울음을 그쳤으므로 그대로 참았다. 아내도 가끔 어린 문환을 달래며 밥을 먹기는 했지만, 역시 잘 넘어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밥을 다 먹은 뒤에 성호는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고 아내에게 말했다.

“피난을 하려면 준비를 일찍 해야지.”

“먼저 나가세요! 나는 천천히 문환이랑 나갈 테니까요.” 아내는 밥상을 치우며 대답했다.

“가면 어디로 가는 줄이나 알아야 하지.” 성호가 물었다.

“가면 별로 갈 데 없어. K의 집으로 가지.” 아내는 귀찮은 듯 대답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오늘 돈이 될지 알 수 없으니까, 당신이 사에 한 번 전화해 줘.” 성호는 만약 월급이 나오면 문환에게 약속한 대로 과자도 사주고, 장난감도 하나 사주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 하면 좋겠어요? K의 옆집에 전화가 있지.” 아내는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나타났다.

“시메끼리가 두 시쯤 되니까, 세 시쯤 걸어보세요.” 성호는 사에서 나올 시간을 대중하여 이렇게 알려주었다.

“오늘은 꼭 좀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내는 또 이상한 듯 중얼거렸다.

“돈이 오늘 되거든 진고개나 갑시다. 문환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 성호는 이렇게 말하고 아내와 자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과자! 진고개! 장난감 사주게! 이러한 단편적인 말에 어린 문환도 기가 띤 듯 벙글벙글 웃었다.

“자! 그러면 어서 피난 갈 준비나 해야지!” 아내는 빙그레 웃는 눈으로 성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방으로 들어가 거울을 내놓고 머리를 고쳐 쪽지기 시작했다.

성호는 문을 열고 햇빛을 바라보았다. 평일보다는 한 시간이나 이른 듯했다. 여름 해는 아직도 낙산 위에서 몇 길이 되지 못하게 올라왔다. 그는 혼자 나가기에는 뭣했고, 아내가 나들이 준비를 다 차리도록 기다리기에도 좀 그렇다고 느꼈다. 그러나 오늘은 시간이 이르고, 아내 혼자 집에 내버려 두는 것은 너무나 무자비한 것 같았다. 또한 이렇게 빚에 쫓겨 피난을 가게 된 이상 함께 가는 것도 떳떳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시간이 일렀으니 같이 나가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여보! 그러면 같이 나갑시다.” 성호는 모자를 벗어 벽에 걸고 다시 앉았다.

“그러면 좋지요. 아직도 시간이 이르니까 기다려주세요. 얼른 차릴 터이에요.” 아내는 기쁜 듯이 말하고 다시 어린 문환을 보며,

“아버지도 같이 가신대. 그리고 K 아줌마 집에 가서 아가도 보고…” 하고 일러주었다.

성호는 책상 위에 있는 신문을 접어 들고 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머리를 쪽지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문환에게 새 옷을 입히느라 한참 동안 부산한 모양이었다.

한 삼십 분 동안 그는 신문을 보고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모든 차림이 끝난 뒤에 세 식구는 집 문을 단단히 잠그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집을 떠날 때까지 아무 빚쟁이도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무사히 집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