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 안개 속의 갓파
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2026-09-21
이것은 어느 정신병원의 환자, 23호가 누구에게나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아마 서른을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영락없이 앳된 광인이다. 그가 살아온 반평생의 경험은……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는 그저 가만히 두 무릎을 끌어안은 채, 이따금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며 병원장 S 박사와 나를 상대로 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쇠창살을 끼운 창밖에는 마른 잎 하나 보이지 않는 떡갈나무 한 그루가 눈이라도 올 듯 흐린 하늘에 가지를 펼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몸짓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령 "깜짝 놀랐다"고 말할 때면 그는 갑자기 고개를 뒤로 홱 젖히곤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꽤 정확하게 옮겨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 기록이 성에 차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도쿄 시외 ××촌의 S 정신병원을 찾아가 보면 된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23호는 먼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방석도 없는 의자를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우울한 미소를 띤 채 조용히 이 이야기를 되풀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야기를 마쳤을 때 그의 낯빛을 기억한다.
그는 마지막에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누구에게든 이렇게 호통을 칠 것이다.
나: 나가! 이 악당 놈아! 너도 멍청하고, 질투심 많고, 음탕하고, 뻔뻔하고, 잘난 척에 빠져 있고, 잔인하고, 제 잇속만 차리는 동물이지? 나가! 이 악당 놈아!
삼 년 전 여름의 일이에요.
저는 남들처럼 배낭을 메고, 그 가미코치의 온천 여관을 나서 호타카산에 오르려 했어요. 아시다시피 호타카산에 오르려면 아즈사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밖에 없지요. 저는 전에도 호타카산은 물론이고 야리가타케에도 올라 본 적이 있었으니까, 아침 안개가 내려앉은 아즈사강 골짜기를 안내인도 없이 올라갔어요.
아침 안개가 내려앉은 아즈사강 골짜기를…… 그런데 그 안개가 아무리 기다려도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걷히기는커녕 오히려 더 짙어지기만 했지요.
한 시간쯤 걸은 뒤, 저는 일단 가미코치의 온천 여관으로 돌아갈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돌아가더라도 어쨌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린 다음이어야 했어요. 그런데 안개는 시시각각 점점 더 짙어질 뿐이었죠.
'에잇, 차라리 올라가 버리자.'
저는 그렇게 마음먹고, 아즈사강 골짜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조릿대 덤불을 헤치고 나아갔어요.
하지만 눈앞을 가로막는 건 여전히 짙은 안개뿐이었어요.
물론 이따금 안개 속에서 굵은 너도밤나무나 전나무 가지가 푸릇푸릇한 잎을 드리운 모습이 보이지 않은 건 아니에요. 풀어 놓아 기르는 말이나 소가 불쑥 제 앞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것들은 보였다 싶으면 금세 자욱한 안개 속으로 숨어 버렸어요.
그러는 사이 다리도 지쳐 가고, 배도 슬슬 고파지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안개에 흠뻑 젖은 등산복이며 담요 같은 것들이 이만저만 무거운 게 아니었지요.
저는 결국 고집을 꺾었어요. 그리고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를 길잡이 삼아 아즈사강 골짜기로 내려가기로 했어요.
저는 물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우선 밥부터 먹기로 했어요. 콘비프 통조림을 따고,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우고……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십 분쯤 지났을 거예요.
그동안 그토록 심술궂던 안개가 어느새 희붐하게 걷히기 시작했어요. 저는 빵을 씹으며 손목시계를 잠깐 들여다보았어요. 벌써 한 시 이십 분이 지나 있었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뭔가 섬뜩한 얼굴 하나가 동그란 손목시계 유리 위로 언뜻 그림자를 드리운 거예요.
저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어요. 그러자……
제가 갓파라는 것을 본 건 바로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제 뒤에 있는 바위 위에, 그림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갓파 한 마리가 있었어요. 한 손으로는 자작나무 줄기를 끌어안고, 다른 손은 눈 위에 얹은 채 신기하다는 듯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저는 어안이 벙벙해서 한동안 꼼짝도 못 했어요. 갓파도 역시 놀랐는지 눈 위에 얹은 손조차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러다 저는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바위 위의 갓파에게 달려들었어요. 동시에 갓파도 달아났어요.
아니, 아마 달아난 거겠지요. 사실은 날쌔게 몸을 피했다 싶은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거든요.
저는 더욱 놀라서 조릿대 덤불 속을 두리번거렸어요. 그랬더니 갓파가 금방이라도 달아날 자세로, 이삼 미터 떨어진 저편에서 저를 돌아보고 있는 거예요.
그것만이라면 이상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제게 뜻밖이었던 건 갓파의 몸 색깔이었어요.
바위 위에서 저를 보고 있던 갓파는 온몸이 잿빛을 띠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몸 전체가 완전히 초록빛으로 바뀌어 있는 거예요.
나: 이 자식!
저는 큰 소리를 지르며 다시 한번 갓파에게 달려들었어요. 갓파가 달아난 건 물론이고요.
그때부터 저는 삼십 분 가까이 조릿대를 뚫고 바위를 뛰어넘으며 무작정 갓파를 뒤쫓았어요.
갓파도 발이 빠르기로는 결코 원숭이 따위에 뒤지지 않았어요. 정신없이 쫓아가는 동안 저는 몇 번이나 그 모습을 놓칠 뻔했어요. 발이 미끄러져 굴러떨어진 것도 여러 번이었고요.
그런데 굵은 가지를 탐스럽게 뻗은 커다란 칠엽수 한 그루 아래에 이르렀을 때, 다행히도 풀어 놓은 소 한 마리가 갓파의 앞길을 가로막았어요. 게다가 그건 뿔이 굵고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황소였지요.
갓파는 이 황소를 보자 무슨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유난히 키가 큰 조릿대 덤불 속으로 공중제비를 돌듯 뛰어들었어요.
저는…… 저도 '옳지, 됐다' 싶어서 곧장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제가 모르는 구멍이라도 뚫려 있었던 모양이에요.
매끈한 갓파의 등에 겨우 손끝이 닿았다 싶은 순간, 저는 순식간에 깊은 어둠 속으로 거꾸로 곤두박질쳤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위기일발의 순간에도 엉뚱한 생각을 하는 법이에요. 저는 '아!' 하는 순간, 그 가미코치 온천 여관 옆에 '갓파바시'라는 다리가 있다는 게 떠올랐어요.
그리고…… 그다음 일은 기억나지 않아요.
저는 그저 눈앞에 번개 비슷한 것을 느낀 것을 마지막으로, 어느새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