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처음 본 바다
作 自由 · 2026-10-27
9화 처음 본 바다
돈을 더 벌 수 없다면 쓸 차례였다.
제일 먼저 아이의 옷을 사러 갔다.
사흘 동안 빨아 입은 낡은 여행복은 어깨와 소매 길이가 맞지 않았다.
루메라에서 가장 크다는 의상점에는 천의 색만 수백 가지가 있었다.
아이는 문 앞에 서서 한동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비싼 곳 같아요.”
“맞아.”
“저는 지금 옷도 괜찮아요.”
“안 괜찮으니까 온 거야.”
점원이 옷을 보여 줄 때마다 아이는 먼저 가격표부터 확인했다.
가장 싼 회색 옷을 집었을 때 나는 물었다.
“가격 말고 네가 좋아하는 색은?”
아이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진열된 옷들을 처음부터 다시 바라봤다.
아주 오래 고민한 끝에 연한 보랏빛 원피스와 푸른 안감을 댄 흰 여행 망토를 골랐다.
걷기 편한 가죽 장화도 직접 신어 보고 정했다.
먼지와 약한 비를 튕겨 내는 마법이 걸린 최고급 옷이었다.
가격은 금화 세 닢.
아이는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몸을 돌려 봤다.
“이상하지 않아요?”
“네가 골랐는데 이상할 이유가 있어?”
“제가 이런 옷을 입은 게 이상해요.”
“그럼 계속 입어서 익숙해지면 되겠네.”
아이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다음은 마법 도구점이었다.
지팡이가 벽을 가득 채운 가게에서 아이는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고 손을 모은 채 서 있었다.
나는 흰빛을 안정시키는 지팡이를 보여 달라고 했다.
주인이 꺼낸 것은 달빛나무로 만든 가느다란 지팡이였다.
끝에는 작은 푸른 마석이 박혀 있었다.
아이의 손이 자루에 닿자 마석 안에서 부드러운 흰빛이 피어났다.
[직업 선택: 마도구 제작자 A]
마력 회로는 단순했지만 튼튼했다.
사용자의 힘을 증폭하기보다 흔들리지 않게 모아 주는 구조였다.
위급할 때 작은 보호 결계를 펼치도록 돕는 보조 회로도 새겨져 있었다.
아이처럼 한 번에 너무 많은 치유력을 쏟아내는 사람에게 알맞았다.
“이걸로는 쓰러지지 않고 치료할 수 있어요?”
“덜 지치게 도와줄 뿐이야. 네가 무리하면 똑같이 쓰러져.”
아이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겠네요.”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을 때만.”
아이의 손에서 흰빛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이걸로 할래요.”
금화 여덟 닢짜리 지팡이는 그렇게 아이의 첫 물건이 되었다.
주인이 포장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이는 놓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 장비를 골랐다.
노예상에게 빼앗은 검은 날이 여러 군데 상했고, 균형도 맞지 않았다.
무기점 주인은 내가 검을 몇 번 휘두르는 모습을 보더니 곧은 장검보다 세이버를 권했다.
살짝 휘어진 은빛 칼날.
한 손으로 방향을 빠르게 바꿀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이 손잡이 가까이에 잡혀 있었다.
칼날에는 바람의 저항을 줄이는 얇은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직업 선택: 검사 A]
검을 뽑는 순간 손목이 먼저 알았다.
좋은 검이었다.
A급의 기술을 알고도 싸구려 검 때문에 늦었던 반 박자를 없애 줄 무기였다.
가격은 금화 열두 닢.
나는 망설이지 않고 샀다.
방패는 더 놀라웠다.
와이번의 비늘과 미스릴 합금을 겹쳐 만든 둥근 방패였는데, 나무 접시보다 가벼웠다.
충격을 옆으로 흘리는 문양까지 새겨져 있어 정면으로 받은 힘이 손목에 거의 남지 않았다.
금화 열 닢을 내고 방패를 팔에 고정했다.
세이버를 뽑고 가볍게 자세를 잡자 무기점 주인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장비가 손님의 솜씨를 따라가는군요.”
정확한 말이었다.
우리는 남은 돈으로 해안의 최고급 숙소에 방을 잡았다.
백금 파도 궁전.
하룻밤에 은화 다섯 닢이면 묵을 수 있는 방이 있었지만, 나는 바다가 보이는 가장 좋은 방을 골랐다.
침실이 두 개.
뜨거운 물이 저절로 차오르는 욕조.
원하면 언제든 음식을 가져다주는 전용 종.
발코니 아래로는 투숙객만 들어갈 수 있는 흰 모래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사흘 숙박비로 금화 두 닢을 냈다.
아이에게는 방 하나가 통째로 생겼다.
그런데도 아이는 한동안 침대 끝에만 걸터앉아 있었다.
“왜 안 누워?”
“이불이 너무 깨끗해서요.”
“사람이 덮으라고 깨끗한 거야.”
아이는 조심스럽게 누웠다.
푹신한 깃털 이불이 작은 몸을 감쌌다.
잠깐 뒤에는 얼굴만 내놓은 채 웃고 있었다.
저녁은 접시가 몇 번이나 바뀌는 코스 요리였다.
아이는 이름을 모르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내 눈치를 봤다.
나도 몰랐기 때문에 먼저 먹어 봤다.
소라를 껍데기째 씹을 뻔했고, 손을 씻는 물에 빵을 찍을 뻔했다.
아이는 처음으로 나보다 식사 예절을 잘 지켰다.
배가 부른 뒤에도 아이는 작은 빵 하나를 천에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내일 아침에도 빵은 나와.”
“알아요.”
“그런데 왜 챙겨?”
아이는 주머니 위에 손을 올렸다.
“없을 때가 더 익숙해서요.”
나는 빵을 다시 꺼내 놓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목줄은 하루 만에 끊을 수 있어도, 배고팠던 기억까지 하루 만에 없앨 수는 없었다.
“상하지 않게만 해.”
“네.”
그날 밤 우리는 거리 공연을 보고, 마법으로 만든 불꽃이 바다 위에서 고래와 용의 모양으로 변하는 것도 봤다.
아이에게 사격 놀이를 시켜 주려다 내가 궁수 A로 상품을 전부 쓸어 갈 것 같아 활은 잡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공 세 개를 던져 작은 흰 고래 인형을 하나 받았다.
공은 두 개나 빗나갔고 마지막 하나가 간신히 통에 들어갔다.
카지노에서 금화를 수십 닢 딸 때보다 아이는 그 인형을 받았을 때 더 기뻐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말했다.
“오늘은 아무도 저한테 뭘 하라고 안 했어요.”
“내가 옷 사라고 했잖아.”
“고르라고 했잖아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말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아이가 떨어뜨릴 뻔한 흰 고래를 받아 들었다.
*
다음 날은 바다에 가기로 했다.
숙소의 해변 상점에는 수영복이 따로 있었다.
나는 점원에게 아이가 직접 고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밖에서 기다렸다.
한참 뒤 아이가 연한 보랏빛 비키니와 얇고 투명한 해변 망토를 들고 나왔다.
작은 은장식과 푸른 보석이 햇빛을 받을 때마다 반짝였다.
가게에서 가장 비싼 수영복이었다.
아이는 가격표를 보지 않은 척하다가 결국 내게 보여 줬다.
“다른 걸로 바꿀까요?”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는 들어요.”
“그럼 그걸로 해.”
“비싸요.”
“카지노에서 쫓겨나며 번 돈이잖아. 이런 데 쓰지 않으면 억울하지.”
아이는 잠시 고민하다 수영복을 품에 안았다.
“제가 골랐으니까 이걸로 할래요.”
그 말이면 충분했다.
옷을 갈아입은 아이는 파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한참 바다를 바라봤다.
모래 위로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첫 파도가 발끝에 닿자 깜짝 놀라 뒤로 뛰었다.
곧 물이 빠져나가자 이번에는 파도를 따라 앞으로 달려갔다.
두 번째 파도가 오자 또 도망쳤다.
아이는 몇 번이나 파도와 쫓고 쫓기다가 소리 내 웃었다.
그 웃음은 오두막에서 목걸이가 풀렸을 때의 울음 섞인 웃음과 달랐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문자유, 빨리 와요!”
나는 세이버와 방패를 모래 위 그늘막 아래에 내려놓았다.
[직업 선택: 수영선수 A]
그 문장이 떠올랐지만 곧 직업을 해제했다.
오늘만큼은 무엇이든 잘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평범하게 물에 들어갔다가 생각보다 차가운 바닷물에 숨을 들이켰다.
아이가 나를 보고 더 크게 웃었다.
“차갑죠?”
“안 차가운데.”
“거짓말할 때 목소리가 조금 높아져요.”
포커판을 지켜본 뒤 이상한 것만 배웠다.
아이는 수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얕은 물에서 몸에 힘을 빼고 뜨는 법부터 알려 줬다.
처음에는 내 팔을 너무 세게 붙잡았다.
파도가 올 때마다 두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래도 몇 번을 반복하자 손을 놓고 혼자 물 위에 떠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물결 위로 길게 퍼졌다.
햇빛을 받은 푸른 눈이 순간 보랏빛으로 반짝였다.
“저 지금 떠 있어요?”
“그래.”
“아무것도 안 하는데요?”
“가라앉지 않으려고 너무 애쓰지 않으면 원래 뜨는 거야.”
아이는 그 말을 생각하듯 잠시 눈을 감았다.
파도가 몸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우리는 모래성을 만들고, 조개껍데기를 주웠다.
아이는 가장 반짝이는 흰 조개 하나를 내 손에 올려 줬다.
“이건 문자유 엄마에게 주세요.”
“엄마한테?”
“돌아가면 이세계 바다에서 가져왔다고 말해요.”
조개는 동전보다도 값이 없었다.
그런데 금화 백 닢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조개를 손수건에 싸서 돈주머니와 다른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때까지 안 깨뜨려야겠네.”
“제가 지팡이로 지켜 줄게요.”
아이의 달빛나무 지팡이는 그늘막 아래에서 흰 고래 인형과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바다를 바라봤다.
이렇게 좋은 방에서 자고, 비싼 음식을 먹고, 아무 걱정 없이 바다에서 노는 동안에도 엄마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 연락을 받고도 다음 날에는 잊었을지도 모른다.
가슴 한쪽이 무거워졌다.
아이는 내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물었다.
“엄마 생각해요?”
“응.”
“놀고 있어서 미안해요?”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의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기 발가락 앞에서 부서지는 작은 파도를 바라봤다.
“돌아가서 오늘 이야기를 해 주세요.”
“오늘 이야기?”
“제가 바다를 처음 봤고, 문자유가 차가운 물에 들어가서 안 차가운 척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