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사십 분, 전국의 등기가 사라졌다
作 장지호 · 2026-10-26
02:40
등기소는 비어 있었다. 로비의 발급기 두 대는 저녁에 내려둔 채로 있었고, 비치대에는 빈 신청서와 작성 견본이 낮에 채워둔 그대로 꽂혀 있었다. 창구 서랍 안에는 견본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덧쓴 이름은 전부 지워졌고 홍길동만 남아 있었다.
조은결과 박세미는 자고 있었다. 잔금은 다음 주 화요일이었다.
전국의 등기 전산망에서 필지 하나가 사라졌다. 그다음엔 열둘. 그다음엔 사천십이.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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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0:13 DELETE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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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등기부 안 떼지시는 분 계신가요?
아침부터 인터넷등기소에서 열람이 안 됩니다. 저만 그런가요.
└ 저도요. 새로고침해도 계속 오류 뜨네요
└ 점검시간인가 본데 공지는 없더라고요
└ 아까 전화해봤는데 안 받아요
└ 잔금이 오늘인데 미치겠습니다
07:50
다인은 알람보다 십 분쯤 먼저 깬다. 삼 년째 그렇다. 알람은 그대로 맞춰두는데, 울리기 전에 끄는 날이 하루를 이기고 시작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혼자 사는 집은 아침에 소리가 없다. 그래서 다인은 물을 끓이는 동안 라디오를 켠다. 뉴스를 듣는 건 아니고 사람 목소리가 있으면 좀 낫다. 오늘은 교통 정보가 나오고 있었다. 어디가 막히고 어디는 뚫렸다는 얘기.
싱크대 앞 매트는 왼쪽이 더 닳았다. 십일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서서 설거지를 했다는 뜻이다. 냉장고 문에는 자석 세 개가 붙어 있다. 관리비 고지서, 그리고 어머니가 김치 담근 날짜를 볼펜으로 적어 보낸 종이. 위층은 여섯 시 십 분에 화장실 물을 내린다. 알람보다 정확해서 다인은 그 소리로 잠을 깨는 편이다.
거실 벽 한쪽에 못 자리가 셋 있다. 다인이 박은 게 아니다. 이사 올 때 이미 있었고, 뭘 걸었던 자리인지는 모른다. 벽지를 두 번 바꿨는데 두 번 다 그 위에 발랐다. 도배하는 사람이 메워드릴까요 물었을 때 다인은 그냥 두라고 했다. 이유는 없었다. 없앨 이유도 없었다.
이 집은 다인이 처음으로 혼자 가진 것이었다. 서른다섯이 되도록 다인의 방은 늘 누군가의 집 안에 있는 방이었다. 부모의 집, 자취방, 남의 이름이 갑구에 적힌 전셋집. 문을 닫았을 때 그 안의 조용함이 온전히 자기 것인 공간은 이 집이 처음이었다. 라디오를 켜는 건 그 조용함이 좋으면서도 가끔은 무서워서였다.
식탁에 앉아 휴대폰을 켰다가, 어제 열었던 화면이 그대로 떠 있는 걸 봤다.
세 번째 줄.
다인은 화면을 닫고 컵에 물을 부었다. 다섯 번째였다.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을 하나 샀다. 계산대 앞에 붙은 종이에 아르바이트 구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달에도 붙어 있던 종이였다.
08:40
등기소의 아침은 프린터 예열음으로 시작한다.
다인은 발급기 두 대의 용지함을 열었다. 1번기는 어제 손봐둔 그대로였다. 용지를 반쯤 빼서 모서리를 훑고 다시 밀어 넣었다. 비치대의 양식도 채웠다. 왼쪽 칸이 빈 신청서, 오른쪽 칸이 작성 견본. 견본에 예시로 적힌 이름은 어제와 같은 홍길동이었다.
자리에 앉아 시스템에 접속했다.
로그인 창이 뜨는 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고 확인을 눌렀다. 모래시계가 돌았다.
다인은 세 바퀴까지 세다가 그만뒀다. 어제 세었던 게 습관이 됐다.
"서 주무관, 그쪽 되나?"
임 주사가 자기 자리에서 물었다.
"로그인은 됐는데요, 조회가 안 넘어가요."
"나도 그래."
"본원에 전화해볼까요?"
"해봐."
다인은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고, 계속 갔고, 스물다섯 번쯤 가고 나서 끊었다.
"안 받아요."
"아침이라 그렇지 뭐."
임 주사는 자기 화면을 다시 봤다. 마우스를 몇 번 움직이더니 손을 뗐다. 어제 권상호가 창구 유리를 쳤을 때와 같은 동작이었는데, 이번에는 볼 것이 없어서 뗀 것이었다.
09:00
번호표 기계가 정각에 첫 장을 뱉었다.
첫 번째 사람은 삼십 대 여자였다.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고 그 안에서 신분증을 꺼내는 손이 빨랐다. 바쁜 사람이다.
"등기사항증명서 한 통이요. 아, 두 통이요."
"주소 불러주시겠어요."
주소를 받아 넣었다. 모래시계가 돌았다.
여자가 휴대폰을 봤다. 다인은 화면을 봤다. 모래시계는 계속 돌았고, 열 바퀴쯤 돌고 나서 화면이 하얗게 비었다가 오류 창이 떴다.
일시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지금 전산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언제쯤 될까요?"
"확인 중이라서요. 조금 있다가 다시 와주시면"
"제가 열한 시에 계약이 있어서요."
다인은 시계를 봤다. 아홉 시 사 분이었다.
"열 시 반쯤 다시 한번 와보시겠어요? 그때까지는 복구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할 근거는 없었다. 다인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창구에서는 모른다는 말을 그냥 하기가 어렵다. 모른다고 하면 그다음에 언제 아느냐는 질문이 오고, 그것도 모른다고 하면 그럼 누가 아느냐는 질문이 오고, 그 답도 없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여자는 봉투를 챙겨서 나갔다. 다인은 그 사람의 이름을 못 봤다. 주소만 넣고 이름 칸까지는 가지 못했으니까.
아홉 시 반에 대기 인원이 일곱 명이 됐다. 다인은 같은 말을 다섯 번 했다. 전산에 문제가 있어서요. 확인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여섯 번째 사람이 물었다.
"그 확인은 누가 하는데요."
다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본원 전산실이라고 말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그 전화를 아무도 안 받는다는 말까지 해야 정확한 답이 되고, 그건 창구에서 할 말이 아니었다.
임 주사가 안내문을 붙이자고 했다. 다인은 A4에 프린트를 했다.
전산 장애로 열람 및 발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붙이고 나니 조금 나아졌다. 종이가 붙어 있으면 사람들은 그 종이한테 화를 낸다. 그건 창구에서 삼 년 배운 것 중에 제일 쓸모 있는 지식이다.
09:40
일곱 번째 사람은 노인이었다. 아들이 한 통 떼어 오라고 했다면서 위임장까지 챙겨 왔는데, 위임장은 필요 없는 서류였다. 자기 집 등기부를 자기가 떼는 데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열람은 아무나 할 수 있다. 남의 집도 볼 수 있다. 등기부는 원래 그런 문서다.
"그냥 주소만 알려주시면 돼요."
노인이 주소를 불렀다. 부르고 나서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였다. 사십 년 살았다고. 다인은 받아 적고 조회를 넣었다.
이번에는 빨랐다.
이 초쯤 걸렸을 것이다. 화면이 바뀌었고 다인은 문서가 떴다고 생각했다. 오전 내내 안 되던 게 됐으니까.
떠 있는 건 문서가 아니었다.
해당 부동산을 찾을 수 없습니다.
"뭐라고 나와요?"
"...잠시만요."
다인은 주소를 다시 넣었다. 지번으로 넣고 도로명으로도 넣었다. 세 번 다 이 초 걸렸고 같은 문장이 떴다.
조회되지 않는다는 말과 없다는 말은 다르다. 앞엣것은 시스템이 지금 못 찾는다는 뜻이고, 뒤엣것은 찾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화면에 뜬 건 뒤엣것이었다.
"선배."
임 주사가 고개를 들었다.
"이거 좀 보세요."
임 주사는 다인의 화면을 오래 봤다. 안경을 올렸다가 내렸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수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누르는데 두 번 틀렸다.
입안이 말랐다. 다인은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 자국이 마우스에 남아 있었다.
노인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위임장을 아직 손에 들고 있었다. 필요 없는 서류라고 아까 말해줬는데도 접지 않고 들고 있었다.
사람을 건드리지 않고 사람을 지우는 방법이 있다는 걸, 다인은 차가워진 손끝으로 알았다.
"뭐라고 나와요?"
노인이 다시 물었다.
10:35
열한 시에 계약이 있다던 여자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뛰어온 것 같았다.
"됐나요?"
"아직요. 죄송합니다."
여자는 잠깐 서 있었다.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낼 시간도 아까운 사람의 얼굴이었다.
"저기, 그럼 확인서 같은 거라도 안 될까요. 등기소가 고장 나서 서류를 못 뗐다는 거요. 그거라도 가져가면 계약을 미뤄줄지도 모르니까."
다인은 임 주사를 봤다. 임 주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서식은 없다.
다인은 A4를 한 장 꺼냈다. 전산 장애로 등기사항증명서 발급이 불가함을 확인함. 날짜와 시각을 적었다.
그러고 나서 직인을 꺼냈다.
인주통 뚜껑을 열면 냄새가 난다. 기름 섞인 붉은 것의 냄새. 다인은 도장을 인주에 두 번 눌러 묻히고, 종이 오른쪽 아래에 대고 위에서 눌렀다. 손목으로 체중을 조금 실어야 인영이 고르게 나온다. 삼 년 배운 것 중에 이건 첫 달에 배웠다.
떼어내니 붉은 원이 찍혀 있었다. 지름 삼 센티미터, 가운데에 등기소 이름.
서식에 없는 문서였다. 효력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붉은 것이 찍히고 나니 종이가 갑자기 문서처럼 보였고, 다인은 그게 조금 무서웠다.
"이게 최선이에요."
"감사합니다."
여자는 종이를 받아서 뛰어나갔다. 다인은 그 종이가 어디까지 통했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다만 그날 오후에 같은 종이를 열여섯 장 더 찍었다. 인주가 반쯤 말라서 나중에는 도장을 세 번씩 눌러야 했다.
12:40
백반집 TV에 이번에는 한국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볼륨은 여전히 꺼져 있었고 자막이 흘렀다.
대법원 등기 전산망 장애, 전국 등기소 업무 차질.
장애. 다인은 그 단어를 봤다. 아침에 자기 화면에 떴던 문장은 장애라는 말로 덮이는 종류가 아니었다. 찾을 수 없다는 건 고장이 아니다. 그런데 뉴스는 고장이라고 했고, 고장이라고 하니 사람들은 오후쯤 고쳐지겠거니 했다.
"먹어. 국 식는다."
임 주사가 말했다. 정작 본인은 숟가락을 들고만 있었다.
"선배, 아까 그 집이요."
"어."
"장애가 아니잖아요."
임 주사는 국을 한 술 떴다. 넘기고 나서 말했다.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야, 그건."
"그럼 누가 정해요?"
"위에서 발표하겠지. 장애라고 하면 장애인 거야, 고칠 때까지는."
"그럼 고쳐질 때까지 저는 뭐라고 해요."
"장애라고 해."
다인은 그 말을 곱씹었다. 틀린 말이 아니어서 더 이상했다.
건너편 부동산 유리창에는 매물 종이가 그대로 다섯 장 붙어 있었다. 다만 유리문 안쪽에 사람이 세 명 서 있었다. 평소에는 빈 가게였다.
15:10
조은결이 왔다. 혼자였다.
"저, 지난주에 왔었는데요. 화요일에 잔금 치르는."
"네, 기억해요. 조은결님."
"이게, 은행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조은결은 휴대폰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등기가 지금 안 된다고, 그러면 대출 실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해서요.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되는 거죠?"
다인은 대답할 말을 골랐다. 아침의 여자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열 시 반쯤 다시 와보시라던, 근거 없던 말.
"지금으로서는 저희도 복구 시점을 안내받지 못했어요."
"화요일까지 엿새 남았는데요."
"네."
"안 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잔금을 못 치르면 계약이 어그러진다. 매도인이 기다려주면 다행이고, 아니면 위약금이 오간다. 그리고 이 부부는 청약으로 산 집이라고 했다. 칠 년 만에 됐다고 했다. 다인은 특별공급 규정을 창구 업무만큼 알지는 못했지만, 당첨된 계약이 깨졌을 때 그 사람들이 어떤 서류를 들고 어디를 돌게 되는지는 알 것 같았다. 권상호의 투명 파일 같은 것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매도인분하고 법무사님하고 미리 얘기를 해두세요. 전국이 다 같은 상황이라, 화요일까지 안 되면 일정을 미루는 쪽으로요."
"미뤄지면, 저희 잘못은 아닌 거죠?"
다인은 네, 라고 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누구 잘못인지는 다인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잘못이 아니라는 게 손해가 아니라는 뜻도 아니었다.
조은결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나갔다. 문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며 걸어갔다. 유리 너머라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등만 보였다.
18:20
마감 후 사무실. 본원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수신자 목록이 길었다. 전국 등기소 전부인 것 같았다. 내용은 세 줄이었다. 전산 장애 복구 작업 중. 열람·발급·접수 업무 전면 중단. 별도 공지 시까지 창구에서는 안내문으로 응대할 것.
"복구 작업 중이래요."
"다행이네."
"어디를 복구하는지는 안 적혀 있어요."
임 주사는 컴퓨터를 끄고 있었다. 모니터가 어두워지는 걸 보면서 말했다.
"서 주무관은 그런 걸 왜 자꾸 봐."
"뭘요?"
"안 적혀 있는 거."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적혀 있는 것만 봐서는 오늘 하루가 설명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 적혀 있는 걸 본다고 설명되는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