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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요

作 장지호 · 2026-10-26

해당 부동산을 찾을 수 없습니다.

조회에 2초 걸렸다.

다인은 세 번째 같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번으로도 도로명 주소로도 같은 문장이 떴다.

유리 너머에 팔십 세쯤 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집에서 40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 주소에는 노인의 모든 것이 있었다. 고양이 한 마리, 빛바랜 책상, 거기 앉아 쓰는 시. 오전 내내 볕이 드는 방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등기부등본의 소유주명에서는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여기 내 이름 석자가 어디로 간겁니까?"

다인은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노인은 며칠 전에도 왔다 갔다. 그때는 또렷하게 노인의 이름을 보았고 수기로 기록도 해둔 게 있었다. 당황스럽게도 지금은 노인의 흔적조차 사라졌다. 아니 노인의 부동산이 없어졌다.

"조금 있다가 다시 와주시겠어요? 지금 전산상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다인은 노트를 열어 발급대장을 펴서 방금 조회한 시간을 적었다. 09:40, 2초 소요.

갑자기 엿새 전에 백업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밥 먹다가, 아주 자신 있게 했던 말이었다.

엿새 전 아침이었다.

08:40

프린터의 예열음이 울리면 등기소의 아침이 시작된다.

서다인은 발급기 두 대의 용지함을 열었다. 1번기는 어제 오후부터 급지가 좋지 않았다. 용지를 반쯤 빼서 모서리를 손끝으로 훑어 부채처럼 벌린 다음 다시 밀어 넣었다. 이런 건 아무도 시키지 않는다. 다인이 오기 전에도 여러 번 걸렸던 상습범이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예열기가 다인을 부른다.

1번기는 다인의 것이 되었다. 1번기가 울리면 사무실에서는 주인 없는 자리의 전화벨을 넘기듯이 모두가 다인을 부른다.

주소만 넣으면 등기사항증명서를 뱉는 기계가 무인발급기다. 화면에는 열람용과 발급용이 나란히 뜨는데, 열람용을 뽑아서 제출하려는 사람이 가끔 있다. 뽑아간 사람이 되돌아와서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뽑고 있다. 무인이라서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는다. 다인이 안내글을 써서 붙여놨는데 읽는 사람이 없다. 햄버거집 키오스크 앞에서 뒷사람 눈치를 보며 화면만 넘기는 것과 같다. 틀렸다고 말해주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가끔 다인은 누군가 뽑고 있으면 힐끗 눈으로 보고 "어디에 내실 거예요?" 물어보고 도와준다.

다인은 분기마다 상부에게 새 것으로 바꿔달라고 올렸는데 아직 쓸 만한 기계라며 퇴짜를 맞았다. 거절의 내용이 담긴 공문은 분기마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문장으로 적혀 있었다. 귀찮은 것과 세금을 아끼는 것에 대해 무엇이 더 공무원 같은지 생각하다가 이내 생각을 멈췄다. 어차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로비에서 임 주사가 소리쳤다.

"서 주무관, 일번기."

다인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드라이버를 들고 일어났다. 언제부턴가 다들 다인을 부른다.

나사를 풀다가 딴 생각이 들었다. 어중간하게 되었다 안되었다 하는 것보다. 완전히 죽어야 변화가 생긴다. 내가 이렇게 고쳐내니까 나아지는 것이 없는 게 아닐까?

"홍길동.."

잠깐 입으로 내뱉은 속삭임은 고개를 들어서 본 비치대의 견본 문서, 그 문서 예시로 쓰여진 이름이었다.

고장 신고를 하면 기사가 오는 데 사흘 걸린다. 사흘이면 창구 너머 오는 발급민원이 최소 100건은 된다. 그래서 다인은 작년 여름부터 신고를 안 한다. 답답한 마음에 우연히 같은 기종 뜯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발견했는데, 조회수가 2천쯤 되고 댓글이 3개인데 그중 하나가 다인이 단 것이다. 급지 롤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물어놨는데, 답글은 없었다. 이 발급기에 대해 누군가는 행동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잠시 동안 다인은 친절한 스파이더맨처럼 무인발급기를 고쳐내고 등기소 내 영웅이 되는 상상을 했다. 나사를 다 조이는 데는 오 분이 걸렸다.

09:00

정각을 알리는 시계음이 등기소 내에 퍼졌다. 동시에 번호표 기계가 첫 장을 내뱉었다.

오전 민원은 대개 비슷하다. 증명서를 떼러 온 사람, 자기 집 등기부에 뭐가 붙어 있는지 확인하러 온 사람, 그리고 번호표도 뽑지 않고 다가와 자기 고민부터 던지는 사람. 마지막 부류가 가장 본능에 가깝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 당장 알아내려는 얼굴이다. 하지만 우리의 약속은 번호표에 있다. 다인은 시스템처럼 오늘도 차근히 말해본다.

"번호표를 뽑고 차례가 되면 부탁드립니다."

"할머니, 그건 저희가 찾아드릴 수 있는 게 아니고요."

할머니는 돌아가신 남편 앞으로 된 땅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등기소는 주소를 찾는 곳이지 사람을 찾는 곳이 아니다. 그건 다른 데서 따로 신청해야 하고 떼야 할 서류도 여럿이다.

임태섭 주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같은 말을 세 번쯤 다르게 바꿔가며 했고, 세 번째쯤에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임 주사는 삼십 년째 이 자리에 있다. 잘하는 건 등기가 아니라 사람 쪽이다.

"아들이 자꾸 물어봐서 그래. 아버지가 뭘 남겼는지는 알아야 될 거 아니냐고."

임 주사가 메모지를 한 장 뜯었다.

"어머니, 이건 제가 못 보여드려요. 대신 어디 가서 뭐 떼야 되는지, 그건 적어드릴게. 아드님한테 이거 드리세요."

할머니는 순순히 일어나 나갔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말하는 다인에게는 저런 유두리가 없다. 임태섭 주사가 언제든 자기한테 맡기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09:47

오십 대 남자가 투명 파일을 들고 왔다. 얇은 파일인데 서류가 꽉 차서 표지가 벌어져 있었고, 몇 장은 모서리가 닳아 둥글었다. 맨 위 한 장만 출력한 지 얼마 안 된 새하얀 종이였는데, 그 새 종이에도 여기저기 구김이 있었다.

"바쁘시죠. 죄송한데."

"아닙니다. 앉으세요."

"이 서류 좀 봐주세요. 이게 조금 이상해서요."

남자가 파일에서 등기사항증명서를 꺼냈다. 예전에는 등기부등본이라고 했고 지금도 다들 그렇게 부른다. 집 한 채의 이력서 같은 문서다. 위쪽 갑구에 누가 주인인지가 적히고, 아래 을구에 그 집에 걸린 빚이 적힌다. 남자는 을구의 한 줄에 노란 형광펜을 그어놨다.

"여기요. 이 대출이요. 저는 이거 받은 적이 없어요."

"성함이 권상호님 맞으시죠. 신분증 좀 주시겠어요."

남자는 묻기 전에 이미 지갑을 꺼내 올렸다. 그런데 주민등록증은 주머니에서 나왔다. 여러 차례 꺼내다 보니 주머니에 넣어두고는 그 사실을 깜박한 손놀림이었다.

등기부 자체는 아무나 볼 수 있다. 주소만 알면 남의 집도 뗀다. 다만 그 등기가 어떤 서류로 올라갔는지, 접수된 서류까지 들여다보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건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만 볼 수 있고, 그래서 본인확인이 필요하다.

다인은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신분증을 돌려줬다. 남자가 내민 종이의 갑구에 적힌 이름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이 집 주인이 맞다는 건 2초 만에 확인됐다. 확인되지 않는 것은 그다음부터였다.

"주소 한번 불러주시겠어요."

남자가 주소를 불렀다. 다인은 받아 적고 나서 한 번 되읽었다. 혹시 틀린 경우 민원인이 수정해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조회 한번 해볼게요."

요청을 넣었더니 모래시계가 돌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2, 3초 안에 끝났을 일인데, 그날따라 조금 길었다. 6바퀴쯤 돌았을 때 문서가 열렸다. 화면의 을구는 종이와 똑같았다. 채권최고액 2억 4천, 근저당권자는 지방 저축은행, 접수일자는 4년 전.

"전산에도 동일하게 나오는데요. 4년 전에 설정된 걸로 되어 있습니다."

"네. 그렇게 나오더라구요."

권상호가 체념한 것처럼 말했다. 다인은 권상호의 태도가 의아했다.

화면을 조금 더 내렸다. 그때 같이 들어온 서류 목록이 떴다. 등기필정보 자리에 확인서면이 들어가 있었다.

집을 살 때 등기소에서 주는 등기필정보라는 게 있다. 예전에 집문서라고 부르던 그것이다. 그걸 못 내면 대신 법무사가 본인이 맞다고 확인해준 서면을 넣는다.

다인은 스크롤을 멈췄다.

확인서면. 다인은 그 단어를 한 번 더 읽었다.

집문서 없이 등기가 됐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날 법무사 앞에 누군가 앉아서 본인이 맞다고 확인을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게 누구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답을 들어도 창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흔한 일이다. 사람들은 그걸 자주 잃어버린다. 다인은 그렇게 정리하고 목록을 닫았다.

근저당을 지우는 제일 빠른 길은 그걸 잡은 쪽이 스스로 말소해주는 것이다.

"○○저축은행에는 가보셨어요? 거기서 말소 서류를 내주면 제일 빠른데요."

"갔죠. 두 번 갔어요."

파일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지점에서 받은 안내문 비슷한 것이었다.

"거기서는 서류 다 갖춰져서 들어온 거라고, 자기들은 절차대로 했다고, 문제가 있으면 등기소에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접수도 자기들이 한 게 아니라던데요. 대출 알선하는 사람이 서류를 들고 왔다고."

"...그분 연락처는 아세요?"

"없는 번호예요."

"...혹시 그 사이에 다른 데도 가보셨어요?"

"구청에는 다녀왔고 법원에도 다녀왔어요. 하아, 이제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10:02

권상호는 파일의 서류를 순서대로 꺼냈다. 어디를 갔고 누가 뭐라고 했는지 뒷면에 볼펜으로 적어놨다.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 앞쪽 종이의 글씨는 줄을 맞춰 반듯한데, 뒤로 갈수록 여백이 모자라 옆으로 눕고 위아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법원에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소송을 하라고요. 근데 소송을 하려면 뭐가 잘못됐는지를 내가 증명해야 된다면서요. 그 서류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까 등기소에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신청서 접수 서류 말씀이시죠."

"네. 그래서 왔어요."

다인은 화면을 봤다. 사 년 전 접수 건이면 보존 기간 안이다. 신청서 사본을 열람 신청하면 볼 수는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열람은 신청하시면 되는데요, 선생님. 그 서류를 보시고 위조라고 생각하셔도, 저희가 여기서 그 근저당을 지워드릴 수는 없어요."

"왜요?"

"저희는 접수된 서류가 형식적으로 맞는지를 보고 올리는 데까지가 일이라서요. 올라간 걸 내리는 건 법원 판결이 있어야 하고요."

"근데 법원에서는 등기소 가라 그랬어요."

"법원에서 말씀하신 건 열람 얘기고요, 지우는 건"

"아니, 그러니까." 권상호가 손을 들었다. 화난 손짓은 아니었다. 잠깐만요, 하는 손짓이었다. "제가 무식해서 그런데요. 그럼 여기서는 서류만 보여주고, 지우는 건 법원이고, 근데 법원은 서류가 필요하고, 그 서류는 여기 있고."

"...네."

"그럼 그거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되는 거예요?"

다인은 대답할 말을 골랐다. 매뉴얼에 있는 문장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관련 규정상 어렵습니다.

"불편하신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규정상"

"규정상 쉬우면 여길 왔겠어요."

권상호가 처음으로 말을 잘랐다. 그러고는 다인의 가슴께를 봤다. 이름표가 달린 자리였다.

다인은 규정상 뒤에 붙일 말을 세 개쯤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도 쓰지 못했다. 지난겨울에 두 달을 매일 오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도 처음에는 이름표부터 봤다.

10:19

같은 얘기가 세 번째 돌고 있었다.

권상호는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문장을 점점 짧게 말했다. 그리고 아까 했던 질문을 조금씩 다르게 다시 물었다. 여기서 정말 아무것도 못 하냐. 그럼 누가 하냐. 그 사람 이름이 뭐냐. 어디로 가면 되냐.

다인은 같은 대답이지만 조금씩 다르게 말해보려고 했다. 무인발급기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대화는 원을 그렸고, 두 사람 다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번호표 대기 인원이 여섯 명으로 늘었다. 임 주사가 자기 창구에서 두 명을 처리하는 동안 다인은 한 명도 못 처리했다. 다인은 임 주사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선생님, 일단 열람 신청서부터 작성을 하시면"

"내가 왜 신청을 해요?"

"네?"

"내 집이에요. 내가 산 집이고 내가 살고 있어요. 근데 누군가 내 집에 빚을 걸었다니까요. 확인도 내가 하고 신청도 내가 하고 소송도 내가 하고, 아우 답답해."

"...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권상호는 잠깐 다인을 쏘아보았다. 그러고는 창구 유리를 손바닥으로 세게 쳤다.

"그럼 여기는 뭐 하는 데예요!"

등기소 분위기가 순식간에 권상호에게 집중되었다. 대기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이쪽을 봤다. 임 주사가 자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손만 뗐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다.

권상호는 자기가 낸 소리에 자기가 놀란 것 같았다. 손을 내렸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화낼 데가 아닌 거 아는데."

"괜찮습니다."

"우리 애가 여기 좀 같이 와줬으면 좋겠는데 걔도 일을 하니까."

다인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열람 신청서를 한 장 꺼내 유리 아래로 밀었다. 권상호는 그걸 받아서 파일에 넣었다. 그 자리에서 쓰지는 않았다.

"이거 쓰면 오늘 볼 수 있어요?"

"오늘은 접수만 되고요, 며칠 걸립니다."

"며칠이요."

"보통 삼사일 걸리세요."

권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파일을 챙겼다. 나가면서 한 번 돌아봤는데, 다인을 보는 게 아니라 창구 전체를 보는 눈이었다.

"여기가 마지막이어야 했는데."

후우, 하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나갔다.

다인은 그가 앞으로 그 원을 몇 바퀴 더 돌지 알 것 같았다. 창구도, 법원도, 저축은행도 각자 자기 몫의 정확한 일을 했다. 틀린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그의 집에는 남의 빚이 얹혀 있었다.

다인은 삼십 초쯤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 발급 대장에 조회 소요 시각을 적었다. 09:47, 12초 소요. 옆에 응대 종료 시각도 적었다. 10:24, 응대 종료.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을구 근저당 2억 4천, 지방 저축은행, 4년 전. 등기필정보 대신 확인서면.

발급 대장에는 그런 걸 적는 칸이 없다. 다인은 오른쪽 여백에 적는다. 창구에 앉은 첫 달부터 그랬다. 시각만 적는 것은 아니다. 조회한 등기부에 눈에 걸리는 게 있으면 그것도 한 줄 적는다. 근저당이 유난히 크거나, 등기 원인이 흔치 않거나, 서류가 들어온 경로가 이상하거나. 하루에 한 건도 없는 날이 있고 다섯 건인 날이 있다.

혹시 국민신문고에 들어오면 경위서를 써야 하고, 경위서를 쓰려면 시각이 필요하다. 다인은 민원에 익숙했고 금방 또 마주치게 될 거라 생각했다.

"다음 분 오세요."

임 주사가 자기 자리에서 낮게 말했다.

"방금 열람 신청 안 하고 갔지?"

"네."

"할 사람이면 벌써 했어."

"...그러네요."

"저런 분들이 제일 오래 가. 화내는 사람은 화내고 끝나는데, 저런 분은 계속 와."

다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메모가 습관이 된 것도 민원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메모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시각 옆에 권상호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