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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318번 보관함

作 루시엘 · 2026-10-26

10화. 318번 보관함

“서도혁을 믿지 마세요.”

휴대전화 화면에 떠오른 문장은 짧았다.

하지만 윤하니는 그 문장을 읽는 데 한참이 걸렸다.

카페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퇴근길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갔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의 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니의 하루는 달랐다.

죽은 줄 알았던 여자의 이름.

돌아오지 못한 첫사랑.

어머니가 평생 숨겨 온 비밀.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오래된 사진과, 이제야 손에 들어온 작은 열쇠까지.

모든 것이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서도혁.

“무슨 메시지예요?”

맞은편에 앉은 도혁이 물었다.

하니는 화면을 끄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보여 줘도 될까.

아니, 이미 보여 줘야 했다.

더는 혼자서 진실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하니는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로 밀었다.

도혁의 시선이 화면으로 내려갔다.

문장을 읽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눈썹이 아주 조금 좁혀졌고, 휴대전화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이 번호예요?”

“네. 아까도 똑같은 번호로 왔어요.”

“번호를 추적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대표님.”

도혁이 고개를 들었다.

하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저한테 숨기는 거 없어요?”

그 질문에 도혁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니는 그 짧은 침묵이 무서웠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도 돼요. 기억이 안 나는 것도 괜찮아요.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건 싫어요.”

“하니 씨.”

“저 지금 무서워요.”

하니는 열쇠를 손바닥 안에 감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엄마가 나한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안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나를 사랑했고,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내가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어요.”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그런데 엄마가 나한테 말하지 않은 게 이렇게 많았다면…… 내가 알고 있던 엄마는 대체 어디까지 진짜였을까요?”

도혁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에게도 같은 질문이 있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는 왜 사라졌을까.

왜 아버지는 그 여자의 편지를 숨기고 있었을까.

왜 서은재는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으면서도, 윤하니라는 이름을 남겼을까.

그리고 왜 하필 지금일까.

“제가 아는 건 전부 말할게요.”

도혁이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모르는 것까지 아는 척하면서 하니 씨를 안심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

“제가 거짓말을 한 게 밝혀지면, 그때는 저를 믿지 않아도 됩니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하니는 그를 바라봤다.

“그럼 지금은요?”

“네?”

“지금은 믿어도 돼요?”

도혁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믿어 달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의 시선이 하니의 손으로 향했다.

“그래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니 씨 편에 서고 싶습니다.”

그 말은 달콤하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무조건 지켜 주겠다는 약속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편에 서겠다는 말.

하니는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좋아요.”

그녀가 작게 대답했다.

“그럼 같이 알아봐요. 318번 보관함.”

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오전에 확인하겠습니다.”

“내일이요?”

“오늘 밤에라도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열쇠가 어떤 시설의 것인지 먼저 알아봐야 합니다. 무작정 움직이는 건 위험해요.”

“저도 갈 거예요.”

“당연히 같이 가야죠.”

하니는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도혁은 담담하게 덧붙였다.

“이번에는 혼자 보내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하니의 가슴 한쪽이 저릿해졌다.

혼자 보내지 않겠다.

그 말이 얼마나 오래 듣고 싶었던 말인지, 도혁은 아마 모를 것이다.

다음 날 오전 아홉 시.

하니는 출근하자마자 사무실로 들어가는 대신, 회사 건물 일층 카페에서 도혁을 기다렸다.

테이블 위에는 크림치즈 허니 토스트 두 조각이 놓여 있었다.

한 조각은 하니의 것이었다.

다른 한 조각은 도혁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하니가 마음대로 주문한 것이었다.

“대표님도 드세요.”

도혁은 토스트를 내려다봤다.

“아침부터 이걸 먹습니까?”

“네. 맛있으니까요.”

“보통 아침 식사로는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먹지 않습니까?”

“대표님, 인생을 그렇게 재미없게 살면 안 돼요.”

도혁이 어이없다는 듯 하니를 바라봤다.

“토스트 하나로 인생까지 평가합니까?”

“토스트 하나가 아니라 크림치즈 허니 토스트예요. 이름부터 다르잖아요.”

하니는 진지했다.

도혁은 결국 작게 웃었다.

그 웃음에 하니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는 웃을 때 조금 달라졌다.

늘 차갑게 굳어 있던 얼굴이 풀리고, 사람을 경계하는 듯한 눈빛이 잠시 사라졌다. 그 순간만큼은 회사 대표가 아니라 그냥 서른 살의 남자 같았다.

하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오래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봅니까?”

“아니에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대표님도 웃을 줄 아는구나 싶어서요.”

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윤하니 씨.”

“네.”

“출근 전에 저를 놀리는 게 취미입니까?”

“요즘 제 취미가 좀 늘었어요.”

“뭔데요?”

하니는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대표님 놀리기요.”

도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앞에 놓인 토스트를 집어 들었다.

한입 베어 문 뒤, 잠시 멈췄다.

“……괜찮네요.”

“그렇죠?”

하니가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혁은 문득 생각했다.

이런 아침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와 마주 앉아 별것 아닌 음식을 나눠 먹고,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는 일.

누군가의 웃음에 이유 없이 마음이 놓이는 일.

그는 오래전부터 그런 평범함을 포기한 채 살아왔다.

은재가 사라진 뒤로는 더 그랬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언젠가 잃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주는 순간, 그 사람에게 자신이 모르는 불행이 찾아올 것 같았다.

그런데 하니는 자꾸만 그가 닫아 둔 문을 두드렸다.

억지로 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문 앞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래서 더 위험했다.

“대표님?”

하니의 목소리에 도혁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왜요?”

“토스트에 꿀 묻었어요.”

하니가 자신의 입가를 가리켰다.

“여기요.”

도혁은 휴지를 건넸다.

하니는 휴지를 받아 입가를 닦았다.

“고마워요.”

“다 먹었으면 가죠.”

“어디로 가는데요?”

“열쇠의 출처를 확인하러요.”

도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은 대표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하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서도혁 씨.”

“그건 좀 어색한데요.”

“그럼 이름만 부르든가요.”

하니는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도혁아?”

도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하니도 자신의 말에 놀랐다.

이름을 부르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 아니. 그건 좀…….”

“아닙니다.”

도혁이 고개를 돌렸다.

귀 끝이 희미하게 붉어져 있었다.

“그렇게 불러도 됩니다.”

그는 먼저 걸어갔다.

하니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그런데 싫지 않았다.

열쇠의 출처를 찾는 데는 예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혁의 비서가 오전 내내 관련 업체와 보관 시설을 확인한 끝에 가능성이 높은 장소 하나를 찾아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오래된 민간 보관센터.

현재는 다른 회사에 인수되어 운영 중이지만, 과거에는 번호식 개인 보관함을 제공했던 곳이었다.

보관함 번호는 318.

하니는 차 안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작은 금속 열쇠였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쉽게 가려질 정도로 작았다.

그런데 그 작은 열쇠 하나가 자신의 삶을 뒤흔들고 있었다.

“여기 맞을까요?”

하니가 물었다.

운전대를 잡은 도혁은 앞을 바라본 채 대답했다.

“확인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만약 아무것도 없으면요?”

“그럼 다른 단서를 찾으면 됩니다.”

“만약…… 정말 무서운 게 들어 있으면요?”

이번에는 도혁이 대답하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그렇더라도 혼자 보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니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이 위로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었다.

어젯밤 도착한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왜 은재에게 하니를 부탁했는지.

은재는 왜 하니가 스무 살이 되는 날 열쇠를 전하라고 했는지.

그리고 그 열쇠를 도혁에게 넘기지 말라고 한 사람은 누구인지.

하니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열쇠를 전하라는 날로부터 이미 칠 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사이, 이미 무언가가 시작되었던 걸까.

차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하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낡은 회색 건물이었다.

간판에는 작은 글씨로 보관센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주변에는 오래된 창고와 정비소가 늘어서 있었다. 사람이 붐비는 곳은 아니었다.

도혁은 차에서 내린 뒤 하니가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무서우면 지금 돌아가도 됩니다.”

하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제는 알고 싶어요.”

그녀는 열쇠를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엄마가 왜 숨겼는지, 은재 씨가 왜 저한테 이걸 남겼는지. 전부 알고 싶어요.”

도혁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보관센터 직원은 오래된 기록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안쪽 복도로 안내했다.

“318번은 이쪽입니다. 다만 오래전에 계약된 보관함이라 현재 기록이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계약자는 누구로 되어 있습니까?”

도혁이 물었다.

직원은 서류를 확인했다.

“잠시만요.”

종이를 넘기던 손이 멈췄다.

“이상하네요.”

하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요?”

직원은 서류를 다시 확인했다.

“최초 계약자는 서은재 씨로 되어 있는데, 중간에 계약 명의가 변경되었습니다.”

“누구로요?”

직원은 다음 장을 넘겼다.

“윤서정 씨입니다.”

하니는 숨을 멈췄다.

엄마였다.

도혁도 굳은 얼굴로 서류를 바라봤다.

은재가 계약한 보관함.

그리고 그 보관함을 이어받은 윤서정.

하니의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두 사람은 분명히 이곳을 알고 있었다.

“명의가 변경된 날짜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도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직원은 기록을 찾아 날짜를 확인했다.

“십칠 년 전입니다.”

십칠 년.

하니가 열 살이던 해였다.

그녀는 그 시절을 떠올리려 애썼다.

엄마와 함께 살던 작은 집.

학교가 끝나면 달려가던 동네 빵집.

비 오는 날이면 엄마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습.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정말 있었던 걸까.

“보관함을 열어 보겠습니다.”

직원이 안내했다.

복도 끝에는 오래된 금속 보관함들이 줄지어 있었다.

숫자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315.

316.

317.

그리고.

318.

하니는 그 앞에서 멈춰 섰다.

작은 열쇠를 꺼내 들었지만, 손끝이 떨려 열쇠 구멍에 제대로 넣을 수 없었다.

도혁이 조용히 말했다.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하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다시 잡았다.

“이건 제가 열고 싶어요.”

도혁은 한 걸음 물러섰다.

하니는 열쇠를 구멍에 넣었다.

찰칵.

작은 소리가 났다.

잠금장치가 풀렸다.

하니는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보관함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낡은 갈색 봉투 하나.

작은 카세트테이프 하나.

그리고 오래된 사진 한 장.

하니는 가장 위에 놓인 사진부터 꺼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얼굴.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서은재.

두 사람은 어느 건물 앞에서 나란히 웃고 있었다.

하니는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09년 5월 17일.

그 아래, 어머니의 글씨가 있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아이를 처음 만난 날.’

하니의 손에서 사진이 미끄러질 뻔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아이.

그 아이는 누구였을까.

“하니 씨.”

도혁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하지만 하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갈색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수신인은 윤서정.

발신인은 서은재였다.

하니는 천천히 편지를 펼쳤다.

서정 언니에게.그 아이를 부탁드려요.제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그 아이만은 이 일과 상관없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그 아이에게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려 주지 마세요.언젠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적어도 그날만큼은 그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세요.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게요.서도혁에게는 그 아이의 존재를 알려서는 안 됩니다.그 사람은 아무것도 몰라야 해요.제가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일이니까요.

하니는 편지를 읽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도혁은 움직이지 못한 채 서 있었다.

편지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도혁 씨.”

하니가 낮게 불렀다.

“왜 당신한테 알리면 안 되는 거죠?”

도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 그의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제가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일이니까요.

은재는 자신을 사랑했다.

그 사실을 부정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은재에게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하니의 출생.

그리고 자신에게 숨겨야 했던 아이의 존재.

도혁은 손을 뻗어 편지를 받으려다가 멈췄다.

“다른 것도 확인해 봅시다.”

그는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하니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관함 안에는 아직 카세트테이프가 남아 있었다.

테이프 겉면에는 날짜와 함께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하니가 진실을 물을 때 들려줄 것.’

하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이제야 이런 말을 남긴 걸까.

왜 자신에게 직접 말해 주지 않았을까.

그녀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엄마가 살아 있을 때 단 한 번만이라도 물어볼 수 있었다면.

하니는 떨리는 손으로 테이프를 쥐었다.

“이걸 들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에 오래된 재생기가 하나 있습니다. 작동하는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도혁은 하니를 바라봤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테이프를 들을 준비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하니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 당장 듣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서웠다.

이 테이프 안에 들어 있는 목소리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버릴 것 같았다.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하니가 말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알겠습니다.”

도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봉투와 사진을 다시 정리해 하니에게 건넸다.

그때였다.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직원이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 하니의 휴대전화에도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이번에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하니는 무심코 사진을 눌렀다.

사진 속에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보관센터의 입구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두 사람.

윤하니와 서도혁.

사진의 촬영 시각은 불과 몇 분 전이었다.

누군가 그들을 따라왔다는 뜻이었다.

하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열어 버렸군요.’

그다음 문장.

‘이제 그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서도혁이 왜 당신의 존재를 몰라야 했는지.’

하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도혁을 바라봤다.

도혁도 사진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니 씨, 제 옆에 있어요.”

그는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도혁 씨.”

“네.”

하니는 편지를 꽉 쥐었다.

“저한테 정말 아무것도 숨기는 게 없어요?”

도혁의 표정이 굳었다.

그 순간, 하니는 그의 눈에서 처음 보는 감정을 읽었다.

당혹감.

두려움.

그리고 아주 희미한 죄책감.

“대답해 주세요.”

하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과 은재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도혁은 입술을 열었다.

그러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정말 몰랐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하니는 그의 침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알겠어요.”

“하니 씨.”

“지금 당장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죠.”

그녀는 눈물을 삼켰다.

“그런데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하니가 그를 바라봤다.

“저는 누군가가 지켜 줘야 하는 아이가 아니에요. 누군가의 비밀 때문에 제 삶을 빼앗기고 싶지도 않아요.”

도혁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빛이 스쳤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요. 아직 모르는 것 같아요.”

하니는 사진과 편지를 가방에 넣었다.

“진실을 알게 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요.”

그녀는 먼저 복도를 걸어 나갔다.

도혁은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붙잡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모르는 진실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잃게 만들지도 몰랐다.

그날 밤.

도혁은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은 어두웠다.

불을 켜자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가구, 먼지 하나 없는 테이블, 아무도 앉지 않는 소파.

늘 그랬듯 조용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 고요함이 견디기 어려웠다.

도혁은 서재로 들어가 아버지가 준 편지를 꺼냈다.

은재의 글씨.

익숙하면서도 낯선 문장.

그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마세요.

그 아이는 누구였을까.

하니였을까.

아니면 하니와 관련된 다른 아이였을까.

도혁은 그동안 은재의 실종만을 생각했다.

그녀가 왜 떠났는지, 어디로 갔는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