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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숲》 제1부 — 죽은 친구의 남자 제1화. 장례식장에서 만난 남자

作 SEINE · 2026-10-20

죽은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김준은 휴대전화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유.진.

불과 세 시간 전, 그녀는 유진의 부고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 책상 위에서 진동하는 휴대전화에는 분명 죽은 친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 없었다.

짧은 진동이 멎었다.

잠시 후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준아.

그게 전부였다.

준은 메시지를 열어 보지도 못한 채 화면이 꺼질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날 서울의 하늘은 유난히 낮았다.

세 시간 전.

김준은 대학원 연구실에서 논문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범죄자의 대인관계 특성과 정서적 반응에 관한 해외 논문이 띄워져 있었다.

책상 한편에는 식어 버린 커피가 놓여 있었고, 펼쳐진 노트에는 빼곡하게 메모가 적혀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혹시 김준 씨 되시나요?”

“네.”

“이유진 씨 지인분 맞으시죠?”

준은 펜을 내려놓았다.

“맞는데요.”

상대방은 잠시 말을 고르는 듯했다.

“유진 씨가 오늘 새벽에 사망하셨습니다.”

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현재 장례식장이 마련되어 있고요. 유족분께서 연락을 부탁하셔서…….”

“사망 원인이 뭔가요?”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잠시 침묵했다.

“정확한 내용은 저희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경찰에서는 현재 극단적 선택 가능성을…….”

“알겠습니다.”

준은 장례식장 위치를 확인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읽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서적 공감의 결핍은 반드시 인지적 공감의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준은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하지만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아무것도 읽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진이 죽었다.

어제저녁에도 전화를 걸어 왔던 사람이었다.

“준아, 너 또 논문 쓰고 있지?”

“응.”

“넌 맨날 공부만 하냐?”

“그러는 넌?”

“나는 사랑하지.”

수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렸었다.

“태신 씨가 오늘 정말 웃긴 말 했거든. 들어 볼래?”

준은 대답 대신 책장을 넘겼다.

유진은 그런 반응에도 익숙했다.

그날도 혼자 십 분 넘게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했더라.

준은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유진이 무언가를 물었다.

준아, 너는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어?

그때 자신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준은 검은 코트의 단추를 잠갔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이 빗물에 조금 젖어 있었다.

안내판에서 이유진의 이름을 발견했다.

스물일곱.

사진 속 유진은 웃고 있었다.

너무 환하게 웃고 있어서, 준은 한동안 그 사진이 영정사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분향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유진의 어머니가 준의 손을 잡았다.

“준이구나.”

“네, 어머니.”

“유진이가 너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

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애가…… 어제도 너한테 전화했니?”

“네.”

“그랬구나.”

어머니의 손이 떨렸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하던 애가…… 왜 그랬을까.”

준은 잡힌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죽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적어도 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고 해서 남겨진 사람들이 반드시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준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빈소 안쪽에는 낯선 사람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고급 정장을 입은 남자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년 부부.

그리고 창가 근처에 서 있는 한 남자.

준의 시선이 그에게 멈췄다.

키가 컸다.

주변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아 보였다.

검은 정장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자 그는 고개를 숙여 상대방의 말을 들었다.

이따금 웃기도 했다.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준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유진에게서 수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강태신.

서른세 살.

검사.

유진의 남자친구.

“태신 씨는 진짜 이상할 정도로 침착해.”

언젠가 유진이 말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화를 안 내. 그래서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게 왜 이상해?”

“그냥. 사람이 어떻게 항상 똑같을 수 있나 싶어서.”

당시 준은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자신의 연인이 죽은 장례식장에서 강태신은 지나치게 평온해 보였다.

준은 그를 조금 더 바라보았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는 준을 바라보았다.

준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남자의 입가에 있던 미소가 아주 조금 사라졌다.

마치 처음 보는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준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빈소 밖으로 나왔다.

강태신은 방금 자신을 바라보던 여자를 다시 찾았다.

짧은 검은 머리.

유난히 흰 얼굴.

검은 코트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란 목선.

그리고 자신을 보고도 아무런 표정이 변하지 않던 눈.

그는 여자가 사라진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태신아.”

옆에 있던 남자가 그를 불렀다.

“뭐 봐?”

“아니.”

태신은 느리게 대답했다.

“아는 사람이야?”

“처음 보는 사람.”

“그런데?”

태신은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질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그저 예쁜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방금 마주친 얼굴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일까.

유진의 지인인가.

태신은 다시 빈소 안을 돌아보았다.

영정사진 속 유진이 웃고 있었다.

그는 사진을 한 번 바라본 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문객을 맞았다.

장례식장을 나온 준은 건물 처마 아래에 서 있었다.

비가 그칠 기미는 없었다.

휴대전화를 꺼내자 유진과의 대화창이 보였다.

마지막 메시지는 어제 오후 열한 시 사십이 분.

준아, 자?

그 아래에는 준이 보낸 짧은 답장이 있었다.

아니.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준은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보낸 다음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일 해.

유진은 답하지 않았다.

준은 휴대전화를 천천히 내렸다.

내일.

그녀에게는 내일이 오지 않았다.

그때 장례식장 출입문이 열렸다.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준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검은 정장의 남자였다.

강태신.

그는 처마 아래에 서 있는 준을 보았지만 다가오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빗소리만 가득했다.

태신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두 사람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얼굴은 기억했다.

집으로 돌아온 준은 젖은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연구실에서 가져온 논문 자료가 가방 안에 그대로 있었다.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연결하려던 순간, 화면이 켜졌다.

이유진.

발신자 이름이 다시 나타났다.

준은 손을 멈췄다.

전화벨이 세 번 울렸다.

네 번.

다섯 번.

마침내 준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짧은 침묵.

그다음, 낯선 숨소리가 들렸다.

준은 몸을 굳혔다.

“유진이 휴대전화로 전화하신 분, 누구세요?”

상대방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준은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분명 유진의 번호였다.

잠시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준아.

준은 화면을 응시했다.

곧이어 두 번째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 사람 믿지 마.』

— 제1화 끝. ***본 작품은 범죄심리 미스터리 로맨스 소설로,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자살, 자해, 폭력, 성폭력, 약물 사용 및 정신적 고통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부 장면은 독자에 따라 심리적 불편함이나 정서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열람 시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의 행동은 허구이며, 어떠한 형태의 폭력이나 자해, 자살 행위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