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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낮의 남자

作 루시엘 · 2026-10-26

# 《두부참이슬》

## 9화. 낮의 남자

아침 열 시.

윤서하는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오늘은 식자재를 조금 더 사야 했다. 어제 단체 손님이 예상보다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두부와 김치가 거의 바닥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담았다.

두부 스무 모, 대파 두 단, 양파 한 망, 그리고 가게에서 사용할 각종 양념까지.

“아이고, 무거워라…….”

서하는 장바구니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강태준.

서하는 걸음을 멈췄다.

어젯밤부터 그 이름만 봐도 마음이 이상해졌다.

어제 태준은 술에 취해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도, 집에 가지 않겠다고 조르던 목소리도, 내일도 오고 싶다고 말하던 모습도 모두 생생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태준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떤 말이요?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서하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진지하게 좋아한다고 말해 놓고, 다음 날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물론 정말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하에게는 그게 더 속상했다.

자신은 그 말 한마디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는데, 정작 그 말을 한 사람은 기억조차 못 한다니.

서하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메시지 내용은 간단했다.

[강태준] 사장님, 오늘 장사 준비 잘하고 계세요?

서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이제 와서 장사 준비는 왜 물어봐.’

답장을 하지 않으려다가 결국 짧게 보냈다.

[윤서하] 네. 손님은 회사 일이나 잘하세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강태준] 네. 오늘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하는 피식 웃었다.

“참나…….”

그녀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저녁에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겠다고.

괜히 신경 쓰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하며 시장을 빠져나왔다.

그때였다.

도로 건너편에 검은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 그리고 멀리서도 느껴지는 차가운 분위기.

서하는 무심코 그 남자를 바라봤다.

어딘가 익숙했다.

그 남자가 차에서 내리자 운전기사가 곧바로 뒷문을 닫았다.

그리고 건물 입구에 서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서하는 걸음을 멈췄다.

대표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서하의 눈이 커졌다.

“……어?”

방금 그 얼굴.

분명히 자신이 아는 얼굴이었다.

매일 밤 두부참이슬에 찾아와 두부김치를 먹고, 장난을 치고, 자신을 놀리던 남자.

강태준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이 알던 강태준과 전혀 달라 보였다.

서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건물 간판을 올려다봤다.

태성그룹 본사.

그녀는 간판을 한 번 보고, 다시 태준이 사라진 출입문을 바라봤다.

“……대표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기업 대표라고?

매일 술집에 와서 설거지를 하고, 앞치마 끈이 짧다고 투덜거리던 그 사람이?

자신에게 두부김치 값을 깎아 달라고 조르던 그 남자가?

서하는 장바구니를 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말도 안 돼…….”

그때 건물 입구에서 직원 한 명이 나왔다.

서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기요.”

직원이 고개를 돌렸다.

“네, 무슨 일이시죠?”

“방금 들어가신 분이…….”

서하는 잠시 망설였다.

“강태준 대표님 맞으세요?”

직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저희 대표님이신데요.”

서하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정말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강태준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직원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서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왜 그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을까.

왜 매일 작은 술집에 와서 평범한 손님처럼 행동했을까.

그리고 자신에게 했던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을까?

서하는 장바구니를 꽉 잡았다.

마음이 조금씩 차가워졌다.

“……나 가지고 논 거야?”

그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오전 열한 시.

태성그룹 본사, 대표이사실.

강태준은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때 최도윤이 노크하고 들어왔다.

“대표님, 오전 회의 자료입니다.”

“책상 위에 놓고 가.”

도윤은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태준의 얼굴을 살폈다.

“대표님.”

“왜?”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네. 아침부터 계속 웃고 계십니다.”

태준은 피식 웃었다.

“그런가?”

“혹시 그 사장님이랑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태준은 펜을 내려놓았다.

“어제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어.”

도윤의 눈이 커졌다.

“무슨 일이요?”

“내가 술을 좀 마셨거든.”

“……또요?”

“그리고 사장님한테 무슨 말을 한 것 같아.”

도윤은 이마를 짚었다.

“대표님, 제발 술 좀 줄이십시오.”

“그런데 사장님이 오늘 아침에 먼저 연락했어.”

도윤은 잠시 멈췄다.

“……그게 중요한 겁니까?”

“중요하지.”

태준은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서하가 보낸 답장은 짧았다.

손님은 회사 일이나 잘하세요.

태준은 그 문장을 보며 웃었다.

“이것 좀 봐.”

도윤은 화면을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 그건 그냥 잔소리 아닙니까?”

“사장님다운 잔소리잖아.”

“…….”

도윤은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때 비서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대표님, 오전 열한 시 반에 예정된 외부 미팅 준비가 끝났습니다.”

태준은 시계를 확인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내려가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정리했다.

그리고 회의실로 향했다.

평소의 태준은 사적인 감정을 업무에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직원들에게는 냉정하고 정확했으며,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누구보다 신중했다.

그에게는 회사의 대표라는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부참이슬의 작은 주방에서 두부를 썰던 여자.

자신이 설거지를 잘한다고 칭찬해 주던 여자.

그리고 자신이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여자.

태준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오늘 저녁에는 반드시 어제의 일을 제대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술김에 한 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신은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때까지 그는 알지 못했다.

서하가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알아버렸다는 것을.

오후 세 시.

서하는 식자재를 모두 정리한 뒤 가게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장사를 준비하기 전에 잠깐 쉬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의자에 앉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태준과의 메시지 창을 열었다.

그동안 나눴던 대화들이 화면에 차례로 보였다.

보고 싶어도 참아 주세요.

저는 사장님이 좋아요.

저한테 먼저 연락하신 거예요?

그 문장들을 다시 읽을수록 기분이 이상해졌다.

대기업 대표가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자신과는 사는 세계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태준은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비싼 정장을 입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중요한 계약을 결정하는 사람일 것이다.

반면 자신은 작은 술집을 운영하며 하루하루 생활비를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물론 돈이 많고 적은 것이 사랑의 기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하에게는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자신은 태준이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바쁘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했고, 일이 많다고 하면 고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는 자신이 대기업 대표라는 사실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말 안 했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

“서하야!”

미자 이모였다.

“이모, 왔어요?”

“응. 반찬 좀 갖다주려고. 그런데 너 얼굴이 왜 그래?”

“제 얼굴이요?”

“무슨 일 있지?”

서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모.”

“응?”

“사람이 자기 신분을 숨기고 누군가를 만나면…… 그건 거짓말한 거겠죠?”

미자 이모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무슨 일인데?”

서하는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요.”

“응.”

“그 사람이 사실은 제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미자 이모는 서하의 옆에 앉았다.

“어떤 사람인데?”

서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대기업 대표래요.”

미자 이모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제가 매일 보는 사람이요. 그 사람이 대기업 대표래요.”

“어머나! 그 잘생긴 총각?”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자 이모는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세상에…… 그럼 그 총각이 재벌이라는 거야?”

“대표라고 했어요.”

“어머나. 우리 서하가 드디어 드라마 같은 일을 겪네!”

“이모!”

“아니, 놀라서 그러지!”

미자 이모는 서하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

서하는 조용히 대답했다.

“저한테 말하지 않았잖아요.”

“그게 서운해?”

“……네.”

서하는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 사람이 그냥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았어요. 회사 일 때문에 늦게 온다고 하면 고생한다고 생각했고, 바쁘다고 하면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제가 모르는 모습이 너무 많았어요.”

미자 이모는 가만히 서하의 손을 잡았다.

“서하야.”

“……네.”

“그 사람이 처음부터 속이려고 한 건지, 아니면 자기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했던 건지는 아직 모르잖아.”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네가 서운할 수 있어. 네가 믿고 싶었던 사람인데, 중요한 사실을 몰랐으니까.”

미자 이모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 사람 마음까지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서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럴까요?”

“응. 직접 물어봐. 왜 말하지 않았는지. 네가 속상했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미자 이모는 서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람 마음은 혼자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더라.”

서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태준을 만나고 싶었다.

왜 말하지 않았는지 직접 묻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저녁 여덟 시 삼십 분.

태준은 평소보다 일찍 회사를 나섰다.

오늘은 중요한 업무가 모두 끝났고, 도윤에게도 더 이상 일정을 잡지 말라고 당부했다.

“대표님, 오늘은 정말 일찍 가시네요.”

도윤이 말했다.

“응. 약속이 있어서.”

“그 술집이요?”

태준은 웃었다.

“맞아.”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이 이렇게 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몰랐어.”

태준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히기 직전, 도윤이 다시 말했다.

“대표님.”

“왜?”

“이번에는 제대로 이야기하십시오. 중요한 사실을 계속 숨기면 오해가 커질 수 있습니다.”

태준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서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

처음에는 그저 편하게 만나고 싶었다.

자신의 직함이나 재산을 알기 전에, 강태준이라는 사람 자체를 봐 주길 바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말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서하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혹시 자신의 배경 때문에 마음을 바꾸면 어떡하나 두려웠다.

그래서 조금만 더 미루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다.

태준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서하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오늘은 직접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밤 아홉 시.

두부참이슬.

서하는 주방에서 김치를 볶고 있었다.

평소처럼 두부를 썰고, 접시를 준비하고, 냉장고의 술을 채웠다.

하지만 마음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오늘 태준이 올까?

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니, 오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딸랑.

문 위의 종이 울렸다.

서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강태준이었다.

“사장님!”

그는 평소처럼 웃으며 들어왔다.

“오늘은 조금 일찍 왔어요.”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준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다가 걸음을 멈췄다.

“……사장님?”

서하는 행주를 내려놓았다.

“강태준 씨.”

“네.”

“잠깐 이야기 좀 해요.”

태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무슨 일 있어요?”

서하는 그를 바라봤다.

평소 같으면 장난스럽게 웃으며 넘겼을 얼굴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태성그룹 대표님.”

태준이 그대로 굳었다.

가게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서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강태준 씨예요?”

태준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만으로도 서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말 안 했어요?”

태준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장님, 그게…….”

“저한테 왜 말 안 했냐고요.”

서하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저는 강태준 씨가 그냥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았어요. 회사 일 때문에 늦게 온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했고, 일이 많다고 하면 고생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데 대표님이었다면서요.”

태준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왜요?”

서하의 눈가가 붉어졌다.

“왜 저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했다.

더 이상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냥 편하게 만나고 싶었어요.”

“…….”

“제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기 전에, 그냥 강태준이라는 사람으로 사장님을 만나고 싶었어요.”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준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말할 기회를 놓쳤어요. 처음에 말하지 못하니까 나중에는 더 어려워졌어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장님이 저를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서 더 겁이 났어요. 제 배경을 알고 나면 지금처럼 대해 주지 않을까 봐요.”

서하는 눈을 감았다.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저는 돈 많은 사람이 싫다고 한 적 없어요.”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그냥 솔직한 사람이 좋았어요.”

서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좋아하려고 했던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속상해요.”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하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저한테 잘해 준 것도, 매일 찾아온 것도, 좋아한다고 말한 것도…… 이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하 씨.”

“오늘은 그냥 가 주세요.”

태준의 얼굴이 굳었다.

서하는 시선을 피했다.

“저, 지금은 강태준 씨 얼굴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태준은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자신의 마음은 진심이라고, 지금까지 했던 말들은 하나도 거짓이 아니었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하의 얼굴을 보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상처받았다.

그 상처를 자신의 말로 당장 없앨 수는 없었다.

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갈게요.”

문 앞에 도착한 태준은 잠시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사장님.”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가 잘못했어요. 그건 변명하지 않을게요.”

태준은 잠시 숨을 골랐다.

“다만 제가 사장님을 좋아했던 마음까지 거짓말이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서하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태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랑.

문이 닫혔다.

서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왜 이제 말했어.”

그녀의 목소리가 텅 빈 가게 안에 울렸다.

“왜…….”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사실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마음을 열어 보려고 했던 순간,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를 믿고 싶었다.

그런데 믿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서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오늘 밤만큼은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 열한 시.

태준은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운전석의 도윤이 룸미러로 그를 바라봤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서하와의 메시지 창이 열려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메시지를 입력했다가 지웠다.

미안하다고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직접 사과했다.

지금 또 연락하면 그녀를 더 힘들게 할 것 같았다.

태준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도윤아.”

“네, 대표님.”

“내가 잘못한 거겠지?”

도윤은 잠시 생각했다.

“말씀하지 않으신 건 잘못하셨습니다.”

태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