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오늘은 왜 안 왔어요?
作 루시엘 · 2026-10-24
# 《두부참이슬》
## 6화. 오늘은 왜 안 왔어요?
오후 여덟 시.
윤서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두부가 있었다.
김치도 있었다.
참이슬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뭐가 부족하지?”
서하는 냉장고 안을 다시 들여다봤다.
두부는 넉넉했고, 김치는 어제 새로 담근 것을 꺼내 놓았다. 참이슬도 냉장고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오늘 장사 준비는 완벽했다.
그런데 왜 자꾸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걸까.
서하는 냉장고 문을 닫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아, 몰라. 손님만 오면 되지.”
혼잣말을 하며 도마를 꺼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화면에는 식자재 배달 업체의 광고 메시지가 떠 있었다.
서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강태준.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제도 왔다.
그제도 왔다.
그 전날에도 왔다.
매일같이 찾아와 두부김치를 먹고, 참이슬을 마시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다가 돌아가는 남자.
그런데 오늘은 아직 오지 않았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회사에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집에서 쉴 수도 있었다.
그가 매일 찾아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서하는 도마 위에 두부를 올렸다.
“안 와도 상관없어.”
칼을 들었다.
“진짜 상관없다고.”
두부를 썰었다.
“내가 언제 기다렸다고.”
두부가 조금 삐뚤게 잘렸다.
서하는 칼을 내려놓았다.
“아, 진짜!”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강태준이 매일 오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고작 며칠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 남자가 찾아오는 시간이 자신의 하루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다.
밤 아홉 시가 되면 문을 한 번 바라보고, 아홉 시 반이 되면 냉장고를 확인하고, 열 시가 넘어도 오지 않으면 괜히 시계를 쳐다봤다.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서하는 앞치마를 고쳐 매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리자, 윤서하.”
사랑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는 누군가 때문에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는 일도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고작 단골손님 하나 때문에 두부를 삐뚤게 썰고 있었다.
그 사실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후 아홉 시.
첫 손님이 들어왔다.
동네 주민 두 명이었다.
“사장님, 여기 김치찌개 두 개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서하는 주문을 받고 음식을 준비했다.
손님이 들어오고, 음식이 나가고, 술잔이 오갔다.
평소와 똑같은 저녁이었다.
그런데 문 위의 종이 울릴 때마다 서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딸랑.
손님이었다.
딸랑.
또 손님이었다.
딸랑.
이번에도 손님이었다.
서하는 결국 행주를 내려놓았다.
“아, 진짜…….”
“사장님, 뭐라고 하셨어요?”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물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하는 억지로 웃었다.
손님이 나간 뒤, 그녀는 계산대에 턱을 괴었다.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서하는 황급히 입을 막았다.
아무도 듣지 않았겠지?
그 순간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안 와요?”
“으악!”
서하는 깜짝 놀라 돌아봤다.
미자 이모가 반찬통을 들고 서 있었다.
“이모! 사람 놀라게 왜 그렇게 와요!”
“내가 뭐 어때서? 반찬 갖다주러 왔지.”
“노크라도 하시지!”
“여기가 무슨 사무실이니? 그런데 누구 안 온다고 그랬어?”
“아무도 아니에요.”
“아무도 아닌데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
“제가 언제요!”
미자 이모는 서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그러더니 천천히 웃었다.
“아이고, 우리 서하 큰일 났네.”
“뭐가요?”
“사랑에 빠졌네.”
“아니거든요!”
서하의 목소리가 가게 안에 울렸다.
마침 물을 마시던 손님이 고개를 들었다.
서하는 얼른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목소리가 커져서요.”
미자 이모는 서하의 팔을 잡아 주방으로 끌고 갔다.
“솔직하게 말해 봐. 그 총각 오늘 안 왔지?”
“…….”
“그렇지?”
“안 왔어요.”
결국 서하는 작게 대답했다.
미자 이모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서 서운해?”
“아니요.”
“섭섭해?”
“아니라니까요.”
“보고 싶어?”
“이모!”
“왜!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면 되지!”
서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보고 싶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주 작게 그 말이 맴돌고 있었다.
미자 이모는 그런 서하를 한참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서하야.”
“……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야.”
서하는 고개를 들었다.
“사람한테 상처받으면 다음에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닫게 되잖아. 그런데 그러다 보면 좋은 사람이 와도 못 알아볼 때가 있어.”
“…….”
“물론 그 총각이 좋은 사람인지는 나도 몰라. 네가 천천히 알아보면 되는 거야.”
미자 이모는 서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만 네 마음까지 없는 척하지는 마.”
그 말에 서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미자 이모가 가게를 나간 뒤에도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밤 열 시 십오 분.
가게는 한산해졌다.
서하는 테이블을 닦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내일 사용할 재료를 준비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그런데도 시간이 남았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다시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강태준의 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도 없었다.
매일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정작 연락처 하나 모르는 사이였다.
서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지금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하는 거의 반사적으로 화면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메시지를 열었다.
알 수 없는 번호
사장님, 오늘은 못 갈 것 같아요.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두부김치 드시지 말고 기다리세요.
아니, 두부김치는 드셔도 되는데……
아무튼 오늘은 못 가서 아쉽네요.
서하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뭐야?”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두부김치 드시지 말고 기다리세요.
아니, 두부김치는 드셔도 되는데.
“이 인간 진짜…….”
웃음이 나왔다.
분명 어이가 없어서 웃는 거였다.
절대로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게 아니었다.
서하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윤서하] 누가 기다린다고 했어요?
전송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손이 멈췄다.
너무 빠른 것 같았다.
마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서하는 문장을 지웠다.
다시 썼다.
[윤서하] 네. 회사 일 잘 보세요.
이번에도 전송하지 못했다.
너무 다정했다.
서하는 다시 지웠다.
한참 고민한 끝에 겨우 메시지를 보냈다.
[윤서하] 네.
전송 완료.
끝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서하는 만족스럽게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화면을 들여다봤다.
답장이 왔을까?
당연히 오지 않았다.
서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정말 왜 이러냐…….”
그 순간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강태준
사장님.
혹시 조금이라도 서운하셨어요?
서하의 눈이 커졌다.
“이 인간이……!”
그녀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윤서하] 전혀요.
답장은 바로 도착했다.
[강태준] 다행이다.
그리고 몇 초 뒤.
[강태준] 저는 조금 서운한데.
서하의 손이 멈췄다.
[윤서하] 뭐가요?
[강태준] 오늘 사장님을 못 보잖아요.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을 하는 걸까.
평소처럼 얼굴을 보고 장난을 쳤다면 적당히 받아치고 끝냈을 것이다.
그런데 휴대전화 화면에 적힌 글자를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심장이 뛰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
[윤서하] 회사 일이나 하세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강태준] 네. 사장님도 일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
[강태준] 보고 싶어도 참아 주세요.
서하는 그대로 굳었다.
“……뭐?”
다시 읽었다.
보고 싶어도 참아 주세요.
세 번을 읽었다.
그리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 진짜! 이 인간이!”
서하는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누가 보고 싶대!”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혼자 씩씩거리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다시 집어 들었다.
메시지를 입력했다.
[윤서하] 누가 보고 싶다고 했어요?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전송했다.
그런데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일 분.
삼 분.
오 분.
서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흥. 바쁘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화면을 계속 확인했다.
십 분이 지났을 때였다.
마침내 답장이 도착했다.
[강태준] 저는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하는 숨을 멈췄다.
[강태준] 사장님은 아니어도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서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면 됐다.
그 남자는 원래 능글맞고, 사람을 놀리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서하는 휴대전화를 가슴에 끌어안았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내려놓았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날 밤, 서하는 잠들기 직전까지 메시지 창을 열어 두었다.
답장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마지막 메시지를 한 번만 더 읽어 보려는 것뿐이었다.
정말로.
같은 시각.
서울 도심의 한 대기업 본사.
강태준은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시계를 보니 밤 열한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표님!”
최도윤이 서류를 들고 따라왔다.
“투자 계약 검토는 끝났고, 내일 오전에 최종 보고만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잡혀 있던 외부 미팅은 내일로 연기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대표님은 이제 퇴근하시는 겁니까?”
“응.”
도윤은 안도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오늘은 드디어 집에 가시네요.”
태준이 웃었다.
“집에는 안 갈 건데.”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예?”
“갈 데가 있어.”
“대표님, 지금 밤 열한 시입니다.”
“알아.”
“내일 오전 여덟 시에 일정 있습니다.”
“알아.”
“지금 퇴근하셔도 늦었습니다.”
“도윤아.”
“네.”
태준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나 오늘 하루 종일 일했어.”
“그렇죠.”
“밥도 제대로 못 먹었고.”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도윤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두부김치요?”
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답.”
도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대표님, 제발 부탁인데 그 사장님한테 너무 빠지지 마십시오.”
태준은 잠시 생각했다.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네?”
“아무것도 아니야.”
태준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히기 직전, 도윤이 외쳤다.
“대표님! 내일 아침에 꼭 제시간에 오셔야 합니다!”
태준은 손을 흔들었다.
“알았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태준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서하와의 메시지 창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는 아직 읽음 표시만 떠 있었다.
그는 작게 웃었다.
답장을 기다리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특히 상대가 윤서하라면 더더욱.
밤 열한 시 삼십 분.
두부참이슬.
서하는 마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태준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바쁘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녀는 테이블을 닦다가 문득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메시지 창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마지막 메시지.
저는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서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그때였다.
딸랑.
문 위의 종이 울렸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문 앞에 강태준이 서 있었다.
조금 흐트러진 머리와 느슨하게 풀린 넥타이. 평소보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사장님.”
서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준이 천천히 다가왔다.
“저 왔어요.”
서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회사 일 끝났어요?”
“네.”
“이 시간에요?”
“네.”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한다면서요.”
“그것도 맞아요.”
서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왜 왔어요?”
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보고 싶어서요.”
서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휴대전화로만 읽었던 말이 그의 입에서 직접 나왔다.
장난스럽게 웃으면서도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서하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 말 아무한테나 하지 마요.”
태준의 미소가 조금 옅어졌다.
“아무한테나 안 해요.”
“…….”
“사장님한테만 하는 거예요.”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서하는 시선을 피했다.
가슴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그런데 태준은 더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
“……왜요?”
“두부김치 하나, 참이슬 하나 주세요.”
서하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
태준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왜 웃어요?”
“아니, 진짜……!”
서하는 배를 잡고 웃었다.
“보고 싶다고 사람을 그렇게 놀라게 해 놓고, 결국 두부김치 먹으러 온 거예요?”
태준도 따라 웃었다.
“두부김치도 먹고 싶었거든요.”
“진짜 못 말려!”
서하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얼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잠시 후, 두부김치가 나왔다.
태준은 젓가락을 들기 전에 그녀를 바라봤다.
“사장님.”
“네?”
“오늘 하루 종일 사장님 생각했어요.”
서하는 접시를 내려놓던 손을 멈췄다.
“……또 시작이네.”
“진짜인데요.”
태준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회의 중에도 생각나고, 밥 먹을 때도 생각나고, 집에 갈 때도 생각나고.”
“그만하세요.”
“왜요?”
“……부끄러우니까요.”
말이 끝나는 순간, 서하는 얼어붙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태준 역시 젓가락을 든 채 멈춰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태준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사장님.”
“왜요!”
“방금 부끄럽다고 하셨어요?”
“아니요!”
“제가 잘못 들었나?”
“네! 잘못 들었어요!”
태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더 이상 놀리지 않았다.
대신 두부김치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음. 역시 맛있네요.”
서하는 주방으로 돌아가려다 잠시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작게 물었다.
“……그렇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