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부운(浮雲)
by Jiungine
창녕궁 문정전(文政殿), 연산군은 갑자기 일어나 촛대마다 일렁이는 촛불을 끄고는 자리에 돌아와 옆에 있던 황금색 촛대위의 촛불을 입으로 불어 마저 껐다.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으며 촛불을 끈 문정전 안에도 사위가 어두워졌다. 어디선가 두견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연산군의 부름으로 함께 자리하여 술을 마시던 숙용 장 씨와 숙용 전 씨가 나지막한 탄성소리를 질렀다. 장녹수와 함께 자리에 앉은 숙용 전 씨(田氏)는 수근비(守斤妃)라는 이름의 노비 관기였으나 이번 채홍사에 차출되어 최고의 흥청으로 선발되어 전비(田妃)라는 이름으로 연산군의 후궁 첩지를 받은 장녹수의 경쟁자였다. 이미 서른이 훌쩍 넘은 장녹수와는 비교가 안 되는 젊은 여인의 요염한 자태와 애교가 장녹수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보통 연산군이 후궁들을 함께 부르는 경우가 없었는데, 오늘은 어떤 해괴한 방사(房事)가 생각났는지, 둘을 부르더니 온몸에 술을 뿌리며 한차례 질펀한 정사(情事)를 마친 후였다. 촛불을 꺼 캄캄한 대전 안에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살짝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장녹수는 이게 연산군의 소리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자다가 악몽을 꿀 때도 이런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었던 것이었다. 사람의 윤곽만 희마하게 보일 때 쯤 연산군이 술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더니 울음소리가 더 커지는 것이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던 터라 장녹수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연산군이 노래하듯 시(詩)를 읊었다.
“인생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과 같고, 이별은 구름이 흩어지는 것과 같구나."
人生如草露, 離別似雲散(인생여초로, 이별사운산)
이제는 다 들리도록 크게 흐느끼며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는 지라 장녹수도 가슴이 울컥하며 코끝이 찡해졌다. 감흥인지 연기인지 모를 전비(田妃)의 울음소리도 나란히 들려왔다. 장녹수가 입을 열었다.
“전하, 전하 답지 않으십니다. 어서 촛불을 켜고 하걸(夏桀)과 말희(妺喜)의 놀이를 계속 하셔야지요.”
장녹수가 말하자 옆에서 울음을 그친 전비가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이제 저희가 전하의 몸에 술을 뿌려드리고 맛을 볼까요?”
하걸(夏桀)과 말희(妺喜)의 놀이란, 하나라 걸왕이 절세미녀 말희라는 여인을 얻은 뒤 연못을 술로 채우고 나무마다 고기를 매달아 수많은 여인과 광대들을 불러 연회와 방사를 즐겼다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연산군은 두 숙용의 말을 무시하고 또다시 노래를 불렀다.
장단석벽일욕저(長湍石壁日欲低) - 임진강 붉은 절벽에 해는 저물어 가고
유수성중원조제(流水聲中怨鳥啼) - 흐르는 물소리 원망하는 새가 우는구나
일시영화부운몽(一時榮華浮雲夢) - 한때의 영화는 뜬구름 같은 꿈이었으니
명조욱일조수가(明朝旭日照誰家) - 내일 아침 돋는 해는 뉘 집을 비추려나
연산군은 흐느끼면서 시를 노래했으나 점차 흐느낌이 웃음소리로 변하면서 괴기한 소리를 내었다. 술을 한 잔 마시고 계속 웃어대더니 결국엔 술잔을 어디론가 집어 던지고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잃어 공포에 빠진 어린아이의 울음과 흡사했다. 한참을 울던 연산군이 울음을 그치더니 두 숙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녹수야, 전비야, 날씨가 더운데, 내 마음은 어찌 이리 시린 것이냐? 지금 이 나라가 태평한 지 오래되어 어찌 뜻밖의 변고가 있겠냐마는,, 만일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걸 받아라.”
연산군은 주섬주섬 어디서 무엇을 꺼내더니 장녹수와 전비에게 건넸다. 작은 보자기로 싼 꾸러미였다. 장녹수와 전비가 보자기를 풀었다. 그 안엔 황금이 들어있었다. 어둠속에서도 황금의 빛은 주위를 빛나게 했다. 황금빛에 비친 연산군의 얼굴이 눈물에 얼룩져 있었다. 연산군은 때를 보아 변고가 생기거든 지체 말고 떠나라고 말했다. 두 숙용은 침묵했고, 밖에서 소리를 듣고 있던 내시 김자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주상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김자원은 김처선이 죽고 나서 반정(反政)의 세력들이 어디선가 숨죽인 채 때를 엿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살길을 도모해야 했다. 반정의 기운을 주상에게 밀고해 봐야 어차피 이제 장독 안의 된장 신세였다. 김자원은 누가 끈 떨어진 갓을 매어 줄 수 있을지 조정 대신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누구나 가능성이 있었고, 누구도 깜냥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일 가능성이 높은 인물은 자순대비 밖에 없었다. 김자원은 밖으로 나갔다. 어둠이 가고 새벽 여명(黎明)이 밝아 오고 있었다.
광명산(光明山) 중턱에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대차게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집이 있는 금천현(衿川縣)에 가던 지웅과 아란카는 느닷없는 소낙비에 온몸이 홀딱 젖어 흡사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하필 인근에 민가(民家)도 없어 어디 몸을 피할 데도 없었다. 해가 중천에 있을 시간이었다. 몇 몇 초가집이 보였지만 한눈에 봐도 쓰러질 듯이 무너진 집들이어서 오래 전에 이곳에 살았던 백성들이 이곳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웅은 아란카를 데리고 작은 개천이 흐르는 곳 옆에 지어진 초가집에 들어갔다. 벽은 허물어지고 지붕은 구석이 날아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이 그대로 들어오는 집이었지만, 그런대로 한 쪽 구석에서 비를 피할 수 있어보였다. 지웅은 부싯돌로 불을 피워 주변에 마른 나무를 태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 부서진 문갑(文匣) 하나가 있어 젖은 옷을 말리기에 적당했다. 이 집에 살던 누군가는 글공부하던 서생(書生)이었는지 이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문갑이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방문 너머로 ‘후두둑‘ 소리를 내며 비가 하염없이 쏟아졌다. 탁주 한 잔이 절로 생각났다. 가만히 앉아서 타오르는 불길을 쳐다보던 아란카가 물었다.
“사또, 아버님 댁에 들렀다가 해란 낭자의 묘에 가실 건가요?”
밖을 내다보던 지웅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그대로 대답했다.
“맞소. 과일 몇 개 사서 제(祭)를 올릴 생각이오.”
아란카는 잠시 묵묵히 있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번 해란 낭자의 제를 올리고 나면 고향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그제야 지웅이 고개를 돌렸다. 뜬금없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니 막을 명분이 없었지만, 갑자기 간다 하니 갑자기 아랫배가 싸하니 아파왔다.
“어찌 그러시오? 거사가 코 앞인데 내 마음을 흔들다니 허락할 수 없소.”
“사또에게 흔들릴 마음은 정녕 있나요? 자그마치 일 년이에요. 일 년 동안 사또가 저에게 눈길 한 번 준 적이 있었나요? 어차피 오빠만 있어도 거사를 도와주기에 충분해요. 저는 칼을 버린 지 오래되었고, 무엇보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조선에 있기 싫어요.”
아란카는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을 일시에 터뜨렸다. 사실 지웅 자신도 아란카에게 무심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속마음을 그렇지 않았다. 조금씩 아란카가 생각이 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다른 핑계로 내아(內亞)에 오도록 만들었다. 마음을 열고 싶어도 해란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겨 도저히 그럴 수 없었던 것이었다. 지웅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이 없었다면 이곳에 같이 올 이유도 없었을 거요. 누군가 그럽디다.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해서 꽃이 없는 게 아니고,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달이 없는 게 아니라고,,,”
조용히 듣고 있던 아란카의 표정이 변했다. 입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떨리면서 가슴속에 억눌러 왔던 설움과 아픔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간신히 참아 목젖에 쌀겨가 들어앉은 듯 따끔거렸다.
“사또, 그 말은,,,,”
지웅이 다시 고개를 돌려 아란카의 푸른 눈을 쳐다보았다.
“맞소. 나 또한 그대를 마음에 두고 있소. 다만 아직은 할 일이 남았을 뿐이오. 이 일이 마무리되면 그대를 아내로 맞을까 하오. 이번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은 그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이유도 있소.”
두 손을 모으고 가슴에 대고 있던 아란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처음에 보았던 여장부의 모습은 어디가고 사랑을 갈구하는 가녀린 소녀만이 남아있었다. 아란카의 눈물을 보자 지웅의 마음 한켠이 무너졌다.
‘누가 이 착한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만드는가.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
지웅은 다가가 살며시 아란카를 안아주었다. 머릿결에서 은은한 동백향이 났다. 어머니에게서 나던 향기였다. 아란카가 소리 없이 흐느끼면서 지웅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았다. 지웅이 말했다.
“여인의 눈물은 사내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더이다. 울지 마시오. 내 다시는 그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지 않으리다.”
사내의 무덤이란 말에 아란카가 울음을 뚝 그쳤다. 훌쩍 거리면서도 얼굴 표정엔 기쁨이 어려 있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그동안 무심했던 자신이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미안했다. 지웅은 아란카를 으스러지도록 안았다. 당당하고 거침 없이 칼을 휘두르던 아란카는 지웅의 가슴에 안긴 작은 새 한 마리처럼 거친 숨을 쉬며 푸드덕 거렸다. 아란카가 안긴 채 고개를 들어 지웅을 쳐다보았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란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입맞춤을 지웅이 먼저 했다. 아란카가 행복한 표정으로 지웅의 혀를 받았다. 어느새 비가 그쳐 모습을 드러낸 태양빛에 나무들이 반짝거렸다. 초가집이 방 안에 그늘을 만들어 냈다. 다 말린 겉옷을 주워 입고 지웅과 아란카는 다시 말고삐를 쥐었다.
‘이리 오너라’라고 호문하자 집사 두식 어른이 대문을 열고 반가운 비명을 질렀다.
“대감마님, 나와 보십시오. 도련님 오셨습니다요.”
방문이 와락 열리더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쁨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아버님은 뒷짐을 지셨고 어머님은 천정에 매달린 등잔대 줄을 잡고 서 계셨다. 지웅은 마당에서 그대로 무릎을 꿇어 절을 했다. 눈치 빠른 아란카가 옆에서 따라 절을 했다.
“소자. 아버님 어머님을 뵙고 문안 여쭙니다. 그간 강녕 하셨는지요?”
아버님이 짐짓 태연한 척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씀하셨다.
“보면 모르느냐. 함흥차사(咸興差使)가 여기까진 어인 일인고?
조선 초 태조대왕 이성계가 상왕이 되어 함흥으로 돌아간 후, 태종 이방원이 그를 모셔오기 위해 보낸 사신(差使)들이 모두 죽임을 당해 돌아오지 않은 고사에서 비롯된 함흥차사라는 말을 지웅에게 한 것이었다. 일 년 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으니 일 년 만에 보는 외동아들을 헤진 미투리 보듯 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시며 손짓을 하셨다. 여전히 어머님께서는 건강하고 고우셨다. 아버님이 ‘에헴’ 하시면서 먼저 방으로 들어가셨다. 지웅은 아란카를 쳐다본 후 방에 들어가자며 눈짓했다.
방에 들어온 아란카는 무릎을 구부리고 치마 안으로 모으는 염슬단좌(斂膝端坐)의 자세로 단정히 앉았다. 고개를 공손히 숙여 어른들에 대한 예를 갖춰야 함에도 여전히 숙달이 되지 않아 꼿꼿이 고개를 들고 지웅 아버님과 어머님을 바라보다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벽안북인(碧眼北人) 이시구나. 우리 함흥차사께서 어쩌다 저리 귀한 분을 모셨을꼬?”
지웅이 아버님에게 대답했다. 웃음기가 가득하지만 존경을 담은 목소리였다.
“아버님, 소자 또한 사무치게 그리웠나이다. 너그러이 용서하십시오. 여기 이 여인은,,”
“저는 북방에서 온 구왈기야 투먼의 딸 구왈기야 아란카라고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을 뵈어 광영이옵니다.”
아란카는 지웅의 말을 끊고 직접 자신을 소개하더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정말 눈이 옥처럼 푸르고 맑아 볼수록 곱군요. 잘 왔어요.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쉬었다 가도록 해요.”
어머님의 말에 아란카는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이 오늘 따라 다르게 느껴졌다. 다른 조선 여인들에 비해 머리 길이는 다소 짧았지만 머리를 땋아 붉은 댕기로 묶은 모습이며 풍성한 호박처럼 치마를 부풀려 앉은 모습이 여느 양반집 규수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전통적인 북방 여인의 옷차림에 칼을 차고 왔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까부터 무엇이 좋아 실실 웃고 있는 것이냐? 귀한 분을 여기까지 모시고 왔다면 필시 목적이 있었을 터, 바른대로 고하거라.”
아버님은 지웅을 향해 말했지만 눈은 아란카를 보고 계셨다. 관상을 보고 계신 것이었다. 어디 오랜만에 아버지의 관상 실력을 볼까 생각하며 살짝 고개를 숙여 미소를 띠었다.
“네 녀석이 말하지 않겠다면 이 아비가 말해주마. 예사롭지 않은 상(相)이구나. 인당(印堂)이 드넓고 깨끗하니 대륙의 눈바람을 다스릴 기상이다. 코끝은 단단하고 콧날이 곧게 뻗어 지조가 서릿발 같으니, 한 번 마음을 준 정인(情人)을 위해서는 목숨도 초개같이 버릴 상이로다. 전쟁터를 누비는 장수의 검이 되거나 한 사내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꿀 북극성을 타고 태어났으니,,,, 천하를 얻거나 혹은 천하를 등지고 이 아이만을 얻게 될 터,,,,여인이 음(陰)의 눈보라라면 너는 양(陽)의 대지로 불과 물이 만나 서로 채워주는 보필지상(輔弼之相)이로다. 그래 언제 혼례를 올리기로 한 것이냐?”
역시 아버님이었다. 보지 않고도 궤뚫어 보는 아버님의 혜안은 지웅도 따라하기 힘든 미지의 영역이었다. 혼례를 언제 올리기로 한 것이냐는 아버님의 짖궂은 물음에 아란카의 귓불이 발개졌다.
“아버님, 먼 길에 지쳤으니 우선 몸을 씻고, 오랜만에 어머님이 토장을 넣고 끓이신 조치(助致)를 먹고 싶습니다.”
토장 조치란 박을 썰어 넣고 된장을 풀어 진하게 끓인 찌개를 말했다. 단 둘이 얘기를 하고 싶다는 지웅의 신호였다. 말뜻을 알아차린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말하셨다.
“부인, 우리 함흥차사의 안사람 되실 분을 안내 좀 해주시오. 찔레 꽃잎 넣어 목욕물도 받으라 이르시고 새 옷도 내어 주시오.”
어머님은 아버님을 빤히 바라보셨다. 알아서 할 것을 주제넘게 월권을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아버님이 어머님의 눈길을 받지 못하고 이내 무너졌다. 지웅은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게 사시는 부모님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어머님이 이내 환한 표정으로 아란카를 데리고 나가셨다.
“그래 어디 몸이 상한 데는 없는 것이냐? 수련에 진전은 있고?”
“예 아버님, 보다시피 아픈 데는 없사옵니다. 다만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담을 밟고 도약하는 벽상운(壁上運)은 진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초상비(草上飛)는 어렵습니다. 한 호흡으로 끌고 가다 중간에 단전에서 기운을 밀어주지 못해 가라앉고 맙니다.‘
아버님은 지그시 지웅을 바라보다 수염을 만지며 말씀하셨다. 풀을 밟고 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당연하지. 정신이 집중을 못하면 이룰 수 없느니라. 스스로 명상을 해 보면 알수 있을 터, 여인이 옆에 있으면 무예는 궁극적으로 성취하기 어렵느니라. 이 아비를 보아라. 네 어미 만나서 30년 전 내공이 그대로다.“
지웅은 속으로 웃었다. 엄할 때는 무척 엄하다가도 한없이 농(弄)을 치시고 매 상황을 여유롭게 풀어가는 아버님이 존경스러웠다. 이번엔 지웅도 아버님을 놀리기로 작정했다.
”아버님, 그럼 소자는 혼인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소자는 무예의 궁극을 맛보고 싶습니다.“
아버님은 당황한 듯 눈이 커진 채 얼버무리셨다.
”아니다. 방법이 없는 건 또 아니니라. 네가 혼인을 빨리한다면 이 아비가 마지막 섭공(涉空)의 비결을 알려주마. 어떠하냐?“
섭공(涉空)이란 허공을 걷는다는 의미로 아버님이 만드신 운암신공(雲岩神功)의 마지막 단계였다. 아버님이 어릴 적 무술을 배웠던 운광(雲光) 스님과 현암(賢岩) 스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정하신 신 씨(申 氏) 가문만의 무술비급으로 아버님이 조선과 명나라의 무술을 집대성하여 만든 신공이었다. 경공술(輕功術)의 최종 단계로 지웅이 도달하지 못한 이유를 여인 때문이라고 말하셨지만 실상 아버님은 어머님과 혼인하여 지웅을 낳고도 하늘을 날아 다니셨다. 지웅은 웃었고 아버님도 따라 웃으셨다. 빨리 혼인하길 바라는 아버님이 스스로의 이론에 갇혀 허둥대셨다. 아마도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반가워 아버님은 감정 절제를 못하시고 흥분하신 듯 했다. 서로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서 아버님은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보셨다.
”때가 온 것이로구나. 날은 정해졌더냐?“
”예 아버님, 내달 초 이틀입니다.“
”흠, 어제 저녁부터 부엉이가 울더니만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이로구나. 여인은 왜 데려 온 것이냐?“
”여인과 혼인을 할 작정입니다. 잠시 여인을 의탁하겠습니다.“
”흠,,병 주고 약 주는구나. 달이 차면 기우는 법, 때가 된 건 알겠다만, 아비는 별 걱정이 안 되는구나. 거사가 끝나면 바로 달려오거라. 네 녀석과의 술자리는 그 다음으로 미루겠다.“
지웅이 절하고 자리를 떴다. 광현은 아들 지웅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이마에 푸른 빛이 가득했다. 아무리 봐도 단명할 상이 아니었다. 북쪽 하늘에 자미성(紫微星)이 이미 오래 전부터 빛이 약해지는 걸 보아왔기에 천지개벽은 필연이었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은 자연의 이치이거늘,,,“
지웅과 아버지 광현은 오랜만에 밥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아란카도 불러 밥상 앞에 앉게 했다.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불경스럽다며 아버지를 비난했을 상황이었다. 아버지와 지웅이 마주 앉아 독상(獨床)을 받는 게 관례였다. 여러 명이 둘러앉아 먹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상을 따로 받는 것이다. 남녀분상(男女分床)이라 하여 남자는 사랑채에서, 여자는 안채나 부엌 근처에서 혹은 마루 아래쪽에서 따로 먹어야 했다. 외상부동석(外床不同席)으로 남녀가 한 상을 같이 쓰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모든 관례를 집안에서는 무시했다. 어머니는 수십 년을 아버지와 겸상(兼床) 하셨으니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조선에서의 엄격한 예법을 겪은 아란카는 은근히 놀라는 눈치였다.
”낭자, 어머님께서 손수 끓이신 토장박갱(土醬朴羹)이오. 드셔 보시오. 여기까지 온 걸 후회하지 않을거요.“
아란카는 유쾌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집에 있는 내내 즐거워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 식구처럼 아란카를 대했고, 아란카도 아래 식솔들과 친해지며 부담 없이 지냈다. 박(朴)을 넣고 토장과 함께 끓이는 토장박갱(土醬朴羹)을 지웅만큼 좋아하여 어머니에게 요리하는 법을 배울 정도였다. 지웅은 아란카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아버지는 아란카에게 설영(雪永)이라는 조선 이름을 지어주셨다. 아란카가 좋아했다.
집을 떠나기 전날, 지웅은 작은 술상을 앞에 놓고 설영과 마주했다. 꽤 늦은 시간이었다. 설영도 오늘이 마지막인 걸 느꼈는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지웅이 술 한 잔 따라 마셨다. 설영이 바로 술을 따라주었다. 지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낭자. 내일 떠날 것이오. 낭자는 여기에서 나를 기다려 주면 고맙겠소.“
설영이 고개를 돌려 앉아있다가 바로 고쳐 앉았다. 다시 발랄한 표정으로 지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와 함께 떠나지 않으시고 혼자만 가신다구요? 그럼 저는 양주로 내려가지 않고 여기서 사또를 기다리란 말입니까?“
”그렇소, 거사가 성공하면 돌아와서 낭자와 혼례를 올릴 것이오.“
설영은 거사에 동참하고 싶었다. 칼을 오래 잡지 않았지만 여기에 온 까닭이 박원종 대감의 거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웅의 의중이 설영의 안전에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에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소?“
지웅의 물음에 설영은 옛 생각에 빠졌다. 당연히 기억하고도 남았다. 북방의 거친 사내들도 설영의 가슴을 뛰게 만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웅의 칼이 설영의 목을 겨누었을 때, 설영은 이 사내와 보이지 않는 줄 하나로 묶였다고 생각했다. 해란 낭자가 죽었을 때 어쩌면 설영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려 한동안 괴로워 했었다. 지웅의 앞날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해 본 적도 많았기에 떠나야 한다는 고민도 수도 없이 했었다. 이제 마음을 비웠더니 지웅의 마음이 들어왔다.
”기억하고 말구요. 눈보라 속에서 만난 늑대 한 쌍은 죽어도 짝을 바꾸지 않는다는 여진 속담이 있습니다. 그날 사또의 눈을 보았을 때 저는 죽을 때까지 당신을 놓지 않으리라고 결심했었지요.“
”먼 길을 돌아왔소만,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던 것 같소. 조선엔 천생연분이란 말이 있소. 당신을 내 운명으로 생각하고 꼭 돌아 올 테니 기다려 주시오.“
설영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그동안의 설움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에 설영은 행복했다. 설영이 지웅의 품에 안겼다. 지웅의 부드러운 입술이 설영의 입에 포개졌다. 설영이 손을 뻗어 촛불을 껐다. 지웅과 설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강렬하게 서로를 탐했다. 후드득 거리며 빗방울이 문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지웅은 양주와 한양을 오가며 거사 준비를 했다. 죽은 해란의 묘에 들러 거사 성공을 위해 하늘에서 지켜봐 달라며 술을 뿌리고 잠들기도 했다. 박원종과 강귀손은 훈련원과 군기시, 군자감과 사복시 등 주요 인물들을 포섭했다. 연산군의 처남이자 진성대군의 장인인 신수근에게 마지막 최종 결정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사위를 위해 누이를 배신할 순 없다‘며 고사했다. 성희안은 외부에서 거사 당일의 동선을 점검했다. 만에 하나 불상사가 생길 거리가 있는지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거사 전날의 석전(石戰)이 열리는 임진강부터 도성에 이르는 길에 밥 한 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인 일식경(一食傾)의 거리마다 척후소(斥候所)를 두어 발 빠른 이를 통해 소식을 전하게 했다. 내시 김계창은 상선 김자원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하여 감시에 들어갔고, 신윤무와 박영문 등 임사홍과 신수근의 동태를 놓치지 않았다. 내금위 권열과 겸사복 신위대를 조용히 불러 거사 당일의 암구호와 수문장의 이름을 확인하고 당일 왼쪽 어깨에 하얀색 천이 붙은 자들은 모두 반정군임을 알려주었다. 지웅은 불곡산(佛谷山) 아래 양주 관아에서 누원(樓院)을 경유하여 도성 동북쪽 혜화문(惠化門)까지 70리 길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성인 걸음으로 약 8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오전 오시(午時)에 출발하면 저녁 술시(戌時)쯤에 도착할 것이어서 반정군 500명을 윤혜명과 서만복에게 맡기고 시간 약속을 정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양에 올라온 날은 9월 초하루였다. 내일 명나라로 출발할 사신단의 정사 소함(蘇含)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지웅은 한성 상단 최필환 접주와 이조참판 유순정 대감과 함께 태평관(太平館)에 들어섰다. 해가 막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