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부운(浮雲)
by Jiungine
지웅의 아버지 광현은 부인과 함께 지웅이 말해 준 북촌의 선비들이 산다는 학자나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집사 두식이가 두 마리의 말고삐를 쥐고 천천히 걸어 올라오는 길목엔 커다란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줄줄이 서 있었다. 큰 언덕을 내려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어쩜 설명도 이리 기막히게 하였는지 어머니 성(成) 씨는 매사에 똑 부러지던 아들이 보고 싶었다. 두식이와 말은 한쪽 구석에 놔 두고 아들이 말한 것과 일치하는 기와집 중에 제일 작은 집 앞에서 광현은 외쳤다.
“이리 오너라.”
광현이 부르자 잠시 후에 대문이 열리고 간물 빠진 두부 같은 얼굴의 여인이 나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디서 왔대요?”
단심(丹心) 유모는 처음으로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초로의 남녀가 찾아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차림을 보면 지체 높은 대감 집 양반들인데 그 흔한 가마나 말 한 마리 없이 둘이서 달랑 문 앞에 서 있었다. 몸종도 없고 남자의 손에 들린 대나무 하나가 전부였다.
“이곳에 오(吳)가 해란이라는 낭자가 살고 있다기에 뵙기를 청하오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별일이 다 있대요.”
여인은 투덜거리는 건지 놀랍다는 건지 분간 못할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 담장 옆에 곱게 핀 찔레꽃과 복사꽃이 부지런한 꿀벌들을 부르고 있었다. 이 근처는 내로라하는 지체 높은 당상관들이나 그에 준하는 인물들이 사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아무리 집이 다른 곳에 비해 작다고는 하나 관기 출신 여인과 그녀의 딸이 별 제지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벌써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쫒겨 나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광현은 이 집안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잠시 후에 문이 열리며 붉은 장미 같은 여인이 수줍게 나타났다. 눈은 호기심을 담아 겁먹은 듯 했으나 크고 맑았고, 코가 적당히 솟아 끝은 살짝 뭉특한 게 복(福)이 들어 있었다. 작고 두툼한 앵두 같은 입술은 의지가 깊어 보였고 그 사이로 드러나는 하얀 치아는 밝은 성격을 나타냈다. 이마가 넓고 가르마를 곱게 타 넘겨 은은한 천기(天氣)를 뿜어냈다. 다만 인중이 좁아 단명할 상이 보여 살짝 불안했다. 사대부들에게 미모의 기준이 되는 삼백(三白), 삼흑)三黑), 삼홍(三紅)이라 하여 살결과 치아, 눈자위가 옥처럼 뽀얗고 눈동자와 머리카락, 그리고 눈썹이 칠흑처럼 검었다. 입술과 뺨과 손톱에 붉은 기운이 돌아 생기가 있었다. 여인 들 틈에서 자라나 스스럼없다가도 저잣거리에서 쓰개치마를 두른 여인만 봐도 멀찍이 돌아가던 아들놈이 그래도 자기 짝을 고르는 눈은 있어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아내 유진을 처음 보던 날이 떠올랐다. 아내도 이처럼 가냘프고 아름다웠었다.
“소녀가 알지 못하는 분들 이시온데, 저를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해란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비스듬히 돌아섰다. 아무래도 낯선 남정네 앞에서 맨 얼굴을 보이는 건 예의에 어긋났다. 광현이 말했다.
“갑자기 찾아뵈어 죄송하오이다. 나는 금천현(衿川縣)에서 온 신지웅의 아비, 신광현이라 하오. 이쪽은 녀석의 어머니요.”
해란은 기겁했다. 보고 싶은 낭군인 지웅의 이름을 들어도 혼절할 만큼 그리운데, 님의 아버지와 어머니라니, 해란은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고 정신이 혼미해서 서 있기도 힘들었다. 유모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서기 좋아하는 유모가 오늘 따라 부엌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소녀, 경황이 없어 당황스럽고 긴장하여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우,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해란은 와중에도 병으로 누워계신 어머니의 방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여인 홀로 사는 방에 들이기도 민망했다. 하지만 이런 때 일수록 사실대로 정확하게 하는 것이 순리였다.
“잠시 마루에 앉아 계시면 방이 정리되는 대로 안으로 모시겠나이다.”
해란은 광현과 부인 성 씨를 마루에 앉게 하고 유모를 불러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고 하니 황당한 어머니는 얼른 요강을 치우고 이불과 요를 개라고 한 뒤 참빗으로 머리를 단정하기 시작했다. 없는 살림이지만 없는 걸 있어 보일 필요도 없었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게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모는 평소보다 열배는 빠른 몸놀림으로 방을 정리하고 문창을 열어 환기시키더니 부엌으로 나가 차를 준비했다. 잠시 후 문이 활짝 열리며 정숙한 부인과 해란이 나왔다. 해란의 어머니는 두 손을 맞잡아 반배(半拜)를 올렸다. 광현과 부인도 공손히 반배를 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예법에 따라 광현과 부인이 벽을 등지고 상석에 앉았고 해란과 어미는 문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해란은 이내 일어나 이마까지 바닥에 닿는 숙배(肅拜)를 올렸다. 마침 작은 소반에 국화차가 나왔다. 해란의 어미가 입을 열었다.
“이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시어 황망하기 그지 없나이다. 소인이 미천하고 어리석어 혼기가 지난 딸을 두고도 인연이 있을까 걱정하였는데, 두 분이 오시고 나서야 사연을 들어 참으로 부끄럽나이다. 허나, 정승의 반열에 오르신 집안과 격이 맞지 않은 혼인이옵니다. 숙고하시어 물러주심이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불시에 찾아뵈어 송구하오이다. 자고로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라 했습니다. 자식 아는 데는 아버지만한 사람이 없는 법이지요. 내 아들놈이 결정했으면 저는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따를 생각입니다. 반상은 신경 쓰지 마시지요. 사부인(査夫人).”
해란의 어미는 대나무를 옆에 두고 앉아 있는 저 초로의 사내가 왠지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분명 수련이 아는 얼굴이었다. 이름이 광현이라 했다.
‘가만, 광현이라면,,,,’
수련은 고개를 들어 앞에 앉은 두 사람을 다시 쳐다보았다. 심장이 불에 덴 듯 뜨끔했다. 아아, 확실했다. 남자는 수련이 일생을 흠모했던 사내 신광현 이었고, 그 옆엔 그의 부인 성유진 이었다. 운명의 장난이 이렇게 잔인하던가. 수련의 두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광현과 그의 아내는 순간 당황하여 서로를 쳐다보았다. 해란도 평생 그렇게 강인하시던 어머니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어쩔줄 몰라 안절부절했다. 지웅의 어미가 말했다.
“저희가 너무 무례했습니다. 마음이 불편하시면 저희가 다음에 다시 기약하겠습니다.”
광현 부인의 말에도 반응 없이 조용히 울기만 하던 수련이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더니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정녕 제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
“저 오(吳)가 수련입니다. 28년 전, 명루옥에서 만났던,,, 부부인 마님도 저와 만나신 적 있지요? 서방님께 연서(戀書)를 쓴 사람이 맞냐며 타박하셨지요. 誰識新荷出水開(수식신하출수개),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유진의 눈이 커졌다. 기억이 떠오르는 듯 했다. 머리가 총명한 유진이었다. 기억 못할 리가 없었다.
“妾愧未識君有約(첩괴미식군유약) 부끄럽게도 님께 정혼이 있는 줄을 알지 못했으니,
息怒從此莫再來(식노종차막재래) 노여움 거두시고 이제부터 다시는 오지 마십시오.
기억납니다. 너무나 당당하고 결연한 모습에 제가 도망치듯 나왔었지요. 여기서 이렇게 뵙게 되나니,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유진도 놀라 눈을 커다랗게 뜨고 수련의 손을 마주 잡았다. 우연을 넘어 기막힌 인연이었다.
“말씀 가리십시오. 천한 사람입니다. 보다시피 딸아이 한 명을 부처님께서 주신 덕분에 외롭지 않게 살았습니다.”
광현은 어지러웠다. 며느리감을 보려고 아침부터 들떠 한달음에 달려온 길이었다. 하지만 오래 전 잠시 인연을 맺은 여인을 보게 되다니, 소가 봐도 웃을 일이었다. 광현이 말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래도 사부인과는 시절 인연이었지만 부처님께서 줄 하나는 남겨 두셨나 봅니다. 자식들을 통해서 이렇게 만나게 되 다니, 이제라도 잘 계신 것을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광현은 고개를 숙였다. 울음이 멈춘 수련이 식기 전에 마시라며 국화차를 권했다. 수련은 해란이 옆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8년 전 장악원에 소속되어 있던 수련은 광현과 유진의 결혼 소식을 듣고 힘들어 했으나 곧 마음을 다 잡고 새롭게 인생을 살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그때 평소 수련을 흠모하던 풍양 조씨(豐壤 趙氏) 조용원(趙龍元)이라는 사내를 만나 그의 첩으로 들어갔고, 그 사내는 사림의 신진 세력이었다. 겨우 면천을 하여 아들과 딸을 낳았으나 모두 서출(序出)이었기에 출사는 막히고 후회만 하던 차에 무오년 사화가 터져 남편은 역모죄로 효수형에 처해져 아들은 양물을 제거한 후 유명한 내관의 양자로 들이고 딸은 자신이 거두었노라고 했다. 인생 살면서 두 번의 역모죄로 부모와 남편을 잃고 또 다시 관기가 된 것이었다. 참으로 불우한 인생이었다. 광현은 차마 수련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그때 아들을 양자로 들인 내관이 누굽니까?”
광현이 묻자 수련이 대답했다.
“김처선 대감이십니다.”
김처선 대감이면 판내시부사로 내시부의 제일 큰 어른 아니던가. 그에게 여러 명의 양자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혹시, 아들의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혹 이공신 대감은 아니시오?”
수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찌 알았냐는 표정을 했다.
“맞습니다. 성(性)을 바꾸었을 뿐 제 아들입니다. 딸의 성도 구설에 연루될 까 우려하여 저와 같은 오(吳) 씨로 살게 하였습니다.”
수련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설움에 복받친 듯 입술을 깨물며 참는 모습이었다. 그럼 딸의 이름도 오해란이 아니라 조해란 이었다. 이 모든 얘기를 처음 듣는 듯 해란의 표정도 상기되어 있었다. 문 밖에서 유모 단심이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방 안의 얘기를 듣다가 지난 세월 수련과 함께 고생한 기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수련이 기침을 여러 번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광현은 입을 열었다.
“지난 과거는 과거일 뿐이오. 과녁이 흔들려 보이는 건 우리 눈이고, 화살을 쏘는 건 우리 손이요, 맞을까 의심하는 건 우리 마음이라 했소. 과녁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말이오.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 앞으로의 시간을 힘들게 하지 맙시다. 자식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게 바로 우리 부모들 마음 아니겠소. 부인이 허락한다면 내 돌아가는 대로 사주단자(四柱單子)를 보낼 테니 연길(涓吉)과 혼수(婚需)를 서두릅시다. 오늘 며느리 될 처자를 보아하니 어머니를 닮아 현숙하고 총명하니 아들의 짝으로 손색이 없소. 아들 녀석이 양주목사로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났으니 지금쯤 자리를 잡았을 터, 하루빨리 짝을 지어주고 우리도 손주를 보아야하지 않겠소?”
해란의 두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작은 얼굴이 점점 더 숙여졌다. 광현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발 빠른 아이 한 명 보낼 테니 당분간 수족처럼 부리면서 심부름이나 전할 소식 있으면 그 아일 통해 보내라고 말해 두었다. 광현의 아내 유진 또한 수련의 두 손을 맞잡으면서 자식들을 여의면 한적해질 테니 자주 만나 시담(詩 淡)이나 나누자며 웃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는 끝나고 광현과 유진은 집을 나왔다. 두식이가 말고삐를 쥐고 기다리는 길상목(吉祥木)을 향해 가면서 아내 유진이 말했다.
“창고지기나 짐꾼을 통해 약재와 쌀 한가마니 보내야겠어요. 대감도 아셨지요? 안사돈 되실 분이 병이 깊다는 걸”
광현은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는 아내의 총명함에 두 손 들었다.
“아니 부인이 그걸 어찌 아는 게요? 평소 의원에 가기를 밥 먹듯 하시더니 아예 의원이 되신 것 같소.”
잦은 기침을 하길래 유심히 보았던 터였다. 수련은 음허화동(陰虛火動)이란 병으로 약과 침으로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이었다. 음허화동이란 몸의 근원적인 음기가 허해져서 화(火)가 멋대로 움직이는 병이었다. 몸 안의 진액이 잠시 말라 가짜 열이 위로 치솟아 기침과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이는 노화과정에서 흔히 겪는 증상이었다. 숙지황((熟地黃)과 맥문동(麥門冬) 등으로 진액을 보하고 화기를 내리는 탕약을 몇 첩 다려먹으면 금방 효험을 볼 것이었다.
아내 유진은 놀리는 거냐며 눈을 흘겼다. 저 멀리 두식이 나무 밑에 앉아 졸고 있었다.
광현과 유진이 떠난 해란의 집에서도 놀림은 있었다. 단심 유모가 해란을 향해 놀리며 말을 했다.
“으메, 우리 아기씨,,입 찢어 지겄네. 장님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오, 빈 집에 소 들어 가는 격이니 좋아 죽소.”
“유모, 말 다했어? 내가 가만 안 둬. 그 입 꿰맬 거야.”
유모의 놀림에 해란은 치마를 움켜잡고는 유모를 향해 달려들었다. 유모는 웃어가며 부엌으로 줄행랑 쳤다. 그 모습을 본 수련은 혀를 찼다. 시집가서 한 달 안에 소박맞지 않으면 용하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