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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부운(浮雲)

by Jiungine

지웅이 창덕궁 집무실에 들어서자 우림위장 홍승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무언가 다급한 표정이었다.

“형님, 어디 갔다 오시는 겁니까? 지금 궁궐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주상께서 대소 신료들을 모두 부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창덕궁 외부에 크고 작은 가마들이 잔뜩 있었고 가마꾼들이 대기하고 있는 걸 보았던 터였다. 이제 술시(戌詩)였다. 대신들이 궁에 들어와도 퇴청할 시각이었다. 내금위 금군 일장 권열이 들어와서 소리쳤다. 출입문 외부에 번(番)을 서는 보초 금군들이 있던 터라 형님이라는 호칭을 하지 않았다.

“영감, 돈화문(敦化門) 앞 월대(月臺)에 주리(周牢)틀과 태형(笞刑)틀 등 형구(刑具)가 설치되고 있습니다. 주상께서 극대노하여 친국(親鞫) 하시려나 봅니다. 어찌할까요?”

마침 하급 내시가 달려와 주상께서 찾으신다며 지웅을 불렀다. 지웅은 빠르게 사태를 직감하였다. 홍승찬과 권열로 하여금 인원을 모아 창덕궁 주변과 돈화문 일대 질서를 잡으라고 명하고는 금군 10명을 차출해 연산군에게 달려갔다. 연산군의 모습이 보였다. 실성한 사람처럼 곤룡포를 풀어 헤치고 주리에 묶여 있는 누군가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그는 유배에서 풀린 지 얼마 안 된 전 이조판서 이세좌(李世左)였다. 이세좌는 방금 잡혀 와 묶인 듯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고 있었다.

희정당을 뒤로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고 그 곳에 우찬성 유자광이 앉아 있었다. 탁자의 명패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라고 쓰여 있었고 옆에 ‘국(鞫)’ 자가 새겨진 깃발이 있었다. 승전내시 김자원이 큰 소리로 고했다.

“호조판서 홍귀달 입시(入侍)요.”

홍귀달 또한 오자마자 의금부 관원들에게 잡혀 주리에 앉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세좌는 주리에 묶여 있었고 다른 대신들 십여 명이 서 있었다. 관모와 관복이 벗겨지고 오라줄에 묶였다. 옆에 이세좌는 눈을 감고 있었고 홍귀달은 그런 이세좌를 보면서 무언가 일이 크게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하얀 턱수염이 가늘게 떨렸다.

지웅은 금군을 연산군 뒤에 도열시켰다. 돈화문 앞과 문밖에 금군들이 달려가 자리를 잡는 게 보였다. 혹시나 위아래 좌우를 살폈다. 아무런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없는 게 당연했다. 누군가 간자(簡子)가 있다면 그건 지웅의 목이 달아난다는 뜻이었다. 의금부 관원들이 유자광 옆에 도열해 있었다. 관원 두 명씩 이세좌와 홍귀달의 주리 옆에 서 있었다. 연산군이 지웅을 흘낏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유자광이 연산군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세좌와 홍귀달은 들으시오. 금일 그대들이 여기에,,,”

“잠깐, 판의금부사는 조용히 하라. 내가 친히 국문하겠다.”

일시에 좌중이 침묵에 빠졌다. 금새 어두워졌고 금군들이 관솔불을 밝혔다. 분위기가 대번에 무서워졌다. 이세좌와 홍귀달의 얼굴은 아직 고신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붉게 피 칠한 듯 기괴스러웠다. 날이 추웠다. 지웅은 일지(一指)가량 자란 수염이 약한 바람에 흔들리는 걸 느꼈다. 왠지 힘든 밤이 될 것 같았다.

“죄인 이세좌는 들어라. 그대는 짐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를 아는가, 모르는가?”

이세좌는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폐비에 관한 이야기는 백 년 동안 불문에 붙인다는 선왕의 교지가 있었음에도 유자광과 임사홍 같은 간신이 있어 선왕의 유지는 요원(遙遠)하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이세좌는 체념한 채 대답했다.

“전하, 소신 이세좌, 주상의 어머니를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내 어미에게 사약(賜藥)을 들고 간 것도 그대가 맞는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허나 선왕의 교지를 받들었을 뿐, 도량발호(跳梁跋扈)의 교만이 아니었나이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세좌가 고개를 숙여 읍소를 했다. 이미 일 년 전 이곳 인정전(仁政殿)에서 양로연(養老宴)이 열렸고 왕이 주는 술잔을 받던 그때, 실수로 주상의 곤룡포에 술을 흘린 걸 빌미로 전라도 무안으로 유배를 보냈다가 다시 함경도 온성으로 보낸 주상이었다. 두 달 전 유배에서 풀려 자신에게 ‘그대가 쏟은 술’이라며 농(弄)을 하고, 위로주를 주었던 주상이 몸이 얼추 회복되자 다시 이세좌 자신을 목표하고 벌인 일임을 모르진 않았다. 그렇기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야 했다. 연산군이 비웃으며 소리쳤다.

“허튼 소리. 내 그대가 내 어미를 폐하고 사약을 내려 죽이는 데 동조한 걸 다 알고 있거늘 어디서 세 치 혀를 놀리느냐? 여봐라. 저놈의 주리를 틀어라.”

임금이 명을 내리자, 의금부 관원들이 옆에서 주리를 틀었다. 무릎이 부러지는 고통에 이세좌가 비명을 질렀다. 이세좌가 침을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걸 본 연산군이 홍귀달 앞으로 걸어갔다.

“죄인 홍귀달 들으라. 내 그대의 학문을 높이 여겨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에 제수하고 경기도 관찰사에 호판까지 맡겼거늘 내 앞에서는 사군삭사욕의(事君數斯辱矣)라며 너무 자주 간(諫) 하는 걸 경계하더니, 밖에 나가 나 없는 데서는 나랏님도 욕 하는 법이라며 면종복배(面從腹背)의 모범이 되었구나. 내 말이 틀림없는 사실이렸다.?”

홍귀달이 펄쩍 뛰다시피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전혀 그런 적이 없다며 하소연을 했다.

“바로 어제니라. 간택령(揀擇令)을 내려 내 그대의 손녀도 입궁하라 했거늘 뭐라, ‘손녀는 타고난 품성이 비루하고 용모가 심히 불민(不敏)하여 후궁의 자리를 감당할 기력과 덕성이 없다.’라고 상소를 올리지 않았느냐? 이래도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더냐?”

역시 연산군에게 통하지 않았다. 홍귀달의 무릎에도 주리가 가해졌다. 홍귀달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연산군은 고개를 돌리더니 소리쳤다.

“사헌부 대신들은 어디 있느냐? 대사헌 이자건과 대사간 박의영은 앞으로 나오라.”

대신들 간에 잠시 술렁임이 있더니 이자건과 박의영이 앞으로 나섰다.

“그대들은 이세좌가 자신이 중한 죄를 범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방면되는 걸 보고 그 세력을 두려워하여 짐에게 이세좌의 죄목을 아뢰지 않았다. 짐을 능멸하는 이런 자들을 내버려 두었으니 대역무도하다. 이는 능지처참으로 다스려야 할 중죄이다. 여봐라 이들을 의금부에 가두어라."

국문(鞠問)은 삼경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축 늘어진 이세좌와 홍귀달이 더는 버티지 못하자 연산군은 의금부에 하옥하라 명하고는, 다음 날 모든 대소 신료들을 다시 입궐하라 명했다. 모였던 신하들이 삼삼오오 돈화문을 나서면서 웅성거렸다. 연산군은 침전으로 들어가다가 지웅을 보고는 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이보게 무극. 어제 잠자리는 좋았는가?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만. 흐흐흐.”

고개를 숙인 지웅을 보고는 만족한 듯 웃어가며 침전을 향하는 주상이었다. 지웅은 소름이 돋았다.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는 친국(親鞫)을 주도하고 저렇게 해 맑게 웃을 수 있다니 정녕 정상인가 의심스러웠다. 하긴, 사림(士林)의 젊은 선비들이 툭 하면 법도를 들먹이며 ‘아니 되옵니다’를 연발할 때,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걸어 그들 모두를 사사하고 ‘이제야 조용히 발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라며 흡족해하던 주상이었다. 유자광의 탄핵은 어쩌면 주상의 작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구(刑具)가 치워지고 의금부 관원들이 퇴궐한 뒤 지웅의 금군들은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희정당의 선정전(宣政殿)에 당상관 이하 고관대작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어좌에 앉아 있던 연산군은 웃어가면서 무언가를 납작한 나무에 적고 있었다. 대소 신료들이 사배를 하고 도승지가 회의 시작을 알리려 하자 연산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 모두들 여길 보시오.”

연산군은 손에 든 걸 대신들에게 보여주었다. 납작한 나무패였다. 그곳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구화지문(口禍之門)’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 폐구심장설 안신처처뢰) -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 그러니 그대들은 모두 이 글귀를 새긴 신언패(愼言牌)를 차고 다니도록 하시오. 알겠소?”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당나라가 망한 뒤 후당 때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의 전당서(全唐書)에 나오는 말로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란 뜻으로 말을 함부로 하면 화를 부른다는 의미가 담겨 말에 관한 글을 모은 설시(舌詩)에 실려 있었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란 뜻이고 화(禍)의 근원이 바로 입이다. 재앙이 입으로부터 나오고 입으로부터 들어간다 하여 옛 성현들은 늘 입을 조심하라고 가르친 고사를 인용한 것이었다.

대신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대답이 없자 연산군이 다시 외쳤다.

“어찌 대답이 없소? 지금 짐을 능멸하는 것이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영의정 성준(成俊)이 고개를 숙이고 외치자 모두들 따라 외쳤다. 무소불위였다. 사실상 왕권을 견제하는 모든 요소는 사라진 상태였다. 살아있는 훈구파의 핵심 인물인 호판 홍귀달이 어젯밤 주상의 친국으로 산송장이 되었다는 얘기가 도성 밖에서부터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성준이 살짝 고개를 돌려 이극균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조카 이세좌가 고신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을 터였다. 짧고 앞으로 굽은 사모(紗帽)의 양각(兩角)이 앙증맞게 흔들렸다.

연산군 시대에 이르러 대신들은 아침 조회(照會)나 경연(經筵)을 하면서 자유롭게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움직이는 등 운신의 변화가 있었다. 이전에는 언감생심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임금 앞에서는 경건함과 엄숙함을 지키는 것이 법도이며 서로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로지 임금에 대한 충성과 기개(氣槪)를 보일 수 있도록 사모의 양각은 옆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당연히 고개를 좌우로 돌리거나 옆 사람의 눈치를 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무오년(戊午年) 사림의 세력을 축출(逐出)하면서 왕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논쟁하는 걸 본업(本業)으로 삼는 삼사(三司)의 대간(臺諫)들을 무력화 시키고 사모의 양각을 짧고 앞으로 굽어지게 하여 신하들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관복(官服)과 관모(冠服)는 곧 그 신하의 공적인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척도였다. 연산군은 왕에게 직언하는 걸 싫어했고 간섭하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연산군을 왕위에 올렸던 훈구 대신들도 유일하게 왕권을 견제하던 사림(士林)들이 사라진 지금 신언패마저 차게 하는 연산군을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이었다. 고개를 숙인 성준은 어쩌면 이 모든 게 주상의 오랜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들은 들으시오. 지금 세상을 보면, 노성(老成)한 대신이 있고 뒤이어 재상 된 자가 있는데, 서로 비호하고 덮어 그 허물을 말하지 않으며, 대간이 된 자는 불경한 사람을 보고도 세력이 두려워 말하지 않고, 말하지 않을 것은 또한 반드시 논계하고 있소. 이뿐만이 아니라, 재상으로 기반이 있는 자에게는 한마디의 말이 없고, 고단한 자에 대하여는 반드시 또 논박하고 있소. 그런데 삼공(三公) 육경(六卿) 역시 그름을 말하지 않아 점차 붕당(朋黨)을 이루어, 인군으로 하여금 위에 고립되게 하니, 이런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고치지 않을 수 없소. 위로는 조정의 기강을 세우고 아래로는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삼가 말을 조심하라는 신언패(愼言牌)를 차도록 전교하는바요.”

문무 대신들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꺾어 성은이 망극함을 외쳤다. 연산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죄인 이세좌는 경상도 거제(巨濟)로 홍귀달은 함경도 경원(慶源)으로 유배를 명하노라. 또한 어떠한 사면령(赦免令)을 내리더라도 이들은 절대 사면을 금하노라.”

대신들이 고개를 숙여 성은을 외치려는 찰나, 좌의정 이극균(李克均)이 앞으로 나섰다.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였지만, 비장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그는 주상이 앉아있는 어좌 앞까지 나와 공손히 허리를 숙여 예를 다한 후 천천히 그리고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주상 전하, 엎드려 간구하오니 노여움을 거두시고 신(臣)의 망령된 말을 들으소서. 무릇 임금이란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며, 스스로를 경계하기를 얼음판을 걷듯 해야 하는 법이옵니다. 하오나 근래 전하께서는 주색(酒色)에 침닉(沈溺)하시고 사냥을 일삼으시며, 조정의 정사는 돌보지 않으시니 나라의 기틀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나이다. 또한 전국의 기생과 신하들의 아녀자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향락을 즐기시는 것은 성현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일이요, 백성의 원망을 사는 길이옵니다. 어찌 일국의 군주께서 한낱 여색에 미혹되어 종묘사직의 위엄을 스스로 깎아내리려 하시나이까? 신하가 군주에게 허물을 고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충심이지 전하를 비방함이 아니옵니다. 하오나 전하께서는 간언하는 신하를 멀리하시고 공포로써 입을 막으시니, 조정에는 아첨하는 무리만 가득하고 직언하는 선비는 자취를 감추었나이다. 이는 곧 나라가 망조(亡兆)에 들어서는 길이니 신은 이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나이다. 신의 목숨은 비록 가벼우나 나라의 안위는 지극히 무겁사옵니다. 전하께서 계속하여 도(道)를 잃으신다면, 훗날 사직이 위태로울 때 누가 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이까? 부디 전하께서는 옛 성왕들의 법도를 본받아 마음을 바로잡으시고, 나라의 근본을 다시 세우소서!"

이극균은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자세로 직언을 했다. 연산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허리를 숙인 대신들은 침묵을 지킨 채 곧 떨어질 주상의 불호령에 숨이 멎듯 긴장했다. 연산군은 이극균의 말이 어디 하나 틀린 구석이 없다는 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 해도 임금의 자존심을 꺾고 명예를 실추시킨 죄는 물어야 했다.

“경의 말이 모두 옳소. 그렇다면 경은 좌상으로써 내가 이렇게 되도록 그동안 뭘 하셨소.? 그동안은 뭘 하다가 이제 와서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느냐 말이오? 삼사의 대간들이 말하지 못하고 눈치 볼 땐 뭐 했소? 사림의 젊은 선비들이 죽어 나가고 유생들이 상고할 땐 뭐했소? 그리고 내 어미가 폐비 되어 사약을 받을 땐 뭘 했소? 말해 보시오.”

이극균이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껌벅거렸다. 연산군이 어안(御案)을 ‘탁’ 치며 소리쳤다.

“도승지 듣거라. 내 이극균 이자를 방관죄(傍觀罪)로 다스려야겠다. 당장 이 자를 삭탈관직하고 의금부에 하옥하라.”

피바람의 시작이었다. 이세좌와 홍귀달을 필두로 조정에서는 폐비 윤씨의 사사에 직접 가담했거나 최소한 폐비에 관여되었다 해도 처벌을 받았다. 이세좌의 아들과 사위 뿐 아니라 이세좌와 만났던 사람들, 홍귀달을 옹호하는 대신들도 모조리 투옥되어 귀양 갈 날을 받아 놓았다. 원로대신 중 가장 무게감이 컸던 윤필상(尹弼商)은 폐비 사건 당시 영의정으로서 사사를 주도했다는 명목으로 전라도 진도(珍島)로 유배형을 받았다. 우참찬 권주(權住)는 이세좌와 함께 사약을 들고 배행(陪行)했다는 이유로 경상도 거제로 유배형을 받았다. 전라도 순천(順川)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당시 사림(士林)의 영수 김굉필(金宏弼)과 김종직의 제자였던 이주(李胄) 역시 무오년의 남은 무리들을 소탕하라는 연산군의 명으로 갑자년의 피바람을 피해 가지 못했다. 연산군의 복수에 당파(黨派)와 직위 고하(高下)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 씨와 조금이라도 관여되어 있는 자들은 아무리 처벌을 약하게 받아도 최소한 태형 40대였다. 무오년의 피바람은 갑자년에 비하면 그저 작은 사화(士禍)나 다름없었다.

늘 어전회의에 참석하지만 도통 말 한마디 하지 않던 판내시부사 김처선(金處善)이 주상의 옆에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전하. 옥체와 성심을 굳건히 하시어 정사(正司)에 힘을 쓰시옵소서.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이르기를, 갈택이어(竭澤而漁)에 분림이렵(焚林而獵)이라 하였나이다. 연못을 다 퍼내 물고기를 잡고 숲을 불태워 짐승을 잡으면 당장 배 속을 채울 수 있으나, 다음에는 먹을 게 없어 굶는 법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85세의 노구인 김처선은 연산군에게 경고를 날린 것이었다. 이렇게 대신들을 다 죽이면 정사는 누가 돌보고 왕실은 누가 지킬 것인지 잘 생각하라는 충고였다. 김처선은 스스로를 노쇠하다며 앞에 나서지 않지만, 세종대왕 때부터 일곱 임금을 모신 충신이자 원로 내시였다. 당상관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만큼 그의 경력과 무게감은 상당했다. 연산군은 할아버지뻘 되는 김처선이 늘 껄끄러웠으나 세종대왕을 모시고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 모셨던 김처선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특히 김처선의 말 한마디는 늘 비수 같았고 옳은 말만 골라서 했다. 생각 같아서는 김처선 저자도 당장 주리를 틀고 싶었지만, 오늘은 참아야 했다. 하지만 화가 치밀었다. 자신이 임금인데 눈치를 보면서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연산군은 벌떡 일어섰다.

“조회를 파(破)하노라. 상선은 가마를 준비해라. 북촌의 북교로 갈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던 김처선은 눈을 질끈 감았다. 김처선이 모르는 일은 없었다. 궁 안과 밖의 모든 정보가 김처선에게 들어왔다. 주상의 행동이 이제 막장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촌(北村)이라면 주상의 큰 아버지이자 성종대왕의 친형인 지금은 죽고 없는 월산대군(月山大君) 이정(李婷)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월산대군은 경강 북쪽 연안의 경치 좋은 곳에 제천정(濟川亭)을 지어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시를 쓰고 풍류를 즐겼다. 사람들은 그 곳을 북저(北渚) 혹은 근처의 다리를 통칭하여 북교(北橋-덕수궁 자리)라고 불렀다. 월산대군은 원래 권력에 뜻이 없어 세조대왕의 장손으로서 왕이 되어야 했지만, 정희왕후(貞熹王后)의 결정으로 동생이 왕이 되었다. 월산대군이 권력에 뜻이 없음을 노래한 시(詩)가 전해졌는데 매우 유명했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연산군은 월산대군을 잘 따랐지만, 지금은 이미 죽고 없었다. 월산대군의 부인이자 연산군의 큰어머니인 승평부부인(昇平府夫人) 박 씨(朴氏)가 홀로 살고 있었다. 연산군은 큰어머니를 극진히 모셔야 한다는 핑계로 자주 북교를 드나들었고, 김처선은 주상이 장녹수를 조금씩 멀리하는 걸로 보아 승평부부인 박 씨에게 딴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다. 승평부부인 박 씨는 당시 50세로 연산군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지만 타고난 미색으로 젊어 보였고 연산군은 성숙한 여인의 몸에 빠지길 좋아했다. 굳이 따지고 보자면 지금까지 김처선이 알고 있는 주상의 비윤리적 간통만 수십 차례였다. 종친이었던 괴산군 이준(李浚)의 처를 능욕했고 자신의 심복이었던 구수영(具壽永)의 며느리를 불러들여 욕심을 채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공신이나 대신들의 부인을 궁중 연회에 강제로 참석하게 한 뒤, 연회가 끝나면 집에 보내지 않고 궁에 머물게 하여 차례로 침범하는가 하면, 관직에 새로 임명되거나 하직 인사를 하러 오는 관리들의 부인이 궁에 들어와 문안 인사와 사은숙배(謝恩肅拜) 하는 숙배제도(肅拜制度)의 관습을 악용하여 겁탈하는 게 비일비재했다.

김처선은 내금위장 신지웅(申知雄)과 주상이 근래들어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걸 보고 조만간 내금위장과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회가 파(破)하자, 대신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하나 둘 씩 자리를 떴고 선정전(宣政殿)엔 썰렁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조선이 흔들리고 있었다. 김처선은 자신의 생명이 이제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작스런 주상의 북촌 행차에 지웅은 서둘러 동선을 짰다. 보통 능행(陵幸)을 할 때는 병조와 승정원과 협의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주상은 이렇게 불시에 외부 거동(擧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웅은 열 명의 선기대(善騎隊)를 차출하여 안전한 길을 확보하고 취약 지점을 파악하거나 돌발 상황을 예측하도록 지시했다. 가마 옆으로 여덟 명의 내금위 금군들을 배치하였고, 여섯 명의 겸사복들이 말을 타고 외곽에서 가마를 호위하게 했다. 보통 임금의 옆에는 칼을 차고 서 있는 두 명의 핵심 호위무사인 운검(雲劍)이 있어야 했지만, 의심이 많은 연산군은 운검을 없애버렸다. 행차 도중 가로막(假路幕)을 상시 설치하여 외부의 공격을 경계했고 이동 중 백성들이 갑자기 나타나 하소연하는 격쟁(擊錚)도 싫어하여 임금의 근처에 허락 없이 접근하는 자는 즉시 사살하라는 명을 내렸다.

지웅은 피곤했다. 벌써 이틀째 집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참을 수 있었지만, 해란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주상이 가는 곳이 해란의 집에서 멀지 않으니, 기회를 보아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출발하기 전 웬 하급 내시가 달려오더니 판내시부사께서 전해드리라 했다며 서찰 하나를 전해주었다. 주상이 나오기 전이라 지웅은 서둘러 서찰을 읽어 보았다.

-피인가시(避人暇時) 밀상독견(密相獨見)-

‘사람들을 피해 틈이 날 때 은밀히 만나자?’

지웅은 판내시부사 어른이 왜 자신을 만나자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별로 크게 개의치 않았다. 보통 상선들은 따로 불러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산군이 나오고 가마가 출발했다. 지웅은 말을 타고 가마 주위에서 사주를 경계했다. 간만에 구름도 없이 맑은 하늘에 밝은 태양이 인왕산에 걸려있었다. 해란의 얼굴이 태양 위에 올려졌다. 해란을 생각하자 갑자기 온몸이 달아올랐다. 지웅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임금을 호위하는 중에 허튼 생각 하는 자신이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마음을 다잡았다. 주상의 북촌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3월 들어 벌써 세 번째였다. 그저 안부 인사차 가는 행차치고는 너무 잦았다. 백성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웅은 애써 무시했다. 설마 아무리 여인을 가까이한다 하나, 큰 어머니를 욕심내는 패륜은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창덕궁에서 7리(里)쯤 되는 거리로 반 시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주상이 자주 가는 거 보면 무언가 주상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는 게 분명했다. 지웅은 주상이 누군가를 만날 목적으로 움직이는 게 차라리 나았다. 사냥이라면 주상은 지웅을 곁에 두고 이런저런 농을 걸거나 무예 솜씨를 보이라며 괴롭힐 게 뻔했다. 술자리에 동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행차였다. 선기대로 갔던 권열이 돌아왔다.

“사또(使道), 모두 확인했습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동생들은 그때그때 지웅을 부르는 호칭이 달랐다. 개인적으로 같이 있을 땐 형님이라고 부르다가 금군들과 함께일 땐 영감이라고 불렀다. 다른 대신들이 있을 땐 사또나 부장으로 불렀다. 사또란 사신의 도리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지방관이나 지휘관에 대한 존칭이었다.

“수고했다. 가까운 거리라 해도 방심하지 말고 철통같이 경호하라.”

후방에서는 우림위 홍승찬이 따라오고 있었다. 믿는 동생들이 있어서 지웅은 내심 흡족했다. 가마가 월산대군의 집에 도착했다. 이곳에 올 때는 상시 대동하던 상선이나 상궁도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오로지 경호 인력과 주상 홀로 오곤 했다. 주상이 가마에서 내려 월산대군의 집으로 들어갔다. 권열이 사전에 도착하여 임금의 행차 소식을 알렸을 것이었다. 지웅은 집사의 안내로 별채로 들어갔다. 대문 안팎으로 금군을 사인(四人) 일조(一組) 반 시진씩 순찰을 돌게 했다. 마당에 관솔을 밝혔다. 대낮이었지만 금군들이 고뿔에 안 걸리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별채 안에 있던 지웅은 밖에 나왔다. 무언가 찜찜한 기분이 아까부터 떠나지 않고 있었다. 집안 곳곳은 이미 수색을 끝냈고 집 외부를 둘러보기로 했다. 집 뒤편을 돌아가면서 미약한 살기(殺氣)를 감지했다. 동쪽이었다. 하나 둘 셋,,,최소한 다섯 이상이었다. 서쪽에도 잡혔다. 이 쪽은 열 명 이상이었다. 지웅은 긴장했다. 간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지웅은 주위를 경계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을 타고 어슬렁 거렸다. 지웅을 공격하지 않는 걸로 보아 정체를 모르지만, 주상을 노리는 자객들이 틀림없었다. 지웅은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별채 안으로 권열과 홍승찬을 은밀히 불러 지시를 내렸다.

“밖에 자객들이 있다. 서른 명쯤 예상한다. 주상의 가마가 궁으로 출발하면 열(烈)아, 너는 먼저 출발하여 백악산(白岳山) 방향으로 돌아 다시 합류 하거라. 승찬이 너는 후방에서 따라오다가 내 신호에 맞춰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한다. 명심하거라. 주상의 안전이 최우선이고 차선은 주범들을 꼭 잡아야 한다.”

지웅은 지시를 내리고 평소대로 움직였다. 자객들의 염탐자(廉探子)가 집 안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웅이 주변을 살피다가 안채를 지나갈 때 안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무언가 싸우는 소리 같기도 했고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도자기 깨지는 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주상이 흥분하여 소리 지르는 듯 언성이 높았다. 잠시 후 안채의 방문이 벌컥 열리며 주상이 나왔다. 하얀 적삼(嫡衫) 고름이 풀려있고 삼승저고리를 대충 걸친 모습이었다. 저런 모습으로 나오는 건 사리에 맞지 않았다. 지웅은 저잣거리의 풍문이 근거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주상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 지웅이 호각(虎角)을 불었다. 금군들이 일사불란하게 나타나 대열을 정비했다. 지웅이 신호를 주자 권열이 먼저 금군 여섯을 데리고 출발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가마가 들려졌다.

어가행렬(御駕行列)이나 선왕의 왕릉을 참배하러 가는 능행차(陵行次) 시에 왕을 호위하는 사신호위(捨身護衛)의 원칙이 있었다. 일선(一線)에서 금군들이 왕의 가마 바로 옆에 칼과 방패를 들고 밀착호위를 실시한다. 주위에서 화살이 날아 올 경우 차폐(遮蔽) 라고 외치며 방패로 에워싸 거북등 형태의 방어막을 만들어 국왕의 시야를 차단하고 화살을 대신 맞는다. 이선(二線)은 가마 주변에 장창과 칼을 든 금군들이 배치되어 보행 거리를 확보한다. 자객들 난입에 대비한 직접호위(直接護衛)를 통해 위급시 결진(結陣)을 외치며 가마를 멈추지 않고 이동과 호위를 지속한다. 그리고 원형의 진(陣)을 통해 자객을 고립시키고 내금위장은 국왕을 말이나 보조 가마로 옮겨 태울 준비를 한다. 삼선(三線)에선 기마병들이 행렬의 앞뒤와 좌우 먼 곳에서 거동을 살피는 외곽경계(外郭境界)를 통해 매복을 감시한다. 민간인들이 격쟁(擊錚)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금군들은 우선 거리를 두게 하고 따로 국왕에게 보고하거나 숲과 좁은 길을 지나가기 전 수색(搜索)하는 역할이었다. 금군들은 가라(假喇)라는 휴대용 나팔을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시 신호를 주고 받았다.

지웅은 빠르게 생각했다. 창덕궁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니었지만, 두 군데 정도 위험지역이 그려졌다. 북교를 지나 창덕궁의 돈화문으로 향하는 길목에 와룡동 ‘잿골’이라 불리는 지형의 높고 낮음이 심한 골목이 있었다. 집들이 빽빽하고 퇴로가 복잡하여 자객들이 몸을 숨겼다가 기습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또 한군데는 재생원(再生院)이라는 의료원이 있는 재생동이라는 동네의 작은 개천이 흐르는 길목이었다. 이곳은 좌우로 대나무 숲이 울창하여 멋진 광경을 연출했다. 또한 양반로(兩班路)라 하여 북촌에서 궁으로 향하는 관리들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라 천민들이 이용하지 못했다. 천민이나 평민들이 이용했다가 경을 치는 곳이어서 대낮에도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개천의 물소리 때문에 소리를 줄이기 쉬운 여건이 있었고 주변에 나무가 울창하고 어두운 구석이 많아 은밀한 접근이 가능했다. 이 두 곳이 지웅이 생각하는 위험지역이었다. 붉은 흙길이 많아 홍현(紅峴) 고개라 불리는 가파른 지역도 하나의 후보지였지만 안개가 심하게 끼는 날은 위험해도 오늘 같은 날은 별로 위험하지 않았다. 위 두 곳 중에서 재생동이 가장 유력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 대낮에 매복하기에도 적당할 것이었다. 지웅은 걷고 있는 금군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걸음걸이나 표정만 봐도 그들의 기력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기 전이어서인지 활기가 보이지 않았다. 지웅은 운기(運氣)를 통해 허기(虛飢)를 조절할 수 있었지만 금군들은 그러질 못했다. 저러다 갑자기 화살이 날아오면 떼죽음 당할 건 자명했다. 지웅은 주의를 주어야 했다.

“위중한 지역이다. 모두 허리춤의 칼자루에서 손을 떼지 말고 사주를 경계하라.”

금군들이 고개를 세우고 긴장했다. 지웅의 예상대로 재생동에 가까워 오자 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개천을 끼고 돌면서 울창한 대나무 숲길이 나타났다. 때마침 먹구름이 몰려와 해를 가리면서 삽시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저들에겐 호기(好期)였다. ‘피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지웅이 소리쳤다.

“어가(御駕)를 호위하고 방패수는 차폐(遮蔽) 하라.”

지웅이 날아오는 화살을 환도로 쳐내면서 금군들을 독려했다. 방패수들이 방패로 어가를 막았다. 어가에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꽂혔다. 이선(二線)에 있던 금군들이 화살이 날아오는 숲을 향하여 맞화살을 쏘았다. 금군들은 가지고 있는 활궁이나 칼로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는 ‘살막이‘를 하고 연이어 화살을 쏘는 연환응사(連環應射)를 최고의 무예로 생각하기에 대부분 이 정도 무술은 기본이었다. 좌우에서 검은 몽두(蒙頭)를 한 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얼굴을 검은 천 등으로 가린 면복(冕服)이 아니라 머리 전체를 가린 복장이었다.

’무언가 숨길 게 많은 놈들이구나.‘

지웅은 말을 달려 앞으로 튀어 나갔다.

“여기는 내가 맡을 테니 모두 어가를 호위하여 결진(結陣) 하라.”

지웅의 말에 금군들이 어가를 호위하며 창덕궁 방향으로 달렸다. 어가를 뒤로하고 지웅이 단신으로 막아섰다. 환도를 빼어 들었다. 살짝 바람이 불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몽두를 한 자객들이 칼을 빼 들고 달려왔다. 빠르게 눈으로 세어보았다. 서른다섯 명이었다. 달려오는 자객 무리들 사이로 저 멀리 커다란 바위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한 명은 덩치가 크고 한 명은 왜소했다. 움직이지 않고 지켜보는 걸로 보아 저들이 이 자객 무리들의 대장이었다. 지웅은 말에서 내렸다. 자객들은 움직임이 달랐다. 조선 금군과 일반 사병들의 움직임과도 달랐다. 살짝 휘어진 조선의 환도가 아닌 칼날이 두꺼운 여진도(女眞刀)였다. 등에 맨 활을 보니 대궁(大弓)이었다. 조선의 각궁(角弓)보다 더 크고 파괴력이 강한 활이었다. 자객 무리들은 오랑캐였다.

자객들 칼은 투박했지만 힘이 실려 있었다. 명(明)은 형태를 중시했고, 조선은 실용성을 강화한 칼이었다. 이 둘과는 다른 종류였다. 하지만 지웅과 같은 초고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지웅은 한 사람도 지웅을 넘어갈 수 없도록 제압하며 길을 차단했다. 자객들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 들었지만 지웅의 옷 한 자락 건드릴 수 없었다. 한 사람씩 지웅 앞에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저 멀리 바위 위에 선 두 사람이 속삭였다.

“조선에 저런 칼잡이가 있었군요. 보셨어요? 죽이지 않고 전부 오른쪽 팔만 베고 있어요. 칼을 들지 못하도록. 인상 깊네요”

덩치가 왜소한 사람이 입을 열자, 덩치 큰 사람도 동의했다.

“그렇네. 대단한 칼이구만. 오늘 어쩌면 나나 자네도 팔 하나는 버려야 할 수도 있으이.”

일각도 안 되어 복면을 한 자객들이 모두 쓰러졌다. 지웅이 그 중 한 사람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몽두를 벗겼다. 벗기는 순간 지독한 노린내가 났다. 노린내인지 짐승 가죽이 썩는 냄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변발(辮髮)이었다. 말로만 듣던 변발을 처음 보자 지웅은 당황했다.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민 기괴한 머리모양이 요강(尿缸) 속의 분변(糞便)처럼 낯설었다. 눈은 승냥이처럼 가늘게 찢어져 지웅을 노려보고 있었고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조선인과는 확연히 구별이 되었다. 전투력을 상실한 놈의 머리를 놓고 다른 자객의 몽두를 벗기자 하나같이 모두 변발한 여진족이었다. 지웅은 바위 위에 선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쓰러진 자객들은 필요 없었다. 저 두 놈만 잡으면 될 일이었다. 마침 두 사람이 몸을 날려 아래로 착지했다. 덩치가 왜소한 사람의 몸놀림이 가볍고 내공이 깊어 보였다. 덩치가 큰 사람도 몸에 비해 움직임이 민첩했다. 덩치 큰 자가 일어서자 키가 팔 척(尺) 장신이었다. 육 척인 지웅도 작은 키가 아니었지만, 저 사람은 거의 거인 수준이었다. 반대로 왜소한 자는 지웅보다 작은 오 척 단구였다. 덩치 큰 자는 검은 복면을 했지만 왜소한 자는 너울(羅兀)을 쓴 차림이었다. 챙이 있는 모자에 긴 망사를 늘어뜨린 형태의 모자였으나 조선에서 쓰는 자를 찾기 힘들었다. 여인이 외출할 때 낯을 가리기 위해 어쩌다 쓰는 것이었다.

“네 놈들은 북(北)에서 온 야인(夜人-여진족)이렸다. 야인이 어째서 조선의 국왕을 노린단 말이냐?”

덩치가 왜소한 자가 칼을 빼어 들더니 한마디 소리치며 지웅을 향해 달려왔다.

“그건 알 것 없다. 타핫!”

버들검이라고 알려진 유엽도(柳葉刀)였다. 명나라와 오랑캐들이 주로 사용하는 칼이었다. 가볍고 완만하게 휘어져 있어 말을 타고 달리면서 적을 베어야 하는 기병(騎兵)들에게 유력한 무기이기도 했다. 몸을 사선으로 베고 올려치는 사선격(斜線格)과 역단격 (逆斷格)을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지웅이 칼로 막아서며 물러섰지만 깜짝 놀랐다. 내공이 아주 센 자였다. 칼을 쥐고 공격 자세를 만드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웅은 방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몇 합이 이루어졌지만 지웅의 빠르고 정확한 공격에 왜소한 자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새 덩치 큰 자도 합류해 동반 공격에 나섰다. 덩치 큰 자의 칼은 묵직한 소나무처럼 강하고 위력적이었다. 반면에 왜소한 자의 칼은 부드러우면서 약점을 찾아 송곳처럼 찔러왔다. 칼부림도 하나의 선(旋)과 율(律)이었다. 춤을 추듯 박자를 타야 공격과 방어가 용이했다. 하지만 이 둘의 움직임과 공격력이 달라 지웅은 애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려고 일부러 느슨하게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한 놈 먼저 제압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몸의 방향을 틀어 덩치 큰 자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덩치 큰 자가 칼로 내리치더니 돌부리에 발이 걸려 균형을 잃자 빈틈이 보였다. 찰나의 순간 지웅의 팔이 덩치 큰 자의 복부에 꽂히면서 동시에 칼 손잡이로 뒷목을 내리쳤다. 덩치 큰 자가 그대로 앞으로 쿵 하며 쓰러져 실신했다. 왜소한 자가 쓰러진 동료를 보고는 망설임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승부는 쉽게 끝이 났다. 이미 지웅의 눈에 두 사람의 공격 흐름이 파악이 된 후였다. 보법(步法)만 봐도 그 후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 지웅의 거센 공격에 뒤로 밀리다가 마침내 칼을 놓친 왜소한 자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지웅의 칼 끝이 놈의 너울 끝자락을 들어 올렸다. 놈의 얼굴이 나타났다. 지웅은 당황했다. 너울 속의 정체는 여자였다. 그것도 파란 눈동자를 가진 굉장한 미모를 가진 여인이었다.

여인 또한 위에서 칼로 목을 겨눈 채 쳐다보는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검은 눈썹에 깊은 눈, 오똑한 콧날에 선이 굵은 입술, 귀밑으로 흐트러진 몇 가닥의 머리칼이 어느새 나타난 햇빛에 아른거렸다. 여인의 가슴 한쪽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방금까지 칼을 주고받았지만, 사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여인의 가슴이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숱한 사내들을 보아왔지만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사내의 칼자루에묶인 빨간 댕기가 특이했다.

지웅은 칼끝으로 위협하여 여인을 쓰러진 덩치 큰 자 옆으로 움직이게 했다. 여인의 칼과 덩치 큰 자의 칼을 집어 들어 멀리 던져버렸다. 이들이 틈을 타 다시 공격할 수도 있기에 기회를 차단한 것이었다.

“우리 조선말을 할 수 있느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복면을 벗겨라.”

지웅이 여인에게 덩치 큰 자의 복면을 벗기라 했지만, 그새 깨어났는지 덩치 큰 자가 몸을 뒤집어 일어나 앉으면서 말했다.

“됐다. 내가 벗겠다.”

덩치 큰 자가 스스로 복면을 벗는 순간 지웅은 또 한 번 놀랐다. 아는 얼굴이었다.

“아니, 당, 당신은 동지중추부사 박원종 영감?”

“내 얼굴을 알아본다니 살아 남기는 글렀군. 죽여라. 사내로 태어나서 칼을 잡았으니 좋은 칼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다만, 옆에 있는 여인은 나의 부름으로 북에서 온 야인이니 살려주시게.”

지웅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문과에 급제까지 한 수재였지만 그중에서도 숫자와 사람의 얼굴은 한 번 보면 잊는 법이 없었다. 이 사내는 덩치가 커서 특별한 점도 있지만 2년 전에 궁중 연회 때 나와 칼춤을 선보였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박원종(朴元宗)으로 죽은 월산대군의 처남이자 승평부부인 박씨의 친동생이었다. 지웅은 그제야 사건의 전후 맥락이 이해되었다. 저잣거리 풍문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주상이 큰어머니에게 몹쓸 짓을 한다는 게 사실이고 그래서 동생이 누나의 복수를 위해 주상을 암살하려 한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박원종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물어야했다.

“영감, 어찌 이런 무모한 짓을 하신 겁니까? 대낮에 주상을 암살하려 하다니요. 거사(擧事)란 시와 때가 있거늘 영감이 그걸 모를 리가 없고, 이건 마치 죽으러 날아드는 불나방 같은 미물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앉아서 숨을 몰아 쉰 박원종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말씀 잘하셨네. 내금위장 정도 되면 주상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일 터. 내가 왜 이랬을지 이해가 안 된다면 긴말 필요 없으니 죽여주시게. 지금의 주상을 살려두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지,,그걸 막지 못한 게 여한(餘恨)일 뿐이네.”

지웅은 평소 박원종에 대해 들은 말이 있었다. 박원종은 세종대왕의 비(妃)인 소헌황후(昭憲王后) 심씨(沈氏)가 이모할머니이며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박중선이었다. 왕실과 겹사돈을 맺은 명문가 집안 출신이었다. 무예가 뛰어나 과거를 통하지 않고 음서(蔭敍)로 관직에 나온 인물로 몇 년 전엔 무엇이 밉보였는지 평안도 절도사(平安道 節度使)에 제수되어 북방으로 밀려 나갔다. 하지만 북방에서의 일화들이 전해져 내려오면서 더욱 더 지웅의 호기심을 자아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평안도 병마 절도사로 재직할 때 국경 근처의 여진족 추장들과 수 차례 충돌도 있었고 화합도 있었다. 당시 여진족은 기마술과 활쏘기에 능했지만, 박원종이 선보인 조선의 비밀병기인 편전(片箭), 즉 애깃살을 쏘아 보여 여진족들의 경외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게 했다는 것이었다. 애깃살은 ‘통아‘라는 작은 대나무 관을 이용해 쏘는 아주 짧은 화살로, 사거리가 길고 관통력이 뛰어나며 적이 화살을 다시 주워 쓸 수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고려시대 중경유수(中京留守)였던 김강신(金强伸)이 몽골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화살이 부족해지자 몽골군이 쏜 화살을 주워 넷으로 잘라 통아에 넣어 쏜 것이 시초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북방에서는 적대 관계일지라도 뛰어난 무인끼리는 서로의 실력을 존중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박원종은 자신의 활 솜씨를 존경하던 한 여진족 추장에게 직접 만든 화살을 선물하며 이것은 짐승을 잡는 데만 쓰고 사람을 향해서는 쏘지 말라는 농담까지 건넸다는 풍문이 나돌기도 했다. 여진족은 화살 소리가 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데 사람이 죽는다며 엄청난 두려움을 가졌고, 이는 국경의 평화를 지키는 데 일조하였다는 연산군의 평가도 있었다.

이런 인물이 뭐가 급해서 이런 대낮에, 더구나 금군들이 철통같이 호위하고 있는 시간에 기습을 결정하였을까 의문이 들었다. 지웅은 여인에게 겨누었던 칼끝을 거두었다. 이 상황을 아무도 보지 못했을 테니 그냥 풀어주고 싶었다. 주상에게는 모두 도망갔다고 보고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주상을 속인 죄가 드러나면 참형에 처 해질 일이었지만, 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지웅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박원종은 평소에 존경하던 사람이었다. 같은 무관이기도 했고 들려오는 박원종의 호방한 성격과 기질로 지웅이 한 번쯤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돌아가시오. 영감. 나는 오늘 영감을 못 본 거고 영감 또한 이곳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오. 주상께는 자객들이 한차례 화살 공격을 끝내고 도주했다고 할 것이오.”

박원종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옆에 있던 푸른 눈의 여인 또한 박원종과 지웅을 번갈아 쳐다보며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보시오. 내금위장. 주상을 속인 죄는 목 하나로 감당할 일이 아닐 것이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지웅은 박원종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았지만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것이오. 빨리 자리를 뜨시오. 그리고 저 야인들은 모두 돌려 보내시오. 혹여 영감이 또 거사를 일으킨다 해도 내가 있는 한 성공할 수 없소. 그러니 부디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지웅은 칼을 칼집에 넣고 돌아서서 말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말 안장을 짚고 올라타서 고삐를 틀었다. 푸른 눈의 여인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지웅을 향해 던졌다. 작은 패도(佩刀)였다. 역시 푸른색의 호신용 칼이었고 겉면에 매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대나무로 만들었지만, 색상도 입힌 데다 조각과 매듭된 형태를 보니 무척 고급스러웠다. 여인이 소리쳤다.

“내 이름은 ’아란카’에요. ‘구왈기야 아란카’,,다음에 만나면 돌려주세요. 당신을 기억하겠어요.”

지웅은 당혹스러웠다. 뜬금없이 패도를 던져주는 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북방의 여인들은 조선 여인과 달라서 행동과 표현에 거침이 없다는 얘긴 들었었다. 지웅은 여인을 한 번 쳐다보고 말을 돌려 창덕궁 방향으로 달렸다.

남겨진 박원종과 여인은 멀리 사라지는 지웅을 바라보았다. 여인이 말했다.

“저 사내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지금 주상을 호위하는 내금위장일세. 병판을 지냈던 신광현(申光賢) 대감의 자제인 신지웅(申知雄)이라는 사내로 문과와 무과에서 모두 수석으로 합격한 불세출의 천재일세. 문무(文武)를 겸비한 사내는 찾기 어려운 법이지. 문장도 문장이지만 무과시험에서는 대단했었네. 기사(騎射)와 기추(騎芻), 기보(騎步)에서 두각을 나타냈었지. 편전(片箭) 보사(步射) 또한 기존의 130보가 아니라 200보에서도 백발백중이었네. 저 사내가 칼에 자비를 두어서 그렇지 만약 활이었다면 우린 이미 저승사자를 만나고 있을 걸세.”

기사(騎射)는 약 200보 정도의 직선거리를 말 타고 달리면서 고정된 과녁에 세 개의 화살을 차례로 맞춰 명중시켜야 하는 시험이었다. 웬만한 무인들은 이 정도는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추(騎芻)와 기보(騎步)는 난도가 달랐다. 기추(騎芻)는 풀을 엮어 만든 허수아비 인형을 세 방향에 놓아두고 역시 말 위에서 특정 부위를 정확히 타격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기보(騎步)는 무거운 화살인 철전(鐵箭)을 가지고 먼 거리의 목표를 맞추는 시험으로 말을 고삐도 잡지 않고 허벅지의 완력과 감각만으로 타고 가면서 무거운 철전까지 쏘는 기술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웅은 이 모든 시험을 단 한 차례도 실수 없이 유일하게 합격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애깃살을 200보 거리까지 쏘아 보내는 기술은 단연코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는 기술이었다. 박원종은 애깃살을 쏘는 기술로 북방에서 유명세를 떨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절대 130보 이상을 쏘기란 불가능했다. 강한 내공이 뒷받침 되어야 150보 정도 보낼까. 200보를 쏘아 보내는 걸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었다. 박원종은 지웅이라는 사내를 적으로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란카가 신지웅이라는 이름을 몇 번 되뇌였다. 마치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저 사내의 칼에 묶여 있던 붉은 댕기가 떠올랐다.

“풀기얀,,신지웅이라, 저 사내. 제가 갖고 말겠어요. 어차피 저 사내의 손에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 목숨을 빚졌으니 남은 목숨은 저 사내에게 받치겠어요.”

“그래서 패도를 주었는가. 자네들 북방 여인들은 패도를 받치는 행위가 자신의 생명과 정절을 맡긴다는 의미 아니던가.”

“후훗, 그렇지요. 당신을 최고의 전사라고 인정하는 의미도 있지요. 곰처럼 거친 우리 ‘아이신 구룬(金國)’의 사내들에게서도 보지 못했던 용맹함을 조선 사내에게서 보다니.”

‘풀기얀‘이란 붉은색을 뜻하는 여진족 말이었다. 오른팔에 자상(刺傷)을 입은 자객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혈관과 힘줄을 피해 다행히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없었다. 박원종은 내금위장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생명을 중시하는 자세도 훌륭한 무인이었다. 박원종은 앞으로 이런 기습으로 인한 주상의 암살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쉽게 여겼다. 북방 여진족 바투루(용사)들을 데려온 건 저들의 칼과 활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어가를 호위하는 금군들은 모두 허수아비라고 생각했지만, 내금위장 한 명을 당해내지 못했다. 아란카 역시 상대도 되지 못했다. 아란카는 내로라하는 부족 내 최고 무사였다. 내금위장의 칼을 너무 얕봤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장백산 북쪽 줄기, 송화강 상류의 험준한 산세와 풍요로운 숲을 병풍처럼 끼고 살아가는 구왈기야 부(部)의 추장 ‘구왈기야 투먼’은 박원종과 의형제를 맺은 사람이었다. 박원종이 평안도 절도사 시절 늑대 무리에 갇힌 구왈기야 투먼을 보고 애깃살을 쏘아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걸 계기로 의형제를 맺은 두 사람은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었다. 박원종은 최근 믿을만한 사람을 보내 바투루 30명을 요청했고 통솔자로 아란카가 함께 내려온 터였다. 구왈기야 투먼의 투먼은 한자로 만(萬) 자를 뜻했다. 인구 팔십만 명에 용맹한 바투루만 팔천 명이었다. 아란카의 어머니는 ‘나라 헤이야’로 추장의 아내지만 부족의 모든 대소사를 결정하고 약초 재배와 식량 자급자족을 만든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박원종은 거사를 일으킬 계획을 전달했고 그 시점이 되면 국경 근처에서 대규모 기동 훈련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연산군의 조정이 이에 반응해 군(軍)의 신경을 돌리는 사이 거사를 하려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획이었다. 약속대로 거사를 실수 없이 준비하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감만 가지고 성급하게 서둘렀던 박원종에게 신지웅이라는 사내가 화두를 던져준 것 같았다. 조카나 다름없는 아란카에게 박원종이 말했다.

“자네는 바투루들을 데리고 피해 있게. 때를 보아 다시 부르겠네, 말바위 뒤쪽으로 가게.”

“알았어요. 에치케(삼촌),”

아란카는 바투루들과 함께 서쪽 백악산 방향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박원종은 두 군데 은신처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백악산 말바위와 인왕산 치마바위였다. 백악산은 호랑이가 나온다는 곳이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 꺼리는 곳으로 깊은 산세와 기암괴석이 많았다. 말바위라는 커다란 암석 뒤에 은신처가 있었다. 말바위는 특히 창덕궁의 후원과 맞닿아 있고 지세가 높아서 창덕궁 내부와 경복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바위가 많고 울창해 몸을 숨기기 좋으며 성벽을 넘으면 바로 도성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어 있었다. 인왕산 또한 거대한 바위와 가파른 절벽이 많아 은신하기에 최적이었다. 산 중턱에 치마처럼 바위가 늘어진 치마바위가 있어 한양 도성 서쪽을 감시하며, 위급시에는 무악재를 넘어 고양이나 파주쪽으로 빠르게 도주할 수 있는 퇴로가 있었다. 박원종과 아란카는 백악산 말바위를 기본 전략지로 삼고 인왕산 치마바위를 위급시 접선할 제2의 은신처로 삼았다. 아란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박원종도 복면을 벗어 던지고 누이의 집으로 향했다.

연산군 앞에서 부복한 지웅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연산군은 편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손가락을 입으로 물어뜯는 등 정신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곤룡포는 최근 들어 제대로 입는 법이 없었다. 항상 옷고름이 풀려있고 적삼만 입고 있던가 안 저고리만 입은 채 술을 마시고 머리도 단정하지 못했다. 며칠 씻지도 않았는지 몸에서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정5품 제조상궁과 지밀상궁이 상시 대기하고 있었지만, 주상은 귀찮은지 툭하면 물러가라며 소리쳤다. 언제부턴가 한쪽 구석에 사인검(四寅劍)이 칼집에서 나와 세워져 있었다. 임금이 직접 소지하며 장식으로 걸어 두는 사인검은 신성시되어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칼이었다. 12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맞춰 제작하는 검으로 궁궐의 재앙을 막고 임금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상징적 보검이었다. 적을 베는 용도보다는 악을 물리친다는 부적(符籍)의 의미가 강한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이었다. 그 검을 빼서 아무 때나 휘두르고 벽에 대충 세워두는 행위 자체가 무척 불경한 짓이었다. 연산군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들이 모두 도망쳤다구? 무극, 자네의 실력이면 다 잡았어야지. 모두 죽였어야지. 도망치게 놔두면 어떡해. 또 올 거 아냐? 안 그래. 응?”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적들이 일회성 화살을 쏘고 도주하는 바람에 잡을 길이 없었나이다. 허나 어가에 꽂힌 화살을 보고 짐작하건대, 북방 누르하치 후손들의 책동으로 보여지나이다.”

연산군이 고개를 돌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 북방 오랑캐들이 왜? 내가 무엇을 했다구. 오랑캐들이 감히 나를 왜?”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작년부터 그들에게 식량과 소금, 무역권을 주어 회유했던 정책을 중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사료 되옵니다.”

조선은 명(明)을 사대했기 때문에 북방 오랑캐인 여진족과는 전쟁을 피해 국경을 맞대고 회유하는 정책을 써왔다. 식량과 비단을 주고 소금을 주어 그들을 달래왔었지만, 연산군의 사치스러운 생활로 궁의 재정이 열악해지자 오히려 공물을 요구하며 군사적으로 압박했던 것이었다. 혈기 자체가 거친 여진족들은 선대왕들이 맺은 형제의 약조를 깨뜨리고 자신들을 굶주리게 했다는 명분으로 충분히 도발할 이유가 있었다. 지웅의 말에 연산군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 그래, 무극, 자네 말이 옳다. 우리 처남이 있었지. 처남을 평안도 절도사에서 복귀시켰기 때문이야. 그전에는 얼마나 사이가 좋았나. 안 그래? 처남을 다시 보내야겠어. 감히 조선을 능멸하다니. 내 이놈들을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겠어. 당장 처남을 보내 오랑캐들을 정복하는 게 낫겠어. 안 그런가 무극, 응?”

지웅은 주상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정상적인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늘상 암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오랑캐를 공격한다니 말도 되지 않는 궤변이었다.

“전하, 지금 전쟁은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소서.”

“어째서. 왜. 도대체 뭐가 안 되는데.!”

연산군은 소리를 꽥 질렀다. 갖고 싶은 걸 뺏긴 어린아이처럼 극도로 흥분했다가 갑자기 웃으며 천진난만해지는 증상이 자주 보이는 요즘이었다. 지웅은 주상을 달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전하, 전하의 북벌(北伐) 대의를 온 천하가 다 알고 있으나 북방의 흉포한 야인들을 정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옵니다. 저들은 성곽을 쌓고 사는 민족이 아닌 바람과 같은 존재들이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으면 저들은 깊은 숲과 험준한 산맥 속으로 흩어져 우리 조선군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칠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자총통(天字銃筒)이 있다하나 저들의 지형에는 무용지물입니다. 더구나 저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고 있사온데, 만일 우리가 공격한다면 저들은 생존을 위해 하나로 뭉칠 것이옵니다. 명분을 만들어 저들을 거대한 외적으로 만들어 주는 자충수가 될 게 뻔하니 불가하다 아뢰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에이,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건방진 오랑캐들이 내 목숨을 노려도 가만 있으란 말이냐?”

“전하, 전하의 곁에는 소신 무극이 있사옵니다. 제가 있는 한 그 누구도 전하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할 것이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지웅의 말을 들은 연산군은 표정이 바뀌었다. 두 눈이 커지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무극, 짐에겐 자네가 있었지. 자네만 내 옆에 있다면 천군만마도 필요가 없네. 하하하. 어떤가, 무극, 오늘도 나와 술 한 잔 할 텐가? 내 다른 기생들을 불러주지.응?”

연산군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술이 깨지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눈이었다. 잠을 푹 자고 술을 깨는 게 급선무였다.

겨우 주상을 달래고 나온 지웅은 상선에게 조용히 어의를 불러 잠을 자는 약이라도 처방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상선도 동의하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누렇게 뜬 상궁과 나인들이 피곤한지 연신 하품하는 게 보였다. 평소라면 경을 칠 일이었지만 잠을 안 자는 주상에게 시달린 걸 아는지 모른 척하는 눈치였다. 지웅은 연산군의 침전을 나와 창덕궁 선정문 동쪽에 위치한 내반원(內班院)에 들러 판내시부사의 숙직 상황을 물었다. 내시들의 경우 내시부의 수장인 판내시부사나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내시들은 장번(長番) 내시라 하여 궁궐 안의 내반원에 상주하며 근무를 해야 했지만, 김처선 대감은 연로하여 출입번(出入番)으로 근무한다고 했다. 대감의 집이 궁궐에서 가까운 준수방(俊秀坊) 근처에 산다는 말을 듣고 지웅은 성문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창덕궁에는 다섯 개의 주요 성문(城門)이 있었다.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이었고 평소 출입 인원이 제일 많은 문이었다. 금호문(金虎門)은 돈화문 서쪽에 위치하여 주로 내시들이나 하급 관료들이 출퇴근할 때 사용하던 문이었다. 단봉문(丹鳳門)은 궁궐의 동쪽에 있으며, 주로 왕실 종친들이 출입하던 문이었고, 요금문(曜金門)은 서남쪽에 있는 소문으로 궁인들이 드나들거나 궁에서 사용하는 물자들이 이동하는 문이었다. 선원문(璿源門)은 서북쪽에 위치하여 역대 선왕들의 초상화를 모신 선원전(璿源殿)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북쪽은 북악산의 줄기인 응봉(應峰) 자락을 따라 지어져 울창한 나무숲과 급한 경사가 있고 후원으로 이어지는 통로 역할을 했으며 갈수록 지형이 높아지며 왕실의 정원인 넓은 비원이 펼쳐져 평소 순라군들의 경계가 엄격한 곳이었다. 따라서 따로 성문은 필요 없었다. 지웅은 금호문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돈화문의 수문장(守門將)인 성설(成雪)과 금호문의 수문장인 이혁(李赫)이 함께 있었다. 지웅이 신원패를 보여주자 두 수문장은 허리를 굽히는 궁신(躬身)의 군례를 갖추어 인사했다.

“내금위장 대감, 퇴청하시나이까?”

“수고들 많네. 최근에 수상한 자들의 움직임은 없었나?”

지웅의 질문에 금호문 수문장 이혁이 대답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대감. 혹시 별다른 정보라도,,,”

“아닐세. 주상 전하의 심기가 예전 같지 않으니 주상 전하의 신변과 궁의 보안을 책임 진 우리라도 정신을 바로 잡자는 말일세.”

“아 네. 대감 명심하겠나이다. 근데 이쪽은 평소 대감께서 다니는 길이 아닌데 따로 가시는 곳이라도,,,”

지웅이 이혁을 쳐다보았다. 매서운 눈빛에 이혁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었다. 종2품 내금위장에게 정4품에 불과한 수문장 따위가 물어볼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웅은 표정을 풀고 따스하게 웃으며 이혁의 어깨를 툭 쳤다.

“뭘 그리 정색하는가. 판내시부사 댁에 가는 길일세.”

이혁은 긴장했다가 지웅의 태도에 안심이 되었는지 얼굴이 환해졌다. 내금위장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궁에 있으면 별의별 정보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내금위장은 주상과 밤마다 대작(對酌)을 하며 계집도 끼고 노는 사이라든가. 아무도 없는 사석에서는 주상도 내금위장에게 꼼짝 못한다는 등 소문이 나돌았다.

지웅이 두 수문장을 뒤로하고 궁을 나오자 성문 앞에 수문군(守門軍)이 창을 들고 군례를 취했다. 저 멀리서 오위(五衛) 소속 군사들이 순찰을 도는 게 보였다. 수문(守門)의 경계는 엄격했다. 아무리 높은 고위관료나 임금의 측근 내시일지라도 통행금지 시간대에 궁궐문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수문장에게 그날의 암구호를 대야만 했다. 낮에 출입할 때는 통행패(通行牌)인 나무로 만든 부신(通符)을 보여주면 되지만, 밤에는 매일 바뀌는 암구호를 알아야 했다. 군호(軍號)인 암구호(暗口號)는 매일 저녁 병조에서 세 가지 후보 단어를 임금에게 올린 뒤 임금이 그 중 하나를 점찍으면 그것이 그날의 군호가 되었다. 승정원을 거쳐 암행을 통해 수문장과 순라군에게 비밀리에 전달되기 때문에 이를 모르는 관료는 있을 수 없었다. 설사 임금이 밤에 몰래 궁 밖으로 나가거나 궁궐 안을 산책할 때도 예외는 없었다. 주로 인정(人定)이 울리면 성문을 닫고 파루(罷漏)가 울리면 성문을 여는 데, 이 시간에 통행하다 암구호도 모르고 적발이 되면 범야(犯夜), 즉 ‘밤을 범했다‘고 하여 오라를 한 뒤 경수소(警守所)로 압송했다. 지웅은 성문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오전에 잠깐 내렸던 비가 다시 오려는지 어디선가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꽃피는 춘삼월이라는데 아침저녁으로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 여기저기서 기침하는 사람들 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