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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부운(浮雲)

by Jiungine

용산 별궁에 도착한 연산군과 일행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별궁의 주방에는 임금이나 세자의 행차 때 어가(御駕)를 시위(侍衛)하는 액정서(掖庭署) 소속 별감(別監)들과 숙수(熟手)들이 멧돼지 요리를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상선 김자원이 피곤한 지 고갤 돌려 연신 하품하는 모습을 본 연산군이 가서 몇 시진 자고 오라는 명을 내렸다. 바로 부복하고는 죽여 달라고 떼를 쓰는 김자원에게 웬일인지 다정하게 말하는 주상의 얼굴을 본 김자원은 성은이 망극하다며 고개를 조아리고는 방을 나섰다. 한참 후에 주안상이 차려졌다. 연산군은 모두를 물리치고 지웅하고 단둘이 있었다. 연산군이 친히 어주를 내렸다.

“이보게 무극, 내 벗으로써 한 잔 받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지웅은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고갤 돌려 한 번에 마셨다. 그리곤 연산군에게 한 잔 따랐다. 연산군도 한 번에 마시고는 술잔을 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보게 무극, 자네가 우리 외조모와 같은 성씨라서가 아니라 자네의 무예(武禮)와 시문(詩文)에 반해서 자넬 좋아하는 걸 알고 있지?”

“망극하옵니다. 전하. 소신의 작은 재주를 높이 평가해 주시니 신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연산군이 다시 한 잔 지웅에게 따라주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잔을 비우고는 다시 연산군에게 술을 따랐다.

“그러고 보니 자넨 내 잔을 다 받으면서 한 번도 취한 적이 없단 말이야. 무술을 익히면 그런 능력이 생기는 겐가? 나도 더 마시고 싶은데, 도중에 취해 버리니 그럴 수도 없단 말이야. 어떤가? 비결을 말해보게.”

지웅은 잠시 망설이다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금주불취(禁酒不醉)의 세가지 오의(奧義)가 있나이다. 첫째 정(精)을 다스려 간(肝)을 보호하라. 이 비결은 고도의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신체의 정기신(精氣神) 조절 능력을 활용합니다. 무예 수련을 통해 하단전(下丹田)의 정(精)을 단련하면 신체의 근본적인 활력이 증진되나이다.

둘째는 기(氣)를 조율하여 취기(醉氣)를 분산시키는 경락 순환법이 있사옵니다. 단전의 불꽃으로 독(毒)을 태우는 이치로 술의 탁한 기운을 인체의 주요 경락(經絡)으로 분산시켜 삼초경(三焦經)과 위경(胃經)을 따라 손끝과 발끝으로 기를 유도하는 운기(運氣) 수련을 뜻하나이다.

셋째는 신(神)을 집중시켜 정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비결은 신(神), 즉 정신력을 통제하는 것으로 무술가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하는 심법을 익히나이다.“

연산군은 지웅의 말을 듣고 고개를 뒤로 젖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내 비결을 말해보라 했으나 진짜 그런 비기가 있는 줄 몰랐네 그려. 자네는 늘 그렇게 진지한가? 오늘은 내 친히 명을 내리겠네. 오늘 나와 대취하지 않으면 기군(欺君)의 죄를 물어 파직하고 유배를 보내겠네. 어떠한가? 취할 수 있겠는가?”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신은 전하를 지키는 내금위장이옵니다. 명을 거두어 주소서.”

“어허, 짐이 명을 내리는 데 거부할 참이더냐? 진정 목이 달아나고 싶으냐? 이곳엔 쥐 한 마리 들어올 수 없느니라.”

“전하, 불취(不醉)는 어려우나 대취(大醉)는 쉽나이다.”

불가항력임을 깨달은 지웅이 마지못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하자 연산군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더욱 크게 웃었다. 웃음을 멈추고는 문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봐라. 대령해 있는 후궁과 기생들을 모두 입시(入侍)케 하라. 내 오늘 기분이 좋아 한바탕 놀아야겠다. 하하하.”

잠시 후에 상선은 잠이 깼는지 누가 깨웠는지 오사모(烏紗帽)를 삐딱하게 쓴 채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이어 세 명의 후궁과 다섯 명의 기생이 따라 들어왔다. 옷차림부터 달랐다. 후궁은 붉은색 당의(唐衣)를 저고리 위에 덧입고 풍성하고 긴 치마를 입었으며 첩지 머리위에 가체(加髢)를 얹은 모습이었다. 기생은 옷의 색상이 확실히 달랐다. 더 붉고 파랬으며 긴 치마를 살포시 두 손으로 들고 긴 소매를 나풀거리며 댕기와 노리개 등 치장을 한 모습이었다. 세 명의 후궁은 들어오자마자 연산군의 옆에 앉았으나 기생 다섯은 문 입구에 나란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 본시 제조상궁(提調尙宮)을 통하여 오늘 밤 나의 침전을 지킬 후궁을 택(擇)하여 간(諫)하라 하였더니 이리 셋이나 보냈지 뭔가. 아무래도 나의 정기(精氣)를 말릴 작정인게야. 하하하. 어디 그뿐인가. 장악원(掌樂院) 제조(提調)인 나의 처남 유정(幽貞-임숭재)은 기생을 선발해서 다섯이나 보냈네 그려. 내 곁에 충신들이 가득하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안 그런가 무극?”

지웅은 무어라 답할 수가 없었다. 선대왕도 여색을 좋아하여 세 왕비와 여덟 명의 후궁을 두지 않았던가. 자식만 왕자가 열여섯이요 공주가 열넷이었다. 지금의 주상은 어떠한가. 중전 신씨(愼氏)를 비롯하여 후궁만 열 명이었다. 자녀만 해도 4남에 10녀가 아니던가. 후궁 중에 숙용(淑容) 장씨(張氏) 장녹수(張綠水)는 거의 주상을 어린애 품듯 품 안에 끼고 살았다. 대신들의 불만이 가득해도 왕실과 조정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묵인되어 왔던 주상의 음탕함이었다. 매일 옆에 달고 사는 장녹수의 치마폭을 벗어났으면 하루쯤 쉬어가도 되련만 주상의 색욕은 오늘도 어김이 없었다.

“무극, 저 기생들 중에서 두 명을 고르게. 오늘은 나와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눠봄세. 하하하”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불편부당한 명은 거두어 주소서. 임금과 대작하는 것은 대명률에도 군상(君上)에 대한 불경(不敬)이라 하여 엄히 처벌하는 중죄이옵니다. 임금께서 사작(賜酌) 하시거나 어주(御酒)를 내리시면 배사(拜賜)함이 지극히 당연하온대, 어찌 감히 전하와 대작을 하겠나이까. 더구나 옆에 여인을 배석하라 하시니 차라리 소신을 죽여 주시옵소서.”

지웅은 주상의 무도함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언제 어느 때 변덕을 부릴지 몰라 내심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집불통인 주상을 이길 수는 없었다. 연산군은 강제로 지웅의 고개를 들게 했고 문 입구에 서 있던 기생들을 바라보게 했다. 툭 하면 목을 자른다는 협박에 지웅은 어쩔 수 없이 그 중 자꾸만 눈이 가던 기생을 지목했다. 두 명은 과 하니 한 명만 지목하겠다고 간청하여 그나마 한 명으로 정해졌다. 그제야 주상의 표정이 풀리면서 아이처럼 좋아했다.

“사내가 계집을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시정잡배도 측간 드나들 듯 찾는 곳이 기생집이거늘, 자넨 내 앞이라 일부러 빼는 건가. 아니면 그곳이 아직 상투도 못 맨 아기씨라서 인가? 하하하.”

연산군은 약간 취기가 오르자 대소 신료들이 아닌 지웅과 함께라서 편한 듯 했다. 말도 격식과 허례로 가득한 궁중 어법이 아닌 시정잡배들처럼 막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연산군이 지웅의 옆에 앉은 기생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너의 이름을 말해 보거라.”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소첩, 오(吳)가 해란(諧蘭)이라 하옵니다.”

“오, 정말 난초같이 수려한 미모로구나. 옆에 앉은 이는 나의 벗이자 겸사복장 겸직 내금위장이니라. 잘 모셔야 된다. 알겠느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지웅은 난생 처음이었다. 어머니와 여종들 빼고는 여염집 여인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지웅이었다. 공부와 무예에 방해되는 요소들은 아버지께서 원천 차단한 탓이었다. 덕분에 열 살이면 장가를 가는 다른 양반집에 비해 지웅은 여전히 총각이었다. 기생집은커녕 기생집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지웅에게 낯선 여인의 향기와 단아한 자태는 지웅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연산군은 한 명의 후궁을 껴안고 한 손은 다른 후궁의 치마폭에 넣은 채 또 다른 후궁이 집어주는 안주와 술을 마시면서 취해갔다. 그러나 지웅은 옆에 앉은 해란이 따라주는 술을 고갤 돌려 마실 뿐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은 그대로였다. 해란이라는 여인의 가느다랗고 하얀 손목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고 눈이 부셔 정신이 아찔했다.

“오늘은 무극 자네가 저 기생의 머리를 올려줘야 하겠군. 밤이 그다지 길지 않네. 하하하”

인정(人定)이 울렸다. 연산군은 어느새 취해 상다리를 발로 차서 밀어 놓고 후궁들과 뒤엉켜 민망한 짓들을 서슴없이 하기 시작했다. 후궁들은 이미 학습이 되어 있었는지 까르르 웃어가며 연산군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 지웅은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이만 물러가겠다는 뜻을 고했으나 유흥에 취한 연산군이 대답을 못하자 슬쩍 절을 하고 방을 나왔다. 옆에 있던 해란도 지웅을 따라나섰다. 밖엔 상선 김자원이 눈을 감고 졸고 있다가 지웅의 등장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주상께서 찾으시면 물러갔다고 고해주십시오.”

상선이 게슴츠레하게 쳐다보더니 허리를 숙였다. 지웅은 맞배례를 하고는 해란과 같이 밖으로 나왔다. 둥근 달이 유독 크고 밝았다. 지웅이 묵을 방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하지만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뒤에서 해란이 따라오고 있었다. 지웅이 몸을 돌렸다. 해란이 옆을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달빛에 흔들렸다.

“이보시오 낭자. 주연(酒宴)은 끝났으니 그만 돌아가도 좋소. 혹여 가는 길이 무섭다면 동행하리다.”

해란은 옆으로 돌아선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상께서 명하신 밤입니다. 소첩은 거부할 수 없으니 해량(海諒)하여 주소서.”

지웅은 난감했다. 해란의 말뜻은 지웅을 모시라던 임금의 명이 있었으니 같이 잠자리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지웅도 알고 있었지만, 어찌 감응(感應)도 없이 잠을 잔단 말인가. 그렇다고 명을 거역했다가 다음 날 주상이 물어보았을 때 명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면 지웅은 무사할지언정 여인은 목이 잘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함께 밤을 지새는 걸로 합시다. 낭자의 벗을 해 드리겠소.”

지웅은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처마 끝에 달린 둥근 달이 지웅과 해란을 숨어 지켜보듯 따라오고 있었다. 해란의 그림자가 지웅의 발밑에서 수줍게 움직였다. 밤공기가 찼다. 추워 보이는 낭자의 어깨를 보며 지웅은 웃옷을 벗어줄까 망설였다. 어디선가 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일찍부터 임숭재는 아버지 임사홍의 집을 찾았다. 끝난 줄 알았던 꽃샘추위가 다시 찾아오더니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렸다. 이맘때면 막북(漠北)에서 날아오는 모래 폭풍 때문에 온 천지가 모래투성이였는데 올해는 내내 눈밭이었다. 임숭재는 갓에 쌓인 눈을 털고 툇마루에 올라섰다.

“아버님, 오늘 저녁입니까? 주상이 아직 사냥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변덕에 내일 올지 모레 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임숭재가 절을 한 후 앉기가 무섭게 입을 열었다. 임사홍은 수염을 만지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상관없다. 폐비의 어미야 우리가 데리고 있으면 될 일, 다른 대감들의 눈만 피하면 되느니라.”

“무오년에 사림(士林)의 젊은 선비들이 떼죽음 당했습니다.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입니다. 아버님, 과연 이게 옳은 일인지 소자 모르겠습니다.”

“신경 쓸 것 없다. 주상의 변덕을 너도 경계하지 않느냐. 언제 어느 놈의 세 치 혀에 우리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일이다. 너도 알지 않느냐? 성종대왕 9년 4월에 전국에 황사비가 내린 걸 사림의 삼사에서 재앙이라 여기고 금주령(禁酒令)을 내려달라고 했었지. 황사비는 재이(災異)가 아니니 국가의 제사가 연이어 있는 시점에서 금주령은 적절치 않다고 상소하니 그걸 빌미로 나를 탄핵했다. 자그마치 의주에 유배 가서 12년이다. 내 다시는 간신들의 혀끝에 놀아날 수 없음이야. 이참에 훈구 대신들도 다 엮어서 보내고 새판을 짜야 된다.”

임숭재는 아버지 임사홍이 또다시 겨우 잡은 권력의 줄이 끊어질까 두려워하는 걸 느꼈다. 지금 주상은 깨지기 쉬운 살얼음이었다. 아버지는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임숭재는 어차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니 아버지의 도박에 기꺼이 목숨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야말로 조선의 문장이요. 중국어에 능통해서 명나라 재상들과도 친분이 많았다. 죽게 되도 비빌 언덕 하나쯤 마련해 두셨을 것이었다.

“어차피 폐비의 일을 들쑤시면 관련된 자는 죽어야 한다. 유독 폐비를 반대한 게 우리 집안 아니냐. 그러니 유리한 싸움이다.”

임숭재는 아버지 임사홍이 성종대왕 시절에 폐비의 문제를 두고 대신들 간에 갑론을박이 이어졌을 때 유일하게 반대했음을 알고 있었다.

‘원자를 생각해서라도 폐비만은 불가합니다.’

이 한마디가 다가올 피의 숙청에서 임씨 부자를 살려줄 유일한 동아줄임을 임숭재는 굳게 믿었다, 게다가 지금은 주상의 임숭재에 대한 신의가 두터웠다. 오래전부터 아내인 휘숙옹주를 가까이하며 흠모하고 있음을 알고 있던 임숭재였다. 문성정(文城正) 이상(李湘)과 혼인하였던 여동생을 연산군에게 바치고 자신의 아내인 휘숙옹주도 연산군에게 바친 이후로 연산군의 총애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창덕궁(昌德宮)의 희정당(熙政堂)안에 연산군의 특별 침전을 만들어 연산군은 주로 이곳에 머물렀다.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은 주로 술자리를 열고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하곤 했다. 사냥터에서 오는 내내 가마를 타고 잠을 자던 연산군은 창덕궁에 도착하자 해장을 할 효종갱(曉鐘羹)을 내오라 일렀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연산군이 주로 마시던 해장국이었다. 배추와 콩나물, 해삼, 전복을 넣고 끓인 궁중 음식이었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운 연산군은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임사홍과 유자광을 바라보았다.

“그래, 짐의 대부인(大夫人)이 와 계시단 말이오?”

“그러하옵니다. 전하.”

임사홍이 대답했다. 창덕궁(昌德宮) 깊숙한 곳, 희정당(熙政堂)은 오늘따라 짙은 먹구름이 내려앉은 듯 음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평소답지 않게 앞에 앉은 임사홍(任士洪)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라 하세요.”

곧이어, 폐비 윤씨(廢妃 尹氏)의 어머니이자 임금의 외할머니인 대부인(大夫人) 신씨(申氏)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평생 궁궐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노부인은 떨리는 걸음으로 임금 앞에 다가와 사배를 올렸다. 일부러 옷은 청결하지 못한 넝마에 가까운 헌 옷으로 입은 채였다.

"폐비의 어미, 아뢰옵니다. 만승(萬乘)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못하는 죄인의 몸이오나, 오늘만은 천은(天恩)으로 이리 장성한 임금의 용안을 뵈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짐이 유배 생활을 풀어주라는 명은 내렸었으나 그 후로 소식을 듣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어찌 사셨소? 어미가 폐비 되어 사사(賜死)된 줄도 모르고 나 혼자 호의호식 했으니 이 모든 게 짐의 부덕함입니다. 제가 윤허(允許)할 터이니 대부인께서는 모든 걸 말씀하시오.“

연산군이 차가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하자 대부인 신씨는 잠시 임사홍과 유자광을 슬쩍 쳐다보았다. 임사홍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부인 신씨는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비단 보자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세월의 흐름에도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는 피 묻은 적삼(赤衫)이었다. 그것은 폐비 윤씨가 사약(賜藥)을 받을 때 흘린 피로 물든 옷이었다.

대부인은 적삼을 들어 연산군의 앞에 조심스레 펼쳐 보였다. 희정당의 수많은 촛대 중 하나가 꺼졌다. 붉은 피 얼룩이 섬뜩하게 빛났다.

"전하(殿下)!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이까? 이는 수십 년 전, 전하의 생모(生母)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두던 날, 저에게 남겨진 유물(遺物) 이옵니다!"

신 씨의 목소리는 이미 절규로 변해 있었다.

"폐비가 역모(逆謀)를 꾀한 것도 아니요, 종사(宗社)를 해하려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중궁(中宮)으로서 투기(妬忌)와 질투에 눈이 멀어 잠시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온데... 성상(聖上)께서는 마침내 사약을 내리시고, 그 시신은 버려지듯 궁궐 밖으로 내쳐졌습니다."

유자광이 곁에서 눈짓을 하자, 임사홍이 고개를 숙이며 덧붙였다.

"대부인, 소상히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폐비를 사사하라 부추긴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신씨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바닥에 박으며 소리쳤다.

"사약은 성상께서 내리셨으나, 그 뒤에는 정녕코 정희대비(貞熹大妃)와 인수대비(仁粹大妃) 마마의 엄한 명령이 있었사옵니다. 그분들은 폐비의 죄를 지나치게 키워 전하의 어머니를 끝내 이 세상에서 하직케 하였나이다. 이 피 묻은 적삼은 전하의 어머니가 억울하게 죽었음을 고하는 증좌(證左)이옵니다!"

연산군은 차갑게 침묵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춰왔던 비밀이었다. 피 묻은 적삼과 대부인의 처절한 절규는 연산군의 가슴에 수십 년 묵은 불씨를 던졌다. 연산군의 눈빛은 이미 분노와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내 어머니에게 사약을 내리는 데 관여한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경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짐에게 고하시오.“

임사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올해 초에 유배에서 귀향한 전임 예판 이세좌(李世佐)가 당시 사약을 전달했던 인물이옵고, 그의 숙부이자 좌상인 이극균(李克均)과 영상인 성준(成俊)은 폐비의 사사를 주장했던 인물들이옵니다. 이 모든 걸 주도한 이는 전임 영상대감 윤필상(尹弼商)이며, 이미 죽은 한명회와 정창손 등은,,“

”그만,,,영상을 들라 하시오. 내 사초(史草)를 보아야겠소.“

임사홍과 유자광은 깜짝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임금이라 하나 사초를 임의로 본다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침묵하던 유자광이 입을 열었다.

”전하(殿下), 신(臣) 유자광 감히 주청(奏請) 드리옵니다. 신 등은 삼가 춘추관(春秋館)의 법제(法制)를 아뢰오니, 원 컨대, 전하께서는 통촉(洞燭)하시옵소서. 사초는 신료(臣僚)가 보는 것이 아니옵니다. 사초는 오직 사관(史官)만이 기록하고 간수(看守)할 뿐이옵니다. 재상(宰相)이라 할지라도 임의로 열어볼 수 없으며, 선왕(先王)께서도 감히 열람(閱覽)치 못하신 성법(成法)이옵니다. 이는 후세의 사가(史家)가 공정무사(公正無私)한 역사를 기록하도록 하기 위함이옵니다."

임사홍도 옆에서 거들었다.

“전하, 사초를 열면 사관의 붓이 꺾이옵니다. 만일 전하께서 친히 사초를 열람하시어 그 내용에 불편한 점이 있다 하시어 사관을 문책(問責)하시게 된다면, 사관들은 두려워 감히 직필(直筆)하지 못하고, 오직 임금의 안색만을 살피게 될 것이옵니다. 이로써 성상(聖上)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진실되이 기록되지 못할 것이니, 이는 곧 종사(宗社)와 후세에 큰 폐단(弊端)을 남기는 일이옵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법제를 지키는 것이 곧 전하의 위엄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선왕의 성헌(成憲)을 따르시어, 사초의 열람을 거두시고 춘추관의 법제를 엄히 지켜주시옵소서. 법을 지키는 것은 곧 성군의 덕(德)이요, 후세에 영원히 모범(模範)을 보이는 길이옵니다. 만일 사초 열람을 강행하시어 후일의 사론(史論)을 두렵게 하신다면, 이는 전하의 성덕(聖德)에 누(累)가 될까 심히 염려되옵니다."

연산군이 어안(御案)을 탁 내려치며 소리쳤다. 분노가 담긴 음성이었다.

“그대들 대신들은 어찌 그리도 속이 좁고 미욱(濔沃)한 소리만 하는가! 그대들의 아뢰는 바가 어찌 성헌(成憲)을 따르자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이는 오직 짐(朕)의 권위를 누르고, 그대들 신료(臣僚)의 뜻을 관철하려는 계책(計策)에 불과하니라. 사관의 직필(直筆)이란 곧 신하들의 농간(弄姦)이 아닌가. 그대들은 사관이 두려워 직필을 못 할까 염려하는가? 짐이 듣건대, 그대들이 말하는 그 '직필'이란 죽은 자의 입을 빌려 산 자를 비방하고, 음흉한 말을 감추어 후세에 화(禍)를 심는 것이 아니더냐. 법이 선왕께서 정하신 것이라 하여 어찌 시대와 상황에 따라 고치지 못할 법이 있단 말인가? 짐이 명하노니, 당장 사초를 가져오라! 만일 그대들이 계속하여 불경(不敬)하고 완강(頑强)한 태도로 짐을 거스른다면, 국법(國法)과 왕명(王命)을 가벼이 여긴 죄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연산군은 떨리는 손으로 피 묻은 적삼을 집었다. 신씨가 고개를 땅에 대고 엎드린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임사홍과 유자광 또한 고개를 조아리며 부복했지만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속으로 웃고 있는 건 바로 연산군이었다. 그는 오래전에 이미 자신의 어머니가 폐비 되어 사사된 걸 알고 있었다. 때를 기다린 것 뿐이었다. 이제 때가 되어 명분이 필요했고 임사홍과 유자광은 그 명분을 찾아준 것이었다. 임사홍과 유자광이 절을 하고 침전을 나갔다. 궁궐 전체를 집어삼킬 듯 한 참혹한 피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다.

창덕궁 희정당은 정면 9칸, 측면 4칸으로 된 장대한 공간이었다. 연산군의 편전(便展)이자 침전(寢殿)으로 사용되는 방 외에 측면에 있는 방 하나에 지웅의 집무실이 있었다. 지웅은 내금위장과 겸사복장을 겸하고 있었기에 주상인 연산군의 지근거리에서 상시 대기하곤 했다. 지웅은 다섯 명의 부하가 있었다. 지웅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까워 하지 않을 동생들이자 서얼(庶孼)들도 있었다. 내금위에 금군(禁軍)의 일장(一將)인 권열(權烈)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동생이었고 겸사복엔 겸사복 대장으로 신위대(申威大)가 있었다. 지웅의 먼 친척이었다. 내금위와 겸사복, 우림위(羽林衛)는 조정의 금군삼청(禁軍三廳)으로 왕의 직속 호위대였다. 우림위는 지웅의 추천으로 서얼 홍승찬(洪勝燦)이 우림위장이었고 그 아래 윤혜명(尹惠溟)과 서만복(徐萬福)이 받치고 있었다. 선대왕 시절 서얼들의 문과 응시가 막히고 무관직 진출에도 제약이 따르자 차별을 없앤다는 목적으로 만든 게 우림위였다. 서얼 중 무예가 뛰어난 인재들을 선발하여 임금의 호위를 맡김으로써 이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왕실 친위 세력으로 편입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다섯 명의 부하이자 동생들은 지웅이 직접 선발하고 배치한 정예 무사들이었다. 특히 서얼들과 아무런 격의 없이 행동하는 지웅에게 서얼 출신인 홍승찬은 지웅의 오른팔이자 제일 믿을 수 있는 동생이었다.

지웅은 집무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일어나서 좌우를 걸어 다니다가 다시 앉아서 곰곰이 무언가 고민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하는 것이었다. 한 번도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권열이 참다못해 물었다.

”형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꼭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가 심각했다가 얼굴도 반쪽이 되었소.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하지만 지웅은 권열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혼자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권열이 지웅의 얼굴 앞에 서서 ‘형님’이라고 크게 부르자 겨우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으응? 뭐라고 했나?“

”형님,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소. 지금 형님의 모습이 마치 실성한 사람 같소. 가만, 어디서 분(芬) 냄새가 나는 것도 같소.“

지웅은 권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냐. 나 좀 나갔다 올 테니 주상의 부름에 대비해 대비하고 있거라.“

지웅은 환도를 집어 들고는 쏜살같이 집무실을 나갔다. 권열이 그 모습을 보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웅은 말을 타고 궁궐을 나왔다. 겸사복은 기병(騎兵) 중심의 친위병이었다. 원래 말을 관리하는 사복시(司僕侍)의 업무를 겸하던 것에서 유래되었기에 튼튼한 군마(軍馬)들이 많았다. 지웅은 북촌(北村)으로 말을 몰았다. 이곳은 개천(開川)과 운종가(雲從街)의 북쪽에 위치한 고급 주거지로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하여 왕실과 가까웠으며 주로 고려 후기부터 자리 잡아 온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지웅은 말을 타고 오면서 해란이 말해준 집을 찾느라 눈을 부릅떴다. 역시 이 동네는 집집마다 기와의 때깔부터 달랐다.

오는 길목엔 커다란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줄줄이 서 있었다. 큰 언덕을 내려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에 길상목(吉祥木)이 눈에 띄었다. 학자나무로 불리우며 선비들이 사는 동네라 했다. 대궐 같은 가옥들 사이에 유난히 작고 아담한 집 한 채가 보였다. 해란이 말한 집이었다. 지웅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손에 쥐었다.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목을 가다듬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소리쳤다.

”이리 오너라.“

잠시 후 대문이 나무 특유의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늙은 여종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려서 마마를 앓았는지 얼굴이 얽어 있는 게 고단한 인생사를 묻지 않아도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주름진 얼굴로 경계하며 물었다.

”뉘슈?“

깃털 장식에 흑색 전립(戰笠)을 쓰고 철릭(帖裏)에 놋쇠 비늘이 달린 두석린갑(豆錫鱗甲)을 두른 지웅의 모습을 보면 그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지웅은 이 늙은 여종이 평생 집 안에만 틀어박혀 일만 하는 부류라 여겨졌다. 금군들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다니는 내금위장이 이 여종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포졸 나부랭이처럼 보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호패를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해란 낭자를 뵈러 왔네. 고해 주시게.“

여종은 지웅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해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싫어하지는 않는 듯 했다. 막상 해란을 다시 보자 지웅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까맣게 타 버린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가슴만 두근거리고 눈앞에 해란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기분이었다.

”병중에 계신 노모가 있어 안으로 뫼시지 못하니 송구하나이다.“

지웅이 눈만 뜨고 말이 없는 걸 보다 못한 해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으흠, 갑자기 방문하여 미안하오. 낭, 낭자의 질문에 답을 하러 왔소.“

해란은 옆으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숙인 채 단호하게 말했다.

”육조(六曺)의 뜰을 밟고 계셔야 할 분이 아니십니까. 종2품의 품계로 조정의 녹봉을 받는 나리의 관직은 결코 가볍지 않사옵니다.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대낮부터 저잣거리 여인을 찾아 헤매신다는 소문이 난다면 나리의 명예가 흔들릴 것이옵니다. 이만 돌아가세요. 대답은 후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더구나 헤어진 지 이제 겨우 두 시진이 지났을 뿐입니다.“

해란은 두 시진이라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낮아졌다. 얼굴이 붉어지며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지웅 또한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웅은 밤새 해란과 나누었던 운우지정(雲雨之情)이 생각이 나면서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랫배가 묵직해지면서 불편해졌다. 당장이라도 해란을 다시 안고 싶었다. 해란이 허리를 숙여 지웅에게 인사를 하고는 말을 이었다.

”소녀, 이만 들어가겠사옵니다. 살펴 가소서.“

그리고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웅은 말 한마디도 못한 채 주저하다가 대문이 닫힌 후에야 숨을 쉬었다. 지웅은 낭패감이 들었지만, 해란 낭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옳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임금을 지키는 내금위장이 저잣거리에 나와 여인을 찾고 있다니 직무태만에 직무유기였다. 지웅은 돌아섰다. 말의 고삐를 쥐고 천천히 걸었다. 지난밤 해란의 말이 떠올랐다. 지웅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여인과 합일한 후였다. 쾌락의 환희와 감동을 느낀 지웅에게 해란도 남자가 처음이었다. 요에 그려진 붉은 꽃이 해란도 처음임을 증명했다.

‘성상(聖上)의 명(命)이 있었다고 하나 소녀의 마음이 동(動)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쁨은 없었을 것입니다. 미천한 소녀의 머리를 올려 주셨으니, 소녀의 마음속에 지아비로 생각하고 평생을 가슴에 새길 것이나, 관기(官妓)의 몸으로 국법에 매여 있어 함께 하지 못함이 죄스러울 뿐이옵니다.’

‘낭자. 지위의 고하는 있을지라도 신분의 귀천은 없소. 이 나라 조선의 국법이 지엄하다고 하나,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다 같은 사람들인데 어찌 차별을 두겠소. 내가 부모님께 말씀 드려 낭자를 기적(奇蹟)에서 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겠소.’

‘나으리,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앞날이 창창한 나으리께서 어찌 이런 천기(賤妓)를 마음에 담아 두시나이까? 소녀 나으리의 영달(榮達)만 바랄 뿐 다른 욕심은 없나이다.’

‘아니오 낭자. 불경(佛經)에도 보면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하여 인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소. 하물며 낭자와 합방을 하였으니, 이 어찌 가벼운 만남이라 할 수 있겠소.’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앞이 안 보이는 거북이가 백 년 만에 바다 속에서 숨을 쉬러 올라오는데, 마침 바다를 떠다니던 구멍 뚫린 통나무의 구멍에 거북이 머리가 들어가는 인연을 말하는 것으로, 지웅은 둘의 만남이 하늘이 주신 인연임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으리는 임금을 버릴 수 있겠나이까? 부모님을 버릴 수 있겠나이까? 소녀를 데리고 멀리 도망칠 수 있겠나이까?’

지웅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해란은 대답하지 말라면서 지웅의 품으로 더욱 파고 들었다.

‘소녀는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대답은 하지 마세요. 나중에 대답하셔도 됩니다.’

지웅과 해란은 두 번 세 번 밤이 새도록 서로를 탐했다. 지웅은 책임지고 아내로 맞겠다는 대답을 하려고 온 터였다. 하지만 퇴짜를 맞았다. 돌아가서 방법을 만들고 다시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웅이 말에 올라 ‘이랴’ 하며 박차를 가했다. 말이 진눈깨비를 헤치고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대문 틈 사이로 해란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 첫눈에 보자마자 흠모했던 사내였다. 보통의 사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크고 작은 연회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장악원의 관기로써 불려 나가야 했다. 나이가 많건 적건 사내는 다 똑같았다. 침을 흘리며 일패기생(一牌妓生)이던 해란을 어떻게 하지 못해 질척대던 사내들을 무수히 봐 왔었다. 하지만 저 사내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임금의 강요로 딱 한 번 눈이 마주쳤지만, 그 순간 해란을 원하고 있음을 느꼈다. 대소신료들의 각종 연회는 구름처럼 밀려들었다. 그때마다 해란을 부르는 대감들도 늘어났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고위 관료들이 저마다 첩으로 들이겠다며 비단을 약속하거나 집 한 채를 얘기하는 사내들이 수두룩했다. 백옥(白玉)과 비취(翡翠)를 가져 온 사내도 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진주나 청금석(靑金石)을 내미는 사내도 있었다. 기생치고는 스무 살로 나이가 많았던 해란은 혼기(婚期)를 놓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이러다 나이 많은 대감 집 소실로 들어가게 될지 늘 전전긍긍했었다. 차라리 그럴 바엔 맘에 드는 사내에게 순결(純潔)을 허락하는 게 나았다. 지웅이라는 사내의 넓은 가슴팍이 떠올랐다. 애써 외면하며 보냈지만, 저 사내가 그리워질 것이 틀림없었다.

”날이 찬데 밖에서 뭐 하고 있느냐?“

어머니였다.

“네. 들어가요 어머니.”

해란은 옷깃을 여미고 마루에 올라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은근히 뼛속까지 시린 날씨였다. 방 안엔 어머니께서 아랫목에 누워 있었고 유모 단심(丹心)이 문 쪽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해란이 다소곳이 앉아 어머니의 이마에 올려진 헝겊을 물에 빨아 다시 이마에 대어 주었다. 어머니는 약 오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용하다는 의원들이 다녀갔지만, 누구도 선뜻 병명을 자신 있게 내놓지 못했다. 다만 열이 오르고 기침이 심해질 뿐이었다. 단심 유모는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옆에서 시중을 들던 여종이었다.

“누가 왔던 것이냐?”

어머니가 묻자 옆에서 단심 유모가 대신 대답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어디 말똥이나 치우는 작자는 아닌 것 같고 칼을 차고 말을 타고 온 걸로 봐서는 겸사복에 근무하는 금군 같기도 헌디요.”

어머니는 겸사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이 커지더니 유모를 향해 날 선 반응을 보이셨다.

“겸사복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해란아, 너를 찾아온 사람이 겸사복에 근무하는 사람이더냐?”

해란은 평소 조용하시고 신중하시던 어머니께서 이렇게 흥분하는 걸 처음 보았다. 오해를 풀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실대로 말하려고 할 때 어머님이 서릿발 같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전에도 말했거늘 너희 할아버님은 역모로 돌아가셨다. 평소 강직하신 분이었는데 무고로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우리 집안이 망하고 나를 포함 네가 관기가 된 것도 다 그 무고 때문이니라. 그 무고를 했던 자는 바로 당시 겸사복이었던 문효량이라는 자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겸사복과는 어떠한 인연도 맺지 말거라.”

어머니는 해란이 커 갈 무렵 할아버님에 대해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예종대왕 즉위년에 옥사(獄事) 사건에 연루되어 역모로 거열형에 처해진 남이(南怡) 장군과 강순 등이 있었고 문효량의 고변으로 아무 연관이 없던 할아버님 오차권(吳借權) 마저 역모의 희생양이 되었었다고. 해란은 차마 어머님께 인연을 맺은 자가 겸사복장이라고 말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예종대왕은 남이를 싫어했다. 병조판서(兵曹判書)에서 겸사복장(兼司僕將)으로 해임 좌천되자 이 틈을 타 유자광이 남이를 모함했다. 혜성이 출몰하자 유자광은 남이가 말하길, ‘혜성이 나타남은 묵은 것을 몰아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징조다. 혜성이 밝아 주위가 안 보이니 혜성이 희면 장군이 반역을 하고 2년 안에 큰 반란이 있다’라고 말한 것을 듣고 고변을 하여 예종의 국문 끝에 남이가 역모를 자백하였다. 남이는 예종에게 술 한 잔을 주고 포박을 느슨하게 해주면 모든 걸 털어 놓겠다고 말하고 겁에 질려 사람들 사이에 숨어 아무런 두둔을 하지 않는 영의정 강순(康純)과 함께 모의했다고 하였다. 강순이 왜 무고한 나를 모함하냐고 말하자 남이는 ‘그대는 나의 당류이자 영의정이고 나의 무고를 제일 잘 아는 자가 나를 구원하는 한마디 하지 않으니 같이 죽는 게 옳다. 그대는 이미 정승이 되었고 나이도 늙었으나 나는 겨우 스물이라 애석할 따름이다,’ 하고 하였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고신(告身)에 못 이겨 문효량도 할아버지 오차권을 끌어들였다고 어머니는 알고 계셨다. 집안의 모든 사내들이 죽고 난 후로 어머니는 이름을 바꾸셨다. 물에 뜬 연꽃처럼 세상을 잊고 살겠노라며 ‘수련(水蓮)의 이름으로 평생 사셨고 지금은 해란을 낳은 후회와 자책으로 틈이 날 때마다 가슴을 치셨다. 해란은 갑자기 전날 주상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지웅이란 사내는 겸사복장이자 겸직 내금위장이었다.

“어머니, 걱정 마셔요. 저와 인연이 되어 찾아오신 분은 내금위장 이십니다. 장악원의 호출로 임금님이 계시는 별궁으로 갔을 때 어명으로 모시게 된 분입니다. 제가 낭도(囊刀)를 유실하여 갖다준 것이니 심려 마시어요.”

어머니의 눈이 더 커졌다. 단심 유모도 바느질 하다 말고 해란의 입을 쳐다보았다.

“낭도를 가져다 주다니. 그럼 네가 정녕 옷고름을 풀었단 말이냐? 그 사내와 합방을 한 것이냐?”

어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묻고 옆에서 덩달아 단심 유모도 거들었다.

“아기씨. 달거리를 언제 했대요? 가만 있어보자. 개짐을 언제 빨았더라.”

해란은 손을 들어 두 사람의 입을 막았다.

“어머니, 유모, 저도 알 건 알아요. 별일 없을 테니 안심들 하세요.”

해란은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