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지 말기 · 가져가지 않았다
by 나츠하나 · 2026-10-27
모래시계 · 잔량 74시간 00분 · 여행 4일차
식당을 나섰을 때 골목은 낮보다 좁아 보였고, 저녁 내내 미뤄 둔 것이 밤공기 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성하는 리본 상자를 품에 안고 걸으면서 몇 걸음마다 상자의 각을 손끝으로 고쳐 맞췄다. 낮에 그렇게 많던 말은 저녁을 지나며 줄어 있었는데, 말수보다는 말과 말 사이가 길어진 쪽이었다.
"오늘 재밌었다." 성하가 말하고는 덧붙였다. "당신도 재밌었어?"
"재밌었어."
"어디가 제일?"
도윤은 박물관이라고 답했는데, 대답이 조금 늦었다. 따져 보고 고른 대답이라는 것을 성하는 그 소리로 알아들었다. "당신 오늘 어디 있었어?" 아직은 농담처럼 들리는 목소리로 성하가 물었다. "여기 말고. 하루 종일 어디 딴 데 가 있었잖아."
"여기 있었어." 도윤의 그 대답도 반만 정확했고 그만큼 늦게 나왔다.
성하는 더 묻지 않았지만, 어제의 침묵과는 다른 침묵이었다. 강가 쪽에서 밤바람이 골목으로 꺾여 들어오자 성하는 상자를 안은 팔을 조금 더 조였다. 평소의 성하라면 여기서 오늘의 일등과 실패, 내일로 넘길 것을 묶어 하루를 정리해 발표했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저녁이 이 여행에서 처음이라는 것을 도윤은 세지 않으려 해도 세게 되었다. 호텔까지 남은 세 블록 동안 성하는 두 번 웃었지만 둘 다 하던 이야기에 끌려 나온 웃음이었다. 두 번째 웃음 끝에 성하는 습관처럼 입을 뗐다. "그날 밤 아이는…" 다음 말은 나오지 않았고, 성하는 수첩도 꺼내지 않은 채 하던 문장을 삼켰다.
호텔 현관의 불빛 아래에서 성하는 내일 예배당의 개관 시간을 확인하겠다며 폰을 꺼냈는데, 화면을 켜던 손이 멈칫했다.
"폰이 왜 이러지." 지나가는 말이었다. "아까부터 이상하게 뜨거워. 배터리도 저녁 먹는 사이에 반이 날아갔고. 저녁에 식당 예약할 때도 계속 지직거리더니."
도윤의 세계가 반 박자 멈췄다.
발열과 방전과 잡음, 그 세 단어가 기억 하나를 열었다. 일 년 전 서울의 새벽들, 수화기 너머 성하의 목소리에 모래가 섞이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부터였다. 같은 날짜에 같은 증상이 눈앞에 다시 나타나자 소름이 등에서 목덜미로 올라왔다. 우연이라면 잔인한 우연이었고, 우연이 아니라면, 하고 이어지던 생각은 끝을 맺기 전에 성하의 목소리에 잘렸다.
"왜 그런 얼굴이야?"
성하는 폰 대신 도윤을 보고 있었고, 화면의 불빛이 성하의 얼굴을 아래에서 비추었다. "폰은 껐다 켜면 돼." 도윤의 말에 성하는 폰을 껐다. 그리고 켜지 않았다. 꺼진 화면의 어두운 유리에 비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 다른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한 게 뭔지 알아?" 성하가 말했다. 로비 구석의 오래된 소파 두 개가 마주 놓인 자리였는데 성하는 앉지 않았다. "하나하나는 다 설명이 돼. 자정 비행기도, 잃어버린 가방도, 갑자기 나타난 것도. 보물찾기에 진심인 것도, 당신 원래 물건 앞에서 그러니까. 그런데 설명되는 것들만 골라서 쌓아 놓으면, 설명 안 되는 게 딱 하나 남아."
성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 나갔다. 첫날 아침 가게 한가운데 서 있던 사람, 묘지에서 혼자 다른 것을 세던 눈, 박물관에서 이유 없이 낮아지던 목소리, 오늘 저녁 내내 절반만 앉아 있던 남자. 그리고 방금 폰 하나에 굳어 버린 얼굴까지 꼽자 다섯 손가락이 다 접혔다. 성하는 접은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그림책이라면 여기서 아이가 주먹을 펴고 그 안에서 답이 나오는 페이지였다. 성하는 주먹을 펴지 않았다.
"나 규칙 하나 만들게." 규칙을 말하는 목소리가 평소와 다름없어서 더 서늘했다. "오늘 밤엔 아무도 거짓말하지 말기. 당신도, 나도." 성하는 접은 손을 내리고 물었다.
"당신, 나 만나러 온 게 아니지?"
로비의 괘종시계가 초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도윤은 거짓말을 고르지 않았다. 정확함은 그의 모국어였고, 오늘 밤에는 흉기였다.
"너를 만나러 온 것만은 아니야."
만나러, 그리고 그보다 더한 것을 하러 왔다는 도윤의 속뜻은 성하에게 닿지 않았고, 성하가 들은 것은 겉뜻뿐이었다. 다른 목적과 숨긴 일, 그리고 너는 겸사겸사.
성하는 화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규칙은 지켰네." 성하가 말했다. "고마워해야 하나."
"서도윤."
성과 이름 사이에 일 년 같은 사이가 있었다. "우리, 같은 데를 다니면서 다른 여행을 하고 있었구나." 성하는 리본 상자를 고쳐 안았다. 초록 리본 상자와 수첩이 든 가방을 챙겨 돌아선 성하는 계단 앞에서 반쯤만 돌아보았다. "내일 일번은 취소야. 아니…" 잠깐 사이가 떴다. "일번이 뭐였는지도 이제 모르겠다."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멀어지고 위층 어딘가에서 문이 닫혔는데, 그 소리가 크지 않아서 더 나빴다.
도윤은 로비에 서서 빈 계단 위의 어둠을 한참 보았다. 쫓아 올라갈까 두 번 생각했지만 두 번 다 같은 데서 멈춘 것은, 올라가서 할 수 있는 말이 거짓말 아니면 전부, 그 두 종류뿐이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그녀가 이미 가려낼 줄 알았고, 전부는 그녀를 이 일의 한가운데로, 미행과 어쩌면 이미 뚫려 있을 전화와 사흘 뒤의 밤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말이었다. 지키려고 온 사람이 지키려는 사람을 과녁 복판에 세울 수는 없었다. 로비를 나서기 전에 도윤은 데스크에 들러 여자 손님 방의 조식을 내일 아침 방으로 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가게로 돌아가는 밤 골목은 어제와 같은 길인데도 두 배쯤 길게 느껴졌다. 열 걸음쯤 뒤에서 누군가 보폭을 맞춰 따라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모르는 척 걸었다. 뒷방에는 루틴이 남아 있었다. 모래시계 위 유리구의 모래는 절반을 조금 넘긴 언저리였고, 그는 회중시계의 태엽을 세 바퀴 반 감았다. 손이 루틴을 지키는 동안 머리는 한 문장을 되감았다. 너를 만나러 온 것만은 아니야. 해독의 절반은 지금 호텔 방의 가방 안에 있었는데, 스무 개의 글자와 두 줄의 순서 후보까지 전부 성하의 수첩 안이었다. 내일의 계획은 갱신하지 못했고, 예배당에 갈 수 있을지는 아침이 되어야 안다는 한 줄만 남았다. 불을 끄자 어둠 속에서 꺼진 폰 화면 같은 천장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18시 12분, 근무 전환. 초소의 창은 그대로 두고 다리오는 처음으로 골목에 내려와 있었다. 새 지시의 항목은 거리 근무와 2인 교대, 그리고 회선까지 셋이었다. 18시 40분, 수집 개시 확인. 첫 기록은 여자가 식당에 두 사람 자리를 물었다는 것으로, 쓸모는 없어도 회선이 살아 있다는 증명이었으니 오히려 중요했다.
19시 3분, 대상 2인 골목 안 식당 진입. 창가가 아닌 안쪽 자리여서 관측은 되지 않았으나 관측할 필요도 없어진 저녁이었다.
20시 정각, 대상 2인 식당 출발, 호텔 방향. 다리오는 열 걸음 뒤 반대편 인도를 걸었다. 남자는 두 번 진열창을 지나치며 유리를 읽었는데, 세는 버릇이 있는 남자였다. 경계할 줄 아는 대상은 처음이었고, 다리오는 그것을 위협 대신 정보로 분류해 적었다. 대상 남성, 관찰 훈련의 흔적 있음, 직업 불명. 따라가라. 명령은 단순했고, 다리오가 아는 한 그런 명령일수록 오래갔다.
21시 10분, 남자 단독 이동, 가게 복귀. 여자는 호텔. 하루의 기록이 닫혔다. 닫히지 않은 것은 회선 하나였다. 그것은 밤새 열려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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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가져가지 않았다
모래시계 · 잔량 71시간 00분 · 여행 4일차
잠이 오지 않아서 도윤은 잠을 청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어두운 천장을 보고 있으면 오늘 밤의 문장들이 떠올랐다. 규칙은 지켰네. 우리, 같은 데를 다니면서 다른 여행을 하고 있었구나. 문장들은 순서를 바꿔 가며 떠올랐지만 어느 순서로 놓아도 결론이 같았다. 탁자 위의 회중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 그는 잘못 들은 줄 알았으나 두 번째 소리에 몸을 일으켰고 세 번째 소리에 가게로 나갔다. 진열창 너머 가로등 불빛이 반쯤 닿는 자리에, 겉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가방을 가슴에 안은 성하가 밤 골목을 등지고 서 있었다.
안도보다 공포가 먼저 왔다. 이 사람이 이 밤에, 저 골목들을, 혼자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이 도시의 밤이 어떤지 아는 그에게는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그 사실이 먼저 서늘했다. 도윤은 잠금쇠를 여는 손이 서두르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문이 열리자 밤공기와 함께 골목의 정적이 들어왔다. 혼자 걷는 발소리가 이 골목에서 어떻게 울리는지 알면서도 그는 모르는 얼굴을 했다.
"방에 누가 들어왔었어." 인사도 로비의 이야기도 건너뛴 채 성하가 문턱에서 말했다. "당신한테 오면 안 되는 밤인 건 아는데. 올 데가 여기밖에 없더라."
도윤은 성하를 안으로 들이고 뒷방의 등을 켰다. 성하는 의자에 앉아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더니 두 손으로 가방끈을 꽉 쥐었다.
"물건들이 전부 일 센티미터씩 이사를 갔어." 성하는 그림책 작가답게 그림을 그리듯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리본 상자. 내가 각 맞춰 두는 거 알잖아. 침대 모서리랑 나란하게. 그게 비뚤어져 있어. 캐리어 지퍼 손잡이는 왼쪽에 두는데 오른쪽에 가 있고. 개켜 놓은 카디건은 접힌 면이 위로 오게 두는데, 뒤집혀 있어. 하나면 내 착각이야. 둘이면 우연이고. 전부 다면…" 성하는 문장을 맺는 대신 가방끈을 다시 쥐었다. "없어진 건 없어. 지갑도, 여권도, 다 있어. 그게 제일 무서워."
산책을 다녀온 사이였다고 했다. 잠이 안 와서 밤바람이라도 쐬면 나을까 하고 열 시 반쯤 나가 삼십 분쯤 강 쪽을 걷다가 돌아왔는데, 방문을 열어 보니 방은 나갈 때와 똑같은데 어딘가 달랐다고 했다. 그 감각을 설명할 말을 성하는 남의 방 같았어, 그 하나밖에 찾지 못했다.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문턱에서 오 분을 서 있다가 이 가게의 뒷방 불빛이 생각났고, 그다음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고 했다. "무서우니까 알겠더라." 성하가 말했다. "내가 어디로 걷는 사람인지."
"가 보자." 도윤은 코트를 걸치며 방 안의 두 물건을 눈으로 짚었다. 모래는 떨어지고 시계는 멈춘 채 둘 다 제자리에 있었지만, 오늘 밤에는 그것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짧은 밤길 내내 도윤은 성하를 벽 쪽으로 세우고 자신이 골목 쪽을 걸었고, 성하는 그 배치를 알아차리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텔 계단을 올라 방문 앞에 섰을 때 도윤은 성하에게 열쇠를 받아 들고 문을 잠깐 보았다. 전문가가 연 문답게 긁힌 자국은 없었다.
방은 성하의 말 그대로 아무 일도 없는 방이었다. 도윤은 문턱에서 한 발도 들이지 않은 채, 감정실에서 위작을 읽을 때의 눈으로 방 전체를 격자로 나누어 읽어 나갔다. 위작은 언제나 너무 완벽해서 문제였다. 진품에는 산 사람의 흐트러짐이 있는데 위작에는 계산된 무질서가 있고, 이 방이 그랬다. 성하의 방이라면 각을 맞춘 상자와 방향이 있는 카디건, 어제의 동선이 남긴 자연스러운 흐트러짐까지 성하다운 방식으로 어질러져 있어야 했다. 지금 이 방은 그것을 아주 잘 흉내 냈을 뿐이었다.
수색의 순서까지 읽혔다. 문에서 욕실로, 욕실에서 침대로, 침대에서 캐리어로 옮겨 간 것은 서두르지 않은 손, 장갑을 낀 손, 들어 올린 것을 들어 올린 각도 그대로 내려놓도록 훈련된 손이었다. 성하는 문가에 서서, 물건 앞에서만 바뀐다던 그 눈이 지금은 자기의 방을 읽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엇을 찾는 눈인지는 몰라도 무엇을 지키려는 눈인지는 처음으로 어렴풋이 보였고, 성하가 그날 밤 그 눈을 두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몰랐다. 읽기가 끝났을 때, 이 방의 모든 것을 통과해 간 그 손들을 두고 도윤이 내린 결론은 한 줄이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여권도 지갑도, 성하의 그림 도구와 초록 리본의 상자와 옷들도 그대로 있었다. 도둑이 아니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훔치지 않는 손은 무엇을 하러 들어오는가. 도윤은 그 질문을 더 밀고 가지 않았다. 여기서 끝까지 따져 들어가면 그 끝에 있는 것들을 성하도 보게 될 것이었다. 지금은 이 사람의 오늘 밤이 먼저였다.
가방은 아직 성하의 어깨에 걸려 있었다. 산책하는 삼십 분 동안에도 습관처럼 메고 나갔던 그 가방 안에 수첩이 있었고, 스무 개의 글자와 두 줄의 순서와 그림책의 첫 문장이 든 종이 뭉치는 그 덕에 그 손들을 피했다. 이 여행에서 우연이 이쪽 편을 들어 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도윤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신고해야 하나." 성하가 묻고는 자기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없어진 게 없는데 뭐라고 하지. 새벽 두 시에, 이탈리아 말로, 물건들이 일 센티미터씩 움직였다고?" 성하는 웃으려다 반쯤에서 멈췄다. "내일 프런트에는 말할 거야. 방 바꿔 달라고."
"그렇게 해." 도윤은 신고하면 따라올 경찰과 조서와 신원 확인을 혼자 따져 보았다. 이 도시에서 그는 서류 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계산이었지만 성하가 이미 결론을 내려 준 덕분에 낼 필요도 없었다.
"오늘 밤엔 내가 있을게." 도윤이 말했다. "저 의자에서. 그냥, 있기만 할게."
성하는 안락의자와 도윤을 번갈아 보았다. 로비에서 오간 말들은 하나도 풀리지 않은 채 두 사람 사이에 그대로 있었고, 그 위에 이 방의 무서움이 얹혀 있었다. "그래." 성하가 말했다. "대신 어제 규칙은 계속이야. 거짓말하지 말기."
"안 해."
그 두 글자가 참이라는 사실이 도윤에게는 잠깐 사치처럼 느껴졌다. 성하는 침대에 누워 벽 쪽으로 돌아누웠는데, 등을 보이는 것은 로비에서와 같아도 이번에는 같은 방 안이었다. 도윤은 안락의자에 앉아 불 꺼진 방의 소리를 들었다. 성하의 숨소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잠든 사람의 숨소리로 느려졌다. 잠들기 직전, 성하는 수첩도 연필도 꺼내지 않고 벽을 향한 채 잠결 같은 목소리로 두 줄을 중얼거렸다. "아이는 밤마다 누가 방에 다녀가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안 가져가도 되니까, 다녀갔다는 표시만 하나 두고 가라고." 이어서 조금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예배당. 일번, 아직 유효해. 취소한 건 취소할게." 그리고 잠시 뒤에 더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오해하지 마." 도윤은 오해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지만 그 대답이 들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동안 도윤이 만든 두 개의 목록, 지켜야 하는 것과 말해야 하는 것은 결국 세 걸음 옆에서 겨우 잠든 사람 하나로 모였다. 사흘 뒤의 밤까지 그는 이 사람의 잠을 세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잠들지 못하는 것들의 목록에 오늘 밤은 방 하나가 통째로 올라가 있었고, 그는 창의 커튼 틈으로 어스름이 배어들 때까지 깨어 있었다.
22시 31분, 여자 단독 외출. 다리오는 여자의 뒷모습이 강 쪽 골목으로 꺾이는 것까지 확인하고 무전 버튼을 눌렀다. 움직인 것은 두 번째 사람이었고 다리오의 역할은 시간을 재는 것이었다. 진입까지는 사 분이 걸렸다. 열리지 않는 문은 없었고 열린 흔적이 남는 문도 없었다.
실내 작업은 전경 촬영, 구역별 촬영, 확인, 복원의 순서로 이십삼 분이 걸렸다. 원칙은 하나, 모든 것을 발견된 각도 그대로 둔다는 것이었고, 여기에 명령의 첫 번째 조항이 붙었다. 가져가지 않는다. 두 번째 사람은 그 조항을 자로 잰 듯 지키는 부류였고, 다리오는 무전 너머로 들려오는 그 정확한 침묵이 마음에 들었다.
수확 목록은 짧아서 여자의 여권, 여자의 지갑, 여자의 그림 도구, 여자의 옷이 전부였다. 남자의 것은 여권도, 갈아입을 옷도, 칫솔 한 자루도, 아무것도 없었다. 사흘째 여자와 함께 다니는 남자는 이 방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다리오는 보고서에 적을 문장을 미리 골라 보았다. 대상 남성, 신원 미상 지속. 체류 흔적 전무. 흔적이 없는 남자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를 지웠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번 물음표는 지우는 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23시 4분, 복원 완료, 철수. 23시 41분, 대상 2인 복귀. 여자가 남자를 데리고 왔다는 점만이 예정에 없던 기록이었다. 철수 보고의 마지막 줄은 관례대로 특이사항 없음이었다. 방은 들어가기 전과 같은 방이 되었다. 적어도 보고서 안에서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