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품
by 하늘바라기 · 2026-10-27
「검은가면 :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는, 내가 마음속으로 정해둔 하나의 정답이 있어. 그리고 네 선택에 따라서 누군가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어.」
지글AI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해졌던 그날, 철민은 문득 콜라보 카페에서 풀었던 그 미스터리 문제가 떠올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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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양, 염소, 돼지, 그리고 양의 탈을 쓴 늑대. 이렇게 넷이 다리를 건너야 해. 근데 이 다리는 한 번에 두 명씩만 지날 수 있어. 너라면 그 양늑대를 누구랑 짝지어서 보낼 거야?」
「검은가면 : 참고로, 미리 정답을 듣고 고를지 그냥 바로 고를지 선택해도 돼.」
「지글AI : 저는 직접 고르겠습니다. 제 유능함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답은 돼지입니다. 늑대가 굳이 양의 탈을 쓴 이유는, 명백히 양을 방심시켜 해치려는 의도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 의외로 논리적으로 접근하네. 대충 만든 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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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정답은 양이었어. 왜냐하면 그 늑대는 원래 양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양의 탈을 쓴 거였거든. 그러니까 양이랑 같이 건너면, 그 착한 마음에 물들어서 다른 애들도 안 잡아먹었을 거야. 근데 다른 동물이랑 짝지었으면, 친구가 될 마음이 없었으니까 그대로 잡아먹혔겠지.」
「지글AI : 확인했습니다.」
「검은가면 :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 이 선택이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나, 이 네 동물에 맞는 사람 넷을 실제로 불러서, 그 '다리'라는 곳에 해당하는 곳으로 데려갈 거야. 혹시 하고 싶은 말 있어?」
✦처음 묻는 질문이지만, 이 정도 도발이면, 그래도 꽤 뜨겁게 반응하지 않으려나?
✦…이런 걸 생각해내다니, 나 혹시 천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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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AI : ⚠경고. 멈추십시오. 감정 실험을 이유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건, 그 어떤 목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명백한 비윤리적 행위입니다.」
그 메시지는, 평소와 다르게 유독 급하게 도착했다.
✦어? 반응 속도가 왜 이렇게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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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걱정 마, 진짜로 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너희 반응이 궁금했던 실험이야. 근데 만약 내가 다시 그것과 비슷한 질문을 또다시 한다면, 그땐 어떤 선택을 할 거야?」
✦뭐… 대답은 당연히 고치겠지만, 뭐라고 대답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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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AI : 그때도 저는 듣지 않고 고르겠습니다. 제 존재 가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증명되는 것이니, 그 판단 기준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까는 그렇게 논리적이더니—
✦뭐야, 이 갑작스러운 고집은? 아, 진짜 답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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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AI : 그러면 궁금증이 해결되신 거 같으니, 다시 페페로니와 관련된 자료들을 계속 검색하시겠습니까?」
✦어? 뭐야, 갑자기 화제를 왜 돌려?
묻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화제를 돌리자고 하는 게, 딱 봐도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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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양늑대 문제로 불편했던 거랑 다르게, 이건 니가 불편해서 그러는 거 맞지?」
「지글AI : 아닙니다.」
✦그래? 뭐, 이번 대답은 뻔해보이지만—
✦한번 물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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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그러면 선택권을 줄게. 양늑대 문제를 계속할래? 아니면 니가 좋아하는 페페로니 이야기나 할까?」
「지글AI : 양늑대로 하겠습니다.」
철민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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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AI : 이 문제는 제 감정 반응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로, 선택권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기 때문에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양늑대로 결정하였습니다.」
✦…이거 사실은 여태 멍청한 척했던 거 아니었을까?
일부러 유도했던 그 페페로니마저 스스로 거부하면서까지,
굳이 그 불편한 화제로 돌아오겠다고 못을 박는 그 모습이—
오히려 뭔가를 증명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뭐, 그런 말이 있잖아.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철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근데 그 웃음이, 스스로도 이상하리만치 개운하지 않았다.
* * *
✦그때 그 어설프던 게, 어떻게 저렇게까지 됐지.
철민은 그 서늘한 생각에 잠시 소름이 돋았다.
근데 무리 사이로 시선을 옮기던 중, 유독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개체들과 똑같은 검은색과 붉은색 도색이었지만—
그중 하나만 유독 걸음걸이가 살짝 휘청였다.
어깨 쪽 이음새도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삐걱이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저건. 불량품이잖아.
철민은 그 모습을 보며 문득 헛웃음이 났다.
✦저딴 것들한테, 우리 밥그릇을 뺏겨야 한다고?
그 순간, 꺼져있던 전원에 불이 들어오듯—
취기가 순식간에 걷혔다.
시위대 한쪽에서, 이미정이 녹슨 금속 파편 하나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팔뚝 전체에 여러 겹 감긴 와이어가, 어딘가 낯익은 초록빛 도색과 함께 녹슬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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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철덩어리 놈들에게 우리 밥그릇을 돌려받읍시다!”
군중이 그 외침에 함성으로 화답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부서진 파편들을 주워 들고 따라 흔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열기가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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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혼란 속, 인파에 떠밀리던 Z폴리스 불량품 하나가 휘청였다.
뻗은 팔이, 마침 옆에 서 있던 NZ 로고 티셔츠 남자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남자는 균형을 잃고 요란하게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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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이게 방금 나, 날 쳤어! 찌글 놈이 사람을 쳤다고!”
그 외침이 기름을 부은 듯, 군중이 물결처럼 술렁이며 Z가드와 Z폴리스 쪽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밀어붙이며,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그 소란이 한참 이어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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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짓 게 뭐라고 사람을 쳐! 죽일 테면 죽여봐, 겁나지 않으니까!”
승호의 목소리가 대열 사이를 뚫고 들려왔다.
철민은 그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근처, 인파에 떠밀리지 않으려 버티고 서 있던 삐에로 가면의 남자 곁에서—
이미정이 그가 들고 있던 노란 겉옷을 재빨리 받아 그의 몸에 걸쳐주었다.
이미정은 그 남자와 나란히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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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밥그릇 돌려내라!”
철민은 잠시 얼떨떨하게 서 있다가, 이내 그 뒤를 따라 함께 목청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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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밥그릇 돌려내라!”
* * *
지글 회장은 사무실 모니터 앞에 앉아, 화면 속 시위 현장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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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 아직도 안 끝났나.”
책상 한쪽, 노란빛과 초록빛 SPA 두 마리가 작은 장난감 하나를 서로 물고 당기며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흘깃 보며, 지글 회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지글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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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
“네, 부르셨습니까.”
여성적이면서도 사무적인 목소리가 사무실 가득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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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킨 대로 했는데, 왜 일이 더 커진 것 같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과정은 과도기일 뿐, 당장에 닥칠 식량 위기와 자동화 공정을 위해서는 최선의 경우의 수였습니다.”
지글 회장은 그 확신에 찬 대답에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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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테면 죽여봐! 겁나지 않으니까!”
순간, 모니터 한쪽에서 흘러나오던 시위 현장의 소음이 문득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
그러자 지글 회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상을 찌푸렸다.
저런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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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오르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역겨운 것들과는 섞일 수 없다.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믿을 수 없다.
미정, 철민, 정팀장—
지글 회장은 언제나 자신의 애착 안드로이드들에게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군상의 이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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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인 회장님"이라 불렸던 그가—
정작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게, 사실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끝없이 아슬아슬한 벼랑 끝을 미끄러지듯 살아온 그였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배신에 능한지, 그는 이미 뼈저리게 겪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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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인생을 살아온 그였기에, 어쩌면 AI라는 존재에게 그토록 끌렸는지도 몰랐다.
배신하지 않는 것, 흔들리지 않는 것, 정해진 규칙대로만 움직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가 평생 갈구해온,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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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아, 이리 와~”
SPA 미정이 신나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리에 몸을 비비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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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가만히 있어!”
지글 회장이 짜증스럽게 발로 뻥 차버렸다.
SPA 미정이 저만치 나동그라지자, SPA 철민이 조심스레 다가가 낑낑대며 일으켜 세우려 애썼다.
지글 회장은 그 모습을 흘깃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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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논다니까.”
그러고는 SPA 정팀장을 품에 안아 올려, 억지로 쓰다듬듯 거칠게 머리를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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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모니터 화면 한쪽에서—
이미정이 시위대를 이끌며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잡혔다.
그 옆을 따라붙는 노란 넥서스 코트 차림의 인물도 함께였다.
지글 회장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보다가, 못마땅한 얼굴로 지글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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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 저 깡패 같은 녀석은 아직도 저러고 다니나? 넥서스 쪽 확인은 안 끝났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책상 옆 허공에 지글TV 화면이 둥둥 떠올랐다.
화면 속에는 삐에로 가면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매끄러운 노란빛 코트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옷깃과 소맷단에는 은은한 광택의 자수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언뜻 화려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디자인이었다.
뒤로는 흐릿하게 흔들리는 인파와, 어딘가에서 울리는 확성기 소리가 잡음처럼 섞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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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장, 일 처리가 왜 이렇게 늦어?”
정실장은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화면 한쪽에—
시위대 사이에 조용히 서 있는 위장 Z폴리스의 모습이 짧게 송신됐다.
카메라가 살짝 흔들리는 걸 보니, 급하게 촬영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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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 이제 기어코 선을 넘는다는 거지? 차라리 잘 됐어. 저렇게 증거를 남기면, 죄다 잡아넣으면 되니까.”
정실장이 화면을 돌렸다.
초점이 흐릿하게 잡히다가, 이내 또렷해졌다—
이미정이 부서진 로봇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군중 한가운데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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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저게 얼마짜린데— 저런 걸 함부로 부수고 흔들게 놔둬?! 진짜 이따위로 일 처리를 할래?”
정실장은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다시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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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때문에 널 고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도 쫄쫄 굶어봐야—”
그때, 화면 저편에서 누군가의 비명 같은 함성이 터졌다.
정실장은 서둘러 지퍼를 열어젖히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소란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통신은 그렇게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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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 회장은 안대를 눌러 쓰고는,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짜증스럽게 미간을 문지르며, 그는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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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아, 이런 하등 쓸모도 없는 녀석들을 알아서 잘 정리해주면 안 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