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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

by 루시엘 · 2026-10-26

9화.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

서도혁은 밤새 잠들지 못했다.

책상 위에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 아이가 서도혁을 만나게 된다면, 두 사람을 절대로 다시 만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체 왜일까.

자신과 윤하니가 가까워지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니의 어머니인 윤서정은 서은재와 함께 무언가를 숨겼다. 서은재는 사라지기 전 자신에게 편지를 남겼고, 그 편지에는 하니가 스무 살이 되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까지 하니를 멀리하라고 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이 겹쳐 있었다.

도혁은 편지를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하니와의 메시지 창이 열렸다.

마지막 메시지는 어젯밤에 주고받은 것이었다.

대표님, 내일 점심 약속 잊지 마세요.

그 문장을 읽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계약이 끝났는데도 하니는 자신과 점심을 먹자고 했다.

자신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 아이가 네 곁에 있으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

도혁은 눈을 감았다.

은재를 잃었을 때 자신은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야 겨우 다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다.

하니가 웃으면 자신도 웃고 싶었다.

하니가 힘들어하면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녀가 자신을 떠난다고 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밤새 후회했다.

그런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도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하니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밀어내야 할까.

아니면 그녀가 원한다면, 두려움을 감수하고 곁에 있어야 할까.

아직 답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하니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1. 약속한 점심

오전 열두 시.

하니는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서도혁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점심시간입니다. 준비됐습니까?

하니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네! 내려갈게요.

메시지를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옆자리 직원이 말을 걸었다.

“하니 씨,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요?”

“제가요?”

“네. 아침부터 계속 웃고 있잖아요.”

하니는 황급히 표정을 정리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점심 먹으러 가는 거예요.”

“혹시 남자친구 만나러 가요?”

하니는 순간 굳었다.

남자친구.

이제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아니요. 그냥 아는 사람이랑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이상했다.

아는 사람.

서도혁은 이제 자신에게 아는 사람일 뿐일까.

그녀는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1층 로비에는 도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니를 발견한 그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왔습니까?”

“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닙니다.”

하니는 그를 올려다봤다.

“오늘은 어디 가요?”

“지난번에 갔던 카페 근처에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아, 거기요?”

“네. 괜찮습니까?”

“좋아요.”

두 사람은 나란히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맑았다.

바람은 조금 차가웠지만 햇살은 따뜻했다.

하니는 걷다가 문득 물었다.

“대표님.”

“네.”

“어제 잠은 잘 주무셨어요?”

도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왜 물어봅니까?”

“그냥요. 얼굴이 조금 피곤해 보여서요.”

“……잠을 조금 설쳤습니다.”

하니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도혁은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아버지의 편지가 떠올랐다.

당신과 가까워지지 말라는 말.

그러나 하니는 이미 이 일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자신이 숨기면 숨길수록 그녀는 더 불안해질 것이다.

도혁은 걸음을 늦췄다.

“하니 씨.”

“네?”

“어제 말씀드린 것 말고도, 아직 당신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하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서은재 씨에 관한 일이에요?”

“네.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에 관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니는 잠시 숨을 골랐다.

“……무슨 일인데요?”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과거에 함께 어떤 일을 했다는 기록을 찾았습니다.”

“어떤 일이요?”

“그건 더 확인해야 합니다.”

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았으면 답답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도혁은 이번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했다.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진실처럼 말하지도 않았다.

그 작은 차이가 하니에게는 중요했다.

“알겠어요. 확인되면 알려 주세요.”

도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네. 약속하겠습니다.”

하니는 작게 웃었다.

“그럼 일단 밥부터 먹어요. 배고파요.”

그 말에 도혁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좋습니다.”

두 사람은 식당으로 향했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과거도, 비밀도, 두려움도 잠시 뒤로 물러났다.

하니는 메뉴판을 펼치며 환하게 웃었다.

도혁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이런 평범한 하루를 지키고 싶었다.

하니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웃는 하루.

누군가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자신이 처음으로 다시 바라고 있는 미래였다.

2. 당신이 모르는 내 마음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하니는 따뜻한 라테를 주문했고, 도혁은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창가에 앉은 하니는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대표님.”

“네.”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물어보세요.”

하니는 잠시 망설였다.

“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한테 관심이 있었어요?”

도혁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잠시 말을 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비 오는 날 부딪쳤을 때도 그렇고, 면접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렇고…….”

하니는 커피를 내려다봤다.

“저는 가끔 우리가 너무 이상하게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혁은 천천히 대답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상에 남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상에 남는 사람이요?”

“네. 비를 맞으면서도 제게 몇 번이나 사과하던 모습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면접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하니는 웃었다.

“저도요. 대표님이 그때 그 사람이었다니.”

“그런데 당신을 다시 만나고 나서 알게 됐습니다.”

“뭘요?”

도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제가 당신을 더 알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요.”

하니의 손이 멈췄다.

도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계약을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약과 관계없이 당신이 궁금해졌습니다.”

하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신이 왜 빵을 좋아하는지, 왜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는지, 왜 다른 사람을 걱정하면서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당신이 웃으면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니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녀는 시선을 내렸다.

“그런 말…… 쉽게 하지 마세요.”

도혁의 표정이 굳었다.

“미안합니다.”

“아니요.”

하니는 고개를 저었다.

“싫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말 들으면 제가 또 기대하게 되잖아요.”

도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니는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대표님이 좋아요. 그런데 아직은 무서워요.”

“…….”

“대표님이 저를 좋아한다고 하셔도, 언젠가 다시 그 사람을 찾아 떠나실까 봐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대표님 마음속에는 제가 들어갈 자리가 없을까 봐요.”

도혁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은재를 찾고 싶은 마음과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은 별개입니다.”

하니가 고개를 들었다.

“저는 그 사람이 왜 사라졌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저에게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는지 알고 싶어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하지만 그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당신을 잊고 싶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니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봤다.

도혁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대표님.”

“네.”

“저는 아직 대표님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어요.”

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니는 조심스럽게 웃었다.

“조금 더 알아가 보고 싶어요.”

도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왜 감사해요?”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하니는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 사귀자는 말은 안 했거든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앞서가지 마세요.”

“노력하겠습니다.”

“또 노력!”

하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도혁도 이번에는 웃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마주 보며 웃었다.

하지만 그 평온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은 정세린이었다.

하니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윤하니 씨, 오늘 꼭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서은재 씨와 관련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니의 웃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도혁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하니는 휴대전화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도혁의 표정이 굳었다.

“언제 만나자고 했습니까?”

하니가 답장을 보내기도 전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저녁 일곱 시. 혼자 오세요.

하니는 화면을 바라봤다.

혼자 오라고.

왜일까.

도혁이 낮게 말했다.

“혼자 가지 마세요.”

하니는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언가를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당신 혼자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표님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도혁은 잠시 망설였다.

“그 사람이 혼자 오라고 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제가 동행하면 이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니는 생각에 잠겼다.

“그럼 어떻게 해요?”

도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장소를 바꾸자고 제안하세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만나고, 제가 근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도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세요.”

“네.”

하니는 답장을 보냈다.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좋아요. 대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하니는 그 문장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니.

이미 도혁에게 보여 줬는데.

그녀는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다.

정세린은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3. 서은재가 남긴 약속

그날 오후, 도혁은 비서실에서 전달한 자료를 다시 확인했다.

서은재와 윤서정이 함께 일했던 기관의 이름은 ‘새봄 아동지원센터’였다.

오래전 운영을 중단한 곳으로, 현재는 기록 일부만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확인하던 중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유진.

도혁은 문서를 다시 읽었다.

“……유진이?”

비서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당시 서유진 씨도 해당 기관의 후원 행사에 참여한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정식 직원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유진이 왜 그곳에 있었을까.

그녀는 은재의 오랜 친구였다.

은재가 사라진 뒤에도 도혁의 곁에 남아 있었고, 그가 무너졌을 때마다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유진이 하니에게 익명 메시지를 보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은재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니의 어머니와 관련된 일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도혁은 비서에게 물었다.

“서유진 씨가 당시 어떤 행사에 참여했는지 확인해 주세요.”

“네.”

“그리고 이 기관과 관련된 자료는 빠짐없이 확보하세요.”

비서가 나간 뒤 도혁은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전화가 연결됐다.

“도혁아?”

“유진아. 물어볼 게 있어.”

“무슨 일인데?”

“새봄 아동지원센터 기억해?”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 짧은 침묵만으로도 도혁은 확신했다.

유진은 알고 있었다.

“……갑자기 그건 왜?”

“은재와 윤서정 씨가 그곳에서 함께 일했다는 기록을 찾았어.”

유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혁아, 그 일은 이제 그만 잊어.”

“그만 잊으라고?”

도혁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네가 하니에게 보낸 메시지도 알고 있어. 네가 은재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것도.”

“나는 그저…….”

“유진아.”

도혁이 말을 끊었다.

“이번에는 거짓말하지 마.”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니의 어머니가 은재와 어떤 관계였는지 알고 있어?”

유진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하니가 그 사진을 봤어?”

도혁은 눈을 감았다.

“그래. 봤어.”

“그럼 이미 늦었네.”

유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뜻이야?”

“도혁아, 제발 더는 알아보지 마.”

“이유를 말해.”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몰라야 해.”

그 말은 어머니의 편지와 닮아 있었다.

도혁의 표정이 굳었다.

“왜 하니가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데?”

유진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은재가 그렇게 부탁했으니까.”

“은재가?”

“응.”

도혁은 휴대전화를 꽉 움켜쥐었다.

“은재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구야?”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유진.”

“…….”

“대답해.”

유진은 마침내 말했다.

“나야.”

도혁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뭐라고?”

“은재가 사라지기 전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나였어.”

도혁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애를 사라지게 한 건 아니야. 나는 그저…… 그 애가 부탁한 일을 도왔을 뿐이야.”

“무슨 부탁?”

“그건 말할 수 없어.”

“왜?”

유진은 울먹였다.

“그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도혁은 눈을 감았다.

또 약속이었다.

모두가 약속을 지켰다.

은재는 사라졌고, 윤서정은 비밀을 지켰고,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만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왔다.

“유진아.”

“응.”

“네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말해 줘.”

도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왜 사라졌는지. 그리고 왜 하니까지 그 일에 얽혀 있는지.”

유진은 울음을 삼켰다.

“……미안해.”

“그 말로 끝낼 생각 하지 마.”

“도혁아.”

유진이 조용히 말했다.

“네가 하니를 정말 좋아한다면…… 그 아이를 지켜 줘.”

도혁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뜻이야?”

“은재는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걸 알고 있었어.”

도혁은 숨을 멈췄다.

“……뭐?”

“그날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있어.”

유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자기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하니만큼은 평범하게 살아가게 해 달라고.”

도혁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니가 왜?”

“그건 내가 말할 수 없어.”

“유진아!”

“미안해.”

전화기 너머에서 유진이 울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네가 직접 알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나를 미워해도 좋아.”

뚝.

통화가 끊겼다.

도혁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은재는 왜 하니를 지키려 했을까.

하니는 왜 자신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을까.

그리고 자신이 하니를 사랑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그는 서은재의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 속 여자는 웃고 있었다.

도혁은 낮게 중얼거렸다.

“은재야…… 네가 지키려고 했던 게 대체 뭐야?”

사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4. 저녁 일곱 시의 약속

저녁 일곱 시.

하니는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했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녀는 창가 자리에 앉아 정세린을 기다렸다.

휴대전화에는 도혁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도착했습니까?

하니는 답장을 보냈다.

네. 카페 안이에요.

곧바로 답장이 왔다.

제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세요.

하니는 작게 웃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답장을 보내고 나서야 그녀는 조금 안심했다.

잠시 뒤, 정세린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하니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세린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도혁 씨에게 이야기했나요?”

하니는 잠시 망설였다.

“네. 일부는요.”

세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무슨 일이에요? 왜 저한테 이런 사진을 보여 주신 거예요?”

세린은 가방에서 작은 봉투를 꺼냈다.

“이걸 보여 드리려고 했어요.”

하니는 봉투를 바라봤다.

“무엇인데요?”

“서은재 씨가 사라지기 전에 남긴 물건이에요. 제가 직접 가지고 있던 건 아니지만, 최근에 돌려받았습니다.”

하니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열쇠 하나와 접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열쇠에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