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값
by 와우산 · 2026-10-24
사당 앞뜰은 생각보다 좁았다.
담 안 마당 끝에 앉은 작은 사당은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안쪽 깊은 데 층층이 선 위패들 앞으로 향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앞뜰 양쪽에 붙은 낮은 행랑 가운데 동쪽 문틈으로는 놋그릇이 보였고, 서쪽 문에는 작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혼례 날 아침 주인이 조상께 고하는 자리라, 가주는 사당 안에 꿇어앉아 향을 올리고 잔을 올린 뒤 오래 엎드렸다. 무엇을 고하는지는 앞뜰까지 들리지 않았다.
노구는 사당 문 오른편 집사 자리에 서 있었다. 예복 소매 안에 두 손을 모은 채 사당 안만 보았다.
거적 위에 서문휘가 꿇어앉아 있었다. 무릎을 꿇었는데 엉덩이를 발뒤꿈치에 붙이지 못해서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 뒤에 장득이 서서 제 옷자락만 쥐고 있었다.
외문 가까이에는 평복 차림의 지현과 문서 상자를 든 채 서리가, 반대편에는 하인을 데리고 팔짱을 낀 반가 둘째 어른이 섰다. 소완은 서쪽 행랑 처마 밑에 붙어 섰다.
석철은 막삼을 들여보낸 뒤에도 문 쪽으로 돌아서지 않고, 외문 안쪽에서 앞뜰을 보고 섰다.
막삼은 지팡이를 짚고 외문 옆에 섰다. 다리가 떨렸다. 백 가운데 묵은 콩알들이 사당 문 쪽으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삼 년 만에 처음 보는 주인이었다. 열 걸음 남짓. 막삼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주가 사당에서 나왔다.
앞뜰을 둘러보았다. 지현을 보고, 반가 둘째 어른을 보고, 거적 위의 막내아들을 보고, 외문 옆의 막삼을 보았다. 반지 낀 엄지가 멈춰 있었다.
서문휘가 이마를 거적에 댔다.
“아버지. 남문 밖 국숫집 평상은 제가 찼습니다. 왕 영감 손목은 제가 부러뜨렸습니다. 장득이가 제 이름 대신 썼고, 막삼이가 장득이 이름으로 대신 맞았습니다.”
공자의 목소리는 그저께 대청에서보다 떨리지 않았다.
“조상님 앞에서 말씀드립니다.”
장득이 공자 뒤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지현이 헛기침을 했다. 반가 둘째 어른은 지현을 보았다.
가주는 오래 막내아들을 내려다보았다. 늘 하던 말을 했다.
“벌은 받아야 한다.”
가주의 눈이 외문 옆 막삼에게로 옮겨 갔다.
“누가 받든.”
막삼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이 집에서 그 말은 늘 같은 뜻이었다. 장 백 대가 내려오면, 이 집은 또 대신 맞을 놈을 산다.
“제가 받겠습니다.”
서문휘였다. 이마를 거적에서 떼고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제 볼기로 받겠습니다. 이번엔 아무도 사지 마십시오.”
가주의 엄지가 반지를 반 바퀴 돌렸다. 가주는 막내아들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았다.
막삼이 지팡이를 앞으로 짚었다.
“가주님. 셈을 맞추러 왔습니다.”
앞뜰의 눈이 막삼에게 모였다. 사당 문 옆에서 노구가 고개를 돌렸다.
“어제 관아 마당에서 갈 영감 이름으로 장 일백을 다 채웠습니다. 잔금 일곱 냥을 받으러 왔습니다.”
반가 둘째 어른이 콧소리를 냈다.
“장 백 대를 다 맞고 제 발로 잔금을 받으러 왔다? 내 눈으로 본 것만 아니면 거짓말이라 했을 게다.”
가주가 막삼을 셈하듯 오래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총관. 셈을 맞춰라.”
노구가 사당 문 앞을 떠나 걸어왔다. 걸음이 고르고 느렸다. 예복 소매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막삼 앞에 서서 주머니 끈을 풀었다.
묵은 콩알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막삼은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얼굴에는 아무것도 띄우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라.”
막삼이 왼손에 지팡이를 쥐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노구가 은을 집었다.
노구는 은을 막삼의 손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손바닥 위 한 뼘쯤에서 손끝을 놓았다. 은이 떨어져 손바닥에 앉았다.
“하나.”
둘째도 그랬다. 셋째도. 늙은 손끝은 막삼의 손바닥 위 한 뼘에서 멈췄다가 은만 떨어뜨렸다. 사흘 전 선금을 셀 때는 손끝이 손바닥을 스쳤다. 오늘은 스치지 않았다.
“넷. 다섯. 여섯.”
막삼은 노구를 올려다보았다. 노구도 막삼을 보았다. 다정하고 조용한 얼굴 그대로였다. 그 얼굴 아래에서 손끝이 한 뼘을 지키고 있었다.
일곱째 은이 노구의 손끝을 떠났다.
막삼은 은을 받지 않았다. 손바닥을 비켜 은을 흙으로 떨어뜨리고, 그 손으로 노구의 손목을 잡았다. 예복 소매가 밀려 올라가 손목이 드러나 있었다.
“떨어진 건 흙에서 주우면 됩니다.”
노구가 손을 빼려 했다. 늙은이의 힘이었다. 막삼은 손가락을 풀지 않았다. 장 백 대를 맞은 다음 날이라 손가락이 떨렸지만, 풀리지는 않았다.
외문 쪽에서 석철이 한 걸음 움직였다가 멈췄다. 석철은 노구를 보지 않고 가주를 보았다. 가주는 손짓하지 않았다. 석철은 제자리에 섰다.
“어르신. 형이 그러더군요. 셋째 대만 넘기면 나머지는 일이라고.”
막삼은 문을 열었다.
삼 년 동안 말린 콩처럼 박혀 있던 것들이 자리를 떴다.
허리를 타고, 등을 타고, 팔뚝을 지나 손바닥으로. 형이 아흔에서 움직이지 않던 날, 열여섯이던 막삼이 형 옆에 엎드려 받은 순서 그대로였다.
막삼은 셌다. 그날 마당에서 아역이 부르던 대로.
“아흔하나.”
노구의 무릎이 꺾였다.
“아흔둘. 아흔셋.”
노구의 다른 손이 막삼의 손목을 할퀴었다. 손톱이 살갗을 긁었다. 막삼은 놓지 않았다.
“아흔넷. 아흔다섯. 아흔여섯.”
사당 앞뜰에서는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반가 둘째 어른이 팔짱을 풀었고, 거적 위의 서문휘는 몸을 일으키려다 도로 주저앉았다.
“아흔일곱. 아흔여덟. 아흔아홉.”
막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날 형 옆에 엎드려 맞을 때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막삼은 그때 못 낸 소리까지 같이 냈다.
“백.”
막삼이 손을 놓았다.
노구가 앞뜰 흙바닥에 모로 쓰러졌다. 예복 자락이 흙에 펼쳐졌다. 두 손이 엉덩이로 가지도 못하고 땅을 짚다가 미끄러졌다.
늙은 목에서 나온 소리는 비명이 되지 못하고 길게 갈라졌다. 날아온 데가 없는 매였다. 삼 년 묵은 장 열 대였다.
왼쪽 볼기 아래가 비어 있었다. 막삼은 지팡이에 기대어 그 빈자리를 느꼈다. 삼 년 동안 날이 궂을 때마다 무겁던 자리였다.
노구의 예복 품이 벌어져 있었다. 그 틈으로 손바닥만 하게 묶은 장부가 미끄러져 나와 흙에 떨어졌다.
형당 문간에서 노구가 막삼의 이름을 적던 그 장부였다. 떨어지면서 묶은 끈이 풀렸다. 낱장 몇 장이 젖은 흙 위로 흩어졌다.
노구의 손이 장부를 향해 뻗었다. 손끝이 닿기 전에 다른 손이 장부를 집었다.
석철이었다.
석철은 흩어진 낱장까지 차례로 주워 장부에 끼웠다. 흙바닥에서 노구가 석철을 올려다보았다.
“이리 다오.”
석철은 노구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가주 앞으로 갔다. 두 손으로 장부를 바쳤다.
“서문가 물건입니다.”
가주가 장부를 받아 넘겼다. 엄지가 반지에서 떨어져 있었다. 장을 넘기는 손가락이 점점 느려졌다.
장부에는 길게 적힌 것이 없었다. 날짜, 이름, 대수, 대신 맞은 놈 이름. 어떤 줄 끝에는 ‘나리께’가 붙어 있었다.
가주가 낱장을 뜯어 지현에게 내밀었다. 지현이 받아 읽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채 서리가 지현 어깨 너머로 그 장을 들여다보다가 얼른 눈을 돌렸다.
“읽어 드려라.”
가주는 지현을 두고 서문휘를 보며 말했다. 서문휘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지현의 손에서 그 장을 받아 읽었다.
“올가을. 남문 밖. 태 삼십. 마구간 장득. 대장 막삼. 나리께.”
반가 둘째 어른이 지현을 보았다. 지현은 아무도 보지 않았다.
가주가 장부를 넘겨 또 뜯었다. 이번에는 반가 둘째 어른에게 직접 내밀었다. 둘째 어른이 소리 내어 읽었다.
“그믐. 별채. 마구간 갈가, 장 일백. 대장 막삼.”
둘째 어른이 장에서 눈을 들었다.
“별채? 별채 일을 왜 마구간 늙은이 이름으로 적었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서쪽 행랑 처마 밑에서 소완이 한 걸음 나섰다.
“새벽에 사당 문이 열리자마자 총관 어른이 서쪽 행랑에 먼저 들어가셨어요. 예복 다림판을 가지러 갔다가 봤어요. 들어가실 때 소매를 이렇게 누르고 계셨어요. 나오실 때는 손이 비어 있었고요.”
소완이 제 소매를 손바닥으로 눌러 보였다.
석철이 흙바닥의 노구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풀었다. 노구는 막지 못했다. 석철이 서쪽 행랑 자물쇠를 열고 들어갔다.
안에서 궤 뚜껑 여는 소리가 났다. 석철이 붉은 비단에 싼 것을 들고 나왔다. 가주 앞에서 비단을 폈다.
봉황 금비녀 한 짝이었다. 꼬리깃이 여섯 가닥이었다. 일곱째 자리가 꺾여 비어 있었다.
막삼은 허리춤 안쪽 주머니에서 금 깃털을 꺼내 소완에게 건넸다. 소완이 그것을 받아 들고 가주 앞으로 걸어가, 비녀의 빈자리에 대었다.
맞았다.
소완이 앞뜰 사람들 다 들으라고 말했다.
“취옥이가 그믐밤 머리에 꽂고 나간 비녀예요. 걔는 물을 무서워해서 우물가에 혼자 안 가요.”
반가 둘째 어른이 비녀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가주를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혼사는 없던 일로 하겠소.”
가주는 고개만 끄덕이고 장부를 넘겼다. 맨 앞으로 돌아가 다시 뜯었다. 누렇게 바랜 장이었다. 가주는 그것을 막삼에게 내밀었다.
막삼은 그 장을 읽을 줄 몰랐다. 그래도 알아보는 글자가 있었다.
위에 풀 같은 것이 얹히고, 가운데 해 같은 것이 들고, 아래로 사람이 다리를 벌린 글자. 사흘 전 관아에서 채 서리가 짚어 준 제 이름의 첫 글자였다. 그 옆에 가로줄이 하나뿐이었다.
막일.
막삼은 그 가로줄을 오래 보았다. 형은 삼 년 전에 죽었고, 형의 이름은 이 장부에 남아 있었다. 손가락으로 그 줄을 따라 그었다. 먹이 바래 손끝에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 줄 앞에 숫자가 있었다. 막삼은 숫자는 읽었다. 육십. 그 위에 먹줄이 그어져 있고, 옆에 같은 손이 백이라고 고쳐 적어 두었다. 획 끝이 갈고리처럼 들려 있었다.
흙바닥에서 노구가 숨을 몰아쉬었다. 목소리가 겨우 새어 나왔다.
“연장이…… 손을 무는구나.”
막삼은 대답하지 않았다. 쪼그려 앉았다. 엉덩이가 비명을 질렀다. 막삼은 흙에 떨어진 은을 주워 손바닥 위의 여섯 냥 옆에 얹었다. 일곱.
가주가 장부를 덮었다. 사당 문 쪽을 보았다. 위패들 앞에서 향이 거의 다 타 있었다.
“벌은 받아야 한다.”
늘 하던 말이었다. 가주는 잠깐 쉬었다가 덧붙였다.
“이 집 사람이.”
가주가 지현을 보았다.
“나리. 국숫집 판결은 다시 내시오. 막내 휘의 이름으로. 장득이는 오늘 내보내시오. 마구간 갈가도. 별채 일은 내가 준을 데리고 관아로 가겠소. 이 늙은이는 나리께 넘기오.”
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여러 번. 손에 쥔 장부 낱장을 소매 깊이 넣었다가, 반가 둘째 어른의 눈을 보고 도로 꺼내 채 서리에게 넘겼다. 반가 둘째 어른이 채 서리를 보며 말했다.
“그 장은 상자에 잘 넣어 두시오. 청주 지부께 갈 때 내가 같이 들고 가리다.”
채 서리는 그 종이를 문서 상자에 넣으며 막삼을 보았다. 알아도 모른다던 사람이 이번에는 끝까지 보았다.
장득이 울다가 웃었다. 서문휘의 등을 붙잡고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고, 외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남문 쪽이었다.
막삼은 은을 허리춤 안쪽에 넣었다. 채 서리 몫을 떼고 나면 백 냥은 아직 아득했다. 맡아 둔 매는 아직 아흔이었다. 그 대부분이 별채 쪽을 보았다.
서문준이 관아 마당에 엎드리는 날, 그 매는 갈 데로 갈 것이다. 행랑 몫은 찬모와 문지기 쪽을 보고 있었다.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서문휘가 장부를 아직 쥐고 있었다. 마지막 장까지 넘기다가 공자의 손이 멈췄다.
“막삼아.”
공자가 모귀 대신 이름을 불렀다. 막삼이 돌아보았다. 공자가 장부 마지막 장을 막삼 앞에 펴서 내밀었다. 먹이 아직 짙었다. 며칠 안 된 글씨였다.
막삼은 그 줄 끝의 글자를 알아보았다. 위에 풀, 가운데 해, 아래로 다리를 벌린 사람. 그 옆에 가로줄 셋, 맨 아래 줄이 조금 긴.
“숭산 집법당. 내년 봄. 장 일백.”
공자가 읽었다. 그리고 막삼을 보았다.
“대장, 막삼.”
막삼은 그 줄을 다시 짚어 보았다. 누구 대신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어젯밤 노구가 바닥에 두고 간 편지가 소완의 두부 바구니 밑에 있었다. 오늘 밤 성문 닫히기 전에 들고 나가라던 편지였다.
막삼은 장부를 덮어 공자에게 돌려주었다. 지팡이를 고쳐 짚었다. 엉덩이 아래 아흔이 한꺼번에 몸을 틀었다.
맷값을 낼 사람이 한 명 더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