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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으로 받는 잔

by 와우산 · 2026-10-24

새 무명옷은 엉덩이에 닿는 데가 거칠었다. 막삼은 서쪽 쪽문 앞에서 옷자락을 털었다.

쪽문 안쪽 그늘에 석철이 서 있었다. 사흘 전 밤 막삼을 한 손으로 담 너머에 넘긴 사내였다. 석철은 막삼의 새 옷을 위아래로 훑었다.

“삼공자님 손님이라고 들었다.”

“오늘은 쪽지가 없습니까?”

“없다.”

석철은 비켜섰다. 막삼이 지나가는데 뒤에서 한마디가 더 왔다.

“손은 소매에 넣고 다녀라. 오늘은 보는 눈이 많다.”

막삼은 그 말을 충고로도, 경고로도 들었다.

잔치는 바깥채 대청에서 열렸다. 처마마다 등이 걸리고 앞마당에도 차일이 쳐졌으며, 대청 위에 둘러 놓인 상마다 사람이 앉아 고기 굽는 냄새와 술 냄새가 마당까지 넘쳤다.

막삼은 대청 아래 섬돌 옆, 놀이에 쓰일 사람이 앉는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꿇어앉자마자 엉덩이가 먼저 사람들을 찾았다.

스물넷이 대청 아래쪽 끝자리로 몰렸다. 서문휘가 친구들과 앉은 자리였다. 공자는 방석 끝에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벌써 얼굴이 붉었다.

스물은 대청 윗자리로 기울었다. 가주의 오른편에 앉은 젊은 사내 쪽이었다.

막삼은 그 사내를 똑바로 보았다. 키가 크고 등이 곧은 사내였는데, 얼굴이 반듯해서 그림 같았다. 손님에게 술을 따를 때 소매 끝이 상에 닿지 않게 왼손으로 받쳤다.

웃음은 정확한 만큼만 나왔다. 창호지에 비치던 그림자, 담 너머의 낮고 고른 목소리가 이 사람이었다. 서문세가 소가주 서문준. 모레가 혼례였다.

그 옆에 앉은 가주는 마르고 머리가 반백인 사내로, 음식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엄지로 반지를 천천히 돌리며 사람을 셈하듯 한참씩 보았다.

맞은편 상석에는 임치 반가 어른들이 앉았는데, 다들 반가 둘째 어른이라고 부르는 얼굴 붉고 몸집 큰 사내가 신부의 숙부였다.

대청 맨 끝, 시중드는 하인들을 부리는 자리에는 노구가 앉아 있었다.

서문준과 막삼 사이는 대청 위와 아래, 열 걸음이 넘어서 손이 닿을 길이 없었다.

가주가 섬돌 쪽을 보고 노구에게 무어라 물었다. 노구가 몸을 기울여 대답했다. 형당에 쓴 아이입니다, 그런 입 모양이었다.

가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건 무게를 손으로 달아 보듯 막삼을 위아래로 훑었다. 가주가 반가 둘째 어른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

“우리 집은 벌을 미루지 않소. 혼례 전에 묵은 벌은 다 받게 했소.”

가주가 잠깐 말을 쉬었다가 덧붙였다.

“누가 받든.”

둘째 어른은 그 말을 덕담으로 들었는지 잔을 맞부딪쳤다. 막삼은 섬돌 옆에서 그 말을 들었다. 노구의 입으로 듣고, 가주의 입으로 또 들었다. 이 집에서는 그 말이 밥상에도 오르는 모양이었다.

상을 나르는 하녀들 사이에 소완이 있었다. 고기 접시를 받쳐 들고 섬돌 옆을 지나가다 걸음을 반 박자 늦췄다. 막삼 무릎 앞에 물 한 사발이 놓였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사발이었다. 소완은 막삼을 보지 않고 대청으로 올라갔다. 대청 위에서 소완은 끝까지 윗자리 쪽을 보지 않았다. 소가주가 앉은 쪽을.

막삼은 사발을 들어 목을 축였다. 물이 미지근했다. 맞은 몸에 찬물은 독이라고, 두부를 갈아 끼우며 소완이 하던 소리가 생각났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서문휘가 일어났다.

“어른들, 재미난 놈을 하나 데려왔습니다.”

공자가 손가락으로 섬돌 쪽을 가리켰다. 대청의 눈이 한꺼번에 막삼에게 쏟아졌다.

“관아 담 밑에서 남 대신 매 맞아 주는 놈입니다. 무슨 말이든 하시면 그 말이 태 몇 대짜리인지 매겨 드립니다.”

반가 둘째 어른이 무릎을 쳤다.

“말에 매 값을 매긴다? 그거 재밌군. 이름이 뭐냐?”

“막삼입니다.”

“어느 고을 적이냐?”

“적이 없습니다.”

“적도 없는 놈이 남의 말 값을 매긴다? 어디 해 보자.”

둘째 어른이 술잔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 조카딸은 익도에서 제일가는 신랑을 얻었다.”

막삼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칭찬은 값이 안 나옵니다. 매는 잘못한 말에만 붙습니다.”

대청에 웃음이 돌았다. 둘째 어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사람을 보았다. 서문휘의 친구 녀석이 히죽거리며 나섰다.

“그럼 이건 어떠냐? 이 집 삼공자는 술만 마시면 넘어진다.”

막삼은 서문휘를 보았다. 공자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사실이라 값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웃음이 더 컸다. 둘째 어른은 술을 뿜을 뻔했다. 서문휘만 웃지 않았다. 방석 끝에서 고쳐 앉으며 막삼을 노려보았다.

둘째 어른이 손을 들어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나 해 보마. 값을 제대로 매기나 보자. 반가는 이번 혼사에 아무 불만이 없다.”

막삼은 대청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며 둘째 어른의 붉은 얼굴과, 가주의 반지 돌리는 엄지와, 소가주의 정확한 웃음을 차례로 보았다.

“그 말씀은 장 스무 대는 나옵니다.”

숨을 들이쉴 동안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 둘째 어른이 상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맞다! 이놈 봐라, 맞다! 시집보낼 우리 집 딸 머리에 꽂을 금비녀가 한 짝 날아갔는데 불만이 없을 리가 있나!”

반가 사람들이 따라 웃었다. 세가 사람들은 웃지 않았다. 가주의 엄지가 반지 위에서 멈췄다. 대청 끝에서 노구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 도둑은 내일 아침 관아에서 장 일백을 받습니다. 어른들께서 직접 보시면 마음이 놓이실 겁니다.”

그때 소가주 서문준이 입을 열었다.

“우리 집은 셈이 바릅니다. 도둑은 벌을 받고, 잃은 것은 찾을 것입니다.”

별채 담 너머에서 우물에 덮개를 씌우라던 그 목소리였다. 잔을 쥔 손가락이 길고 희었고, 오른손 바닥에는 얇은 무명이 감겨 있었다. 막삼은 그 손등에 눈을 박았다.

저 손등에 손바닥이 닿기만 하면 되었다. 열 걸음과 대청 높이만큼 멀었다. 스물이 그 목소리를 향해 들고일어났다.

막삼이 속으로 매긴 값은 장 스무 대였다. 갈 영감 몫으로 맡아 둔 것과 꼭 같은 수였다. 입으로는 다르게 말했다.

“소가주님 말씀은 제가 값을 못 매깁니다.”

대청 아래쪽 끝에서 서문휘가 소리 없이 웃었다. 관아 의문 앞에서 같은 말을 들은 사람이었다. 공자는 웃다 말고 방석에서 몸을 조금 뺐다.

서문휘가 술병을 들고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섬돌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뎠는데, 손에 든 술병 속 술은 출렁이지도 않았다. 무가에서 어려서부터 익힌 손목은 취해서도 저 혼자 버텼다. 서문휘는 막삼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잔에 술을 철철 넘치게 따르면서, 술 냄새 섞인 목소리를 막삼의 귀에만 낮췄다.

“남은 거, 몇 개냐?”

“스물넷입니다.”

“이 잔 받으면, 다 오냐?”

“공자님 손이 잔에 있으면요.”

공자가 고개를 돌려 대청 위를 보았다. 형이 반가 둘째 어른의 잔을 채우고 있었다.

막내가 대청 아래로 내려간 것을 서문준은 모르는 듯했다. 공자는 형을 한참 보다가, 막삼에게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를 대청까지 들리게 높였다.

“목 아프겠다. 마셔라, 모귀.”

공자가 한 손으로 잔을 내밀었다. 잔을 쥔 손가락이 잔 둘레를 거의 다 감싸고 있었다. 맨손이었다.

내일 아침 관아에서 예순 대를 버티려면 오늘 밤 안에 마흔이 되어야 했다. 이 스물넷을 들고 내일 엎드리면 장 백 대의 절반도 못 간다. 오늘 이 잔이 마지막 기회였다.

막삼은 두 손을 들어 잔을 받았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잔을 받는 법대로, 두 손으로. 막삼의 두 손바닥이 잔과 함께 공자의 손가락을 감쌌다.

스물넷이 줄을 섰다.

이번에는 문을 반만 열지 않았다. 다루에서처럼 다섯에서 닫지도 않았다. 막삼은 스물넷을 차례로, 남김없이 내보냈다.

콩알들이 엉덩이를 떠나 허리를 타고 올라와 팔뚝을 지나 손바닥으로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자리마다 몸이 가벼워졌다.

열, 열하나, 열둘. 공자의 손가락이 잔 둘레에서 굳었다.

스물, 스물하나. 공자의 무릎이 꺾였다.

스물넷.

잔이 떨어졌다. 술이 막삼의 새 무명옷 앞자락에 쏟아졌다.

서문휘는 처음 몇 숨 동안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섬돌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제 엉덩이를 감싸 쥐고 입을 크게 벌렸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참 만에 앞으로 고꾸라지며 소매에 얼굴을 묻었다. 소매 속에서 짐승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반가 사람들이 벌떡 일어서고 차일 아래 하인들이 몰려오는 동안, 서문휘의 친구들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대청 위의 소완은 접시를 든 채 서 있었다.

대청 위에서 서문준의 목소리가 손님에게 술을 권할 때와 같은 높이로 내려왔다.

“막내가 또 취했구나. 손님 앞에서.”

반가 둘째 어른의 얼굴이 굳었다. 노구가 손짓으로 하인들을 불렀다. 하인들이 서문휘의 양팔을 끼고 일으키려 했다.

서문휘가 그 팔을 뿌리쳤다.

“취한 거 아니오, 형님.”

목소리가 갈라졌다. 공자는 땀에 젖은 얼굴을 들어 대청 위를 보았다. 형을 보았다.

“맞은 거요.”

누가 킥 하고 웃었다가 얼른 입을 막았다. 서문휘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형만 보았다.

“남문 밖 국숫집 왕 영감 손목 값이오. 장득이가 대신 쓰고, 이놈이 대신 맞은 거. 그게 이제야 나한테 온 거요.”

대청에 아무 소리도 없었다. 등불 심지 타는 소리만 났다.

“그 평상, 내가 찼소.”

반가 둘째 어른이 천천히 자리에 앉고 반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살피는 동안에도, 세가 사람들은 저마다 제 앞의 상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삼공자, 그게 무슨 말이오?”

둘째 어른이 물었다. 대청 끝에서 노구가 얼른 일어섰다.

“삼공자께서 요새 몸이 성치 않으십니다. 술이 들어가면 헛말을 하시곤 합니다.”

“헛말이면 좋겠소, 총관.”

서문휘가 바닥에서 대꾸했다. 이를 악문 채였다. 가주의 엄지가 반지를 놓았다. 그 손이 상 모서리를 쥐었다.

“헛말치고는 이름이 꽤 자세하구려. 국숫집, 왕 영감, 장득이.”

둘째 어른은 노구를 보지 않고 가주를 보았다.

“서문 대인. 이 고을 판결은 어떻게 나는지, 혼례 끝나면 따로 여쭙겠소.”

서문준이 잔을 내려놓았다. 소리가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막내가 많이 취했습니다. 데려가라.”

하인들이 다시 서문휘의 팔을 잡았다. 서문휘가 또 뿌리쳤다. 이번에는 힘이 없어서 뿌리치는 시늉만 했다.

“취했으면 이 말을 못 하오. 난 여태 형님 앞에서 이 말을 못 했으니까.”

서문준이 입을 열기 전에 가주가 짧게 말했다.

“데려가라.”

하인들이 서문휘를 끌다시피 데리고 나갔다. 섬돌 앞을 지날 때 공자가 고개를 돌렸다. 막삼과 눈이 마주쳤다. 공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지만 막삼은 들었다.

“다 받았다.”

공자의 친구들은 어느새 자리에 없었다. 대청 끝 기둥 뒤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등이 보였다.

잔을 내밀기 전부터 공자는 셈을 끝내 두었던 거다. 막삼은 그 입 모양을 속으로 따라 해 보았다.

소완이 하녀들 틈에서 내려와 엎어진 잔을 주워 갔다. 지나가면서 막삼의 무릎 앞에 마른 행주를 떨어뜨렸다. 막삼은 그 행주를 집지 않았다. 술에 젖은 옷자락을 그대로 두고 꿇어앉아 있었다.

엉덩이 아래가 가벼웠다. 마흔. 숨을 깊이 쉬어도 목 끝까지 차오르던 것이 가슴께에서 멎었다.

스물넷이면 공자는 열흘은 앉지 못할 것이다. 막삼의 몸이 아는 일이었다. 그래도 남문 밖 노인의 손목은 오늘 밤에도 붙지 않는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었다. 익도 세가 삼공자가 신부 댁 어른들 앞에서 제 입으로 평상을 찼다고 했다. 판결이 고쳐지면 노인의 죽음은 서문휘의 목에 걸린다. 막삼이 셈하기로는, 이제 세가가 그 노인의 목숨을 누구보다 아낄 차례였다.

하인이 막삼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놀이는 끝났다. 놀이에 쓰인 사람은 치워야 했다.

막삼은 하인에게 끌려 마당을 가로지르며 대청을 돌아보았다. 무명옷 앞자락에서 술 냄새가 올라왔다.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술이었다.

반가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가주가 다시 반지를 돌리는 사이, 서문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둘째 어른의 잔을 채웠다. 스물이 그 손을 향해 기울었다. 내일이었다.

대청 맨 끝자리에서 노구가 막삼을 보고 있었다.

약을 들고 오던 날과 같은 얼굴이었다. 다정하고, 조용하고, 조금 미안한 얼굴. 그 얼굴이 오늘은 막삼의 두 손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