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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2호 (1)

by 기니피그군 · 2026-10-21

# 001. 2호 (1)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주변을 밝히는 어두운 밤. 어느 방의 문 앞을 두 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었다.

두 병사는 방 안에서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있을 제 주인의 잠을 깨우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소곤거리며 지루한 근무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택의 경비는 삼엄했다. 담장 위로는 쇠꼬챙이가 촘촘히 박혀 있었고, 정원에는 사나운 사냥개들이 풀려 있었으며, 복도마다 횃불과 함께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었다. 저택의 주인이 얼마나 제 목숨을 아끼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오늘 밤 이 저택에 찾아온 손님들을 막기에는.

“말도 안 돼. 그게 말이 돼?”

“말이 왜 안 돼? 어쨌든 들어봐. 그래서 그때 말이야. 내가….”

허풍 섞인 경험담을 늘어놓던 병사가 일순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을 감지했다. 병사는 일순간 말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사람 하나 없는 어둡고 고요한 복도만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뭐였지?’

병사가 의아함을 느끼며 다시 고개를 돌려 조금 전까지 담화를 나누던 동료를 응시했다.

“그래서 말이야. 그때 내가….”

다시 동료를 쳐다보는 병사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조금 전, 고작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담화를 나누고 있던 동료는 누군가에게 사로잡힌 상태였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검은 손이었다.

두 개의 손 중 하나는 동료의 입을 틀어쥔 채 그 입을 통해 어떠한 소음도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손은 장검을 쥔 채 동료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병사가 동료의 뒤를 응시했다. 어둠 속에 숨어 명확히 식별되지 않는 검은 형태가 오직 안광만을 번뜩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병사의 입이 열리며 그 안에서 침입자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외침이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텁-

그의 등 뒤에서도 검은 손이 튀어나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동시에,

툭-

병사는 목 뒤에서 올라오는 통증을 느끼며 일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병사는 스르르 쓰러졌다. 쓰러지는 병사의 뒤로,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나타난 하나의 검은 인영이 쓰러지는 병사를 붙잡고 조심스레 그를 눕혔다. 동시에 그의 앞에서 잡혀있던 병사의 동료 또한 맥없이 고꾸라졌고, 마찬가지로 그 병사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또 다른 검은 인영이 나타나 그를 조심스레 바닥에 눕혔다.

일순간 소음으로 가득 찰 뻔했던 복도는 다시 고요로 가득 찼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두 개의 인영, 아니 두 명의 암살자가 서로를 응시했다. 그들은 말없이 눈빛만으로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은 후, 장검을 든 암살자가 서서히 방문을 열었다.

단검을 든 암살자가 주위를 살폈다. 방 한쪽 구석에는 침대가 놓여있었고, 침대 위에는 한 노인이 코를 골며 잠에 빠져있었다.

오직 적막이 흐르는 방 안에는 노인의 고른 숨소리만이 고풍스러운 가구들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그 외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두 암살자는 숨죽인 채 노인에게 다가갔다. 곧 장검을 든 암살자가 검을 회수했다. 그는 이내 침대 위, 노인이 베고 있지 않은 베개를 하나 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베개를 노인의 얼굴에 덮어버렸다.

“읍…. 읍….!”

갑작스러운 압박에 노인이 깨어나며 발버둥 치려는 순간이었다, 단검을 든 암살자가 재빠르게 노인의 목을 그어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침대를 흠뻑 적셨다. 그렇게 노인은 제대로 된 비명 하나 내뱉지 못한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축 늘어지며 죽음을 맞이했다.

노인, 아니 북부의 대상인 사딘은 그렇게 명성에 맞지 않게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다.

사딘을 처리한 두 암살자는 다시 한번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는, 이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검은 복장의 두 암살자는 순식간에 어둠 속에 녹아들었고, 방 안에는 오직 한 구의 시체만이 홀로 남겨졌다.

저택의 담장을 넘은 두 그림자는 한참 동안이나 쉬지 않고 달렸다. 지붕을 타고, 골목을 지나, 마침내 도시 외곽의 숲에 다다른 뒤에야 두 사람은 발걸음을 늦추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딘의 저택에서 울리는 비상종이었다. 아마 교대하러 온 경비가 쓰러진 동료들과 피바다가 된 침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제야 발견했다고? 늦었네. 일 다 마친지가 언제인데 이제서야 발견해서 호들갑이야.”

장검을 든 암살자가 복면 너머로 낄낄거렸다. 단검을 든 암살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추격자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가자.”

“예이, 예이. 우리 2호님 말씀이시라면야.”

두 암살자는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들이 돌아갈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 * *

탁 트인 기다란 방 안, 방의 양쪽 벽에는 각 다섯 개씩 침대가 놓여있고, 한쪽 끝에는 대련장이, 그 옆에는 샤워장 겸 화장실이 있다.

대련장에는 대검을 쓰는 덩치 큰 남자와, 레이피어를 쓰는 여리여리한 체구의 남자가 서로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대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 있는 침대 위에서는 한 여자가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필기하고 있었다.

대련장과 샤워장 겸 화장실이 있는 방의 반대쪽 끝에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평소에는 잠겨있는 문이다. 안에서는 결코 열 수 없고, 오직 밖에서만 열리는 문. 그 문이 열리는 때는 임무를 받아 나갈 때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뿐이었다. 이윽고 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잠시 후 문이 열렸고, 검은 복장을 한 두 남자가 들어왔다.

“다녀왔다.”

방에 들어온 두 남자 중 한 명이 말하며 복면을 벗었다. 대각선으로 얼굴을 가로지르는 긴 흉터로 인해 험악한 인상을 준 남자, 8호였다. 8호는 검은 복면과 후드, 그리고 허리춤에 채워진 장검을 꺼내 제 침대로 벗어던졌다.

그 옆에는 8호보다 작은 키에 비교적 선한 인상을 가진 흑발, 흑안의 2호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두 동료의 복귀에도 레이피어를 든 남자, 4호와 대검을 든 남자, 10호는 대련을 지속했다. 하지만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7호만은 환하게 웃으며 그들, 아니 2호의 귀환을 환영했다.

“2호! 어서 와!”

7호가 8호를 지나쳐 2호에게 다가갔다. 8호는 그런 7호를 보며 혀를 쯧, 하고 찬 뒤 자신의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7호는 그런 8호를 무시한 채 2호에게 다가가, 능글맞게 웃으며 조그마한 경단을 건넸다.

“2호, 임무 다녀오느라 힘들었지? 이거 피로 해소에 좋은 건데, 어서 먹어봐!”

“…. 안 먹는다.”

“아니, 왜! 이번에는 진짜야! 너 피곤하지 말라고 내가 직접 만든 건데 안 먹을 거야? 자, 아~ 해봐. 어서 먹어봐!”

“….”

2호가 눈을 빛내며 저를 쳐다보는 7호를 잠시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7호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경단을 빼앗듯이 낚아채 제 입에 넣어 꿀꺽 삼켰다.

“제대로 삼킨 거 맞아?”

“삼켰다. 씻고 온다.”

“어, 같이 가!”

“됐다. 비켜라.”

2호가 끈질기게 쫓아오려는 7호를 밀어내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실에서 몸에 묻은 땀과 피를 씻어낸 후 다시 방에 돌아왔다. 샤워실 앞에는 7호가 서서 2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펜과 수첩이 들려있었고, 눈을 빛내며 2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10분이나 지났어. 어때, 어떤 느낌이 들어? 혹시 배가 아프지는 않아? 내장이 막 뒤틀리고,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쏟아낼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

“아무 느낌 없다.”

“엥? 아이씨,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이번에는 확실했는데. 야, 8호! 너도 먹어봐! 그리고 어떤 느낌인지 나한테 설명해봐.”

“이 미친년이, 죽고 싶냐?”

침대에 누워있던 8호가 으르렁거리며 7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8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7호가 2호에게 먹인 경단은 보통 경단이 아니다. 경단의 정체는 독으로, 7호가 직접 만들어 갖가지 독이 혼합되어 농축된 독약이었다.

방 안에 있는 다섯 남녀의 정체는, 바로 암살자였다.

그중 7호는 여리여리한 몸에 걸맞게 신체 능력이 다른 동료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몸을 직접 움직이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암살의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독에 해박하다는 것이었다.

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녀는 갖가지 독약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해 상대를 암살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리고 암살자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순한 성격의 2호가 7호의 실험체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2호를 상대로 갖가지 실험을 한 덕에 7호는 독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모든 독에 면역을 가질 수 있었고.’

어릴 때부터 하도 7호와 어울려 주다 보니, 2호의 몸에는 각종 독에 대한 면역이 생겼다. 그리고 그 덕에 웬만한 독에는 끄떡없는 몸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2호가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대련 중인 4호와 10호가 닿았다. 10호는 제 몸만 한 대검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4호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몸은 군살 하나 없을 정도로 근육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위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10호의 암살법은 단순하고 무식하다. 강한 힘과 맷집이라는 재능을 가진 그가 암살을 수행하는 방법은, 바로 정공법이었다. 정문으로 쳐들어가,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정문으로 나온다. 그의 몸에 가득한 흉터는 이런 그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였다.

‘아직까지 안 죽은 게 용하지.’

실제로 10호는 임무에서 돌아올 때마다 어딘가 하나씩은 꼭 다쳐 왔다. 화살이 박힌 채 돌아온 적도 있었고, 팔이 반쯤 꺾인 채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10호는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목표는 확실하게 처리했다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2호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상처를 꿰매 주어야 했다.

2호가 혀를 차며 10호를 상대하고 있는 4호를 응시했다. 4호의 재능은 유연하고 민첩한 몸이다. 그는 유연한 몸으로 10호의 공격을 피하며 수시로 생기는 빈틈에 레이피어를 꽂아넣고 있었다.

‘대련용 검이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열 번은 죽었을 거다.’

“으아! 4호, 너 또 찔렀지!”

“찔렀다.”

“이번 건 아니잖아! 내가 먼저 베었잖아!”

“네 검이 닿기 전에 내 검이 네 옆구리에 세 번 닿았다.”

“세 번? 거짓말하지 마! 나는 한 번밖에 못 봤는데!”

“그러니까 네가 지는 거다.”

10호가 억울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대검을 다시 고쳐 쥐었다. 4호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굳이 대련을 멈추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말은 차갑게 해도 막내의 상대를 끝까지 해주는 것. 그것이 4호라는 사람이었다.

2호가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자신과 임무를 수행하고 온 8호를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7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고, 7호 또한 지기 싫은지 8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포기하지 않고 경단을 내밀고 있었다.

2호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양쪽 벽에 다섯 개씩, 모두 열 개의 침대. 그중 주인이 있는 침대는 다섯 개뿐이었다. 나머지 다섯 개의 침대는 오래전부터 비어 있었고, 아무도 그 침대를 치우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섯인가.’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는 열이었다. 그리고 그 열이 되기 전에는 백이었다. 2호는 굳이 그 숫자를 세어보지 않으려 했지만, 비어 있는 침대를 볼 때마다 숫자는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적게는 열여섯에서 많게는 열여덟 살의 어린 암살자들. 비록 어리지만 암살 기술에 있어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섯 명의 암살 전문가들.

그것이 2호를 포함해 이 방 안에 있는 이들의 정체였다.

그리고 그들이 암살을 수행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터벅-. 터벅-.

바깥으로 통하는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리지 않는 미세한 소리였지만, 감각이 좋은 다섯 암살자는 그 발소리를 인식했다.

이윽고 다섯 암살자 중 리더격인 2호가 입을 열었다.

“하던 거 멈추고 준비해라.”

언쟁 중인 7호와 8호가 언쟁을 멈추었다. 4호와 10호도 마찬가지로 대련을 멈추었다.

네 명의 암살자는 각자 자신의 침대 옆으로 가서 섰다. 2호는 방 한가운데 서서, 발소리의 주인을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발소리의 주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기다란 콧수염을 가진, 찬란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중년의 귀족.

수도 바로 옆에 있는 베인 공작가의 가주이자, 솔리아 제국의 현 황제 아우스페로 솔리아의 오른팔. 그리고 황제를 제외하면 제국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인물.

란데 베인 공작이었다.

방 안에 들어온 란데를 향해 다섯 암살자가 손을 들어 제 심장을 주먹으로 쾅 쳤다.

란데는 이 방에 자주 오지 않았다. 임무는 대개 란데의 사용인이나 기사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런 그가 직접 이 방에 발을 들이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직접 왔을 때, 좋은 일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호와 6호가 도망치다 붙잡혔을 때도 란데는 이 방에 왔다. 그리고 6호의 목이 담긴 자루를 방 한가운데에 내려놓으며 말했었다. 다음은 없다고.

2호는 그날을 잊지 않았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란데는 암살자들을 한 명씩 번갈아 쳐다보다가, 마지막으로 2호와 눈을 맞춘 후 그에게 다가왔다.

이윽고 란데가 입을 열었다.

“황제의 그림자.”

황제의 그림자.

다섯 암살자가 속한 단체의 이름이다.

황제의 그림자란 무엇인가?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황제의 수족이다.

누구를 위해?

황제를 위해.

어둠 속에서 황제를 위해 움직이며, 그의 뜻에 반해 분노를 사버린 이들을 처단한다.

그것이 바로 황제의 그림자.

다섯 암살자의 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