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연애 1일 차
by 루시엘 · 2026-10-26
# 《두부참이슬》
루시엘 지음
## 17화. 연애 1일 차
“우리 그냥 동네에서 놀면 안 돼요?”
강태준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동네요?”
“응. 동네.”
윤서하는 앞치마를 벗어 걸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왜요? 동네에서 노는 건 싫어요?”
“아니요. 싫다는 게 아니라…….”
태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 그는 어젯밤부터 데이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고, 저녁에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함께 걷는 것까지.
심지어 예약 가능한 식당을 찾아보느라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원하는 데이트는 동네에서 노는 것이었다.
“서하 씨.”
“응?”
“혹시 제가 너무 부담스러워요?”
서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제가 데이트한다고 하면 괜히 비싼 곳에 가야 할 것 같고, 뭔가 특별한 걸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태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거라면 안 그래도 돼요. 저는 그냥 서하 씨랑 있으면 좋은데.”
서하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네?”
“나도 태준 씨랑 있으면 좋아요. 그런데 아직은 그냥 편하게 만나고 싶어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여기잖아요. 맨날 두부김치 먹고, 참이슬 마시고, 별것도 아닌 일로 티격태격하고. 난 그런 게 좋아요.”
“…….”
“비싼 데 가는 것도 좋겠지만, 매번 그러면 나도 신경 쓰일 것 같아요. 내가 뭘 해 줘야 하나 싶기도 하고.”
태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정말요?”
“네. 그럼 오늘은 동네 데이트로 하죠.”
“좋아요!”
서하가 환하게 웃었다.
태준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가는 일조차 즐거웠다.
그녀가 웃으면 자신도 웃고 싶었고, 그녀가 걱정하면 함께 고민하고 싶었다.
그게 사랑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서하 씨.”
“응?”
“오늘 하루 종일 제 옆에 있어 주면 안 돼요?”
서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또 무슨 조건이에요?”
“데이트 조건이요.”
“싫어요.”
“왜요?”
“저도 제 할 일이 있거든요.”
태준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여자친구가 너무 매정하네.”
“남자친구가 너무 귀찮게 하네.”
“……그럼 손이라도 잡아 주세요.”
서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그러면서도 그녀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태준은 그 손을 얼른 잡았다.
“좋아요.”
그가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하지만 서하는 몰랐다.
그날의 데이트가 평범하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 1. 남자친구와 처음 걷는 길
토요일 오후.
두부참이슬 앞에는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서하는 가게 문에 휴무 안내문을 붙였다.
오늘은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자 태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 했어요?”
“응. 미자 언니한테도 부탁해 놨어요.”
“그럼 출발할까요?”
“어디로요?”
“일단 걸어요.”
서하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목적지도 없이요?”
“네. 가다가 서하 씨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들어가면 되죠.”
“오늘은 진짜 아무 계획도 없어요?”
태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 계획이 있었다.
오전 내내 동네 근처의 산책길과 카페, 맛집을 찾아봤다. 하지만 서하가 부담 없이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준비한 계획을 전부 내려놓기로 했다.
“네. 오늘은 서하 씨가 대장이에요.”
“그럼 저기 떡볶이 먹으러 가요.”
“좋아요.”
“그리고 문구점도 갈 거예요.”
“좋아요.”
“다이소도 갈 거예요.”
“좋아요.”
“……싫은 거 없어요?”
태준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서하 씨랑 가는 건 다 좋아요.”
서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못 말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걸었다.
평소 서하가 장을 보러 다니던 길이었다. 세탁소가 있었고, 오래된 분식집이 있었고, 길모퉁이에는 작은 꽃집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모든 것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늘 혼자 걷던 길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풍경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별것 아닌 일이 이렇게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이 서하는 신기했다.
“저기요.”
“네, 여자친구님.”
“그 호칭 좀 그만 쓰면 안 돼요?”
“왜요?”
“부끄럽잖아요.”
태준은 웃었다.
“그럼 서하 씨도 저한테 남자친구라고 불러 봐요.”
“싫어요.”
“한 번만요.”
“싫다니까요.”
“남자친구.”
“…….”
“남자친구라고 불러 주세요.”
서하는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근처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태준의 팔을 살짝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친구.”
태준의 걸음이 멈췄다.
“…….”
“왜요?”
“잠깐만요.”
그는 한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뭐래!”
서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요?”
“방금 느꼈는데요.”
태준은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한 번 더 해 주면 안 돼요?”
“안 돼요.”
“아쉽다.”
“진짜 유치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하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태준은 그 웃음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 하루만큼은 그녀가 최대한 많이 웃게 해 주겠다고.
### 2. 떡볶이와 질투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동네에서 유명한 작은 분식집이었다.
가게 안에는 학생들이 몇 명 앉아 있었고, 매콤한 떡볶이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여기 떡볶이 진짜 맛있어요.”
서하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제가 매운 걸 잘 못 먹는 건 알고 있죠?”
“알아요.”
“그런데 왜 떡볶이예요?”
“맛있으니까요.”
태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 남자친구가 이렇게 매정한 사람인 줄 몰랐네요.”
“그럼 안 먹으면 되죠.”
“먹을 겁니다.”
“왜요?”
“서하 씨가 먹고 싶어 하니까요.”
서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주문한 떡볶이가 나왔다.
서하는 신이 나서 떡 하나를 집어 먹었다.
“음, 역시 맛있다!”
태준도 조심스럽게 떡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입에 넣었다.
잠깐의 정적.
“…….”
서하가 그를 바라봤다.
“왜요?”
태준은 아무 말 없이 물컵을 집어 들었다.
“매워요?”
“아니요.”
“얼굴 빨개졌는데요?”
“원래 피부가 좋으면 그래요.”
“뭐래!”
서하는 웃다가 물을 건넸다.
태준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하 씨.”
“네?”
“저희 다음 데이트에는 샤부샤부 먹어요.”
“왜요?”
“국물이 맵지 않잖아요.”
“알겠어요. 다음에는 샤부샤부.”
서하는 웃으며 떡볶이를 하나 더 집어 먹었다.
그때였다.
“어? 서하 누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서하가 고개를 들자 스물여섯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민준아?”
“와, 누나 여기 웬일이에요? 오늘 가게 쉬어요?”
“응. 오랜만이네. 너는 잘 지냈어?”
“그럼요. 누나, 요즘 가게 바쁘죠?”
남자는 반갑게 웃으며 서하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저 잠깐 앉아도 돼요?”
“응, 앉아.”
남자가 자리에 앉자 태준의 젓가락이 멈췄다.
서하는 태준을 바라봤다.
“아, 소개할게요. 이쪽은 민준이예요. 예전에 우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던 동생.”
그리고 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서하는 잠깐 멈췄다.
남자친구라고 소개하는 게 아직도 조금 부끄러웠다.
그사이 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태준입니다. 서하 씨 남자친구고요.”
서하가 눈을 크게 떴다.
민준도 잠시 놀란 듯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아! 남자친구분이시구나!”
“네.”
태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서하 씨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서하가 그를 돌아봤다.
“내가 언제요?”
태준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많이요.”
“거짓말하지 마요.”
“그럼 지금부터 많이 들으면 되겠네요.”
민준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누나, 진짜 잘 어울리시네요. 누나가 연애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야, 그런 말 하지 마.”
“아니, 진짜예요. 누나는 맨날 일만 했잖아요.”
민준은 서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누나, 남자친구분이랑 행복하게 오래오래 만나세요.”
“고마워.”
“그럼 저 갈게요. 누나, 다음에 가게 들를게요!”
민준이 손을 흔들며 나갔다.
서하는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다시 태준을 돌아봤다.
“왜 그래요?”
“제가 뭘요?”
“표정이 왜 그래요?”
“제 표정이 어떤데요?”
서하는 피식 웃었다.
“질투해요?”
“아니요.”
대답이 너무 빨랐다.
서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진짜요?”
“……조금요.”
“왜요? 그냥 아는 동생인데.”
태준은 떡볶이를 내려다봤다.
“알아요.”
“그런데요?”
“그냥…….”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서하 씨가 다른 남자랑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걸 보니까, 저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어요.”
서하는 잠시 말이 없었다.
태준은 급하게 덧붙였다.
“물론 서하 씨 잘못이라는 건 아니에요. 제가 괜히 질투한 거예요. 서하 씨가 누구를 만나든, 누구랑 이야기하든 그건 서하 씨 자유니까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제가 생각보다 유치한가 봐요.”
서하는 그의 손등에 손을 올렸다.
“태준 씨.”
“네.”
“질투할 수 있죠.”
태준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지만 나 믿어 줘요.”
서하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지금 태준 씨랑 데이트하고 있잖아요.”
태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렇네요.”
“그러니까 떡볶이나 먹어요. 다 불겠네.”
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네.”
그리고 다시 떡볶이를 먹으려다가 멈췄다.
“그런데 서하 씨.”
“또 왜요?”
“민준 씨가 저보다 잘생겼어요?”
“……뭐래!”
“아니, 궁금해서요.”
“강태준 씨!”
태준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제야 서하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질투하는 건 자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가끔은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고마웠다.
서하는 테이블 아래에서 그의 손을 잡았다.
태준은 그녀를 바라봤다.
“왜요?”
“그냥요.”
서하는 수줍게 웃었다.
“남자친구 손 잡고 싶어서요.”
태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떡볶이가 매워서가 아니라, 가슴이 뜨거워서였다.
### 3. 평범한 하루의 행복
분식집을 나온 두 사람은 작은 문구점에 들렀다.
서하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볼펜을 구경했고, 태준은 옆에서 하나하나 들어 보며 물었다.
“이건 어때요?”
“예쁘네요.”
“이건요?”
“그것도 예뻐요.”
“그럼 둘 다 살까요?”
서하는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볼펜 하나 사러 왔는데 왜 두 개를 사요?”
“하나는 서하 씨 거, 하나는 제 거요.”
“태준 씨가 왜 이런 볼펜을 써요?”
“서하 씨랑 커플로 쓰려고요.”
서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대표님이 이런 것도 사요?”
“대표도 볼펜 씁니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그럼 무슨 뜻인데요?”
서하는 대답 대신 분홍색 볼펜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태준에게 파란색 볼펜을 건넸다.
“자, 이거요.”
태준은 볼펜을 받아 들었다.
“이게 제 거예요?”
“네.”
“커플 볼펜이네요?”
“네, 네. 커플 볼펜이에요.”
태준은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었다.
“잘 쓸게요.”
서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다이소에 들렀다.
서하는 생활용품을 구경했고, 태준은 카트를 끌고 그녀의 뒤를 따라다녔다.
“이건 필요해요?”
“응. 주방에서 쓰려고요.”
“그럼 담아요.”
“이건요?”
“그것도 필요해요.”
“이것도요?”
“그것도요.”
한참 뒤, 서하가 카트를 바라봤다.
“……태준 씨.”
“네.”
“우리 지금 장 보는 거예요, 이사하는 거예요?”
태준은 카트 안을 내려다봤다.
정리함과 수세미, 주방용품과 작은 화분까지 들어 있었다.
“필요한 것들 아니에요?”
“필요하긴 한데요!”
서하는 웃으며 물건 몇 개를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이건 다음에 사요.”
태준은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서하는 몰래 웃었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무서운 대표라더니, 여기서는 그저 자신과 함께 장을 보러 온 남자친구였다.
서하는 그 사실이 좋았다.
누군가의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누군가와 평범한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일이 더 소중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 4. 예상하지 못한 손님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두 사람은 동네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서하는 따뜻한 캔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태준은 옆에서 그녀의 어깨에 자신의 외투를 살짝 걸쳐 주었다.
“안 추워요?”
“괜찮아요.”
“그래도 입어요.”
“태준 씨는요?”
“저는 안 추워요.”
서하가 그를 빤히 바라봤다.
“거짓말.”
“……조금 추워요.”
“그러니까 같이 입어요.”
서하는 외투 한쪽을 들어 태준의 어깨에도 걸쳐 주었다.
두 사람은 한 벌의 외투를 나눠 입은 채 웃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좋네요.”
태준이 말했다.
“뭐가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거요.”
그는 공원에 놀러 나온 아이들을 바라봤다.
“회사에서는 늘 뭔가를 결정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결과를 보여 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서하 씨랑 있으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괜찮은 것 같아요.”
서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럼 앞으로도 자주 이렇게 쉬어요.”
“그래도 돼요?”
“당연하죠.”
서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태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요.”
“또 고맙대.”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요.”
서하는 웃었다.
그때였다.
“……윤서하 씨?”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서하의 웃음이 멈췄다.
그 목소리.
잊었다고 생각했던 목소리였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서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벤치 뒤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깔끔한 코트에 정돈된 머리. 한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그는 서하를 바라보다가 이내 태준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서하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이민혁.”
태준의 표정이 달라졌다.
서하가 자신의 손을 놓으려는 것을 느꼈지만, 태준은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괜찮은지.
불편한지.
떠나고 싶은지.
서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민혁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더니 서하의 손과 태준의 손이 맞닿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남자친구예요?”
태준이 대답하려던 순간, 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응.”
민혁의 미소가 조금 옅어졌다.
“그렇구나.”
그는 어딘가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생각보다 빨리 새로운 사람을 만났네.”
서하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예전 같았으면 그 한마디에도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혹시 자신이 너무 빨리 다른 사람을 만난 건 아닐까.
혹시 민혁이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서하는 옆에 앉은 태준을 바라봤다.
자신의 손을 억지로 붙잡지도 않고, 대신 대답해 주지도 않은 채 조용히 기다려 주는 남자.
그 모습에 조금씩 마음이 안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