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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사장님, 질투하세요?

by 루시엘 · 2026-10-25

## 7화. 사장님, 질투하세요?

밤 아홉 시.

서울의 오래된 골목에는 저녁 장사를 시작한 가게들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골목 끝에 자리한 작은 술집, 두부참이슬에도 따뜻한 주황빛 조명이 번졌다. 문 앞에 세워 둔 입간판에는 오늘의 추천 메뉴가 적혀 있었다.

두부김치 한 접시, 참이슬 한 병.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안주와 술 한 병일 뿐이지만, 이곳을 찾는 단골들에게는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위로였다.

그리고 윤서하에게는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생계였다.

“두부김치 하나 나왔습니다!”

서하는 갓 볶은 김치를 접시에 담고 그 위에 두부를 가지런히 올렸다. 마지막으로 깨를 솔솔 뿌린 뒤 홀로 나갔다.

“맛있게 드세요.”

“사장님, 오늘 김치가 더 맛있네요?”

단골손님의 말에 서하는 웃었다.

“그래요? 오늘 좋은 김치를 써서 그런가 봐요.”

“아니, 사장님이 기분 좋은 일 있으신 거 아니에요?”

“제가요?”

서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별일 없는데요.”

그랬다.

정말 별일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아침부터 자꾸 휴대전화가 신경 쓰였다.

며칠 전부터 강태준과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한 뒤 생긴 이상한 버릇이었다.

그가 먼저 연락해 오는 날이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고, 연락이 없는 날이면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졌다.

오늘은 아직 아무런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물론 그럴 수 있었다. 태준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었고, 바쁜 날에는 연락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서하는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내가 진짜 왜 이러지.”

그녀는 휴대전화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귀찮았다.

언제 연락이 올지 알 수 없고, 왜 연락이 없는지 혼자 추측하게 되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도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서하는 그런 감정이 싫었다.

예전에도 그랬으니까.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하루의 중심이 되어 버렸다. 상대방의 말투 하나에 기분이 달라지고,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에 마음이 무너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만 상처를 받았다.

서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번에는 그러지 말자.”

그때였다.

딸랑.

가게 문 위의 작은 종이 울렸다.

“사장님!”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서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강태준이었다.

검은색 셔츠에 짙은 회색 재킷을 걸친 그는 평소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태준의 옆에는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가 함께 서 있었다.

여자는 세련된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작은 명품 가방을 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단정하고 세련된 인상이었다.

서하의 미소가 아주 잠깐 멈췄다.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서하는 자신의 가슴이 이상하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서하는 애써 평소처럼 대답했다.

“……왔어요?”

말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서하는 속으로 자신을 탓했다.

왜 그렇게 반갑게 대답한 거야.

기다렸던 사람처럼.

태준은 그런 서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말했다.

“네. 오늘도 왔습니다.”

그러고는 옆에 선 여자를 돌아봤다.

“여기 내가 말했던 곳이야.”

여자가 가게 안을 둘러봤다.

“아, 여기가 오빠가 매일 온다는 술집이야?”

오빠.

서하의 손이 멈췄다.

여자는 태준의 팔을 가볍게 잡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아늑하다. 나는 오빠가 맨날 간다고 해서 엄청 특별한 곳인 줄 알았어.”

태준이 웃었다.

“특별한 곳 맞아.”

서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태준을 바라봤다.

특별한 곳.

그 말이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걸까.

여자는 태준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그럼 여기 사장님이 그렇게 음식 잘하시는 분이야?”

“응. 특히 두부김치가 맛있어.”

“아, 그래서 맨날 두부김치만 먹는구나?”

“그것도 있고.”

태준은 말을 잠깐 멈추더니 서하를 바라봤다.

“다른 이유도 있고.”

서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저 남자는 정말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장난마저도 반갑지 않았다.

옆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여자친구일까?

아니면 썸을 타는 사이?

혹시 자신에게 매일 찾아와 장난을 치는 것도 그저 심심해서였을까?

서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억지로 밀어냈다.

자신이 왜 그런 걸 궁금해해야 한단 말인가.

태준은 손님이고, 자신은 사장이다.

그뿐이었다.

“두 분, 몇 분이세요?”

서하가 최대한 평범한 목소리로 물었다.

태준이 대답했다.

“두 명이요.”

“이쪽에 앉으세요.”

서하는 두 사람이 앉기 좋은 자리를 안내했다.

여자는 태준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 모습을 보던 서하는 괜히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을 정리했다.

컵은 이미 가지런했다.

그래도 손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주문하시겠어요?”

태준이 메뉴판을 펼쳤다.

“두부김치 두 개, 참이슬 두 병 주세요.”

“네.”

서하가 돌아서려는데 여자가 말을 걸었다.

“사장님!”

서하가 뒤돌아봤다.

“네?”

“혹시 여기 두부김치가 그렇게 맛있어요?”

“……네. 저희 가게 대표 메뉴예요.”

“오빠가 다른 건 잘 안 먹고 이것만 먹는다고 해서요.”

여자는 웃으며 태준을 바라봤다.

“집에서도 맨날 두부김치 이야기만 해요.”

서하는 순간 대답을 잊었다.

집에서도?

그렇다면 저 여자와 집에서 함께 밥을 먹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는 걸까?

태준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야, 내가 언제 맨날 이야기했어.”

“맨날 하잖아. 지난번에도 두부김치 먹으러 간다고 약속 취소했잖아.”

“그건…….”

태준은 잠깐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서하를 바라봤다.

“그날은 꼭 와야 하는 날이었거든요.”

서하는 애써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세요?”

“네.”

“두부김치가 그렇게 좋으신가 봐요.”

“그것도 좋고요.”

태준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여기 오면 좋은 일이 많거든요.”

서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두부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렸다.

탁.

탁.

탁.

평소보다 칼질이 거칠었다.

“……뭐가 좋은 일이 많다는 거야.”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사람 헷갈리게.”

그녀는 두부를 썰다가 잠시 멈췄다.

아니, 애초에 헷갈릴 일이 없었다.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정식으로 사귀자고 한 적은 없었다. 매일 찾아오고, 장난을 치고, 가끔 진지한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무슨 관계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한 자신이 우스웠다.

서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정신 차리자, 윤서하.”

두부김치를 완성한 그녀는 접시 두 개를 들고 홀로 나갔다.

“주문하신 두부김치 나왔습니다.”

태준이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여자도 반갑게 인사했다.

“잘 먹겠습니다!”

서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런데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진짜 맛있다!”

서하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여자는 두부김치를 한입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 이거 진짜 맛있어!”

태준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지?”

“응. 다음에 또 오자.”

“그래.”

서하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다음에 또 오자.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좋아해 주는 손님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 왜 오늘은 그게 기쁘지 않을까.

서하는 싱크대 앞에 서서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이 손끝을 적셨다.

“좋은 일이잖아.”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손님이 맛있다고 해 주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하고. 좋은 일이잖아.”

그런데 가슴 한구석이 자꾸 답답했다.

그때 미자 이모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서하야, 김치 좀 빌리러 왔는데…….”

말을 하던 미자 이모가 서하의 얼굴을 살폈다.

“너 왜 그래?”

“제가요?”

“응. 얼굴이 왜 그렇게 굳었어?”

“원래 이렇게 생겼어요.”

“아이고, 거짓말도 잘한다.”

미자 이모는 홀을 슬쩍 바라봤다.

그리고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린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머나.”

“왜요?”

“저 총각 오늘 여자랑 왔네?”

서하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러게요.”

“여자친구인가?”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렇지. 네가 어떻게 알겠니.”

미자 이모는 서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런데 너, 지금 질투하니?”

“아니거든요!”

너무 큰 목소리였다.

홀에 있던 손님 한 명이 고개를 돌렸다.

서하는 황급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자 이모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이고, 목소리 봐라. 질투 안 하는 사람 목소리가 저렇게 커?”

“이모!”

“왜!”

“김치 가져가세요!”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서하야.”

미자 이모는 주방을 나가기 전, 서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마음이 없으면 질투도 안 하는 거야.”

서하는 입술을 다물었다.

미자 이모는 웃으며 나갔다.

“아이고, 재미있어라.”

서하는 싱크대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마음이 없으면 질투도 안 하는 거라고?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질투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신경 쓰일 수 있었다.

단골손님이 다른 사람과 왔으니 조금 낯설고 어색할 수도 있었다.

그 정도였다.

적어도 서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밤 열 시.

여자는 휴대전화를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나 이제 가 봐야겠다.”

“벌써?”

“응. 내일 아침에 약속 있잖아. 나도 일찍 일어나야 해.”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심히 가.”

여자는 가방을 챙기다가 태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다음에는 엄마랑 같이 오자. 엄마도 두부김치 좋아하시잖아.”

“그래. 시간 맞으면.”

여자는 서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사장님, 오늘 정말 잘 먹었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서하는 억지로 웃었다.

“네. 조심히 가세요.”

여자가 나가고 태준은 잠시 문 앞까지 배웅했다.

서하는 주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여자가 태준에게 무언가를 말하며 웃었다.

태준도 웃었다.

두 사람은 꽤 편해 보였다.

서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이상했다.

태준이 다른 사람과 웃고 있을 뿐인데 왜 자신은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걸까.

그때 태준이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서하는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물었다.

“……안 가요?”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네?”

“아까 그분이랑 같이 가는 줄 알았는데요.”

태준은 잠깐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웃었다.

“아, 제 사촌 동생이요?”

서하의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네?”

“사촌 동생이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거든요.”

서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촌 동생.

그렇다면 여자친구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혼자 오해한 것이었다.

서하는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아…… 그러세요?”

“네.”

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런데 사장님.”

“왜요?”

“아까부터 표정이 좀 이상하신데요.”

“제 표정이 왜요?”

“화나신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기도 하고.”

“아니거든요.”

“정말요?”

“네.”

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

“혹시 질투하세요?”

서하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요?”

“질투요.”

“제가 왜요?”

“글쎄요. 제가 다른 여자랑 있으니까?”

서하는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강태준 씨.”

“네, 사장님.”

“꿈 깨세요.”

“아, 아니구나.”

태준은 일부러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조금 기대했는데.”

“뭘 기대해요?”

“사장님이 질투해 주시는 거요.”

서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왜 질투를 해요? 강태준 씨가 제 남자친구예요?”

태준의 미소가 아주 잠깐 멈췄다.

서하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제가 뭐라고 강태준 씨가 누구를 만나든 신경을 써요?”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태준의 얼굴에서도 장난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맞아요.”

서하는 그를 바라봤다.

태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죠.”

그 말에 서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직.

그 단어가 귀에 걸렸다.

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에 섰다.

“그런데 사장님.”

“……네.”

“제가 사장님을 좋아하는 건 알고 계시죠?”

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태준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치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사장님은 달랐어요. 제가 잘난 척하면 혼내고, 장난치면 화내고, 마음에 안 들면 싫다고 말하고.”

그는 작게 웃었다.

“그런 모습이 좋았어요.”

서하는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이유로 이곳에 오고 싶어졌어요.”

“…….”

“사장님이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저를 맞아 줄지 궁금하고, 무슨 말을 하면 웃을지 궁금하고, 하루 종일 바쁘다가도 사장님 얼굴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요.”

태준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래서 매일 오게 됐어요.”

서하는 손가락을 꽉 맞잡았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농담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저는 사장님이 저를 좋아한다고 말해 주길 바라는 게 아니에요. 지금 당장 저랑 사귀자고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요.”

태준은 한 걸음 물러섰다.

“다만 제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보였을 때 사장님 마음이 조금이라도 불편했다면…… 저는 그게 싫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태준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만큼 저를 신경 쓰신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다시 한번 말해 주는 것이 좋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았다.

서하는 조용히 물었다.

“……왜 저예요?”

태준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제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냥 작은 술집 하나 운영하는 사람이에요.”

서하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리고 저는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해요. 누가 좋아한다고 말해도 그 말을 그대로 믿기가 어려워요.”

태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서하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예전에 누군가를 믿었다가 많이 힘들었거든요. 처음에는 잘해 줬어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말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달라지더라고요.”

그녀는 억지로 웃었다.

“결국에는 저 혼자 좋아하고, 저 혼자 기다리고, 저 혼자 상처받았어요.”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좋아한다고 말해도 쉽게 믿지 않으려고 해요. 괜히 기대했다가 또 무너질까 봐요.”

서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장난이면 그만해요. 저는 그런 거 자신 없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태준은 그녀의 마음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꿨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하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태준은 조용히 말했다.

“사장님.”

“……네.”

“저는 사장님이 저를 믿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아요.”

서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당장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으셔도 되고, 저랑 사귀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에는 싫다고 하셔도 돼요.”

태준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런데 제 마음까지 장난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서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태준은 부드럽게 웃었다.

“저는 사장님이 좋아요. 그건 지금도, 내일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가슴이 먹먹해졌다.

서하는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어 본 지 오래였다.

아니,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자신이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이해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태준은 달랐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느껴졌다.

서하는 눈을 깜빡이며 작게 말했다.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아요.”

“강태준 씨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천천히 생각하세요.”

“그러다 제가 강태준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요?”

태준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그때 가서 슬퍼할게요.”

서하가 그를 바라봤다.

태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부터 미리 슬퍼하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아직 사장님한테 제대로 고백도 못 했는데.”

서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못 말려…….”

태준도 따라 웃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무거운 공기가 조금씩 풀렸다.

그때 태준의 배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꼬르륵.

정적.

서하가 눈을 크게 떴다.

태준은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을 했다.

“……죄송합니다.”

서하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푸하하! 지금 이 분위기에서 배가 고파요?”

“아까 사촌 동생이랑 먹은 건 두부김치 한 접시뿐이었거든요.”

“술도 마셨잖아요!”

“술은 배가 안 부르잖아요.”

서하는 웃음을 참으며 주방으로 돌아갔다.

“알았어요. 두부김치 다시 해 줄게요.”

태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대신 오늘은 추가 요금이에요.”

“사장님!”

“왜요?”

“마음값은 비싸다면서요. 음식값까지 비싸면 제가 파산합니다.”

서하는 뒤돌아보며 웃었다.

“그럼 이제 그만 오세요.”

태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