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처음부터 너였어
by 루시엘 · 2026-10-19
## 9화. 처음부터 너였어
하린은 밤새 뒤척였다.
눈을 감으면 이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카페에서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종이.
서하린 씨, 저랑 사귈래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토록 기다렸던 고백이었다.
그런데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하린은 이불을 끌어안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한 건가……."
이준은 분명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 번쯤 믿어 줘도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하린은 여전히 불안했다.
과거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행복해지는 만큼, 그 사람을 잃을까 봐 두려워졌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웃어 주면 기뻤지만, 그 다정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됐다.
그런 자신이 싫었다.
이준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먼저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하린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어젯밤 이준과 나눈 대화를 다시 읽었다.
강이준: 제가 오늘 있었던 일, 전부 이야기할게요.
서하린: 저도 이준 씨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강이준: 고마워요, 하린 씨.
하린은 그 마지막 메시지를 한참 바라봤다.
오늘은 이야기를 들어 보자.
혼자 상상하며 결론을 내리지 말자.
이준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적어도 직접 듣고 판단하자.
하린은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발신인: 서하린 씨 맞으시죠?
하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지?
잘못 보낸 메시지인가 싶어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곧이어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인: 저는 강이준 씨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에요.
하린의 손이 멈췄다.
강이준.
왜 이준의 이름이 나오는 걸까.
하린은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서하린: 누구세요?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발신인: 오수빈이라고 해요.
하린은 그대로 굳었다.
어제 이준과 함께 있던 여자.
회사 동료라고 소개받았던 여자.
하린은 화면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수빈: 이준 씨와 관련해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하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제 이준이 설명하지 못했던 일.
수빈이 그에게 했던 말.
우리 이야기는 한 번쯤 해야 할 것 같아.
하린은 휴대폰을 꽉 쥐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끝이 차가워졌다.
곧이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오수빈: 이준 씨가 직접 이야기하기 전에, 제가 먼저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하린은 한참 동안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이준은 오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수빈이 먼저 연락한 걸까.
하린은 결국 짧게 답장을 보냈다.
서하린: 무슨 일이신데요?
수빈의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오수빈: 오늘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하린은 화면을 바라봤다.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궁금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이준을 믿고 싶었다.
그런데 혹시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도 알고 싶었다.
하린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서하린: 네. 어디서 만나면 될까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하린은 눈을 감았다.
오늘은 모든 것을 알게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진실이 무엇이든, 더는 혼자 상상하며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 두 시.
하린은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수빈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린을 발견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린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수빈은 잠시 하린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하린은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수빈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말했다.
"저는 이준이랑 오래 알고 지냈어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들었어요."
"그냥 친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수빈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하린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는 한때 이준이를 좋아했어요."
하린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수빈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요. 처음에는 저도 제 마음을 몰랐어요. 그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빈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준이는 저를 친구로만 생각했어요. 제가 어떤 마음인지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하린은 손끝을 꽉 쥐었다.
"그래서요……?"
수빈은 잠시 망설였다.
"얼마 전에 이준이한테 제 마음을 이야기했어요."
하린은 고개를 들었다.
"……네?"
"이준이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은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수빈은 고개를 숙였다.
"좋아했다고요. 아직 마음이 남아 있다고요."
하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제 이준과 함께 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을까.
두 사람이 심각하게 이야기하던 이유도.
수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준이는 거절했어요."
하린은 숨을 멈췄다.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지금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요."
수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 사람이 하린 씨라고 했어요."
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이 나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수빈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연락한 이유는……."
수빈은 한참 동안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이준이가 저를 거절한 것보다, 그 사실을 하린 씨에게 바로 말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어요."
하린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이준이가 저한테는 분명하게 거절했어요. 그건 알아요. 하지만 하린 씨는 이 일을 모르고 계시잖아요."
수빈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이준이가 일부러 숨기려고 한 건지, 괜히 하린 씨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건지는 저도 몰라요."
하린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준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일.
수빈이 이준을 좋아했고, 고백했고, 거절당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복잡했다.
하린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왜……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는 거예요?"
수빈은 잠시 하린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이준이를 좋아했으니까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준이가 하린 씨를 좋아한다는 건 알겠어요. 저한테 하는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거든요."
수빈은 컵을 내려다봤다.
"그래서 더는 제 마음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빈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다만 하린 씨가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면 더 상처받을까 봐, 제가 먼저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하린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준이 왜 어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었는지.
왜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했는지.
그리고 왜 바로 설명하지 못했는지.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서운함이 남아 있었다.
이준은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했던 사람이 다른 여자에게 고백을 받았고, 그 여자가 아직 마음이 남아 있다고 했다는 사실을.
그 일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린에게는 그 사실을 알 권리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린은 조용히 물었다.
"이준 씨가…… 아직 수빈 씨를 좋아하는 건 아니죠?"
수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대답은 단호했다.
"이준이는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적어도 제가 아는 한, 그 마음은 분명해요."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했다.
"하린 씨."
"……네."
"이준이를 좋아하신다면, 직접 이야기해 보세요. 제가 대신 설명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빈은 잠시 미소 지었다.
"두 분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남기고 수빈은 카페를 나갔다.
하린은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이준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수빈에게 분명하게 거절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하린은 휴대폰을 꺼냈다.
이준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강이준: 하린 씨, 오늘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하린은 화면을 바라봤다.
오늘은 자신도 할 말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다.
오후 네 시.
하린은 이준이 알려 준 카페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이준이 보였다.
그는 하린을 발견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린 씨."
하린은 천천히 다가갔다.
"……기다렸어요?"
"네."
이준은 조심스럽게 웃었다.
"와 줘서 고마워요."
하린은 자리에 앉았다.
이준도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 모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이준이 먼저 말했다.
"하린 씨. 어제 일부터 설명할게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듣고 싶어요."
이준은 잠시 숨을 골랐다.
"어제 같이 있었던 사람은 오수빈이라는 친구예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고요."
"네."
"수빈이가 저한테 마음이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예전부터 좋아했다고……."
하린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이준은 계속 말했다.
"저는 수빈이를 친구로 생각한다고 했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고도 이야기했고요."
하린은 시선을 내렸다.
이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린 씨한테 바로 하지 못했어요."
"……왜요?"
이준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하린 씨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하린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이준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건 제 생각만 한 거였어요. 하린 씨가 어떻게 느낄지 먼저 물어보지도 않고, 제가 알아서 판단했어요."
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준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그 말에는 변명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린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저는……."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수빈 씨가 이준 씨를 좋아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속상한 건 아니에요."
이준은 고개를 들었다.
"……그럼요?"
"누군가 이준 씨를 좋아할 수도 있죠. 이준 씨도 다른 사람을 좋아했던 적이 있을 수 있고요."
하린은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저는 이준 씨가 저한테 말하지 않았다는 게 서운했어요."
이준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저는 이준 씨가 저한테 솔직했으면 좋겠어요. 좋은 일만 말해 주는 게 아니라, 제가 듣기 불편한 이야기라도……."
하린은 잠시 숨을 골랐다.
"저와 관련된 일이라면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가 그걸 놓쳤어요."
그는 하린의 눈을 바라봤다.
"하린 씨가 제 마음을 믿을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고 해 놓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 혼자 판단했어요."
하린은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준은 말을 이었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있으면 먼저 이야기할게요. 하린 씨가 불안해할까 봐 숨기는 게 아니라, 하린 씨가 저를 믿을 수 있도록 솔직하게 말할게요."
하린은 한참 동안 그를 바라봤다.
"……정말요?"
"네."
이준은 망설이지 않았다.
"물론 모든 이야기를 당장 다 할 수는 없을 때도 있겠죠. 하지만 그럴 때는 왜 지금 말하기 어려운지 설명할게요. 하린 씨가 혼자 상상하게 두지 않을게요."
하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불안함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하지만 아직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준 씨."
"네."
"수빈 씨를…… 정말 좋아한 적 없어요?"
이준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친구로서 소중하게 생각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연애 감정으로 좋아한 적은 없어요."
하린은 그를 바라봤다.
"그럼 수빈 씨가 고백했을 때는요?"
"미안했어요. 수빈이가 오랫동안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이준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이유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만날 수는 없잖아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맞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준은 이미 수빈에게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향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했다.
하린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지금도 저를 좋아해요?"
질문을 하고 나서 하린은 조금 부끄러워졌다.
이미 여러 번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이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하린 씨."
"네."
"저는 지금도 하린 씨를 좋아해요."
하린의 눈가가 붉어졌다.
"어제보다 더요?"
이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어제보다 더요."
"오늘 아침보다도요?"
"네."
"그럼 내일은요?"
이준은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아할 것 같아요."
하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맺힌 얼굴로 웃는 하린을 보며 이준도 웃었다.
"하린 씨."
"네?"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에요?"
이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저를 좋아해요?"
하린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질문이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이준도 불안했던 것이다.
자신이 상처받았을까 봐.
자신이 떠나 버릴까 봐.
하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준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하린은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저 이준 씨 좋아해요. 많이요."
이준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하린은 그의 손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준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하린의 손을 잡았다.
하린은 작게 웃었다.
"그런데 이준 씨."
"네."
"저희…… 아직 사귀는 사이 아니죠?"
이준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웃음이 터졌다.
"아직은요."
하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언제 사귈 거예요?"
이준은 웃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하린 씨."
"네?"
"제가 어제 고백하려고 했던 거 기억하죠?"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준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하린은 그 종이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아직 가지고 있었어요?"
"당연하죠."
이준은 종이를 펼쳤다.
그 안에는 여전히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서하린 씨, 저랑 사귈래요?
이준은 종이를 내려놓고 하린을 바라봤다.
"어제는 제대로 말하지 못했어요. 제가 준비한 말보다 하린 씨 마음을 먼저 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 제대로 말하고 싶어요."
하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준은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서하린 씨."
"……네."
"저는 하린 씨가 좋습니다."
하린은 눈을 크게 떴다.
이준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궁금했어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한 번 더 만나고 싶었어요."
그는 하린의 눈을 바라봤다.
"그런데 지금은 매일 보고 싶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하린 씨가 웃으면 저도 행복해져요."
하린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저는 하린 씨와 좋은 날만 함께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서운한 일이 생기면 함께 이야기하고 싶고, 서로 오해하는 일이 생기면 풀고 싶어요."
이준은 그녀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하린 씨가 불안해할 때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설명해 주고 싶어요. 제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고 싶고요."
하린은 눈물을 참으며 그를 바라봤다.
"물론 앞으로도 서로 모르는 게 많겠죠. 가끔은 서운할 수도 있고, 다툴 수도 있을 거예요."
이준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도 저는 하린 씨와 함께 그 모든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준이 마침내 물었다.
"서하린 씨."
하린은 숨을 죽였다.
"저랑 사귈래요?"
하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슬퍼서가 아니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린은 눈물을 닦으며 다시 말했다.
"저도 이준 씨랑 사귀고 싶어요."
이준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더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린 씨."
"네?"
"안아도 돼요?"
하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준은 조심스럽게 하린을 안았다.
하린도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편안하게.
이준은 그녀의 귀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이제 제 여자친구네요."
하린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이준 씨 여자친구예요."
"정말 좋다."
"저도요."
이준은 그녀를 조금 떨어뜨려 바라봤다.
"하린 씨."
"네?"
"사랑한다고 말해도 돼요?"
하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은 조금 부끄러운데요."
이준은 웃었다.
"그럼 천천히 말해 줘요."
하린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대신…… 많이 좋아해요."
이준은 환하게 웃었다.
"저도요. 정말 많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