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7화. 좋아하는 것 같아

by 루시엘 · 2026-10-19

## 7화. 좋아하는 것 같아

아침부터 하린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어젯밤 이준과 나눈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다음에도 안아 줘요.

자신이 먼저 보낸 메시지였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웠다. 평소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인데, 이준 앞에서는 이상하게 솔직해졌다.

그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자신도 좋아한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보고 싶다고 하면 자신도 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더 욕심이 났다.

이준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었다.

물론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정식으로 사귀자고 약속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린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먼저 고백하면 어떡하지?'

아니, 그건 조금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이준이 고백할 때까지 마냥 기다리자니 답답했다.

"아, 진짜 모르겠다."

하린이 이불을 끌어당기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강이준: 하린 씨, 일어났어요?

하린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서하린: 네! 방금 일어났어요ㅎㅎ

강이준: 잘 잤어요?

서하린: 네. 이준 씨는요?

강이준: 저도 잘 잤어요.

잠시 뒤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강이준: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하린 씨 생각이 나네요.

하린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으아아……."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강이준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데 도대체 얼마나 익숙한 걸까.

하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서하린: 저도 이준 씨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메시지를 보내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부끄럽긴 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자 이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하린은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하린 씨.

"네?"

\- 방금 메시지요.

"……네."

\- 저 생각했다고 했잖아요.

하린은 웃음을 참았다.

"네. 했어요."

\- 정말요?

"아니, 그럼 거짓말하겠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이준이 웃었다.

\- 아니요. 그냥 기분이 좋아서요.

하린은 괜히 손가락으로 이불 끝을 만지작거렸다.

"이준 씨는 왜 그렇게 제가 좋대요?"

질문은 장난처럼 나왔지만, 사실 진심이었다.

이준은 잠시 조용했다.

그러다 차분하게 대답했다.

\- 하린 씨라서요.

하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오늘도 보고 싶어요.

"……저도요."

\- 그럼 오늘 만날까요?

하린은 망설이지 않았다.

"좋아요."

\- 오후에 데리러 갈게요.

"네!"

전화를 끊은 하린은 휴대폰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오늘도 이준을 만난다.

그리고 오늘은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자신이 얼마나 이준을 좋아하는지.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더는 혼자 숨기고 싶지 않았다.

오후 세 시.

하린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이준을 발견했다.

이준은 가로수 아래 서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하린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하린 씨!"

그는 웃으며 다가왔다.

"기다렸어요?"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이준은 하린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더니 말했다.

"오늘도 예쁘네요."

하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은 이제 인사처럼 하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네."

"그럼 다른 인사를 해 볼까요?"

이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보고 싶었어요."

하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게 더 부끄럽거든요."

"그래도 사실인데요."

하린은 시선을 피하며 작게 웃었다.

이준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오늘은 어디 가고 싶어요?"

"음……."

하린은 잠시 생각했다.

"그냥 같이 걷고 싶어요."

"산책이요?"

"네. 날씨도 좋고, 이준 씨랑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이준은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 부드럽게 웃었다.

"좋아요. 오늘은 하린 씨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요."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가볍게 흔들렸다.

하린은 이준의 옆모습을 슬쩍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잘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번호를 물어보던 모습도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이준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 좋았다.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게 받아 주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망설이지 않는 점이 좋았다.

하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준 씨."

"네."

"저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요?"

이준은 웃었다.

"당연하죠."

"뭐가 제일 기억나요?"

"하린 씨가 친구들이랑 웃고 있던 모습이요."

"그것밖에 없어요?"

"아니요."

이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제가 번호 물어보러 갔을 때 하린 씨가 저를 엄청 경계했던 것도 기억나요."

하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당연하잖아요! 갑자기 모르는 남자가 와서 번호를 물어보는데!"

"그렇긴 하죠."

"술 취했냐고도 물어봤잖아요."

"네."

"그런데도 안 돌아가고."

이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하린은 그를 바라봤다.

"왜요?"

이준은 잠시 걸음을 늦췄다.

"그때 그냥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았어요."

"……."

"한 번만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번호를 물어보지 않으면 다시는 하린 씨를 못 볼 수도 있잖아요."

그는 하린을 바라봤다.

"그래서 용기 냈어요."

하린은 가슴이 간질거렸다.

"잘했네요."

"그렇죠?"

이준이 웃었다.

"그날 용기 안 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왜요?"

"하린 씨를 못 만났을 테니까요."

하린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 남자와 함께 있으면 아무리 평범한 대화라도 특별한 기억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두 사람은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벤치에 앉자 이준이 음료수를 건넸다.

"하린 씨가 좋아하는 거예요."

하린은 음료수를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이거 기억했어요?"

"네."

"제가 이거 좋아한다고 말했었나?"

"지난번에 카페에서 마셨잖아요."

하린은 웃으며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진짜 잘 기억한다."

"하린 씨 이야기니까요."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하린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봐 주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불안해할 때 기다려 주는 사람.

하린은 음료수 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준 씨."

"네."

"저 오늘은 이준 씨한테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이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무슨 일이에요?"

"나쁜 일은 아니에요."

하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제 마음이요."

이준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하린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오늘은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이준을 얼마나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때때로 불안해지는지.

이준에게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보여 주고 싶었다.

"저는요."

하린이 입을 열었다.

"이준 씨랑 만나기 전에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이렇게 설레는 일인지 몰랐어요."

이준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

"아침에 눈뜨면 연락이 왔는지 확인하고,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만나기로 한 날에는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하린은 쑥스럽게 웃었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어요."

이준도 작게 웃었다.

"저도 그래요."

"정말요?"

"네. 하린 씨한테 메시지 보내고 나서 답장 올 때까지 휴대폰을 계속 봐요."

하린은 눈을 크게 떴다.

"이준 씨도요?"

"그럼요."

이준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답장이 늦으면 괜히 바쁜가 싶고, 제가 보낸 말이 너무 오글거렸나 싶고."

하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준 씨가 그런 생각도 해요?"

"저도 사람이거든요."

"아, 미안해요. 너무 완벽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완벽하지 않은데요."

이준은 잠시 하린을 바라봤다.

"하린 씨 앞에서는 특히 더 그래요."

하린은 웃음을 멈췄다.

"왜요?"

"잘 보이고 싶으니까요."

그의 말은 짧았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하린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신만 잘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이준도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다.

자신만 설레는 게 아니었다.

이준도 같은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실이 하린을 조금 더 용감하게 만들었다.

"그럼…… 하나만 더 말해도 돼요?"

"물론이죠."

하린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조용히 말했다.

"저 이준 씨가 다른 여자랑 친하게 지내면 신경 쓰여요."

이준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하린은 말을 이었다.

"제가 아직 이준 씨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으니까, 가끔은 괜히 불안해져요. 이준 씨가 저한테 잘해 주는 게 너무 좋아서…… 혹시 다른 사람한테도 똑같이 잘해 주면 어떡하지 싶고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조금 이상하죠?"

"아니요."

이준이 곧바로 대답했다.

"전혀요."

하린은 그를 바라봤다.

이준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린 씨가 저를 좋아하니까 신경 쓰이는 거겠죠. 저는 그 마음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

"그렇다고 하린 씨가 모든 걸 혼자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이준은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설명해 줄게요. 하린 씨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되고요."

하린은 그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럼 제가 자꾸 물어봐도 괜찮아요?"

"네."

"귀찮지 않아요?"

"하린 씨가 제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건데, 왜 귀찮겠어요?"

하린의 눈가가 조금 뜨거워졌다.

이준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대신 하나만 약속해 줘요."

"뭔데요?"

"혼자서 결론 내리고 멀어지지 않기."

하린은 숨을 멈췄다.

이준은 조용히 말했다.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 줘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하린 씨가 혼자 상처받는 건 싫어요."

하린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예전에는 그랬다.

상대방의 행동이 달라지면 이유를 묻기보다 혼자 고민했다.

연락이 줄어들면 자신이 싫어진 건 아닐까 생각했고, 말투가 차가워지면 자신이 잘못한 게 있는지 돌아봤다.

그러다가 결국 상대방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의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하린은 그 이야기를 이준에게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지금은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왜 사랑 앞에서 겁을 내는지.

왜 이준의 다정함이 좋으면서도 가끔은 두려운지.

하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준 씨."

"네."

"저 사실…… 예전에 사랑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이준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다만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그랬어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참을 망설이던 하린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잘해 줬어요. 연락도 자주 하고, 예쁘다고 말해 주고, 제가 좋아하는 것도 기억해 줬어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서 저도 그 사람을 많이 좋아했어요.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다 믿었고,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한다는 것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이준은 아무 말 없이 들었다.

하린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졌어요. 연락이 줄어들고, 약속도 자주 미루고, 제가 서운하다고 말하면 예민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저는 제가 잘못한 줄 알았어요. 제가 너무 좋아해서 부담을 주는 건가 싶었고,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린은 손끝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결국…… 다른 여자가 있었어요."

이준의 표정이 굳었다.

하린은 억지로 웃으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여자랑 연락하고 있었더라고요. 저한테는 바쁘다고 하면서 그 여자랑은 만나고 있었고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하린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제가 바보 같았어요."

하린은 고개를 숙였다.

"그 사람이 처음에 해 줬던 말들을 믿었던 것도, 다시 돌아올 거라고 기다렸던 것도, 제가 더 잘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그냥 제가 너무 바보 같았어요."

"하린 씨."

이준이 조용히 불렀다.

하린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무서워요."

마침내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이준 씨가 저한테 잘해 주는 게 너무 좋은데, 한편으로는 언젠가 달라질까 봐 무서워요. 지금은 저를 좋아한다고 말해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잖아요."

하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저는 다시는 그렇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급히 눈물을 닦았다.

"미안해요. 갑자기 이런 이야기 해서."

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하지 마요."

"……."

"저한테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요."

하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준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타까운 표정이었지만, 하린을 불쌍하게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저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린 씨."

"네."

"그 사람이 하린 씨를 속였다고 해서, 하린 씨가 바보였던 건 아니에요."

하린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

"좋아하는 사람을 믿었던 거잖아요. 그건 잘못이 아니에요."

이준은 그녀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믿음을 이용한 사람이 잘못한 거예요. 하린 씨가 진심이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오랫동안 자신에게 해 주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 사람을 믿은 자신이 바보였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빨리 눈치챘다면.

조금 덜 좋아했다면.

그렇게까지 상처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준은 다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마음까지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하린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았다.

"왜……."

"네?"

"왜 이렇게 좋은 말만 해 줘요?"

이준은 작게 웃었다.

"하린 씨가 들었으면 하는 말이니까요."

하린은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진짜……."

이준은 휴대폰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하린은 손수건을 받아 들고 눈가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한참 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준 씨."

"네."

"저한테 실망하지 않았어요?"

이준은 의아한 듯 눈썹을 살짝 올렸다.

"왜 실망해요?"

"제가 이런 사람이라서요."

하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끔 괜히 불안해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이준 씨가 잘해 줘도 바로 믿지 못하고."

이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실망하지 않았어요."

"정말요?"

"네."

이준은 조금 더 가까이 앉았다.

"하린 씨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무서울 수 있죠. 누군가를 다시 좋아하는 것도, 그 사람을 믿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고요."

그는 하린의 눈을 바라봤다.

"그렇다고 하린 씨가 잘못된 사람인 건 아니잖아요."

하린은 눈물을 참으며 그를 바라봤다.

"저는 하린 씨가 왜 불안해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겠죠. 하지만 그걸 하나씩 알아 가고 싶어요."

이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저를 완전히 믿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

"하린 씨가 저를 믿을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가요. 제가 제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 줄게요."

하린은 그의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말로만 믿으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고 했다.

하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이준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하나 더요."

"네?"

"앞으로 하린 씨가 불안해질 때는 저한테 말해 줘요. 혼자 견디려고 하지 말고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해 볼게요."

"그거면 충분해요."

이준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날 하린은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제대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상처 때문에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하린은 눈물을 닦고 나서 멋쩍게 웃었다.

"오늘 너무 울었네요."

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화장도 지워졌을 것 같은데."

"그래도 예쁜데요."

하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와요?"

"그럼요."

이준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하린 씨가 웃으면 저도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하린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조금 전까지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감정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이준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주었다.

하린은 그 사실이 고마웠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이준에게 무언가를 해 주고 싶었다.

늘 자신을 웃게 해 주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

자신이 두려워하는 마음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하린은 한참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준 씨."

"네."

"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금 말해도 될까.

아직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을 듣지 않았는데.

하지만 자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