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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에게 내린 어명

by Heo Gyun · 2026-10-03

이 무렵 길동의 수단은 귀신이 드나드는 듯 종잡을 수 없었다. 팔도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으나 그 자취를 알아내는 자가 없었다.

수령들의 부정한 장부를 들추어내고는 어사처럼 출두해, 먼저 베고 나중에 아뢰었다. 고을마다 조정에 바치려던 뇌물도 낱낱이 빼앗아 갔다.

그 바람에 서울의 벼슬아치들은 곤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때로는 높은 수레인 초헌을 타고 서울 큰길을 오가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위아래 할 것 없이 백성들이 서로를 의심했고, 괴이한 일이 잇따르니 온 나라가 술렁였다.

임금이 크게 근심하던 차에 우승상이 아뢰었다.

“신이 듣자오니 도적 홍길동은 전 승상 홍모의 서자라 하옵니다. 이제 홍모를 가두시고, 그 형인 이조판서 홍길현을 경상감사로 내려보내십시오.”

“날을 정해 주며 서제 길동을 잡아 바치라 하시면, 제아무리 불충무도한 놈이라도 아비와 형의 낯을 보아 스스로 잡혀 올 것이옵니다.”

임금은 즉시 홍 승상을 의금부에 가두라 명하고, 길현을 대궐로 불러들였다.

한편 홍 승상은 길동이 집을 떠난 뒤로 소식이 끊겨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늘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길동이 나라의 도적이 되어 이토록 소란을 일으킨 것이다.

놀란 마음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미리 조정에 아뢰기도 어렵고, 모르는 체 앉아 있기도 어려웠다.

그 걱정이 병이 되어, 승상은 끝내 자리에 누운 채 일어나지 못했다.

맏아들 길현은 이조판서로 있었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하자 휴가를 청해 집으로 돌아왔다.

띠도 풀지 않은 채 병상을 지킨 지 두 달이 넘었다. 조정에 나가지 않았으니 돌아가는 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관이 문득 들이닥쳐 어명을 전했다. 승상을 옥에 가두고 판서를 대궐로 부르라는 것이었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판서가 대궐 아래 나아가 죄를 기다리자 임금이 말했다.

“경의 서제 길동이 나라의 도적이 되어 분수를 넘음이 이와 같다. 그 죄를 따지자면 마땅히 경까지 연좌해야 하나, 짐이 잠시 덮어 두겠다.”

“이제 곧 경상도로 내려가 길동을 잡아, 홍씨 일문이 화를 면하게 하라.”

길현이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천한 동생이 일찍이 사람을 죽이고 달아나 종적을 알지 못하였나이다. 그런데 이토록 중한 죄를 지었으니, 신 또한 목이 베여 마땅하옵니다.”

“다만 신의 아비는 나이 여든에, 천한 자식이 나라의 도적이 된 일로 병이 들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사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바다 같은 은덕을 내리시어 아비를 집으로 보내 병을 다스리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신이 내려가 서제 길동을 잡아 바치겠나이다.”

임금은 그 효성에 감동했다. 홍 승상은 집으로 돌려보내 병을 돌보게 하고, 길현을 경상감사로 삼아 기한을 정해 주었다.

감사는 성은에 거듭 절하여 사례하고 경상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각 고을에 공문을 돌려, 방방곡곡에 길동을 찾는 방을 붙였다.

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무릇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면 오륜이 있으니, 그중에서도 임금과 아비가 으뜸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오륜을 저버리면 사람이 아니라 하였다.’

‘너는 지혜와 식견이 남보다 뛰어나면서도 어찌 이것을 모르느냐. 애달프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입어 자자손손 녹을 받아 왔다. 그 망극한 은혜에 충성으로 보답하려 하였는데, 우리 대에 이르러 너로 말미암아 역적의 이름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게 되었다.’

‘어찌 한심하다는 말로 그치겠느냐. 어지러운 신하와 못된 자식이 어느 시대엔들 없었으랴마는, 우리 집안에서 나올 줄은 참으로 몰랐다.’

‘전하께서 네 죄에 진노하시어 마땅히 극형을 내리셨어야 하나, 거듭 은혜를 베푸시어 죄를 더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너를 잡으라 명하셨다. 그 망극함에 도리어 황공할 뿐이다.’

‘여든 노친께서는 백발의 늘그막에 너 때문에 밤낮으로 애태우셨다. 그러던 중 네가 이런 변고를 일으켜 나라에 죄를 얻으니, 놀라신 마음이 병이 되어 자리에 누우신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신다.’

‘아버님께서 만일 너로 인해 세상을 떠나시면, 너는 살아서 역적의 이름을 쓰고 죽어서도 천추만대에 불충불효의 죄를 남길 것이다. 남은 우리 일문인들 어찌 원통하지 않겠느냐.’

‘너는 그 넉넉한 소견으로 어찌 이것을 헤아리지 못하느냐. 이 죄명을 지고 세상에 발붙일 수 있겠느냐.’

‘사람은 덮어 준다 해도, 밝고 밝은 하늘의 벌에 어찌 사정이 있겠느냐. 이제 하늘의 뜻을 따라 조정의 처분을 기다릴 뿐, 달리 무슨 길이 있겠느냐.’

‘나는 네가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