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잔치
by Heo Gyun · 2026-10-03
마침내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길동은 산채로 돌아오자마자 도적들을 불러 모았다.
수백 명의 녹림 군사가 긴장한 얼굴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길동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해인사를 칠 것이다.”
여기저기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길동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 밤이다.”
그는 손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너희는 절 근처에 숨어 있다가, 내 신호가 떨어지면 한꺼번에 들이닥쳐라.”
도적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절 안의 재물은 모조리 쓸어 담아라.”
길동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내 명령 없이 움직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수백 명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길동은 마지막으로 다짐을 두었다.
“절대 군령을 어기지 마라.”
그날 밤, 길동은 체구가 장대한 부하 십여 명만 거느리고 다시 해인사로 향했다. 절 입구에는 이미 승려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공자님께서 오십니다!”
“어서 모셔라!”
승려들은 길동을 극진히 맞이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자기들이 지금 제 손으로 재앙을 맞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길동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절 안으로 들어서서, 곧바로 승려들에게 명했다.
“절 안의 승려들은 늙은이든 어린아이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절 뒤 시냇가로 모여라.”
승려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길동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너희와 함께 종일 즐기며 놀 생각이다.”
그 말에 승려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귀한 양반 자제가 큰 시주에 술자리까지 베푼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게다가 행여 명을 거역했다가 노여움을 사면 큰일이었다. 결국 수천 명의 승려가 하나둘 절 뒤 시냇가로 모여들었다.
그사이 거대한 해인사 안은 텅 비어 버렸다.
길동은 상좌에 앉아 승려들을 차례로 자리에 앉혔다. 술상이 이어지고 음식이 넘쳐 났다.
승려들은 정신없이 먹고 마셨고, 웃음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길동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한순간도 풀리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식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 길동은 갑자기 소매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모르게 모래 한 움큼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우드득.
돌 씹히는 듯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승려들이 일제히 놀라 길동을 바라보았다.
길동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이놈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히 음식에 돌을 섞어 내게 먹이다니!”
승려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길동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 중놈들을 모조리 결박하라!”
그 목소리가 천둥처럼 터졌다. 기다렸다는 듯 장대한 부하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수천 명의 승려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