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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의 밤

by Heo Gyun · 2026-10-03

이때 길동의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이 남달랐다.

경서와 제자백가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대감의 분부로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다. 그는 홀로 별당에 머물며 손자와 오자의 병서를 익혔다.

귀신도 헤아리지 못할 술법과 천지조화를 품어 바람과 구름을 마음대로 부리고, 육정육갑의 신장을 부리는 신출귀몰한 술법까지 통달했다. 이제 길동에게 세상에 두려운 것은 없었다.

그날 밤, 삼경이 지난 뒤였다. 길동이 막 책상을 물리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문득 창밖에서 까마귀가 세 번 울더니 서쪽으로 날아갔다.

길동은 크게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까마귀가 “객자와, 객자와” 하고 세 번 울며 서쪽으로 날아가니, 분명 자객이 오는 것이다. 누가 나를 해치려 하는가. 아무래도 몸을 지킬 계책을 세워야겠다.’

길동은 방 안에 팔진을 치고 괘의 방위를 서로 바꾸었다.

남방의 이허중은 북방의 감중련으로, 동방의 진하련은 서방의 태상절로 옮겼다. 건방의 건삼련은 손방의 손하절로, 곤방의 곤삼절은 간방의 간상련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풍운을 불어넣어 조화가 끝없이 일어나게 한 뒤, 때를 기다렸다.

한편 특재는 비수를 들고 길동이 머무는 별당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몸을 숨긴 채 길동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난데없이 까마귀가 창밖에 와서 울고 날아가자, 특재는 크게 의심했다.

‘이 짐승이 무엇을 안다고 천기를 누설하는가? 길동은 실로 범상한 사람이 아니로다. 훗날 반드시 크게 쓰일 인물이다.’

특재는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은자에 대한 욕심이 목숨 귀한 줄을 잊게 했다.

잠시 뒤, 그는 몸을 날려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길동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한바탕 광풍이 일고, 우레와 벼락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동서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좌우를 살피니 천 봉우리 만 골짜기가 겹겹이 둘러싸고, 큰 바다가 넘실거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특재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분명 방 안에 들어왔는데, 이 산은 무슨 산이며 이 물은 또 무슨 물인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옥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살펴보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백학을 타고 공중을 날며 외쳤다.

“너는 어떤 자이기에 이 깊은 밤에 비수를 들고 누구를 해치려 하느냐?”

특재가 대답했다.

“네가 분명 길동이로구나. 나는 네 부형의 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다.”

특재는 비수를 들어 던졌다. 그러자 갑자기 길동은 사라지고, 음산한 바람이 크게 일며 벼락이 진동했다. 하늘에는 살기만이 가득했다.

특재는 크게 겁을 먹고 칼을 찾으며 말했다.

“내가 남의 재물을 탐하다가 사지에 빠졌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가 길게 탄식하고 있을 때, 문득 길동이 비수를 들고 공중에서 외쳤다.

“필부는 들어라. 네가 재물을 탐하여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 했으니, 이제 너를 살려 두면 훗날 죄 없는 사람이 숱하게 다칠 것이다. 어찌 살려 보내겠느냐?”

특재가 애원했다.

“이는 실로 소인의 죄가 아니옵니다. 공자 댁 초낭자가 시킨 일이오니, 바라옵건대 가련한 목숨을 살려 주시어 훗날 잘못을 고치게 해 주옵소서.”

길동은 더욱 분노를 참지 못했다.

“네 악한 기운이 하늘에 사무쳤으니, 오늘 하늘이 내 손을 빌려 악한 무리를 없애려는 것이다.”

말이 끝나자 길동은 특재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신장을 호령하여 동대문 밖의 관상녀를 잡아 오게 했다.

길동은 그녀의 죄를 물었다.

“너는 요망한 년으로 재상가에 드나들며 사람의 목숨을 해치려 했다. 네 죄를 아느냐?”

관상녀는 제 집에서 졸다가 풍운에 휩싸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온 터였다. 그러다 길동의 꾸짖는 소리를 듣고는 애원했다.

“이는 다 소녀의 죄가 아니라 초낭자가 시킨 일이옵니다. 바라건대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길동이 말했다.

“초낭자는 내 의모이니 따지지 않겠다. 그러나 너 같은 악종을 어찌 살려 두겠느냐. 훗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으리라.”

길동은 칼을 들어 관상녀의 목을 베고, 특재의 시체와 함께 던져 두었다.

분을 걷잡지 못한 길동은 곧장 대감 앞에 나아가 이 변괴를 아뢰고 초낭을 베려 했다. 그러나 문득 생각을 고쳤다.

‘차라리 남이 나를 저버릴지언정, 내가 먼저 아버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어찌 한때의 분노로 인륜을 끊겠는가.’

길동은 대감의 침소로 나아가 뜰 아래 엎드렸다.

그때 대감은 잠에서 깨어, 문밖에 사람의 기척이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창을 열고 보니 길동이 뜰 아래 엎드려 있었다. 대감이 물었다.

“밤이 이미 깊었거늘, 너는 어찌 자지 않고 이러고 있느냐?”

길동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집안에 흉한 변이 있어, 목숨을 보전하고자 집을 떠나려 하옵니다. 대감께 하직 인사를 올리러 왔나이다.”

대감은 놀라 속으로 ‘필시 무슨 사연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날이 새면 알게 될 터이니, 어서 돌아가 자고 분부를 기다려라.”

길동이 엎드려 아뢰었다.

“소인은 이제 집을 떠나옵니다. 대감께서는 몸을 보중하시고 만복을 누리옵소서. 다시 뵈올 기약은 아득하옵니다.”

대감은 헤아려 보았다. 길동은 범상한 아이가 아니니,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이었다. 대감이 물었다.

“네가 이제 집을 떠나면 어디로 가겠느냐?”

길동이 엎드려 아뢰었다.

“목숨을 보전하려 천지를 집 삼아 떠나오니, 어찌 정처가 있겠사옵니까. 다만 평생의 원한이 가슴에 맺혀 풀 날이 없으니, 그것이 더욱 서럽사옵니다.”

대감은 달래듯 말했다.

“오늘부터 네 소원을 풀어 주겠다. 네가 나가 사방을 떠돌지라도 부디 죄를 지어 부형에게 화를 끼치지 말고, 속히 돌아와 내 마음을 위로하라. 여러 말 하지 않겠다. 부디 몸조심하여라.”

길동은 일어나 다시 절하며 아뢰었다.

“부친께서 오늘 여러 해의 소원을 풀어 주시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황공하오나 바라건대 아버님께서는 만수무강하옵소서.”

길동은 하직을 고하고 물러 나와, 곧바로 어머니의 침실로 들어갔다.

“소자가 이제 목숨을 보전하고자 집을 떠나옵니다. 모친께서는 불효자를 생각하지 마시고 지내십시오. 소자가 돌아와 뵈올 날이 있을 것이니, 달리 염려하지 마시고 부디 천금 같은 몸을 보중하옵소서.”

길동은 초낭이 꾸민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그 변괴를 자세히 들은 뒤, 길동을 말릴 수 없음을 알고 탄식했다.

“네가 이제 나가 잠시 화를 피하되, 어미 얼굴을 보아서라도 속히 돌아오너라. 이 어미가 애태우다 병이 들게 하지 말아라.”

어머니는 몹시 서러워했다. 길동은 여러 번 위로하며 눈물을 거두고, 하직한 뒤 문밖으로 나섰다.

넓은 천지에 한 몸 의탁할 곳이 없었다. 길동은 탄식하며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한편 부인은 자객이 길동에게 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날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없이 탄식했다.

장자 길현이 위로했다.

“소자도 실로 마지못해 한 일이옵니다. 저 아이가 죽은 뒤라도 어찌 한이 없겠습니까? 그 어미를 더욱 후하게 대해 평생 편히 지내게 하고, 시신을 후하게 장사 지내 마음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하옵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이튿날 새벽, 초낭은 별당에서 날이 밝도록 아무 소식이 없자 이상히 여겼다.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니, 길동은 간 곳이 없고 목 없는 시체 둘이 방 안에 쓰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특재와 관상녀였다.

초낭은 크게 놀라 급히 내당으로 들어가 부인에게 이 일을 고했다. 부인은 크게 놀라 장자 길현을 불러 길동을 찾게 했지만, 끝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부인은 대감을 청해 모든 일을 아뢰고 죄를 청했다. 대감은 크게 꾸짖었다.

“집안에서 이런 변고를 일으켰으니 화가 장차 끝이 없을 것이다. 지난밤 길동이 집을 떠난다며 하직을 고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리고 초낭을 크게 꾸짖었다.

“네가 앞서 괴이한 말을 꺼내기에 꾸짖어 물리치고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하였거늘, 끝내 마음을 고치지 않고 집안에 이런 변을 일으켰다. 죄를 따지자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어찌 내 눈앞에 두고 보겠느냐.”

대감은 노복을 불러 두 시체를 남몰래 치우게 했다. 그러고도 마음 둘 곳을 몰라 앉아도 편치 않았다.

이때 길동은 집을 떠나 사방을 떠돌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한 곳에 이르렀다.

겹겹이 쌓인 산은 하늘에 닿을 듯했고, 초목이 무성하여 동서를 분간할 수 없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었는데 인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길동은 이리저리 서성이며 망설였다.

그때 한쪽을 바라보니, 이상한 표주박 세 개가 냇물을 따라 떠내려오고 있었다. 길동은 인가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냇물을 따라 몇 리를 거슬러 들어갔다.

그러자 산천이 탁 트인 곳에 수백 채의 집이 늘어서 있었다. 길동은 그 마을로 들어갔다.

한쪽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술상과 음식상이 어지럽게 차려진 가운데, 사람들의 의논 소리가 분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