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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령동의 사흘

by Kim Si-Sup · 2026-10-03

날이 밝자 여인은 양생을 이끌고 깊은 숲길로 들어섰다. 이슬이 흠뻑 내려 길은 젖어 있었고, 숲은 앞이 아득할 만큼 고요하고 깊었다.

양생이 물었다.

“어찌 사는 곳이 이렇소?”

여인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혼자 사는 여자의 거처란 본래 이렇답니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시경』의 한 구절을 읊었다.

“축축이 젖은 길의 이슬,

이른 아침 늦은 밤에 어찌 다니지 않느냐 묻는가.

길에 이슬이 많은 까닭이라네.”

양생도 웃으며 곧바로 『시경』의 시 한 수로 받았다.

“여우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저 기수의 다릿목을 서성이네.

노나라 가는 길은 평탄한데

제나라 아가씨는 한가로이 노니는구나.”

둘은 시를 주고받으며 한바탕 웃고는 함께 개령동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가자 다북쑥이 들판을 뒤덮고 가시나무가 하늘 높이 솟은 사이로 작은 집 한 채가 나타났다. 크지는 않았지만 무척 아름답고 단정한 집이었다.

양생은 여인이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갔다.

방 안에는 이부자리와 휘장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차려 나온 음식도 어젯밤 만복사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양생은 그곳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그 즐거움은 여느 세상살이와 다를 바 없었다.

시녀는 아름다웠지만 약삭빠르지 않았고, 그릇은 깨끗했지만 무늬가 없었다. 모든 것이 사람 세상의 것 같지 않았다.

양생도 문득문득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인의 은근한 정과 다정한 마음에 끌려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 뒤 여인이 조용히 말했다.

“이곳의 사흘은 인간 세상의 삼 년과 같습니다. 이제 낭군께서는 집으로 돌아가 생업을 돌보셔야 합니다.”

마침내 이별의 술자리가 차려졌다.

양생은 서글픈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이별이 이리도 빠르오?”

여인이 담담히 대답했다.

“다시 만나 평생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누추한 곳에 오신 것도 분명 오래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웃 친척들을 만나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양생이 좋다고 하자, 여인은 곧 시녀를 보내 사방의 이웃에게 알렸다.

모여든 이는 정씨, 오씨, 김씨, 류씨 네 사람이었다. 모두 문벌 높은 귀족 집안의 딸로, 여인과 한 마을에 사는 친척 처녀들이었다.

성품은 온화하고 기품은 남달랐으며, 총명하고 글을 많이 알아 시를 잘 지었다. 그들은 저마다 칠언절구 네 수씩을 지어 양생을 전송했다.

먼저 정씨가 나섰다. 맵시와 풍류를 고루 갖춘 여인으로, 구름처럼 쪽진 머리가 귀밑을 살짝 덮고 있었다.

정씨는 길게 한숨을 쉰 뒤 시를 읊었다.

봄날 꽃피는 밤, 달빛마저 고운데

끝없는 내 시름에 나이조차 잊었네.

한스러워라, 이 몸이 비익조라면

푸른 하늘에서 쌍쌍이 춤추며 노닐 텐데.

칠등에 불빛 없으니 밤이 얼마나 깊었나

북두는 비껴 있고 달도 반쯤 기울었네.

서글퍼라, 무덤 속을 누가 찾아오랴

푸른 적삼은 구겨지고 쪽진 머리도 흐트러졌네.

매화 지니 정다운 약속도 속절없이 지나가고

봄바람 스쳐 가니 모든 일이 덧없어라.

베갯머리 눈물 자국 몇 군데나 젖었던가

무심한 산비에 배꽃만 뜰 가득 떨어졌네.

꽃다운 청춘을 하염없이 보내며

적막한 빈 산에서 잠 못 든 밤 몇 번이던가.

남교 지나는 나그네가 님인 줄 몰랐으니

어느 해에야 배항처럼 운교부인을 만나려나.

다음은 오씨였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은 가냘픈 여인으로, 마음속 정을 감추지 못한 채 뒤이어 시를 읊었다.

만복사에 향 올리고 돌아오던 그날,

가만히 던진 저포, 그 소원 누가 맺어 주었나.

꽃 피는 봄날 가을 달밤의 끝없는 원한을

님이 주신 한 잔 술로 잠시나마 녹여 보세.

복사꽃 붉은 뺨에 새벽이슬 맺혔건만

깊은 골짜기라 봄이 와도 나비조차 오지 않네.

기뻐라, 이웃집에서 백년가약 맺었다 하니

새 곡조 다시 부르며 금 술잔이 오가는구나.

해마다 오는 제비는 봄바람에 춤추는데

애끊는 내 마음엔 모든 일이 헛되어라.

부러워라, 저 연꽃은 꼭지마저 나란하여

밤 깊으면 한 연못에서 함께 멱을 감는구나.

푸른 산속에 다락 하나 높이 솟아 있고

연리지에 핀 꽃은 해마다 붉건만

한스러워라, 우리 인생은 저 나무만도 못하여

박명한 이 청춘에 눈물만 고이는구나.

이어서 김씨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얼굴빛을 가다듬고 단정한 자세로 붓을 잡았다.

그러고는 앞서 읊은 시들이 지나치게 음탕하다며 조용히 나무랐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말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눈앞의 경치만 읊으면 충분하지요. 어찌 속마음을 드러내 우리의 절조를 잃고, 저 손님으로 하여금 우리 마음을 인간 세상에 전하게 하겠습니까?”

말을 마친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