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3
von 한용운
대철도 얼굴이 붉어지며 눈을 부라렸다.
“아니, 그만두세요. 마음이 불안해서 얼굴이 달아오르면 병에 해롭다잖아요. 그만두세요.”
순영은 마루로 나가 대철을 말리며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저한테 하세요. 왜 다른 어른께 말씀하세요? 그 어른은 집세와 아무 관계가 없는 분이에요. 병환이 있어 지금 치료 중이신데, 화를 내시면 병이 더해지기 쉬워요. 그 어른께는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그럼 어서 돈이나 내오.”
그 사람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잠시 무슨 생각을 하더니, 마치 인심이라도 쓰는 듯 말했다.
“지금은 없어요. 빨리 변통해서 드릴 테니 그렇게 아시고 가세요.”
순영은 대철의 마음이 불안해질까 염려하여 말소리를 부드럽게 했다.
“안 돼요. 지금 내시오. 가서 변통해 가지고 오시오.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며칠이 걸리든 받아 가지고야 가겠소.”
그 사람은 걱정스러운 소리를 피우며 좀처럼 그냥 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사정하는 순영을 어쩌지 못하겠다는 듯,
“그럼 언제쯤 낼 테요? 꼭 약속을 하시오.”
하고 얼굴빛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한 달 후에는 그동안 밀린 것을 다 드릴 테니 그렇게 아세요.”
순영이 말하자, 그 사람은 곧바로 얼굴빛이 다시 사나워졌다.
“한 달? 한 달이 다 뭐요. 안 돼요. 남의 집세를 아주 떼어먹자는 작정이로구먼.”
“그럼 스무 날만 참아 주세요.”
“안 돼요. 스무 날이 다 뭐요?”
“그럼 어떻게 해요. 지금 없는 걸요.”
“한 달 후에는 된다고 하던 것이 스무 날 후에는 된다는 걸 보면, 그 안에도 될 수 있겠지.”
“그럼 일주일 안에는 무슨 짓을 하든지 마련해서 드릴 테니 그렇게 아세요. 없는 사람 사정을 그렇게도 몰라주신단 말이에요, 원.”
“일주일이요?”
그 사람은 한참 있다가 물었다.
“네.”
순영은 조금 마음을 놓은 듯 대답했다.
“그때는 꼭 해 드리지요.”
“일주일이면 며칠인가? 오늘이 열이레니까 하루, 이틀…….”
그 사람은 손가락을 꼽더니 말했다.
“스무나흗날이로구먼.”
그러고 잠시 후 다시 다졌다.
“그러면 스무나흗날에는 꼭 내시겠소?”
“네, 그날은 내지요.”
“양력으로 스무나흗이지요. 또 그때 가서 음력이라고 떼쓰지 말고.”
“양력이든 음력이든, 오늘부터 일주일이면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럼 그날 내가 또 올 테니 그렇게 아시오.”
“누가 오시든 돈만 드리면 되는 것 아니에요?”
“그야 그렇지요. 그런데 그동안 밀린 것을 다 낸다는 말이지요?”
“그렇지요.”
“이달까지 하면 넉 달 치요.”
“네.”
순영은 너무도 귀찮아 그 사람 말대로 대답했다.
“그러면 그날 봅시다. 그날도 못 내면 이 집은 내놔야 돼요.”
“네.”
“대답했소?”
“네.”
“그럼 가오.”
그 사람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순영은 마치 마귀를 보내는 것처럼 끔찍스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했다.
“그래, 어떠세요? 그동안 검은 약을 드시니까 원기가 회복되세요?”
순영은 안방으로 들어가며 대철의 기색을 살폈다.
“암, 낫고말고요. 훨씬 낫지요.”
대철은 기운 있게 대답했다.
“그러면 이제 차차 병을 고쳐 보시지요.”
“그런데 아까 웬 놈이 그런 놈이 있소?”
대철은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소리를 했다.
“집세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글쎄, 그런 줄은 알겠는데 아무리 집세를 받으러 왔다고 해도 그렇게 무리한 놈이 어디 있단 말이요?”
대철은 스스로 흥분했다.
“집세를 석 달씩이나 못 냈으니 좋은 소리를 하겠어요? 큰일 났어요. 그동안 약값 쓰느라고 집세를 낼 수가 있어야지요. 말은 일주일 후에 낸다고 했지만, 무슨 도리가 있나요. 집을 내놓는 수밖에 없는데 큰일 아니에요?”
순영은 근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약값 낼 돈도 없어요. 그동안은 사 년 동안 바느질 품을 팔아서 푼푼이 모아둔 것으로 여기까지 버텼지만, 그것이 떨어지고 보니 어쩔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오늘부터라도 검은 약이라는 것은 그만두시고, 주사도 횟수를 줄여서 며칠 안에 고쳐야 해요. 큰일 났어요.”
“그러면 이달부터는 검은 약을 먹을 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검은 약뿐 아니라 주사 맞기도 어렵지요. 당장 길가로 나앉게 되고, 끓여 먹을 수도 없게 생겼는데 말할 게 있어요? 있으면야 아끼느라고 그러겠어요?”
“형편이 그렇기는 하겠지요. 그렇지만 당장 끊을 수가 있겠소?”
“그러니까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차차 횟수를 줄여서 끊자고요. 지금 와서는 어쩔 수 없으니 어떻게 해요?”
순영은 약간 화를 냈다.
“그러면 오늘부터라도 끊어 보지요.”
대철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러면 오늘은 약을 드시고 오셨으니 저녁까지 참으세요. 그리고 밤에 주사나 한 번 맞으시고요.”
“그럼 그렇게 해 보지요. 하지만 첫날부터 그렇게 될까?”
“그럼 주사약은 저 주세요.”
“왜요?”
“왜라니요? 선생님이 가지고 계시면 되겠어요? 제가 가지고 있어야 제때 드리지요.”
“그도 그렇소. 그럼 가지고 계시오.”
대철은 생명수처럼 지니고 있던 주사약을 어쩔 수 없이 순영에게 주었다.
“여보, 여보.”
대철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순영을 불렀다.
“네?”
순영은 쌀을 씻는 중이라 곧 들어가지는 못하고 대답만 했다.
“이리 좀 들어오세요.”
“왜 그러세요?”
“왜든지 잠깐만 들어오세요.”
“쌀을 씻고 있어요. 씻어 놓고 들어갈게요.”
“아니오. 잠깐만 들어와요.”
대철의 목소리는 급했다.
“네.”
순영은 씻던 쌀을 그대로 놓고, 손을 툭툭 털며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병증이라도 난 것 아닌가 염려되어 바쁜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왜 그러세요?”
하고 대철의 기색을 살폈다.
“에구, 죽겠다.”
대철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콧물을 흘리며, 죽는 시늉을 하듯 앉아 있었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지,
“에구.”
하는 소리만 지르며 늘어지는 것 같았다.
“왜 그러세요?”
순영은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은 채, 대철을 들여다보았다.
“에구, 이거 죽겠소.”
“글쎄 왜 그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