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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취익

지은이 외인 · 2026-08-21

동쪽으로 3일이면 봉우리가 나온다고 했다.

3일째 되는 날 기훈은 봉우리를 못 찾았다.

대신 다른 것을 찾았다.

길이었다.

정확히는 길이 아니었다.

숲 한가운데에 폭이 십 미터쯤 되는 띠가 나 있었다. 풀이 눕고 어린 나무가 부러지고 흙이 파여 있었다. 뭔가가 지나간 자리였다.

많이 지나갔다.

기훈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발자국이 있었다.

사람 것이 아니었다. 발이 넓고 발가락이 짧았다. 발톱 자국이 앞쪽에 찍혀 있었다.

'.......'

기훈은 아론의 기억을 뒤졌다.

오크.

'열에서 서른 마리 단위로 무리를 이룸. 그 이상은 기록 없음.'

기훈은 발자국을 다시 봤다.

서른 마리가 지나가면 이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기훈은 그 자리를 따라 걸었다.

처음에는 왜 따라 걷는지 자기도 몰랐다.

'저쪽이 동쪽이라서.'

기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동쪽이었다.

한 시간쯤 갔을 때 띠가 넓어졌다.

기훈은 멈춰서 그 지점을 봤다.

옆에서 다른 띠가 하나 들어와서 합쳐지고 있었다.

'.......'

또 한 시간을 갔다.

또 합쳐졌다.

'.......'

기훈은 세 번째 합류 지점에서 걸음을 멈췄다.

세 시간 만에 세 번이었다.

'뭐야, 이거.'

밤에 기훈은 나무 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바위 틈에 들어갔다.

나무 위는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냄새를 맡았다.

시큼했다. 젖은 짐승 냄새에 뭔가 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아론의 기억에는 그런 냄새가 없었다. 책에는 냄새가 안 적혀 있으니까.

기훈은 바위 틈에서 숨을 죽였다.

멀지 않았다.

새벽에 기훈은 그것들을 봤다.

여섯이었다.

키가 사람만 했다. 어깨가 넓고 팔이 길었다. 피부가 초록빛이 도는 회색이었고 아래턱에서 이빨 두 개가 위로 튀어나와 있었다.

가죽을 걸치고 있었다.

무기를 들고 있었다.

기훈은 그게 제일 이상했다.

늑대는 무기를 안 든다. 트롤도 안 든다. 거미도 안 든다.

'.......'

그중 하나가 도끼를 들고 있었다.

사람이 쓰는 도끼였다.

기훈은 바위 틈에 그대로 있었다.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안 지나갔다.

한 마리가 멈춰서 코를 킁킁거렸다.

'.......'

기훈은 자기가 3일째 안 씻었다는 것을 그때 기억했다.

오크: 취익.

소리가 났다.

기훈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짐승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오크: 취익. 냄새.

'.......'

말이었다.

기훈은 그 자리에서 굳었다.

말을 했다.

발음이 이상하고 억양이 뭉개졌지만 분명히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기훈이 알아들었다.

오크: 취익. 이쪽.

여섯 마리가 바위 쪽으로 왔다.

기훈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삼 초쯤 있었다.

하나, 도망친다. 여섯 마리가 쫓아온다. 오크가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둘, 싸운다. 여섯이다.

셋, 여기 계속 있는다. 찾아낼 것이다.

'.......'

기훈은 몽둥이를 잡았다.

'첫 번째 놈을 최대한 세게.'

그리고 바위 틈에서 튀어나왔다.

첫 번째는 잘 됐다.

몽둥이가 옆머리에 들어갔다. 오크가 옆으로 날아가서 나무에 부딪혔다.

두 번째는 안 됐다.

기훈이 몽둥이를 돌리는 순간 그놈이 팔로 막았다. 팔이 부러졌는데 막았다.

'.......막았다고?'

그리고 세 번째가 옆에서 들어왔다.

기훈은 몸을 낮췄다.

머리 위로 도끼가 지나갔다.

늑대와 달랐다.

늑대는 하나씩 왔다. 하나가 뛰면 나머지는 기다렸다.

오크는 동시에 왔다.

앞에서 둘이 붙잡고 옆에서 하나가 돌고 뒤에서 하나가 기다렸다. 기훈이 뒤로 물러서면 거기 이미 하나가 서 있었다.

'.......'

기훈은 그것을 알아채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생각을 하네.'

그 몇 초 동안 옆구리에 도끼가 들어왔다.

깊게 들어오지는 않았다. 흉갑이 막았다. 그런데 충격이 그대로 전해졌다.

우직.

기훈은 자기 갈비뼈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아론: 컥.

숨이 안 쉬어졌다.

기훈은 뒤로 물러서면서 옆에 있는 나무를 등졌다.

뒤가 막혔다.

그러면 앞만 보면 된다.

'.......'

숨이 짧게 들어왔다. 갈비뼈가 부러지면 숨을 못 쉰다. 그건 도장에서도 겪어봤다. 한 번 겪어보면 다음부터는 요령이 생긴다.

기훈은 짧게 여러 번 숨을 쉬었다.

오크들이 반원으로 벌어졌다.

오크: 취익.

가운데 놈이 뭐라고 했다.

오크: 인간. 한 마리.

'.......'

기훈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픈 와중에 조금 짜증이 났다.

'한 마리?'

기훈이 먼저 움직였다.

왼쪽 놈에게 갔다.

그놈이 도끼를 들었다. 기훈이 그 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도끼는 팔을 다 편 다음에야 힘이 실린다. 안으로 들어가면 그냥 몽둥이만도 못하다.

기훈이 팔꿈치를 그놈 턱에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몽둥이를 내려찍었다.

두 번째.

옆에서 하나가 붙었다. 기훈은 그놈 쪽으로 발을 뻗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리면서 몽둥이를 옆으로 후렸다.

허리에 맞았다.

오크가 접혔다.

세 번째.

숨이 짧아지고 있었다. 갈비뼈가 갈수록 아팠다.

기훈은 남은 셋을 봤다.

셋이 그를 봤다.

그리고 셋 중 하나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

기훈은 그것을 봤다.

짐승과 같은 부분이 있었다.

겁을 먹는다.

기훈이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두 마리가 도망쳤다.

한 마리가 안 도망쳤다. 그놈은 도끼를 두 손으로 잡고 소리를 질렀다.

오크: 취이익!

기훈은 그놈을 봤다.

그리고 잠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저건 지금 화가 난 것이다.

동료 셋이 바닥에 있어서 화가 난 것이다.

'.......'

기훈이 몽둥이를 들었다.

끝나고 나서 기훈은 나무에 등을 대고 미끄러져 앉았다.

숨을 쉬는 데 시간이 걸렸다.

옆구리를 만져봤다. 갈비뼈가 두 개쯤 나간 것 같았다. 손을 대면 아팠고 안 대도 아팠다.

'.......'

기훈은 한참 앉아 있었다.

그리고 넷을 봤다.

넷이 바닥에 있었다.

'.......'

기훈은 그것들을 오래 봤다.

늑대를 죽였을 때는 이런 기분이 아니었다. 트롤도 아니었다. 거미도 아니었다.

저것들은 말을 했다.

말을 하고, 서로 신호를 주고, 화를 냈다.

'.......'

기훈은 그 생각을 밀어냈다.

'저것들이 사람 죽였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기훈은 조금 놀랐다.

증거가 없었다. 이 여섯이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기훈은 그것도 밀어냈다.

한 시간쯤 뒤에 기훈은 일어섰다.

그리고 시체를 뒤졌다.

죽은 자는 물건이 필요 없다. 마을에서 그렇게 정리했었다.

가죽 자루가 셋 나왔다.

첫 번째 자루에는 말린 고기가 있었다. 무슨 고기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두 번째 자루에는 돌이 들어 있었다. 왜 돌을 들고 다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 번째 자루를 열었다.

안에 몇 가지가 들어 있었다.

놋쇠 단추 하나.

부러진 숟가락 하나.

머리끈이 하나 있었다. 파란색이었고 한쪽 끝이 뜯어져 있었다.

그리고 신발.

한 짝이었다.

기훈은 그것을 꺼냈다.

작았다.

여자 것이었다. 발등에 수가 놓여 있었는데 실이 헐어서 무늬가 반쯤 없어졌다. 뒤축이 닳아 있었다. 오래 신은 것이었다.

기훈은 그것을 손에 들고 있었다.

'.......'

한 짝이었다.

기훈은 나머지 한 짝을 찾아봤다.

세 개의 자루를 다 뒤졌다. 없었다.

'.......'

당연히 없었다.

기훈은 그것을 알면서 뒤졌다.

기훈은 그날 그 자리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신발을 무릎에 얹어놓고 있었다.

'.......'

한참 뒤에 기훈은 그것을 자기 자루에 넣었다.

왜 넣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후에 기훈은 다시 걸었다.

띠를 따라 걸었다.

한 시간을 가니 또 합류 지점이 나왔다.

기훈은 이번에는 쪼그려 앉아서 세어봤다.

발자국이 겹쳐 있어서 정확히 셀 수는 없었다. 그래도 대충은 나왔다.

띠의 폭이 이십 미터였다.

풀이 눕는 방식으로 봐서 한 줄에 대여섯이 붙어서 갔다.

그러면 폭 이십 미터에.

'.......'

기훈은 계산을 하다가 멈췄다.

아론의 머리가 답을 내놨는데 그 답이 마음에 안 들었다.

다시 세어봤다.

같은 답이 나왔다.

'300.'

기훈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300마리가 어디로 가는데.'

기훈은 띠가 향한 방향을 봤다.

동쪽이었다.

동쪽으로 곧게.

기훈은 자루에서 지도를 꺼냈다. 마을에서 챙긴 것이었다. 반쯤 찢어져 있었고 손으로 그린 것이었다.

산이 하나 있었다.

강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동쪽에 점이 하나 있었다.

점 옆에 글씨가 있었다.

쎄톤.

기훈은 지도를 접었다.

그리고 하늘을 봤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두 번째 해도 같이 기울고 있었다.

'.......'

기훈은 한참 그러고 있다가 자기 자루를 봤다.

신발 한 짝이 들어 있었다.

'.......'

기훈은 자루 끈을 묶었다.

'봉우리부터 찾자.'

기훈이 걸었다.

옆구리가 아팠다.

같은 시각, 서쪽으로 삼십 리 떨어진 곳에서 오크 둘이 달리고 있었다.

둘은 밤새 달렸다.

동이 틀 무렵 무리에 도착했다.

무리는 컸다. 아주 컸다.

둘 중 하나가 앞으로 나가서 뭐라고 말했다.

그 말은 대충 이런 뜻이었다.

인간이 하나 있다.

인간 하나가 여섯을 죽였다.

그리고 그 인간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