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루디
지은이 외인 · 2026-08-26
땅을 파는 데 이틀이 걸렸다.
넷이서 팠다.
삽은 창고에 있었다.
창고를 세던 노인들이 쓰던 것이었다.
기훈이 제일 많이 팠다.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구덩이는 성 밖 동쪽에 팠다.
산이 보이는 쪽이었다.
베드런이 그 자리를 골랐다.
아론: 왜 여기예요.
기훈이 물었다.
베드런: 여기 사람들은 평생 저 산을 봤다.
옮기는 데 하루가 더 걸렸다.
기훈은 그 하루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무게였다.
탄 것은 가볍다.
너무 가벼웠다.
다른 하나는 에라리온이었다.
에라리온은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했다.
그 애가 조용한 것을 보는 게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마나를 느낀 밤이었고 두 번째는 어제였다.
기훈은 그것도 세고 있었다.
다 묻고 나서 넷이 그 앞에 섰다.
베드런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못 했다.
세 번쯤 시도했다.
그리고 그만뒀다.
베드런: ......
베드런: 미안하다.
그게 다였다.
기훈이 무릎을 꿇었다.
흙에 손을 얹었다.
아론: 죄송해요.
베드런이 그를 봤다.
아론: 저 때문에.
베드런: 아론.
아론: 제가 여기 안 왔으면.
베드런: 아론.
베드런이 그 옆에 앉았다.
베드런: 이 사람들은 너를 받아들였다.
아론: ......
베드런: 그건 이 사람들이 정한 거야.
아론: ......
베드런: 그 결과를 네가 죄송해할 일이 아니다.
기훈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았는데 조금 나아졌다.
그게 이상했다.
그날 저녁에 넷이 성벽 밖에 앉았다.
성 안에서는 안 잤다.
아무도 그 얘기를 안 했는데 셋 다 밖으로 나왔다.
베드런: 왕궁으로 간다.
베드런이 말했다.
베드런: 17일이면 간다.
기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론: 형님.
베드런: 왜.
아론: 왕궁에 가서 뭐라고 하실 겁니까.
베드런이 잠깐 말을 못 했다.
베드런: 쎄톤이 당했다고 하지.
아론: 누구한테요.
베드런: ......용병한테.
아론: 누가 시킨 용병인데요.
베드런: ......
아론: 모르잖아요.
기훈이 말했다.
아론: 의뢰자를 모르는데 왕궁으로 가면요.
베드런: ......
아론: 거기 그 사람이 있으면 어떡해요.
베드런이 그를 봤다.
한참 봤다.
베드런: ......전서구.
아론: 예.
베드런: 전서구가 왕궁 근처에서 없어졌지.
아론: 예.
기훈은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었다.
베드런: 그럼 어디로 가나.
그레온이 물었다.
기훈이 대답했다.
아론: 루디요.
베드런: ......
아론: 거기 길드가 있잖아요.
그레온: 공자님.
그레온이 말했다.
그레온: 길드는 의뢰자를 안 알려줍니다.
아론: 안 알려주면 알아내면 되죠.
그레온: ......
아론: 안 되나요?
그레온이 뭐라고 하려다 말았다.
말하려던 것은 이거였다.
용병길드에서 의뢰자를 알아내는 것은 왕이라도 못 한다.
그런데 그레온은 그 말을 안 했다.
낮에 이 사람이 화이어볼을 맞고 소매를 털던 것을 봤기 때문이다.
베드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베드런: 루디로 간다.
아론: 예.
베드런: 멀다.
아론: 얼마나요.
베드런: 2주.
아론: ......
베드런: 왕궁하고 반대쪽으로 크게 돈다.
기훈은 그 방향을 잠깐 생각했다.
왕궁 반대쪽이었다.
집 반대쪽이었다.
'.......'
기훈은 그것도 잘됐다고 생각했다.
잘됐다고 생각하는 자기가 좀 그랬다.
다음 날 새벽에 넷이 떠났다.
말이 셋이었다.
넷째 말은 낮에 죽었다.
기훈이 걷겠다고 했다.
아론: 타면 느려서요.
베드런: ......
아론: 제가 더 빨라요.
베드런이 그를 한참 봤다.
이번에는 타라고 안 했다.
성문 자리를 지나면서 기훈이 한 번 뒤를 봤다.
성벽이 팔 미터였다.
성문은 없었다.
안에 아무도 없었다.
기훈은 그것을 보고 다시 앞을 봤다.
서쪽이었다.
한 시간쯤 갔을 때 하늘이 어두워졌다.
넷이 동시에 위를 봤다.
멍청이가 낮게 지나갔다.
지나가서 앞쪽에 앉으려고 했다.
앉는 데 실패했다.
나무를 두 그루 부러뜨렸다.
에라리온: ......
에라리온이 말을 세웠다.
에라리온: 쟤 왜 따라와요?
아론: 몰라.
에라리온: 형이 밥 줬잖아요.
아론: 이제 안 줘.
기훈이 그쪽으로 갔다.
멍청이가 나뭇가지 사이에서 목을 뺐다.
아론: 야.
멍청이가 그를 봤다.
아론: 밥 없어.
멍청이가 목을 옆으로 기울였다.
아론: 진짜 없다고.
기훈이 자루를 열어서 보여줬다.
안에 신발 한 짝이 있었다.
아론: 봤지.
멍청이가 그것을 봤다.
그리고 안 갔다.
기훈이 다시 걸었다.
멍청이가 날았다.
앞으로 가서 또 앉으려고 했다.
또 실패했다.
베드런: 저거 계속 저럴 건가.
베드런이 물었다.
베드런: 저럴 것 같은데요.
아론: 밥은 어쩌나.
아론: ......
베드런: 길에 뭐 있겠죠.
넷이 갔다.
셋은 말을 탔고 하나는 걸었다.
그리고 하늘에 하나가 더 있었다.
해가 두 개 떴다.
기훈은 이제 그것에 안 놀랐다.
정오쯤에 뒤를 한 번 더 봤다.
성이 안 보였다.
'.......'
기훈은 걸으면서 이름을 셌다.
베드런은 앞에 있었다.
그레온도 있었다.
에라리온도 있었다.
셋을 빼면 예순두 개였다.
기훈은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게 말했다.
앞에서는 안 들릴 만큼 작게 말했다.
토반.
미나.
헤레이드.
카린.
에다.
벨리스톤.
그레이슨.
라온.
페트.
기훈은 그 뒤로도 계속 말했다.
다 말하는 데 이 분이 걸렸다.
이 분은 짧았다.
기훈은 그게 제일 마음에 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