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산픽
지은이 외인 · 2026-08-26
다섯이 나갔다.
베드런, 그레온, 헤레이드, 기훈, 에라리온이었다.
무기와 말은 베드런이 준비했다.
기훈은 말을 안 탔다.
베드런: 왜.
베드런이 물었다.
아론: 타면 느려서요.
베드런: ......
아론: 제가 더 빨라요.
베드런이 그를 한참 봤다.
베드런: 타라.
아론: 예.
산픽은 멧돼지의 일종이라고 했다.
아론의 기억이 항목을 내놨다.
'산픽. 데던산 서남 기슭. 가죽이 두껍고 발이 빠르다. 위협을 느끼면 정면으로 돌진한다.'
'식용 가능.'
아론: 오.
기훈이 말했다.
헤레이드: 뭐가 오요.
헤레이드가 물었다.
아론: 아니에요.
기훈은 아론의 기억이 제대로 일한 게 오랜만이라 좀 반가웠다.
첫날은 한 마리도 못 봤다.
베드런: 이상하네.
베드런이 말했다.
베드런: 이 근처에 분명히 있는데.
에라리온: 대장님! 제 생각에는 그게요, 요즘 오크가 하도 돌아다녀서 산픽들이 다 서쪽으로 갔을 수도 있거든요? 왜냐하면 짐승은 큰 소리에 아주 민감하고 특히 산픽은 청각이 발달해 있어서 스승님 책에도 나오는데 그 책이 뭐냐면.
기훈이 손을 들었다.
아론: 에라리온.
에라리온: 예!
아론: 조용히 좀.
에라리온: 저 조용한데요?
넷이 그를 봤다.
에라리온: ......아닌가요?
그날 저녁에 베드런이 술을 꺼냈다.
베드런: 아론.
아론: 예.
베드런: 내일도 못 잡으면 어쩌지.
아론: 영주님이 뭐라고 하시나요.
베드런: 아무 말도 안 하시지.
베드런이 잔을 기울였다.
베드런: 그게 제일 무서워.
기훈이 웃었다.
그레온: 공자님도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레온이 물었다.
아론: 저 열여섯인데요.
그레온: ......
그레온이 잔을 도로 가져갔다.
그레온: 그건 몰랐습니다.
헤레이드: 열여섯인데 오크로드를 잡았잖아.
헤레이드가 말했다.
그레온: 그거랑 술이랑 무슨 상관이야.
헤레이드: 아니 그냥.
베드런: 헤레이드.
베드런이 말했다.
베드런: 네가 마셔라.
그날 밤에 기훈은 잠이 안 왔다.
불 앞에 넷이 자고 있었다.
기훈은 그 소리를 들었다.
네 사람이 숨 쉬는 소리였다.
'.......'
70일 넘게 이 소리를 못 들었다.
기훈은 그것이 좋았다.
좋다는 게 조금 무서웠다.
둘째 날 아침에 기훈이 걸음을 멈췄다.
아론: 저기 있어요.
베드런이 그쪽을 봤다.
숲이었다.
나무밖에 없었다.
베드런: 어디.
아론: 저 나무 뒤에 뭔가 있는데요.
베드런: 어느 나무.
기훈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리가 백 미터쯤 됐다.
베드런: ......아론.
아론: 예.
베드런: 저기가 보이나.
아론: 안 보이는데요.
베드런: 그럼 뭔데.
아론: 들려요.
베드런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쪽으로 갔다.
산픽이 있었다.
그날은 잘 풀렸다.
오전에 셋을 잡았다.
베드런이 몰고 그레온이 헬버드로 다리를 걸고 헤레이드가 목을 땄다.
세 사람은 손발이 잘 맞았다.
십 년을 같이 했으니 그럴 만했다.
기훈은 처음에 구경만 했다.
헤레이드: 공자님, 안 하십니까.
헤레이드가 물었다.
아론: 뭘요.
헤레이드: 사냥이요.
아론: 저는 몰이 쪽은 잘 모르는데요.
헤레이드: 그럼 뭘 하실 줄 아십니까.
기훈이 잠깐 생각했다.
아론: 때리는 거요.
헤레이드: ......
네 번째 산픽이 나왔을 때 기훈이 그것을 보여줬다.
몰이도 없었고 함정도 없었다.
기훈이 걸어가서 한 대 쳤다.
산픽이 옆으로 넘어갔다.
그레온: ......
아론: 이러면 되나요.
그레온이 헬버드를 내려놨다.
그레온: 저희가 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후에 문제가 생겼다.
세 마리가 동시에 나왔다.
그중 하나가 컸다.
앞의 넷보다 두 배쯤 컸고 어깨에 흰 털이 섞여 있었다.
'.......'
아론의 기억이 뭔가를 내놨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흰 털이 난다.'
'위협을 느끼면 가장 약한 것을 먼저 친다.'
기훈이 고개를 돌렸다.
에라리온이 나무 옆에 서 있었다.
혼자 떨어져 있었다.
아론: 에라리온!
우두머리가 이미 뛰고 있었다.
에라리온은 그 자리에서 굳었다.
굳는 게 아니라 머리를 감싸고 땅에 엎드렸다.
빨랐다.
엎드리는 것만은 빨랐다.
그레온이 먼저 갔다.
헬버드를 눕혀서 옆구리를 밀었다.
방향이 조금 틀어졌다.
조금이었다.
산픽이 몸을 비틀면서 그레온을 쳤다.
헬버드가 손에서 나갔다.
그레온이 뒤로 굴렀다.
산픽이 그를 향해 다시 돌았다.
땅에 누운 사람은 크기가 작다.
산픽은 작은 것부터 친다.
기훈은 그때 이십 미터 밖에 있었다.
베드런은 나중에 그 이십 미터를 여러 번 생각했다.
사람이 이십 미터를 그렇게 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기훈이 산픽 옆에 붙었다.
붙어서 몸을 낮췄다.
발을 딛고 허리를 돌렸다.
주먹이 나갔다.
옆머리였다.
소리가 났다.
뼈가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더 둔한 소리였다.
산픽이 옆으로 날아갔다.
날아가서 나무에 부딪혔다.
나무가 흔들렸다.
숲이 조용해졌다.
기훈이 손을 털었다.
털면서 자기 주먹을 봤다.
'.......'
아프지 않았다.
기훈은 그게 좀 이상했다.
그레온이 일어나 앉았다.
그레온: 공자님.
그레온: 괜찮으세요?
아론: ......예.
그레온이 헬버드를 주웠다.
주우면서 말했다.
그레온: 저것 좀 보십시오.
에라리온이 아직 엎드려 있었다.
머리를 감싼 채였다.
아론: 에라리온.
에라리온: ......
아론: 끝났다.
에라리온: ......진짜요?
아론: 응.
에라리온: 확실해요?
아론: 응.
에라리온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무 밑의 산픽을 봤다.
에라리온: ......저게 뭐예요?
아론: 아까 그거.
에라리온: 저게요?
아론: 응.
에라리온이 일어섰다.
일어서서 옷을 털었다.
털면서 이미 말하고 있었다.
에라리온: 아니 그러니까 제가 아까 딱 봤을 때 저게 좀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자세를 낮춘 건데 그게 왜냐하면 저런 짐승은 시야가 높은 것부터 인식하기 때문에.
헤레이드: 에라리온.
에라리온: 예!
헤레이드: 너 울었다.
헤레이드가 말했다.
에라리온: 안 울었는데요.
헤레이드: 울었어.
에라리온: 안 울었어요!
그날 저녁까지 열 마리를 잡았다.
베드런: 열 마리.
베드런이 그것을 세고 나서 잠깐 서 있었다.
베드런: 열 마리다.
아론: 많은 겁니까.
기훈이 물었다.
베드런: 이틀에 한두 마리다.
아론: ......
베드런: 보통은.
밤에 불을 피우고 한 마리를 구웠다.
헤레이드가 술을 마셨다.
마시면서 자랑을 했다.
헤레이드: 내가 오늘 몇 마리 잡았는지 아나.
아론: 몇 마리 잡았는데.
헤레이드: 한 마리.
아론: ......
헤레이드: 근데 그 한 마리가 제일 컸어.
베드런: 제일 큰 건 저기 나무 밑에 있는데.
베드런이 말했다.
헤레이드: 그건 사람이 잡은 게 아니잖아.
헤레이드가 말했다.
넷이 웃었다.
기훈도 웃었다.
웃고 나서 기훈은 자기가 웃었다는 것을 알았다.
'.......'
74일이 지났다.
첫날에 그는 강가에서 토했고 열매를 던졌고 늑대를 보고 오줌을 지릴 뻔했다.
지금은 불 앞에 앉아 있었다.
옆에 네 사람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를 이름으로 불렀다.
기훈은 그 생각을 하다가 그만뒀다.
생각을 오래 하면 다음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거였다.
이 사람들은 여기 계속 있는다.
그리고 자기는 간다.
베드런: 아론.
베드런이 불렀다.
아론: 예.
베드런: 뭐 생각하냐.
아론: ......고기요.
베드런: 먹어.
기훈은 고기를 받았다.
다음 날 아침에 베드런이 열 마리를 봤다.
베드런: 성에서 두 마리면 충분한데.
아론: 나머지는요.
베드런이 서쪽을 봤다.
베드런: 마을이 넷 있다.
베드런: 오크한테 다 털린 데다.